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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 집’ 추진에 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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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1993년 03월 133호
글에 앞서
지난해 본지 삼월 호에 일본을 알고 일본을 극복하자 는 제목의 해인 리포트가 실렸다. 그 내용은 일제 시대의 문제를 환기하면서 그 무렵 국민적 관심사로 제기된 정신대와 관련된 증언, 언론의 보도, 일본 정부의 책임회피 등에 관한 것이었다. 그 글은 이에 대한우리 정부의 미온적인 태도를 질책하고 아울러 민간 차원에서의 대응에 관해서 간략히 소개하면서 ‘우리 불교도와 국민의 각성이 요구’ 되고 ‘일본을 경계하고 극복하는 것이 우리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 라고 끝을 맺었다.
그 동안 일제시대 정신대에 끌려간 사람들의 치욕적인 삶, 특히 종군 위안부에 관한 일은 공식적인 기록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하여오다가 91년 7월에 김 학순(69세) 씨가 처음으로 자신이 종군 위안부의 일원이었음을 밝히면서 다시 여론화되기 시작했다. 김씨의 증언에 힘입어 그 동안 민족의 비극을 개인의 수모로만 생각하여 인내하고 숨기며 살아온 정신대 할머니들의 증언이 잇따랐다. 대부분은 아직도 익명으로 남길 바라지만 정부와 민간단체에 접수된 피해 신고자가 이백여 명을 넘고 있다. 피해자들의 일부는 ‘무궁화 자매회’ 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신대의 진상을 밝히고 일본의 사과와 배상 등의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고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정신대 문제를 다루는 단체는 기존 여성단체들이 공동으로 결성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와 법인체로 등록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등 여렷 있다. 그밖에도 일제 피해 배상문제를 해결하려는 ’대일민간법률구조회’가 법률적 근거를 뒷받침 하고있다.

불교계의 대응
해인 리포트에서 지적한 뒤인 지난해 8월 10일에는 정신대 할머니들의 생활 터전을 마련하려고 ‘나눔의집’ 건립추진위원회가 불교인들의 손으로 구성되어 불교계에서도 본격적으로 정신대 문제에 나섰다고 할 수 있다. ‘나눔의 집’ 건립추진위 결성 이전에도 정대협 활동에 불교계가 참여하고 몇 번의 성명서를 발표하였으나 교계에 크게 관심을 끌지 못했다. 92년 3월에 불교인권위 안에 여성분과위가 설치되어 일차적인 사업으로 정신대 문제에 적극 대응하면서 교계의 노력이 구체화되었다. 그리고 부산 범어사의 정관스님이 ‘나눔의 집’
건립 추진위원장을 맡아. 이 사업은 점차 활기를 띠기 시작하였다.
추진위가 결성되자 경기도 광주군 퇴촌면 원당리에 사는 조영자(41세) 보살이 선뜻 자신의 집 부근 땅 641평을 기증했다. 조 보살은 바로 ‘국치일’ 인 8월 29일에 땅을 기증함으로써 교계는 물론 주요 일간지에 보도 되었다.
처음 ‘나눔의 집’ 을 마련하려는 계획은 지난해 연말까지 1억 원을 모금하여 개인 주택을 전세로 얻고 그곳에 무주택자로 계신 정신대 할머니들을 몇 명이라도 모시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조보살의 땅 기증에 이어 예상밖으로 교계의 관심과 호응이 높아 이 계획은 수정 되었다. 먼저 기증 받은 땅을 적법하게 수용하려면 복지법인의 설립이 필요하고, 그 땅에 집을짓기 위한 자금도 만만치 않게 되었다. 당연히 모금의 목표 액수도 높게 책정하게 되었다.
추진위가 결성되자 예상과는 달리 불교계의 성금은 끊이질 않았다. 대체로 일반사회 문제에 냉담한 불교신자들이라는 통념이 있어 추진위의 주체인 불교인권위 여성분과는 사실 적지 않은 전세금을 마련하려고 여러사업을 가획하였다. 그러나 추진위 결성 20일 만에 2천5백만 원이 모금되고, 시가 1억 원을 훨씬 넘는 땅을 기증받기에 이르러서는 인식의 전환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교계 밖의 일에 관한 시인에 대해 이렇듯 호응이 놓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더구나 종단의 공식 기구가전면에 나선 경우가 아니고 이른바 아직까지 교계의 \'재야단체\'아 불리는 불교인권위의 한 분과위가 주체가 되어서 추진하는 사업인 점을 감안한다면, 이렇듯 대중의 호응이 폭넓게, 짧은 기간에 많은 액수의 모금이 진척되는 성과가 있음은 대단히 고무적이다. 이러한 교계의 응집된 성과는 기존의 정신대 관련 단체가 기울여온 노력과 그 성과에 비교하여 보아도 상당히 성공적인 사례임에 틀림없다.
본디 지난해 연말까지로 상정한 정신대 할머니들의 주거 공간확보는 계획을 앞당겨 10월 31일에 실현되었다. 서울 서교동에 대지 80평, 방6칸의 이층 양옥집을 1억 원 전세로 얻었다. 이곳에 강덕경(70세) 보살을 비롯해 9명이 입주했다. 개소식을 하던 날 각계 인사가 참석했는데 눈여겨 볼 사람은 가수 이선희 씨였다. 서울시 의원이며 자신의 아버님이 태고종 스님임을 개소식 때에도 밝힌 이씨는 불교계가 정신대 문제에 적극 대응하자 선뜻 \'나눔의 집’마련을 위한 자선 콘서트를 갖고서 이 콘서트의 수익금 전액을 기금으로 출연하겠다고 추진위에 의사를 전달한 바가 있었다. 11월8일 공연이 있었으며 같은달 23일 적지 않은 수익금이 추진위에 전해졌다.
이씨의 콘서트가 있기 전에 강남의 통도사 포교원인 구룡사에서 고인이 되신 정신대 영가를 위한 천도재가 성황리에 올려졌다. 구룡사 정우스님의 후원과 아울러 암도스님이 민족사의 비극으로 숨져 간 영가에 대한 추모의 법문에 있어 참석한 대중이 모두 숙연한 마음으로 함께하였다.

