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시절 사색과 갈등이 많은 그 때부터 혼자 생각하는 시간을 즐겨하고 톨스토이·괴테를 좋아하며 세상의 무거운 짐을 혼자 진 듯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 때부터 일기장에 깨달을 각覺, 생로병사生老病死, 극기克己, 마음심心자를 많이 쓴걸 보면 불자로서의 종자가 이미 내 안에 있었나보다. 그러고도 아직 출가하지 못한 걸 보면 전생의 업장이 무척이나 두터운 모양이다. 그래도 부처님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기까지 무척이나 오랜 세월이 걸렸다. 바로 내 안에 있는 또 하나의 나를 쳐부수기 전까지는…….
한창 불교공부에 신심을 내어 공부할 때의 가소롭고 부끄러운 결제때가 생각난다.
어려운 화두를 들지 않더라도 내겐 옛날부터 쳐부수어야 할 화두 하나 있었다. 언제 어느 곳에서든 가리지 않고 새 순 솟듯 지우면 다시 쏘옥 올라오는 이 분별심! 아상·인상·중생상이라 했던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이 아상我相을 어찌하면 좋을꼬….
이 뭣꼬?????
놓아 버려라 ! 불덩이를 쥐고 있는 중생이 어찌 뜨겁지 아니하랴 ! 아이고! 스님 말은 쉽지요 그게 되면 중생입니까? 도인이지. 이를 놓아 버리기 위해 많은 기도를 시도했지만 직장생활이 있는 사람이 계행을 지키며 기도생활을 하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
번번이 실패로 끝난 해제 아닌 파제破制가 된 결제! 근기 부족인가? 나의 가소로운 교만이 또 발동했다. 견성見性하면 성불成佛한다고? 그 별거야? 한 번 해보는 거지. 나도 열심히 하면 도인이 될거야! 바로 득도하면 어쩌지? 하며 턱도 아닌 걱정까지 하면서 한껏 아상我相의 극치를 달하고 있었다.
선사들의 지혜롭고 통쾌한 선문답들을 읽으며 내 머리는 도인을 향한 꿈으로 가득 찼다.
참선에 관한 책들을 보며, 호흡법, 수식관으로 마음을 고르는 일부터 했다. 마음을 모으고 흐트러진 기운을 잡기 위해 ‘묵언默言’과 함께 참선을 하기로 했다. 아니 ‘절언節言’이란 편이 맞을 것 같다. 컴퓨터 화면보호기에 ‘묵언’을 항상 뜨게 하고, 비밀번호도 모두 묵언으로 바꿨다.
100일 기도 입재는 했지만 그 많은 회식을 피해가며 하루도 거르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래도 힘이 모아지고 생활에 자신감이 생기는 건 어디서 나오는 에너지일까? 기도의 힘인가? 어떻게든 100일은 채우리라 다짐하고, 그럴 듯하게 선정에 든 모습처럼 앉아 있는데 기운들이 모아지며 몸이 팽창하고 공중에 가벼이 떠 있는 나를 느꼈다. 이것이 뭔 조화인가? 무슨 경계가 온건가? 나중에 기대에 차서 스님께 여쭈었더니 거 아무것도 아니란다. 누구나 조금만 앉아 있으면 그런 현상은 다 온다나? 어찌되었건 그 많은 회식자리를 피해가며 정진한 기도의 해젯날이 하루 하루 다가오고 있었다. 그래 이번에는 무슨 영험이 올거야. 부처님께서 가피를 주실 것이야. 성탄절 산타를 기다리는 아이같이 부처님의 가피를 맞을 준비를 야무지게도 하고 있었다.
기도 80여일쯤 되었던 것 같다. 우연히 무비 스님의 《금강경 강의》 책을 들어 펴는 순간 돌로 머리를 맞은 듯 나의 생각이 멈춰버렸다. 그동안 뜻도 모르고 독경한 금강경! 대충 한글해제문을 읽고 ‘아! 그런 경전이구나. 언젠가 이해될 날이 있겠지’하며 독경했는데 내눈에 들어온 경전 문구는, 유명한 제10분 〈장엄정토분〉의 사구게는 내 교만과 아상을 무너뜨린 일대 사건이었다.
