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를 찿아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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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 - 김남희
1993년 03월 133호
선화를 만나러 큰절에서 암자로 토굴로 찾아다니다 보니 이제는 제법 방향감각과 길눈이 밝아진 것 같다. 수백리 길을 야간 열차를 타고 여행을 하다 보면 동서남북이 뒤바뀌는 경험을 하곤 한다. 새벽의 밝음이 밀려오는 기차역에서 방향을 분간하기 어려워서 당황스러움을 느끼는 일은 여행자들만이 느끼는 묘한 체험이기도 하다. 선화의 인도에 따라다닌 이번 여행에서 분간하기 어려웠던 사위의 방향을 판단하는 것도 이제는 자리를 잡는 듯 싶다. 산의 어디쯤에 작은절이 있고 큰절이 있는가하는 짐작은 대체로 들어맞는 경우가 많다. 여행의 즐거움은 이렇게 길눈이 밝아지는 데에도 있는 것이라 하겠다.
길눈이 밝아지는 것처럼 선화를 보는눈도 점차 정교해지고 깊어지는 느낌이다. 깊은 산속 암자에서 좋은 선화를 앞에 놓고 청정한 물로 끓인 차 한잔을 마시면 선화삼매에 금방빠져 들곤 한다. 작업을 막 끝낸 그림을 보며 그림이 표현하는 세계를 화제로 이야기하는 것도 재미가 있고, 그냥 그 그림을 보며 말로 형용이 안되는 침묵으로 대화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그림 가운데 인물화를 앞에 놓고 때로 나는 그림과 하나되어 달마도 되고 한산이 되기도 한다.
선미가 듬뿍 담긴 그림 앞에서 절로 시심이 나서 스님과 시 한수를 읊기도 하고, 즉석 감상문을 적어 보기도 한다. 그림을 보면 그린 이가 그림 속에 나타나듯이 선화를 그리는 스님을 만나면 선화의 필치가 상상되기도 한다. 입은 사람을 속여도 붓은 사람을 속이지 못한다는 말은 특히 선화에서 가장 뚜렷이 보인다. 조용하고 말이 없는 분은 그림으로 말을 대신하고, 기개가 높은 분은 운필이 파격적이고, 즐겁게 사는분은 그림이 춤을추듯 한다. 무엇보다도 인격과 선 수행이 잘 겸비된 스님의 선화는 깊이가 있고 순수하다. 수행하는 도중에 번뜩 떠오르는 것을 붓 가는 대로 표현하고 한가할 때는 한가한 대로 붓을 드니 순수하지 않을 수 없겠다. 그래서 선화는 곧 각화覺畵이며 한화閑畵인 것이다.
선화를 찾아 떠난 여행중에 만난 석정스님과 일장스님은 나의 선화 공부에 큰 선지식 이상의 값진 지침이 되었다. 부산으로 석정스님을 찾아갔을때는 정월인대도 벌써 봄이 온 것처럼 포근했다. 스님께서 여행에 지친 이를 너무 따뜻하게 맞이하는 환대에 더욱 그리했지 싶다. 묵향 가득한 스님의 선주산방(善住山房)에서 선화에 대해 말씀을 듣다 보니 아득한 선의 세계에 빠져드는 듯했다. 시중에서 스님의 그림은 많이 보았지만, 옷 입히기 전의 그림을 보는 맛은 더욱 신선하고 풋풋하다. 석정스님은 근세에 백학명스님 다음으로 많은 달마도를 그리신 분이다. 선화라는 어원을 처음사용하고, 선묵전 이라는 형식을 처음 열어 준 것처럼 스님이 없으면 한국 선화가 존재할 수 없을 만큼 스님의 자리는 크다. 열살이 되기 전에 붓과 친해져 육십 년 가까이 붓과 함께 정진했으니 선화의 진면목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하겠다. 스님의 선화에 대한 견해나 자세도 탁월하고 진지하다.
“선묵은 부드러우면서도 폭포와 같이 힘이 있어야 한다. 거울 가운데 그림자, 물 가운데 달과 같이, 또는 구름이 산머리를 지나고, 사자가 굴속에서 나오듯 해야 하고, 예리한 체體와 용用이 겸해서 나와야만이 법法의 유무에 관계없이 선화도 되고 선묵도 된다. 달의 모양을 그리되 달의 정신을 살려 내야 하고, 파도를 그리되 파도를 가져와야만이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하시며 대상과 사람이 하나가 되었을 때 위대한 혼이 깃든 선화가 탄생한다고 하신다.
