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참여하는 모임이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어른 스님과 대중에게 인사를 한뒤 영축 산문을 나섰다. 봄을 맞이하는 산하가 움추렸던 몸을 활짝 펴 기지개를 켜고 그 속에 살아가는 뭇 생명이 활발하게 거듭남의 몸짓을 시작했다.
고속도로 주변으로 펼쳐지는 경계가 자못 환희심을 자아낸다. 부지런한 농부가 들로 나와 봄일을 시작하고, 따스한 기운에 힘입어 꽃망울이 살며시 부끄러운 자태를 내민다. 겨우내 헐벗어 추위에 떨었던 나무들이 싹을 틔우기 시작했다. 애써 일하는 농부를 더욱 힘들게ㅐ 하는 잘못된 사회 구조가 저 평화로운 들녘에 있다니....
언제 들어도 정감어린 도시, 배달 민족의 숨결이 곳곳에 배어있는 곳. 우리의 문화 유산이 잘 보존되어 내 고향처럼 느껴지는 경주는 다른 도시처럼 삭막하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잘 이루고 있는 부처님 연기의 도량이 아닌가.
동국대학교에 도착해 모임 장소인 정각원으로 향했다. 마침 대학의 수업이 끝나 가는 시간이라 청년 학생들의 발걸음이 잦아 들어 지나치며 합장하는 이도 눈에 띈다. 일반 대학에서는 dfj마나 미미한지를 산문을 나서 보면 절감할 수 있다. 중생의 고 苦를 함께하는 참된 승가로 거듭나야 할 텐데.....
법당에 들러 부처님 전에 삼배를 올린 뒤 임시로 마련된 지대방으로 가서 벌써 와서 한담을 나누고 있는 대중 스님들에게 절하고 각 승가대학의 요즘 현황을 이야기하며 담소를 나누었다. 청년 승가의 정진 분상에 참된 수행자이고자 하는 모습이 역력한 반면 언뜻언뜻 안일함이 배어 있어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법당으로 올라가 삼귀의를 시작으로 회의를 하였다. 첫 번째 안건인 체육대회에 대한 토론에 들어갔다. 먼저 장소는 법주사로 장하고 시기는 되도록이면 구월중에 각 승가대학의 여건을 고려해 다음에 결정하기로 했다. 경기내용과 종목 선정은 그 동안의 체육대회에서 나타난 병폐를 극복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로 하였다. 출가 사문이 승부에 집착하여 예선 탈락을 하면 그만 끝까지 회향하지 못하고 중간에 돌아가 버리는 부끄러운 모습들을 지양할 수 있는 경기 운영 방식으로 바뀌어야 한다.
또 경쟁에서 화합으로 승화시켜 거친 경기는 지양하고 민족 문화 계승과 이 땅에 올바른 놀이문화 형성을 계도하는 종교 지도자로서 바람직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종목을 고민해서 선택하기로 하였다.
두 번째 안건이 세미나 개최에 대해서는 기성 종단을 비판하고 있는 우리 젊은 학인들의 삶의 모습을 반조해 보는 시간으로 하자는 내용과 함께 주제로는 첫째, 종단의 제도 개혁의 문제. 둘째, 한국불교승단의 문제점. 셋째,현 승가 교육의 문제점과 그 활성화 방안들이 거론되었으나 이 가운데서 학인들의 입장에 가장 알맞다고 여겨지는 세 번째 안을 채택하였다.
세미나 형식은 각 승가대학 별로 토론하여 그것을 정리한 뒤에 이를 체육대회와 함께 치루는 세미나에서 발표하는 것으로 하였다. 토론 문화에 그다지 익숙하지 못한 승가의 현실을 고려해 이번에는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차원에서 머물기로 하였다.
다른 안건으로 첫째, 학인 이동 질서 확립을 위한 원칙모색. 둘째, 전승련 모임의 연속을 위한 새로운 소임자 임기와 선출. 셋째, 비구니 스님들의 참여문제, 넷째, 가칭 승가대회(체육대회와 세미나)의 명칭이나 규모들은 5월 15일(윤 삼월 스무나흘)오후 4시에 통도사에서 있을 다음 모임에서 논의하기로 하였다.
지난 안건과 활동 보고로는 고속전철 동대 통과 철회 투쟁에서 지난 대통령 선거 전 김영삼 후보로부터 서면으로의 철회 약속을 받은 뒤에 변경될 노선이 아직 확인되지 않은 상황과 MBC 특정 종교 선교 방송 중단 투쟁에서 각 승가대학의지지 성명과 격려로 잘 회향(텔레비젼 방송중단, 라디오 일부 중단)하였다는 내용이다.
그 동아 제각기 문제 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 조직을 통해 함께 고민하지 못하고 지대방에서만 고민하던 청년 승가가 화합하여 조직 속에서 함께 활동함으로써 얻어낼 수 있는 결과에 대해 내심 흐뭇함을 느꼈다.
