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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를 훔치는 도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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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2년 06월 244호
작고 하얀 꽃이 빼곡하게 피어서 한 송이를 만드는 탐스런 불두화가 도량을 풍요롭게 만든다. 유월로 접어들면서 산은 훨씬 성숙해져 기운찬 청년의 모습이다. 도심에서도 시야를 조금만 멀리 보내면 날로 깊어 가는 산의 품을 느낄 수 있다. 그 산 속에 싱그러운 나무들의 향기를 바람이 배달료도 없이 전해 준다. 그런 산의 기운을 전해 받으며 하루하루 고단함을 잊고 사는 것 같다.
사람도 나무나 꽃처럼 저마다 자기만의 향기를 간직하고 살아간다. “꽃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해도 사람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전해진다”라는 말이 있듯이 삶이 향기로운 사람은 조용하게 살지만 그 향기만은 소리 없이 그리고 멀리 전해진다. 지난 세월 속에도 지혜롭게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향기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전해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을 통해서 예술이나 철학, 그리고 자연을 통해서 전해지고 있지만 그 삶의 향기의 원천은 바로 그 사람의 생각과 실천에 있는 것이다. 삶 속에서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향기를 만들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향기롭지 않은 사람이 없고 또 향기롭게 살고 싶지 않은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다만 삶 속에서 향기를 훔쳐 가는 도둑을 제어하느냐 제어하지 못하느냐 하는 차이
가 있을 뿐이다. 자신의 향기를 훔치는 도둑은 결코 바깥경계나 타인에게 있지 않다. 자기 몸과 마음과 뜻으로 지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마음에는 다양한 도둑이 내재해 있다. 입에서 나오는 말의 향기는 아름다운 형용사를 선택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다. 바른 말을 하는 언어 습관에서 향기는 배어나는 것이다. 바른 말을 도둑질해 가는 것은 바로 속이는 말, 알량하게 꾸미는 말, 이간질 그리고 타인의 가슴을 상하게 하는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악담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둑들이다. 도둑들이 성할 때는 자신의 이성과 감성이 평정을 이루지 못하는 순간이다. 그 순간이 바로 진심瞋心이 일어날 때이거나 불의의 일을 목격했을 때이다. 향기로운 언어의 도둑은 그런 찰나를 노린다. 허름하게 지어진 지붕으로 비가 새듯이 말이다.
사람의 행위에서 언어뿐이겠는가. 모든 생각이 구체적인 현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행위로 옮겨질 때이다. 오음五陰(색수상행식色受想行識)이 무성한 사람은 탐진치貪瞋癡라는 큰 도둑과 함께 살아가는 셈이다. 그 도둑들을 먹여 살리느라 한 평생을 다 바쳐 봉사하게 된다. 탐심貪心이라는 도둑을 이기지 못해 자기 분수를 잃게 되고 늘 목마른 삶을 살아가게 된다. 그 도둑의 본성이 갈증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탐심이 성하면 성할수록 작고 초라한 자신만 남게 된다. 바로 탐심에게 만족할 줄 아는 마음을 도둑맞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진심瞋心이라는 도둑은 또 어떤가. 그 도둑을 가까이하면 살아서도 화탕지옥에 살게된다. 인욕심忍辱心을 도둑질하는 것이 바로 진심이라는 도둑이라서 그 도둑의 얼굴에서 미소라는 것은 찾아 볼 수 없고 울그락 불그락 언제나 찌그러져 있다. 탐심과 진심瞋心의 고리가 어느 정도 끊어졌을 법한 수행자들도 하잘 것 없는 문제 앞에 인욕심을 찰나에 도둑맞곤 한다.
나도 예외는 아니다. 얼마 전 며칠 동안 하잘것없는 일에 인욕심을 내어 주었던 일이 있었다. 어처구니없는 일을 목격하고 그대로 방관하기엔 너무 무책임한 사람이 되는 순간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 자위하지만 ‘생각이 고착된 사람에게 너무 많은것을 요구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것도 나의 고정관념일 수 있다는 결론이었다. 진심이라는 이름을 가진 도둑의 성품은 인내심이 없고 한 번 이상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너무 성급하다. 그런 도둑 앞에 서슴없이 인내심을 내어 주는 사람은 여러 가지 장애를 감당해야 할 것이다. 평소 삶의 속도를 조금만 느리게 살아간다면 쉬이 진심이라는 도둑은 침범하지 못할 것이다.
