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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인으로서의 결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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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하미리 2002년 06월 244호
결제란 원래 인도의 수행자들이 우기 4월 15일(혹은 5월 15일)부터의 3개월 동안 외출을 금하고 좌선수학에 힘쓰는 기간을 우안거라고 이름했다. 본래 바라문교가 행하는 것으로 초목, 작은 벌레마저 죽이는 것을 막고 각자의 수도에 보탬이 되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불교에서도 그 제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안거를 시작하는 것을 결제, 끝나는 것을 해제라고 한다. 이와 같은 사전적 의미를 해석할 때 재가자로서 선방에 입방하지 않고서 기도의 입재와 회향에서 그 의의를 동일시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와 해인사와의 결제는 이렇게 시작되었던 듯하다. 30대 초반 두 아이의 엄마로서 아상과 일상이 맞부딪혀 내면의 삐걱거림과 ‘사는 게 이게 전부가 아니다’라는 생각이 얼핏 들 무렵 누군가 절이 좋다기에 두 아이의 보살핌에 하루가 짧았던 시절 저녁밥 뜸들이다 기다리는 시간조차도 여유라고 느껴지면 반듯한 좌복 하나 없는 거실 바닥에서 대중들이 하는 백팔참회에 동참도 한 번 없이 평소 갖고 있던 궁금증과 의욕만으로 백팔배를 마치고 난 날은 그렇게 이유없는 뿌듯함이 일었다.
그렇게 절을 계속할 무렵 아는 이로부터 해인사 백련암의 3000배 기도가 한 달에 두 번씩 있다는 얘기와 성철 스님께 화두와 불명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그 때만 해도 주부로서의 육아 정보 정도 외에는 어두운 편이어서 불교계의 정보에 대해서는 아는 게 전무한 상황이었다. 갓 돌 지난 작은 아이를 무작정 남편에게 맡기며 자기 자식이니 하루 정도는 잘 돌볼 수 있겠거니 하는 믿음(신뢰) 하나로 밀어붙이고 꼭 해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는 것처럼, 남들 다 하는데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자신없어 하는 사촌 동서를 꼬드겨 겁없이 호기롭게 내 자신의 한계성에 도전장을 내밀듯이 일요일 새벽 5시 부산 서면에서 출발하는 버스를 타고 도착한 해인사는 눈(雪)이 드문 부산과는 다른 눈천지였다.
두려움 섞인 3000배에 대한 도전은 차라리 뒷전이 되어 버리고 눈 구경만이라도 하는 것에 가치를 둘 정도로 흥분했다. 사진으로만 보다가 처음 만난 해인사는 아예 감동이 되어 인식되었다. 산사의 일출의 장관은 경이로웠다. 문살에 내려꽂히는 아침 햇살이 법당의 부처님께 투영되어 한낮의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부처님을 탄생시킬 정도였다. 그런 강렬한 첫 인상의 인연 때문인지 십 수년이 지난 지금도 많은 기도의 입재와 회향을 만들어 내며 1029일의 영가천도법회까지 연결되어 매주 월요일마다 해인사를 참배하는 부지런한 신도가 되었다.
알고 선택한 기도는 아니었어도 무지에 가까운 순수로 항상 동참하게 되는 선우력에 감사하며 거울 보는 것이 부담스러운 중년의 나이에 부처님을 제일 좋아하며 산다고 하는 내가 되어 있다.

선방 스님네들이야 하안거·동안거를 통해 일년에 두 번씩 짬지게 수행정진을 하시지만 생활 속의 우리네야 어디 감히. 하여 조금씩의 일과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부지런을 떨어대며 돌아친 세월 속에서 시민 선방의 안거증도 몇 번 받아드는 기회도 만들 수 있었다. 항상 시작은 서투르나 성과는 기대 이상으로 와 닿았다. 3000배를 하고 나면 태산 하나쯤은 없어 질 줄 알았다. 그러나 온 몸의 통증만 느껴졌을 뿐 내면의 변화는 느낄 수 없었다.
그리고 몇 달의 시간이 흐른 뒤 3독심에 들어간다던 조급함이 많이 누그러진 걸 발견하고는 더 열심히 절을 하게 되었고 모두들 열심히 하시지만 정말 딴에는 불법만 믿고 따르며 배웠다. 하나의 새로운 기도의 장을 열고 맺을 때 마다 변해가는 나(에고ego이지만)를 만나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면서 며느리로서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놓을 수 있었고, 사랑받고 싶다는 아내의 자리에 대한 집착과 내 자식이 최고여야 한다는 애착도 자연스레 놓을 수 있었 다. 크고 작은 일상의 사건들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통해서 조용하게 거부 반응 없이 받아 들이는 힘이 되어 새로운 결제의 장을 넓힐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고여 있어 썩어 버리는 물이 아니라 실개천이라도 흐르는 물로 살아 갈 수 있게 하는 불법이 좋아서 거창한 깨달음에 대한 욕심 없이 다만 하루 하루가 평안하고 감사롭기만 하다.
얼마 전 정대불사 때 응진전에서 본 어른 스님의 자태가 너무 존경스러워 뿌듯한 감동은 혼자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기쁘게 하였다. 짙은 어둠이 깔린 달도 어두운 초순의 시간. 여명도 훨씬 먼 새벽 3시 30분의 산사의 어둠은 차라리 푸르름에 가까웠다. 백열등도 아닌 형광 등 불빛의 응진전은 마술의 집 같았다. 그 곳에서 가사 장삼을 단정하게 수하신 어른 스님의 엄숙하고 진지한 참회에 조심스레 동참하면서 아무 생각이 없었다. 지금도 생각하면 절
을 했다는 행위의 기억조차도 정확하지 않은 동작 없는 정물로서 남아 있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 하루도 빠짐없이 새벽 참회를 하신다는 어른스님. 그런 스님들의 보이지 않는 정진의 힘으로 우리의 기도가 순일하지나 아닐까 하는 믿음이 일었다.
이름 붙여지지 않은 나의 결제는 따로이 해제의 날이 없을 듯하다.
본성 자리를 찾는 그 순간이 참 해제의 때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