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립문자>래요, 절망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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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이윤기
2002년 06월 244호
학자들 및 예술가들 여럿과 함께 그리스, 터키, 이집트, 중국 등지를 여러 차례 여행했습니다.
전공이 다른 사람들끼리 서로를 도우면서 안목을 높인다는 뜻으로 모인 친구들이었습니다.
모두 카메라를 한두 대씩 메고 다녔지요. 신화 읽기와, 오늘날의 독자들을 위해 그 신화 다시 쓰기를 좋아하는 나는 신화 이미지를 만날 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대었습니다.
나는 이 렇게 해서 독자들에게 신화 이야기를 들려 줄 때 보여 줄 사진을 수천 장이나 찍어왔습니다.
의상학자는 박물관에 전시된 옛 의상 앞에 오래 머물면서 사진을 찍었고 영양학자는 시장 양념가게 앞에 오래 머물면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전공 분야에 따라 카메라 들이대는 데가 조금씩 달랐을 뿐, 모두 카메라를 한두 대씩 메고 다니면서 인상적인 사물을 만날 때마다 들이댄다는 것에는 예외가 없었습니다.
화가들은 카메라 대신 스케치북을 들고 다니는데 나 는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카메라 대신 이녁들의 눈을 믿는 그들의 태도에서 오연함이 느 껴지기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화가들 안주머니에도 소형 카메라가 들어 있기는 했지요. 카메라 없이 여행하는 이가 딱 한 분 있었습니다. 그는 가난한 사람이 아닙니다. 종합예술학 교 교수이자 연극 연출가인 그가 카메라를 사지 못할 만큼 구차할 까닭이 없겠지요. 다른 이유가 있었을 터입니다. 그가 카메라 대신 가지고 다닌 것은 쌍안경이었습니다.
열이틀 동 안이나 그리스와 터키를 함께 여행하는 동안 나는 그가 사진 찍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부산떨면서 사진을 찍고 있을 동안, 그는 쌍안경으로 고대의 원형 극장을 가만히, 그러나 샅샅이 뜯어 보거나 돌계단에 앉아 명상에 잠기곤 했습니다. 귀국한 지 오래지 않아 나는 그 뒤 그가 무대에 올린 고대 그리스 비극을 보고서야 그가 고대 문화의 발상지인 그리스에서 온몸으로 고대를 만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온몸 으로 고대를 만나고 있었다는 증거를 대기야 쉽지 않습니다만 어찌나 부끄럽던지요. 내가 무엇을 그렇게 부끄러워했는지 짐작하시겠지요. 지난 4월 <문학의 집·서울>의 요청에 따라, 주제넘게도 문학 강연이라는 것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한 참석자는, 내가 1995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나비 넥타이>를 대표작 이라고 생각한다면서 나의 생각을 물었습니다. 나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대표작이라고 불리는 것을 거절한다고 대답했습니다. 질문자는 매우 당혹스러워 하더군요. 참 미안했습니다 만 그럴 만한 까닭이 있습니다.
그 작품을 발표할 당시인 1995년 전후, 삶과 문학에 대한 나의 생각은 익어 있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작품에 이어 <숨은 그림 찾기>라는 연작소설을 잇달아 써 내었습니다.
나는 삶의 숨은 그림을 찾아 독자들에게 보여 줄 수 있다고 믿었음에 분명합니다.
삶에서 공통분모 비슷한 것을 찾아내고 이것을 개념화할 수 있다고 믿었음에 분명합니다.
고백하거니와 나는 내가 창안한 개념이 다른 사람의 삶에도 적용이 가능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고백합니다. 나는, 지극한 진리는 말로써 전할 수 없다(不立文字)는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나는 언어로써 그것을 그려내는 일이 얼마든지 가능한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삶의 숨은 그림이라면 삶의 진리, 혹은 그 진리의 편린 같은 것 아닌가요? 삶을 관통하는 진리 ‘찾아내 기’가 가능하다면,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작가는 굉장한 것이지요. 나는 이 착각의 늪에 빠져 한동안 허우적거렸습니다.
고대 유적의 사진을 찍는 대신 쌍안경으로 가만히 관찰하던 내 친구를 보고 크게 감동한 것 은 내가 이런 착각의 늪에 빠져 있을 때의 일입니다.
