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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직지사 성보박물관장 흥선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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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이연정 2002년 06월 244호
직지사는 예나 지금이나 방금 물걸레질이라도 한 것처럼 티끌 하나 없이 정돈된 경내가 발걸음을 조심스럽게 하는 곳이다. 가히 짐작되는 주인장(?)의 성품에 저도 모르게 풀어헤쳐진 앞단추를 가만히 여미게 하는데….
그리 여민 마음을 다시 느슨하게 풀어 주는 것이 있으니 도량을 가로지르는 작은 도랑물. 사찰을 휘감고 도는 계곡물이야 명찰의 입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건이지만, 직지사처럼 작은 물길이 경내를 관통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정갈한 도량에 이렇듯 도랑을 만든 것은 누구의 발상일까? “스님! 직지사는 언제 봐도 도량이 정갈하고 물길이 인상적이네요.”무심코 동의를 구하며 던진 인사말에 돌아오는 답변이 의외로 날카롭다.
“그런 말 여러 번 들어요. 그런데 나는 도량을 그리 좋게 보는 편이 아닌데. 중요한 것은 건물과 건물의 조화인데, 예전 절 사진을 보면 지금 그 안목을 못 쫓아갑니다.”짧은 멘트지만 흥선 스님의 비판적인 시각과 까탈스러운 성품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문화유산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탁월한 안목의 소유자 흥선 스님
흥선 스님은 직지사 성보박물관장으로, 직지사 하면 성보박물관을 떠올리게 만든 장본인이다. 특유의 문화예술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안목, 치밀하고 완벽한 성격 등이 직지사 박물관에 그대로 투영돼 있다. 덕분에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좀 힘든 게 사실이지만 ‘적게는 100년에서 길게는 1천년을 내려온 소중한 문화유산을 다루는 이들이 허술해서는 안 된다’고 스님은 못박는다.
직지사에 성보박물관이 건립된 것은 지난 1996년. 요사채로 쓰던 청풍료를 개조해 박물관으로 쓰고 있다. 총 98평 규모의 건물에 8평은 유물을 보관하는 수장공간이고, 나머지 90평은 전시공간이다.
개관 초만 해도 전시공간도 없고 그저 유물을 보관하는 창고 수준이던 것을 지난 1998년 흥선 스님이 박물관장으로 오면서 전시공간을 만들고 보존을 위한 공조시설과 첨단의 방재시스템을 갖추고 학예사를 기용하는 등 박물관으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
현재 직지사박물관에서 보존 관리하고 있는 유물은 1,500여 점. 초기 600점이었으나 후에 회주 스님이 자신의 소장유물 400여 점을 기증했고, 말사에서 보존관리를 요청한 유물, 매년 한 점 한 점 구입해 모아 놓은 유물 등 그 수가 부쩍 늘었다.
박물관이라는 곳이 유물이 늘면 늘었지 줄어 들리 없기 때문에, 한정된 전시공간에 수장고도 한계에 도달했다. 협소한 점을 극복하기 위해 탑 같은 것은 야외에 배치해 직지사 경내는 야외전시장을 방불케 한다. 또한 내부의 상설전시물들을 주기적으로 교체하는 방법을 쓰고 있기도 하다.
“협소해서 도입한 것이긴 한데, 일본 같은 경우 중요한 유물은 순회전을 통해 몇 십 년에 한 번 공개하는 경우도 있어요. 그러면 쉽게 볼 수 없는 것이기에 입장료가 비싸도 엄청난 사람들이 몰립니다.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장기적으로는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는 일이 아닐까 싶네요.” 어쨌든 문화에 대한 인식의 차이겠지만 일반인들에게 박물관은 무척 따분한 공간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요즘은 다양한 전시기법들이 이용되고, 전시 외에도 도자기를 굽는다든지, 탁본을 하는 등 다양한 행사들이 벌어지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직지사박물관도 집중전시 기법을 통해 집중도를 높이는 시도를 하고 있다. 즉 불화 가운데서도 신중탱들만을 모아 놓는다든지, 서책류를 한 곳에 모아 전시해 놓는 것이다.