불응주색생심 불응주성향미촉법생심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응무소주이생기심
應無所住而生其心
반드시 사물에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반드시 소리와 냄새와 맛과 감촉과 그 외의 어떤 것에도 머물지 말고 마음을 낼지니라. 그래서 마땅히 머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지니라.
바보 도통하는 순간의 소리! 으아~~ㄱ. 어쩌면 이런 말씀을 하실 수가! 감탄과 함께 얼굴이 화끈거렸다. 얼마나 부끄럽고 창피한지 어디라도 숨어 버리고 싶었다.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으로 나를 묶어 두고 있었는가?‘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어라’
그동안 내 마음 어디에 두었던가? 어느 곳에 머물러 있었던가? 그 때서야 피조물처럼 우두커니 선 나 자신을 관조했다. 쓸데없는 것에 집착을 두고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신에 얼마나 분노스러운지…….
한순간 자신이 이렇게도 비참하게 떨어질 수 있는가? 이 불쌍한 인간아! 무슨 기도며 가피를 바라고 있는가?
이 경구가 육조 혜능 스님을 탄생시켰다는데 이 아둔한 사람은 그저 자학이나 하고 있을 순 없었다.
해제 10일을 앞둔 나의 마음은 급했다. 놓아 버린다는 의미에 조금은 감이 오는 느낌이었다.
생각도 맑아지고 몸은 더더욱 가벼웠다. 회향을 앞둔 마음은 그저 담담했다. 아무것도 기다림도 바람도 지워져 있었다. 잠은 오지 않고 거의 5일간 잠을 못 잤지만 생각은 더욱 맑아져 있었다. 잠을 청했다. 수식관을 하며 편안히 잠이 들었다. 몽중가피라 했던가?꿈을 꿨다. 천지가 열리고 새 세상이 열리는 환희로운 꿈이었다.
그렇게 큰 태양을 본 적이 없다. 어마어마한 태양이 하늘을 열고 산보다 큰 돌부처가 더벅 더벅 걸어 오시어 그 큰 손으로 덥석 나를 눌러 버렸다. 뜨거운 화기를 느끼며 잠에서 깼다.
너무도 생생한 꿈으로 그 세상의 주인으로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그 환희와 가슴 벅찬 기쁨을 말로 할 수 있으리……. 내게 뭘 말씀하신 것일까? 그 다음날 지극정성으로 내 식대로 기도 회향을 드리는데 얼마나 눈물이 나는지. 기쁨인지 슬픔인지 참회의 눈물인지…… 실컷
울었다. 그 때 내 안의 내가 부서지는 통곡의 소리를 들었다. 그랬었구나! 이것이 참나가 아니었구나.
즉심시불卽心是佛이라, 마음이 곧 부처라는데, 수없이 듣고 익힌 말이거늘 날이 갈수록 그 마음의 부처가 더 멀어지고 있음은 진여의 세계를 맛보기는 이생에서는 이미 틀렸나보다. 항상 마음 가는 곳을 잘 살피며 살아가려 애쓰는 일로 위안을 삼으며 부처님께 감사하고 하심下心하며 살아갈 수 있음에 감사하는 하루를 이어간다.
아직도 멀고 먼 그 진아眞我를 찾아가는 길에 좋은 우리 도반들이 있어 좋다. 법보종찰 해인사를 만난 이 불연에 또한 감사하며 정법을 향하여 바르게 신행하며 같이 걸어갈 우리 해인사 수련생동문회 법우님들과 함께 이 길을 바로 가리라.
산란한 마음을 잠재우기 위해 야부도천冶父道川 선사의 선시를 좋아한다.
죽영소계진부동竹影掃階塵不動
월천담저수무흔月穿潭底水無痕
대 그림자 뜰을 쓸어도
먼지 하나 일지 않고
달이 물 밑을 뚫어도
물 위에 흔적 하나 남지 않는다.
육근으로 들어오는 모든 것에 상으로 가득하여 산란하기 그지없는 이 마음이 어찌 먼지 하나 일지 않는 그 마음자리는 어떠한 자리일까?
오늘도 정진하시는 모든 스님들께 예배드리오며 스님 성불하십시오.
나무 마하반야바라밀.
해인심 손모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