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을 다시 생각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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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자의 소리 - 정상욱
1987년 10월 68호
한국불교는 근래에 들어와 스스로의 질곡에서 벗어나려는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작년 ‘9.7 해인사 승려대회’는 이러한 몸부림의 처절한 표현이었으며, 여러 대중스님들의 불교자주화 및 사회민주화 선언은 불교계 내외에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이제 9.7 정신은 실천 속에서 현실화되고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총칼없이는 권력을 유지하지 못하는 현 정권은 제반 민주화운동헤 대한 탄압과 함께 불교의 사회민주화에의 동참을 가로막으려 하고 있다. 보기를 들어 올해 3월 3일에 있었던 ‘고 박 종철 법우 49재’를 원천적으로 봉쇄하여 우리 민주 법우들은 노상에서 스님들과 함께 최루탄을 뒤집어쓰면서 천도의식을 약식으로 거행할 수밖에 없었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법우와 시민, 학생이 연행되었다. 또한 6월항쟁 가운대 있었던 6월 20일의 ‘민주화를 위한 구국대법회’에서도 전경과 사복경찰을 동원하여 행사장이었던 조계사를 봉쇄하고 노상에서 정근하던 스님과 재가불자들을 무차별 구타 연행하였다. 현 정권은, 이렇게 불교의 사회참여를 저지하고 방해할 뿐더러, 5월 18일에는 원각사난입사태를 자행하기도 하였다. 법당에 최루탄을 투척하고 법회를 보던 법우들을 구타하고 연행한 원각사사태는 그야말로 불교사에서의 커다란 치욕인 ’80년 10.27법란의 축소판이었다.
’80년 광주에서 많은 사람을 학살하고 정통성을 상실한 정권이 정화니 뭐니 하면서 법당에 난입하여 스님을 짓밟고 연행하고서는 부정축재 등의, 불교를 근거없이 비방한 수사결과를 발표하였던 10.27법란은 한분의 스님께서 입적하시는 결과까지 낳았다. 그러나 그러한 혹독한 탄압과 불교의 왜곡에 대하여, 불교계에서는 아무런 저항과 항거도 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일부 불교계에서는 10.27법란의 이야기를 꺼내는 것조차 금기시하는 경우도 나타났다.
이러한 패배의식이 불교를 계속해서 침체하고 쇠퇴하게 만드는 커다란 원인으로 작용하였음은 말할 것도 없다. 만약 정권이 가톨릭이나 개신교에 10.27법란과 같은 억압을 자행한다면 기독교인들은 불교와 같이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기독교는 외래종교이면서도 오히려 민주화를 위하여 더 많은 역할을 했기 때문에 교인이 늘어나고 그 입김도 세어졌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라고 할 때, 10.27법란은 커다란 반성을 불교에 요구한다고 보겠다. 왜냐면 오늘의 불교가 사회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그문제들을 민중적 관점에서 해결하려고 노력할 때만이 불교는 그 역사적 사명을 다하는 것임과 동시에 진정한 불법의 포교를 이루는 새로운 장을 열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패배의식을 씻고 정법구현의 대열을 정비하여 나가기 위하여서는, 먼저 10.27법란을 일으킨 책임자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고 1.027법란에 대한 정부의 사과와 해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10.27의 책임자는 뻔뻔스럽게도 대통령출마를 선언하였다. ’80년 광주학살과 10.27법란의 주역인 그가 대통령출마를 선언하였다는 것은 현재 새로운 사회, 다시 말해 민주화된 사회를 꿈꾸는 모든 국민들의 바램을 무시하는 것이며 동시에 10.27법란이라는 치욕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천만 불교도를 기만하는 것밖에 안 된다. 그는 또한 지금까지 자신이 불자라고 이야기하여 많은 불교도들로부터 같은 불자로서의 동질감과 호감을 얻으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던 그가 막상 선거가 다가오고 자신이 불자라고 이야기해 보았자 별반 이익이 없을 것 같자 이번에는 자신이 무종교라고 주장하였다. 이것은 우리 불교도에게 또 다른 배신감을 느끼게 함과 동시에 민족의 반역자이며 반민주화의 기수가 불자가 될 수 없음을 확인하게 해 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제 불교는 악한자가 행하는 기만과 탄압을 자비라는 말로서 은연중에 비호하여서는 안 된다. 올바른 자비의 정신은 나쁜 일을 하고 잘못된 생각을 가진 사람을 적극적으로 설득하고 바로잡는 것이며, 그 사람이 쉽게 설복되지 않는 경우에는 혁명적인 방법에 의하여서라도 바로잡는 것일 터이다. 따라서 불교는 지금까지의 잘못된 행위를 해온 세력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참회할 줄 모른다면 정법의 칼을 결연히 쥐고 일어나 사악한 무리들을 응징하여 정법의 날이 앞당겨지도록 하여야 활 것이다.
이 땅에 민주화 정토의 날이 올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법당에서마다 10.27법란을 겪고 원각사에서는 최루탄을 뒤집어쓰는 등 제자들의 못난 행위로 말미암아 수난을 당하신 부처님께 떳떳하게 공양을 올릴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