이성적이고 논리적인 사고의 힘을 키우고 행동하기 전에 세 번 이상 생각해서 마음의 거름 망에 생각을 걸러서 실천에 옮길 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탐심이라는 도둑은 대부분 사람이 쉽게 볼 수 없는 곳에 따라 다니지만, 이 진심이라는 도둑은 얼굴이 상당히 두꺼워서 항상 사람의 표정에 앞서기 때문이다.
결국 그 모든 것이 치심痴心이라는 도둑을 다스리지 못해서 동행하게 되는 도둑들이다. 때때로 부단한 정진을 게으름이 도둑질해 갈 때가 있다. 게으름이라는 도둑은 참 끈덕지게 찾아든다. 무엇보다 시간과 공간을 가리지 않는다. 마음에 틈만 보이면 찾아 드는 것이 게으름 일 것이다. 그리고 본성에 자리한 베푸는 마음은 인색함이 훔쳐간다. 선정은 번뇌가 훔쳐가고 지혜는 어리석음이 훔쳐가지 않는가. 이렇게 위에서 나열된 도둑 외에도 수많은 도둑이 우리 마음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수행과 기도와 원력의 힘으로 제거하지 못하면 자신의 주체적인 삶을 삼독심을 근원으로 나오는 여러 경계의 도둑들에게 내어 줘야 한다. 수행력으로 다져진 올곧은 수행자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럴 것이다.
실은 수행자 중에도 초발심을 잊고 삼독심의 꼭두각시가 되어 마음 자리를 온통 다 내어 주고 마치 재물과 명예를 자랑삼는 사람들이 있다. 예로부터 미덕이 되어 왔던 수행자의 청빈한 가난이 요즘은 오히려 부끄러움이 되고 있다. 이건 잘못되어도 크게 잘못되어 가고 있다
는 증거이다. 우리 불교 교단 내에서 한 수행자로서 개인적인 수행윤리와 대 사회적인 실천 윤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그것은 참신한 수행자를 만들기 위해서 지원자를 맞이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사찰을 운영하는데 일손이 부족해서 사람을 받아들이는 데도 문제가 있다. 그리고 너무 쉽게 스님이 되는 과정도 문제가 있을 것이다.
어느 종단에서는 수행자로서의 인성이 갖추어져 있는가를 먼저 가름한 연후에 지원하게 한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래도 수행자로서 부적절한 사람을 다 걸러 내지는 못하겠지만 우리 종단은 그런 과정이 아예 없다. 단지 계단을 통해서 자격심사만 할 뿐이다. 종단 행정기관에서는 각 사찰의 소임자들의 안목을 믿겠지만 그것은 전적으로 주관적이기 때문에 다 믿을 수 없는 실정이다.
오히려 세간에 살아야 할 사람들이 적당한 시간만 견디면 어떤 통제도 없이 자기 역량껏 살수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이 출세간의 삶을 남용하면서 수행자의 탈을 쓰고 세간의 삶의 방식을 그대로 영위해 가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다. 이것은 어떻게 보면 수행자의 청빈한 삶을 도둑질하는 행위인지도 모른다.
요즘은 출가하는 행자들이 수행자가 되겠다는 열망으로 어떤 것이든 처음부터 배우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행자기간을 단축시킬 것인가를 계산하고 은사스님도 정하기 전에 행자생활을 몇 개월만 하고, 어느 강원을 졸업하고, 어느 기도처에 가서 기도를 얼마 동안 한다는 계산을 하고 출가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참 놀라운 일이다. 우선 그 사람들 마음속에는 문중의 가풍과 은사스님의 가르침은 아예 계산에도 없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 출가하면 어떻게 교단의 통제를 받겠는가. 아예 그런 것들은 안중에도 없던 일이다. 그러니 기본 교육기관도 외면하고 자기 고집대로 사는 초심자들이 많아지고 있는 실정이다.
세간에서든 출세간에서든 자신의 삶의 향기는 그렇게 계산해서 인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가식적인 향기는 오래 가지 못하고 사람을 질리게 하지만 자연스런 삶의 향기는 세월의 담을 넘을 수 있는 것이다. 인연된 모든 이들의 삶이 향기롭길 바라고 삶의 향기를 도둑질해 가는 그 모든 경계를 지혜롭게 제어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