사찰박물관 세워지는 것은 좋은데 뒷감당이 안 돼 방치
박물관도 이제는 보존관리 차원을 넘어 점차 사회교육기능이 강조되고 있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찰박물관이 일차적인 보존관리라는 기본적인 기능도 제대로 수행하고 있지 못하는 현실을 감안한다면 그 이상의 기능을 아직은 기대하기 힘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사찰박물관의 수는 32개(현재 짓고 있는 것까지 합한 수). 1995년 통도사박물관이 교계 최초로 세워진 후 하나 둘 늘어난 것이 이렇듯 많아졌다.
송광사 16국사 진영의 도난사건은 사찰박물관 건립의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불교계뿐만 아니라 국가적으로 사찰문화재의 도난에 대처해야 한다는 의식이 확산되었고, 문화유산의 보호라는 차원에서 국비 지원이 이루어지자 본사급 사찰마다 박물관 건립이 붐처럼 번져가고 있다. 상당수는 “저 절에서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까 보냐”고 하는 묘한 경쟁심과 국 · 도비 지원금으로 불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기회로 삼는 의식 때문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문제는 건물을 짓는 것 까지만 지원된다. 국비,지방비 합쳐 전체 공사비의 2/3가 지원되지만 합쳐서 10억원이라는 상한선이 그어져 있다. 그리고 이후의 유지관리비는 전혀 지원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통도사박물관의 경우 120억이 들었다고 해요. 실제로는 140억 정도 투여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10억으로 박물관을 짓는 것은 말도 안됩니다. 규모에 상관없이 최소한 50억 이상은 들어야 하고, 70~80억은 있어야 시작할 수 있어요.
그렇지 못했기 때문에 모두 실패작이라는 겁니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찰박물관이 앞으로 계속 보수해야 하고 추가시설을 하는 등 고속도로 땜질하듯 하다보면 아마 추가비용이 더 들어가게 될 겁니다.”장기적인 것은 차치하고 당장 유지하고 관리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문제이다. 목조, 석조, 금속, 책자 등 유물들이 요구하는 온도와 습도가 각각 다르기 때문에 공조시설이 필요한데 그것을 돌리기 위해서는 엄청난 전기와 돈이 들어가게 된다. 그래서 그런 기본적인 시설도 갖추지 못한 사찰박물관도 있다. 직지사박물관 역시 1996년 개관 당
시만 해도 그런 시설을 갖추고 있지 못했으므로 개축하면서 공조시설과 방재시스템을 갖추었다고 한다.
“직지사의 경우 관리유지비와 유물구입비 합쳐서 1억4천만원 정도가 예산으로 잡혀 있습니다. 〈특별전〉 같은 것이 열릴 경우 그런 것까지 사찰에서 지원하지 않기 때문에 자체적으로 여러 방법을 동원해 보기도 하지요. 문예진흥기금을 신청하기도 하고, 지자체에 요청하기도 하지만 쉽지는 않습니다.”모 사찰의 경우 개관한 지 두 달만에 문을 닫는다는 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개관 전에 있던 학예사도 오히려 개관 후 그만둬 버리고. 많은 사찰들이 뒷 감당이 얼마나 어렵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시작부터 해 놓는다. 막상 해 보니 난감해 방치해 두고 있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에 반드시 있어야 할 학예사가 없는 곳도 있다.
“종단에서 활동하고 있는 학예사가 14명인데, 그 가운데 통도사박물관에 4명 있고, 송광사에 3명, 직지사에 2명 있어요. 그리고 나머지는 1명이 있거나 아예 없는 곳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박물관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전문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그러나 흥선 스님은 이러한 사찰박물관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박물관에 대한 인식의 확산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무엇보다 사부대중 모두가 박물관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기만 하면 풀리는 문제라는 것. 사찰박물관은 소속 사찰의 재정과 맞물려 있기 때문에 필요성을 공감하지 않으면 예산이 배분될 수가 없다.
사찰박물관 가운데 가장 앞선 곳은 단연 통도사. 국내 대표적인 사립박물관인 호암이나 호림, 간송에도 뒤지지 않는다고 스님은 말하다. 그리고 직지사나 송광사가 다른 곳보다 반 발짝 앞선 정도라는 것. 그래도 직지사박물관이 이 정도나마 사중지원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흥선 스님의 공이 크다.