회의를 마치고 일정에 따라 마련된 동대 학인스님들의 정성어린 저녁 공양과 푸짐한 차담이 분위기를 돋구었고, 불국사 재무스님을 비롯한 선배 스님들의 관심과 배려가 밤늦도록 종단의 앞날을 걱정하게 하고 청년 승가를 깨어 있게 하였다.
학인의 분상에서 조금은 일탈된 모습이 있어 아쉬웠으나 정말 환희심 나는 이 모임에서 한국 불교의 앞날이 결코 어둡지만은 않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었다.
Ⅱ
진화론의 입장에서는 인간과 동물을 구별하는 기준을 환경에 적응하는 차이에서 찾고 있다. 동물은 특정 환경에 대해서 본능적으로 그들의 신체 구조를 변화시켜 나간다. 물이 부족한 사막에서 살아가기 위한 낙타의 신체 구조나, 땅 속에 굴을 파면서 생존하는 두더지의 발달된 앞다리 등이 그 좋은 예이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동물의 진화란 바꾸어 말하면 피할 수 없는 막다른 골목에 들어간 셈이 된다. 특정 환경에 자신을 변화시켜 버렸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서는 아주 무력하다는 의미이다. 땅 위에 올라온 두더지, 들판에 놓인 다람쥐는 뭍에 오른 물고기와 같이 무력한 존재가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특정 환경에 예속되어 있는 것이 인간 이외의 동물이 지닌 커다란 특징이다. 여기에 비해 인간은 동물처럼 신체 구조를 변화시키면서 환경에 적응하기보다는 자신의 외부에서, 소위 신체의 연장이나 그것을 대신하는 도구를 만들어서 이용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그래서 인간은 자신의 신체 조건에 맞지 않는 환경에서도 생존할 수 있는 지혜를 터득하게 되었다. 지구의 어느 곳도 인간이 활동 무대로 삼지 않는 곳은 없다. 이처럼 환경에 맞추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환경 쪽을 변화시켜 간다는 점에서 인간의 특징이 있고, 여기에 인간의 진보와 동물의 진화간의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다.
또한 인간이 동물에서 인간으로 진화해 가는 가장 큰 변화의 기점은 직립보행이라고 한다. 이 직립보행도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이야기는 인간과 원숭이의 공동 조상이 나무 위에서 생활하던 먼 옛날로 거슬러 올라간다. 나무 위에서의 생활은 나무타기인데 앞다리는 가지를 잡아 떨어지지 않게 하는 데 쓰이고, 뒷다리는 가지 위에 서는데 사용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행동이 지상에 내려와서도 뒷다리는 걷는 데 쓰고 앞다리 즉 손은 도구를 사용하는데 쓰이면서 직립보행이 시작된 것이다. 원시인간은 이러한 직립보행으로 쉽게 멀리 바라볼 수 있게 되고, 또한 자유로워진 앞다리로는 막대기나 돌멩이를 집어 무기로 쓰게 되었다. 이렇게 두 발로 직립보행하게 됨으로써 인간은 노동을 하고 도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러한 노동을 통하여 인간은 역사와 문명을 이루어 가게 된다.
근대 한국 불교의 역사를 보더라도, 불교가 사회적 상황을 변화시키면서 불교 본디의 지향점인 인간 해방이나 고통의 해소에 적극적으로 나서기보다 주어진 현실에 수동적으로 적응하는 길을 걸어 온 점을 부인하기 어렵다. 외세의 지배 아래 있을 때나 군사 독재의 억압에 민족과 민중이 신음할 때에도 불교는 그러한 모순을 타파하거나 광정하기보다 그것에 순응하고 길들여지는 생존의 원리를 더 우선해서 찾곤 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역사는 늘 진보하고 사회적 상황은 변화하기 마련이다. 오늘날 우리 절집 안에 만연한 위기 의식도, 이러한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보다 늘 상황에 끌려가는 발 늦은 태도에 기인한 측면도 많다. 특히나 요즘의 사회 변화 속도는 인간의 산술적인 계산의 척도를 훨씬 앞지르며 진행된다. 이러한 변화의 현실에서 구습에 젖어 있는 집단이나 사상은 여지없이 도태되고 만다.
지금 불교가 처한 위기 상황은 환경에 예속되어 있다가 변화된 상황이 오면 꼼짝없이 죽을 수밖에 없는 동물의 신세가 되느냐, 아니면 변화하는 환경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여 진보를 향해 좀더 나은 미래를 열어 가는 인간의 모습으로 가느냐의 기로가 아닌가 싶다.
지금까지 우리 불교가 스스로의 힘보다 늘 다른 세력에 기대어 서 왔다면, 우리 청년 승가의 새로운 노력들은 스스로 직립 보행하고자 하는 원력의 지난한 표현이다. 진정 우리가 이 땅의 토양 위에 스스로 설 수 있는 직립보행의 첫발을 디딜 때 비로소 팽만해 있는 불교의 위기도 사라지고, 창창한 불교의 앞날을 기약하리라. 이제는 환경에 적응하는 재빠른 감각을 갖추기보다는 조금은 춥고 배고프더라도 스스로 진보하는 자리에 주체적으로 우뚝 서야만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