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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절의 임제가풍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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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看話禪 사상 - 인경 2002년 06월 244호
일반적으로 진리에 들어가는 인연으로서 스승과 제자의 문답을 공안公案, 혹은 고인들이 사용한 진리의 준거라는 의미에서 고칙古則이라고 부른다. 공안이란 본래의 의미는 재판관이 심리하는 책상을 뜻하는데, 선종에서는 진리에 계합하는 정도를 가늠하는, 제자가 돌파해야 할 문제라는 의미로 사용된다. 이러한 공안의 발달이 간화선看話禪의 형성에 중요했다. 왜냐하면 공안에 내재된 논리적인 모순을 타파하지 못하면, 그것은 의심이라는 미해결과제를 안게 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간화선에서 자주 사용되는 투과透過 혹은 투득透得이란 말은 바로 미해결된 자기 실존의 문제에 대한 타파를 의미한다.
간화선의 확립은 대혜가 활약한 남송南宋 시대이라고 말하지만, 이미 당말唐末에 선대先代의 공안은 제자를 가르치는 중요한 수단으로 활용되었다. 그렇지만 ‘진리에 관한 스승과제자의 문답’으로서 공안의 성립은 부처님 당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왜냐하면 불교의 경전은 바로 부처의 가르침이나 부처와 제자들간의 대화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국 선종의 조사들에 의해서 이루어진 문답을 보면, 부처님의 대화의 방법과는 그 기풍이 같지 않다.
부처와 조사를 비교하면서, 규봉종밀圭峯宗密(780~841)은 “부처의 가르침은 만대에 의지할 바이므로 활등처럼 말하고, 조사는 당대의 가르침이므로 활줄처럼 곧장 진리를 드러낸다”
고 말하고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굽어진 활등에 비유하고, 선문답을 곧게 팽팽하게 긴장된 활줄에 비유한 것은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굽어진 활등’이 대기 설법의 친절한 방편을 의미한다면, ‘팽팽한 활줄’은 방편에 의존하지 않고, 곧바로 진리를 드러내는 방식을 상징한다. 일반적으로 길을 ‘가로질러 끊어가는’ 선문답의 특징적 성격을 경절徑截이라고 부른다. 활줄처럼 곧장 진리를 드러내는 경절徑截의 가풍은 임제종臨濟
宗에 의해서 주도되었다.

어느 날 임제가 상당하여, “붉은 살덩이에 위位 없는 참사람(眞人)이 있다. 항상 그대들 얼굴로 출입하니, 확증을 잡지 못한 사람은 살펴보라.”고 말하였다. 그 때 한 승려가 물었다.
“무엇이 위位가 없는 참사람입니까?” 그러자 임제는 법상에서 내려와 그 승려를 움켜잡고
“말해, 말해라.”라고 소리쳤다. 승려가 머뭇거리자, 그 승려를 탁 놓아 버리면서 “위 없는 참사람이 이 무슨 똥막대기인고?” 하고는 방장실로 돌아갔다.