회주 스님의 신뢰받는(?) 상좌라는 점도 아마 작용하지 않았을까? 그러나 무엇보다 직지사에서 박물관의 중요성과 가치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스님은 말한다.
지난 1999년 열렸던 〈고승진영 특별전〉 같은 경우, 고승들의 진영 10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아 전시했던 것이다. 이러한 전시는 불교사찰박물관이기에 가능한 것으로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고, 중앙언론에서도 크게 호평한 바 있다.
“직지사의 이미지에도 좋은 역할을 했지요. 문화재를 불교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대중교화도 가능하고, 불교사연구의 데이터베이스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박물관은 성보의 보존이 위협받을 때 선택하게 되는 차선책
그러나 사찰박물관에 중요성을부여하지 않는 이도 있다. 이유는 불교유물들은 다른 것들과 달리 신앙의 대상인데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겨갔을 때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흥선 스님은 박물관은 최선이 아닌 차선책임을 강조한다.
“저도 기본적인 생각은 같아요. 현위치를 찾는 것도 좋지만 현위치가 불안정할 때 더 좋은 조건이 있어 보존할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죠. 교구내에 있는 유물을 무조건 옮겨와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현실적으로 가능하지도 않고 사찰마다 조건이 다릅니다. 어떤 곳은 한사코 안 된다는 곳도 있고, 어떤 곳은 지리적으로 너무 외져서 도굴범의 손을 타기 쉬워 빨리 가져가라는 곳도 있고, 신도들이 나서서 예전부터 신앙의 대상이었다며 반대하는 경우도 있지요.”

학예사의 기획의도가 보이면 관람이 흥미롭다

스님의 전공은 동양사학(물론 해인강원 이력과정도 마쳤다). 일찍이 출가해 군에도 갔다와서 뭘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늦게 대학을 들어갔다. 애초부터 우리 문화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있었다.
스님은 사찰박물관이 제대로 위상이 잡혀가면 나 같은 사람이 박물관장이 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스님보다 더 잘해낼 사람이 있다고 보는 이는 없는 듯하다.

그 얽매이지 못하고 자유로운 사고 때문에 법랍 30년이 되도록 절에서 직책 한번 맡아보지 않았던 스님이, 본래 성격과는 달리 사중과 싸워가면서 박물관을
꾸려가고 있는 것은 그 만큼 우리 문화유산의 소중함을 제대로 알고 있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좋은 유물 한 점 보는 것은 좋은 영화 한 편 보는 것보다 더 감동이 크다고 한다.
그래서 보기 힘든 전시회가 열린다 하면 만사 제치고 뛰어간다. 박물관이 그저 거쳐가는 관광코스일 뿐인 이들을 위해 흥선 스님은 박물관 관람법을 일러 준다.
“전시 같은 것을 하게 되면 나름대로의 문법을 갖고 접근하거든요. 전시기획자 학예사가 하는 일이 그것이에요. 그 사람들은 그런 것을 통해 자기의 연구결과를 보여 주고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전달하려 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고서 관심을 가지고 쳐다보면 드러나거든요. 보는 측에서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으면 안 보이죠.
종합박물관을 보면 보통 시대적으로 진열되어 있는데 그렇지 않은 것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거죠. 전시기획자의 의도를 읽어가다 보면 재미와 의미를 찾아볼 수도 있죠. 어떤 전시도 거기 있는 모든 것을 다 알겠다는 그런 생각은 버리고 즐겁게 가서 눈에 드는 것을 즐겁게 보고, 그것이 잦아지고 그러다 보면 재미있어지겠지요. 순서대로 할 생각 하지 말고 보고 싶은 것 유심히 보고 그것이 잦아지다 보면 자기나름대로 눈이 서게 되죠. 중요한 것은 어릴 때 부터 접하는 겁니다.
외국에 가면 박물관 바닥에 아이들이 퍼질러 앉아 선생님의 설명을 듣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냥 풀어 놓고 숙제 해오라고 하다보니 아이들이 와서 캡션베끼기에 급급합니다. 의무로 느껴질 때 효과는 없습니다. 즐겁게 자주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세요. 그러면 시각이 트입니다.”다음에 박물관에 가면 스님의 가르침을 염두에 둘 참이다. 그동안 감겨졌던 눈이 가늘게나마 떠지면 좋으련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