사진을 찍지 않는 내 친구를 보면서 내가 나에게 던진 질문은 이런 것입니다. ‘너는 네가 진리라고 믿는 것을 말로써 그려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는 세상에 대한 네 나름의 해석으로써 남이 할 수 있는 해석의 여지를 가로막고 있는 것은 아니냐? 너는, 너 자신도 알지 못하는 주제에 문학으로써 독자를 가르치려 드는 것은 아니냐? 너는 지식이 라는 해독의 만성 중독자는 아닌가?’ 독일의 시인 라이너 쿤쩨의 <변증법>이라는 시를 읽 고 무릎을 친 것은 그 즈음의 일입니다. 다음의 시구는 나에게 절망을 안겼습니다.
모르는 사람들아 내가 너희를 가르치겠다 너희가 끝내 모르도록 신화 읽기로 오랜 시간을 보낸 나는 거짓일 수도 있는 황당한 신화(신화를 뜻하는 영어 ‘미쓰myth’는 실제로 ‘거짓’과 동의어로 쓰입니다)를 두고 많은 학자들이 ‘신화와 진 리와의 거리’를 말하는 것에 싱싱한 충격을 받고 말았습니다. ‘영혼과 육신이 동행하듯이 진리와 동행하는 것이 신화’라고 주장한 아일랜드의 신화학자 제러마이어 커틴, ‘종교적 인 삶은 신화를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는데 그 까닭은 신화만이 종교적인 삶을, 살아 있는 개인의 격정적인 운명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한 러시아의 철학자 니콜라이 베르 자예프가 바로 이들입니다.
나는 인도인 철학자 아난다 쿠마라스와미가 내린 신화의 정의를 가장 좋아합니다. “궁극적인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신화의 언어가 거기 가장 가까이 있다.”신화가 황당한 것은 어쩌면 신화 작가의 의도적인 노림수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은 이즈음입니다. 노자님 말씀 ‘명가명비상명名可名非常 名’은, 이름 지어 버리는 순간 그 사물의 본질이 이름에 갇히게 되는 사태에 대한 염려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 것인가? 바로 이런 생각에서 옛날의 현자들은 사물에다 이름 붙이는 행위, 이름으로써 사물을 정의하기를 꺼린 게 아닐 것인가? 노자님의 《도덕경》이 ‘바퀴 살’로써 까다로운 ‘용무용用無用’을, ‘젖먹이 아기’로써 돈후敦厚한 덕을, ‘작은 생선’ 지지는 일로써 큰 정치를 설명한 까닭, 장자님의 《장자》가 ‘곤鯤’이라는 동물로써 세상의 크기를, ‘우물 속의 개구리(井底蛙)’로써 사람의 크기를, ‘나비의 꿈’으로써 만 물의 유전을 설명하는 것은 이 때문이 아닐까 싶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독화살 맞은 사람’ ‘가난한 여인의 등불’ ‘누각의 3층만 지으려는 부자’ 이야기, 예수님의 ‘탕자의 귀가’ ‘등유를 준비하지 않은 신부’ ‘게으른 포도원 주인’ 이야기도 나는 이런 식으로 이해합니다. 나는 아직도 착각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희망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궁극적인 진리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다는 쿠마라스와미의 유서깊은 주장, 옛 선지식 들에게는 상식으로 통하던 이 너무나도 남루한 주장에 완전히 항복합니다.
그러나 나 같은 자에게도 희망은 있습니다. 만일에 궁극적인 진리를 표현할 수 있는 언어가 있다면, 신화의 언어가 거기 가장 가까이 있다는 쿠마라스와미의 말이야말로 내 희망의 등 대입니다.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번역하는 행위’는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옮겨내는 작업이 아닙니다. ‘번역하는 행위’는 ‘역어라는 이름의 직선으로써 원어 텍스트라고 하 는 원의 한 점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행위’입니다.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삶의 현상은 ‘원어 텍스트’, 내가 부리는 언어는 ‘원어의 한 점 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운명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한 역어’입니다.
직선에 지나지 못하는 나의 언어로써 원에 가까운 원융한 진리를 그려낼 수 없다는 것을 나는 인정합니다. 나는 단지 한 점만을 건드리고 지나갈 수 있을 뿐입니다. <불립문자>가 나에게 절망만을 안기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가갈 수 있을 뿐입니다. 다만 건드릴 수 있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