여기서 다만 임제臨濟(?~867)가 한 말은 ‘위 없는 참사람은 그대들 얼굴에서 항상 출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는 임제는 아무런 말이 없다. 친절하고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정작 “위없는 참 사람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자, 임제는 설명하기를 그만두고 법상에서 내려와서, 직접 그 승려를 움켜잡고 “말하라”고 다그친다. 이것은 굽어진 활등이 아니라, 분명하게 팽팽한 활줄의 방식이다.
그런데 당대의 임제보다 약 200년이나 지난 뒤에 지어진 북송 각범(1071~1128)의 《임간록林間錄》에 의하면, 임제에게 ‘위 없는 참사람이란 무엇인가’라고 물었던 그 승려의 이름은 용상龍象이라고 한다. 넘어진 용상에게 마침 곁에 있던 스님이 “왜 절을 올리지 않는가”라고 하자, 무심결에 절하면서 일어서자 온 몸에서 비오듯이 땀이 쏟아졌다. 바로 이 때, 그는 마침 땀을 흘리는 자신의 위 없는 참사람을 크게 증득하였다. 이와 같은 임제의 역동적인 가풍을 각범은 “곧바로 보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貴直下便見), 사정을 조금도 봐 주지 않는다(不復留情)”고 평가한다. 이렇게 ‘조금도 사정을 봐 주지 않는’ 선문답을 당·송대 조사선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비단 임제종뿐만 아니라 중국 당시 총림에서는 매우 흔한 일인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덕산방德山棒, 임제할臨濟喝’이다. 생각으로 헤아리거나 논리적으로 분별하는 습성을 끊어내고, 제자가 곧장 깨닫게 하는 활줄과 같은 방할의 가풍은 선종의 대표적인 기풍을 상징하는 말이 되었다.
그런데 송대에 들어와서는 당대의 방할을 대신해서, 조사의 언구를 의심하여 지켜보는 간화선이라는 형태로 임제선은 계승되었다. 그러나 원오와 대혜는 제자를 향하여 자주 방할을 사용하지 않았다. 아마도 송대에 들어와서는 이미 당대의 방할은 구시대의 유산으로서, 형식화에 떨어진 죽은 언어가 되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대혜는 조사의 고칙에 의한 스승과의 문답을 통해서 깨달았다. 이 방식은 앞에서 보았듯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단독적인 만남’과 ‘곧장 드러남’으로 대변된다. 이와 같은 임제의 가풍을 대혜는 바로 계승하고 지켜가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을 가지고 있었다. 대혜는 《서장》의 마지막 편지인 고산종체 선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이미 이 일을 마쳤다면, 반드시 철두철미해야 합니다. 평소에 실답게 증명하고, 깨달은 일착자一着子를 가지고 방장실에 앉아 있는 것은 마치 120근의 짐을 지고 홀로 나무다리를 건너가는 것과 같습니다. 손발이 미끄러지면 자기의 목숨마저 보호할 수 없는데, 하물며 남을 구제할 수 있겠습니까?근래에 불법을 팔아먹고 사는 무리들이 많아졌습니다. 이 때문에 올바른 종지가 가려지고, 단전직지單傳直指의 가풍이 흐려지고 있으니, 살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수행자가 입실入室할 때는 칼날 내리듯이 엄하게 해야지, 진흙탕에 빠진 듯이 해서는 안 됩니다. 불법을 가지고 인정과 결코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작년에(설봉혜공雪峰惠空 선사는) 어록 한 권을 보내왔는데, 그가 임제종지臨濟宗旨를 잃지 않았습니다. 만약에 내가 처음부터 그에게 (친절한) 노파선老婆禪을 설했다면, 그는 나중에 나를 욕했을 것입니다. 다만 본분사本分事로서 사람을 대접했을 뿐입니다.

고산종체鼓山宗逮 장로는 동선사악東禪思岳의 법제자이다. 동선사악은 대혜의 법제자이므로, 고산종체장로는 대혜의 법손자가 된다. 여기서 말하는 양기종파란 북송의 황룡파와 더불어 남송에서 융성한 임제종의 일파이다.
양기파는 양기방회楊岐方會(992~1049)로부터 시작하여 백운수단白雲守端(1025~1072)과 오조법연五祖法演(?~1104)을 거쳐서, 마침내 원오극근悟克勤 (1063~1135)과 대혜종고大慧宗(1189~1163)에 이르러 활짝 꽃피운 법계를 말한다. 양기종파楊岐宗派에 대한 대혜의 종파의식은 매우 대단하여 《서장書狀》뿐만 아니라, 《보설普說》이나 《게송偈頌》 등 도처에서도 찾아볼 수가 있다. 물론 법맥에 대한 과도한 종파의식은 편협한 사고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대중적인 문서나 언어에 의존하는 교종과는 다르게, 스승과 일대일의 대화를 통해서 깨달음을 이어가는 선종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고유한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편지에서 대혜는 제자와의 단독적인 만남, 곧장 드러냄의 기연機緣을 준비하며, ‘방장실에 앉아 있는 것이 마치 철근 120근을 지고 나무다리를 지나가는 것과 같다’고 하여, 그 책임이 막중함을 후배선사에게 경계하며, 선대로부터 내려오는 ‘인정을 두지 않는’ 단전직지單傳直指의 기풍을 선양할 것을 당부하고 있다. 여기서 말하는 선대의 인정 사정없는 단전직지의 기풍이란 임제가풍을 말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단전單傳은 스승과 제자의 단독적인 만남을 의미한다. 곧 언어가 아닌 붉은 얼굴을 맞대고 마음과 마음으로 현장에서 전등하는 정신이다. 직지直指는 언어나 교설을 통해서 돌아가는 가르침이 아님을 의미한다. 그것은 사량과 분별을 단숨에 잘라내는 칼날, 경절을 함축한다.
이런 점에서 간화선에서 말하는 공안公案 혹은 화두話頭는 바로 스승과의 단독적인 만남일 뿐만 아니라, 곧장 본질로 뛰어드는 경절의 칼날이 된다. 그것은 노파심의 친절한 해설이 아니라, 수영을 배우기 위해서 곧장 물 속으로 뛰어드는 삶의 활달함, 그 자체라고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