약간의 문제
거듭 강조하건대 사회적 문제인 정신대 할머니들에 대한 불교 신자들의 호응과 관심, 실제적인 참여의 성과는 예상 밖으로 크게 나타나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사회가 변화된 만큼 불교신자의 인식도 변한 것이다’ 고 말하면 오히려 냉소적인 분석이기에 좀더 적극적인 해석이 요구된다. 이 글에서는 그러한 분석이 합당하지 않기에 그동안 ‘나눔의 집’ 추진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 몇 가지만 지적할까 한다. 우선 추진하려는 사업 자체의 성격이 정신대 생존자들에게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려는 점에 맞추어져 있는데 반해 사업의 추진 주체는
불교인권위의 여성분과였던 점이다. 물론 추진위원장에 정관스님을 모심으로써 교계의 재야 단체가 추진한다는, 말하자면 사업 주체의 폭을 넓힐 수는 있었으나 내적으로 갈등을 일으킬 소지는 남아있다. 처음의 소박한 목표가 예상을 넘는 많은 액수의 모금성과로 사업 목표를 몇 번 수정하면서 급기야 추진위의 주요 임원이 사퇴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정관스님은 애초에 추진위원장직을 수락하며 약속한 바가 있기에 작년 연말 사퇴한 것이지만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성과에 맞게 주체의 변경을 가져왔어야 한다는 점이 지적된다. 곧 법인체를 설립하는 등의 간단치 않은 규모가 큰 사업으로 발전하게 된 만큼 과감히 종단의 공식 기구로 사업을 이전하였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이다.
그랬다면 사업의 규모가 좀 더 체계화되고, 재야단체의 사업성과를 종단의 공식기구가 이어받아 발전시키는 모범으로 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뒷북치는 얘기일지 모르겠으나 정관스님의 사퇴도 사업 주체의 이전이 있었다면 생기지 않을 문제라 생각한다. 불교 인권위의 위
상도 상당히 조정되는 반사적 이익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또 하나는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명칭을 띤 ‘자비의 집’ 추진위가 교계에서 전개되어 ‘나눔의 집’ 추진 사업에 차질이 있다. 물론사업의 성격은 판이했으나 ’자비의 집’ 추진을 위한 기금마련 사업이 추진되면서 본디 ‘나눔의 집’ 사업 계획으로 진작부터 잡혀 있던 작년 연말의 기금 마련 공연이 취소되었다.
이런 점은 교계의 역량이 충분하지 않은 조건을 고려하여 사업 주체 사이에 협의 조정되어야겠다.
끝으로 현재 교계 밖의 정신대 문제를 다루는 단체와의 관계를 분명히 할 필요가 있겠다. 그것은 곧 정신대 문제를 ‘운동’ 으로 발전시킬 것인가 아니면 단순히 ‘보금자리’를 마련해 주는 자선사업으로 국한시킬 것인가 하는 성격의 문제이므로 앞으로의 전망과 관련해서도 중요한 문제일 것이다. ‘운동’ 을 ‘선교’ 사업으로 정략화하는 다른 종교권의 오류가 있기에 성격의 규정이 있어야하며 그럴 때 다른 단체와의 연대도 명확히 할 수 있다.

불교계의 정신대 문제 대응은 비록 늦기는 했으나 지금까지의 호응으로 보면 상당한 잠재력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아무튼 우리는 모두 이 성과를 어떻게 발전시킬까 하는 것이 과제로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