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공간, 그리고 포교공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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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원철
1993년 04월 134호
“보살님! 여기는 들어오는 곳이 아닙니다. 나가주세요.” 승가대학 안까지 들어오는 외부인과 이를 막으려는 학인 스님들이 실랑이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돌수각에 철철 흘러 넘치는 물을 마시거나 가지런히 정돈된 장독대를 구경하려고, 그도 아니면 그냥 호기심으로
이럴진대 ‘수행 공간이오니 외부인의 출입을 금합니다’ 라는 표지판은 그대로 무용지불이 될 수밖에 없다. 지나치면 목청을 더욱 돋우어야 한다. “처사님 입구에 써 놓은 것 안 보여요. 한글도 몰라요? ” “여기는 국립공원 아닙니까? 아 국립공원 입장료 내고 들어왔어요.” 이쯤 되면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벌어질 것처럼 험악한 분위기가 된다.
새삼 사찰이라는 공간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된다. 출가자에게는 수행공간이며 생활 공간이고, 신도들에게는 기도와 신행 공간이며, 관광객들에겐 국립공원의 일부분이다. 스님들과 관광객 사이에 벌어지는 이런 사소한 다툼도 따지고 보면 이러한 시각 차이에서 비롯된다.
따라서 공존을 위한 궁여지책으로 건물마다 담장을 두르고 대문을 닫고 입구에는 외인 출입금지임을 알리는 글을 붙이고 그것도 여의치 못하면 나무로 임시 칸막이라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도 밀물 같이 몰려드는 사람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다. 관광객과 언쟁이라도 하면 절집에 대한 인상이 나빠져 결국 이래저래 우리만 손해를 본다.
사실 이제 큰절은 수행공간으로서 그 의미를 상실하였다. 이미 오래 전에 선열당과 퇴설당에 있던 선원을 큰절 밖으로 옮겼고 율원 역시 한켠으로 비켜 앉은 극락전에 터를 잡았다. 그러고나니 모든 피해는 큰절에 남은 승가대학의 몫이 되었다.
올봄에 발간한 승가대학 교지 「수다라」8호에는 ‘승가대학의 발전적 모색’이라는 특집으로 승가대학의 교육환경에 대한 진지한 논의를 다루었다.
“.... 수행자 양성을 위하여 격리된 일정한 공간의 확보는 필수적이다....”라는 혜남, 원산, 성해, 경문스님의 원론적 입장과 “.... 일년에 백만명(하루 평균 삼천여 명)이 다녀가는 큰절에 스님들의 생활 공간이 노출되어 있는 사실만으로도 강원이 얼마나 비교육적인 환경인지 알 수 있다. ...”고 원택스님은 관광객을 구체적으로 수치화하였고, “.... 소음에 대한 대책이 없다. 큰방에서 하는 이야기가 지나가는 관광객들에게 모두 들리며, 반대로 단체 관광객이 밀려 올 때는 시장을 방불케 하는 큰 소음이 큰 방으로 들려온다. 특히 여름에는 스님들의 행동거지가 잘 보여서 위의 威儀에 큰 손상이 가며, 스님들 역시 출가한지 얼마 안 되는 상태에서 여자들의 과감한 옷차림이 물결치는 경내의 풍경은 수행에 결코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법미스님이 그 직접적인 폐해를 열거하고 있다.
그런데도 “승가대학이라도 큰절을 지킬 수 밖에 다른 도리가 없지 않느냐?하는 의견이 큰 흐름을 이루고 있는 듯하다. 승가대학 대중 역시 그런 불편을 감내하면서도 관음전, 궁현당의 구연 舊緣에만 끄달려 수행공간확보라는 더 중요한 일을 제쳐두고 있는 느낌이다..
이제 비교육적 환경으로 인한 수행 방해의 심각성을 냉정하게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한다. 큰절은 과감하게 재가자를 위한 공간으로 전환하여 신도법회, 수련 법회, 재가자 선방, 각종 학술 세미나 , 관광객 유치와 안내 활동 강화 등 더욱 적극적인 포교 공간으로 활용해야 할 것이다.
결론적으로 승가대학 역시 선원이나 율원처럼 한적한 공간으로 옮겨야 한다. 현재 운동장 뒤편에 있는 신축 학사인 화장원 華藏院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강의실은 물론 큰방 도서관까지 옮겨가야 한다. 물론 이를 위해서 수행 공간확보가 절대적이며, 일차적 명제라는 인식을 모두가 함께 하는 것이 무엇보다 앞서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