이렇듯 석정스님의 선화의 세계는 수행의 경지를 압축하여 간결하고 웅혼하게 그려 낸다. 어떤 장치나 기교도 생략하고 꼿꼿한 수좌의 가풍을 여지없이 드러내는가 하면, 또한 한없이 따뜻한 정감을 주기도 한다. 단순히 먹의 농도를 조절하는 기법으로 선의세계를 표현하는 일이 얼마나 긴 인고의 세월을 요구하는 것이겠는가. 과감한 생략에서 느껴지는 멋은 문자를 세우지 않고 바로 본래 면목을 드러내는 적절문의 선적 표현이 아니고선 불가능한 일이지 싶다.
일생을 선화와 불화 제작에 힘을 쓰신 스님은 근자에는 근세 한국 선화의 발굴과 체계의 정립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우리나라 선종 역사에서는 좌선만을 전부로 알고 글씨나 그림을 하지도 않았고, 남긴 것이 있다해도 다비할 때 모두 태워버려서 애석하고 아쉽다고 한다. 또 옛 스님의 선화가 몇 백 몇 천만 원에 거래되는 상품화의 타락도 못마땅하고 선화가 수행의 경지에서 표현되기보다 직업화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하신다. 석정스님의 선화에 대한 체계 정리가 완결되면 불모지와 같은 한국 선화의 체계도 잡혀지고 우리의 선화 입문도훨씬 쉬워지리라.
일장스님은 제주도에 산다. 스님이 사시는 목부원 牧夫苑을 찾으니 농장 밖에서 강이지 두 마리가 반기고 뜰 안에는 란향蘭香이 그윽하게 맞아주었다. 지긋이 미소를 머금은 스님의 얼굴은 나이를 알 수 없게 하고 무구한 표정은 여덟살 어린이의 천진한 얼굴이다. 스님이 사시는 곳은 목부원이지만 목부 牧夫가 아니라 목동 牧童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리고 진솔하지 싶다. 스님 그림 속의 인물들은 달덩이 같은 동자들이 많은데, 스님도 둥글둥글하여 모난고이 없으시다. 스님의 그림 또한 온통 천진한 동심 그 자체이다. 어릴 적 소꿉장난 할때의 동심이 아니고서는 스님의 동자가 나오지 않으리라. 스님은 특별히 화법을 배운 적이 없으시단다. 수선의 원정된 경지가 무엇일까. 가장 평화롭게 사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 하는 평소의 의문과 상상력이 자연 마음의 상태를 동심의 세계로 인도했고, 그림 또한 그런 마음의 표현을 그려 낼 수 밖에 없었단다. 그래서 스님의 화법은 담백하고 천진무구하여 화폭마다동심의 세계가 가득하다. 목부원의 생활 또한 일일부작 一日不作 일일불식 一日不食의 철저한 자급자족이다. 스님의 거친 손에서 노동과 수선의 혼적을 분명히 읽을 수 있다. 끼니 때마다 직접 재배한 야채와 과일을 따오셔서 요리를 하신다. 이렇게 자연과 같이 하는 노동과
식사는 우리의 옛맛을 그대로 살려 내는 것이다. 또한 목부원은 법당은 있어도 주지는 없고 누구나 잠시 머물다 원주도 되고 공양주도 된다. 스님이 주시는 편안함에 깊어진 제주도 여행은 스님의 일치된 수행처럼 포대 화상의 삶과 십우도의 입전수수 入廛垂手의 경지 그대로였다. 온통 자기의 이기심으로 가득찬 오늘의 세태에 이처럼 물들지 않은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경이롭기만 하다. 불교적 중생제도가 어떤 것일까 하는 의문이 저절로 풀려지는 느낌이다. 이렇듯 오염되지 않은 스님과 눈 푸른 납자를 만나면 갈증에 생수를 마시듯 시원하기만하다. 석정스님과 일장스님은 선화로써 불교의 진면목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한국 선종의 그윽한 세계를 선방 밖으로 끌어내 선화로 이야기하는 두 분 스님의 세계는 든든한 우리의 울타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