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세기불(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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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음의 여로 - 정찬주
1990년 02월 96호
선재는 그의 아버지가 신경과 병실에서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도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않았다. 식구들 모두가 눈물을 찔끔찔끔 짜내고 있었지만 선재는 복도 한 구석으로 가서 담배만 뻐끔뻐끔 피웠다.
“인정머리 없는 놈!”어머니가 소리쳐도 역시 선재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그저 덤덤할 뿐 슬픈 감정이 돋아나지 않는 것이었다.
“쯧쯧. 지 애비가 저 지경인데도.”
그때마다 선재는 불효자식으로 낙인찍혔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 식구들은 모두가 사람 구실을 충분히 해낸 듯 의기양양했다. 하지만 선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눈물이 나오기는커녕 웃음이 나왔다.
선재 아버지는 마침내 헛소리를 하였다. 아무리 주무르고 긁어주어도 고개를 절래절래 도리질하였다.
또 어느 날인가는 넣어주는 밥을 삼키다 말고는 콩나물 반찬을 노려보더니 이런 당부를 하였다.
“내가 집에 없어도 콩나물에 물은 잘 주고 있겠지. 잘 줘야 한다. 콩나물은 물을 좋아하니까 여기 반찬으로 나온 콩나물도 내가 기른 것이다.”
선재는 아버지의 콩나물타령을 들으면서 종종웃지 않을수 없었다. 같은 병실에 누워 있는, 연탄가스를 마시고 들어온 환자까지도 기이하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피식피식 웃었다. 그런데도 선재 어머니는 콩나물 얘기만 나오면 물 먹은 콩나물시루처럼 눈물을 흘렸다.
“여보, 참 용하십니다그려. 몇 십년 전의 일을 기억하시게. 그땐 당신이 직접 콩나물을 기르셨지요. 맞아요. 그렇고 말고요.”
선재 동생도 새삼스럽게 ‘아버지’를 부르면서 울었다. 아버지가 내뱉은 콩나물은 그 어떤 시인의 말보다도 더 식구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것이었다.
선재는 서글프기보다는 답답했다. 어머니의 눈물은 그래도 귀하게 보였지만 동생들의 그것은 병실의 분위기가 연출해낸 감상적인 것에 다름 아니었다. 콩나물 타령이 너무나 어처구니 없어 안타가운 나머지 울고 있는지도 몰랐다.
당신이 기른 콩나물이라니! 물을 잘 주라고 당부하는 아버지의 저 밑도끝도 없는 삶에의 본능…
그렇다고 아버지는 누구의 손에 길러져왔던 콩나물 같은 존재일까 . 아버지에게 물을 주고 있는 존재는 무엇일까. 컴컴한 시루 속의 콩나물이 제 스스로 자라지 못하듯 아버지 또한 누군가의 보살핌 아래 살아오신 것은 아닐까.
선재는 또 답답했다. 아버지의 병은 할머니가 돌아가심으로 해서 더욱 중증으로 깊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번 돌아가신 할머니가 어떻게 되살아난단 말인가.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년 전에 불교신자가 되었다. 워낙 연세가 많으셔서 귀가 어둡고, 거기다가 기억력까지 형편없게 되어 다른 신도들보다 법명(法名)을 몇 달이나 늦게 받았다. 그래도 할머니의 선심은 순결하고 지극했다.
선재는 결코 무학(無學) 까막눈인 할머니의 나이를 탓하지는 않았다. 그런 식으로 할머니를 자질한다는 것은 인간을 모독하는 것이라고 믿었다. 나이를 먹게되면 예외없이 어느 정도는 아름다운 바보가 된다고 믿어왔기 때문이었다.
자재(自在)보살이란 법명을 늦게 받은 것은 그 절의 제도가 잘못된 탓도 있었다. 어려운 한자투성이의 반야심경을 외게 하여 불교신자로서의 합격증인 수계를 내린다는 것은 도대체 진부한 발상이 아닐 수 없었다. 불교신자가 지켜야 할 오계, 즉 불살생, 불투도, 불사음, 불상어, 불음주 등을 선재 할머니처럼 평생동안 지켜온 분도 드물 것이었다.
어쨌든 그 절에서는 반야심경을 외지 못하면 수계와 법명을 받지 못했다.
“할머니 그만두세요! 그 말라 비틀어진 반야심경은 외어서 무엇해요! ”
선재는 할머니가 안스러워 발악을 하며 소리쳤다. 할머니는 선재의 종교나 다름없었다. 할머니는 선재의 변함없는 교주였다.
예수나 석가모니, 공자나 마호멧 등의 옛날 성자들이 훌륭하다고 하지만 선재는 구체적으로 그들의 일생을 몰랐다. 그저 세계 4대 성인 정도로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4대 성인이란 관념적인 지식은 선재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선재에게는 할머니의 쪼글쪼글한, 1919년 3.l운동이 일어났던 당시에 태어난 손이 더 소중했다.
그런데 할머니는 선재를 부를 때 꼭 강아지라고 호칭했다.
“모르는 소리 마라. 강아지야”
철없고 지혜없이 까불기 때문에 강아지라고 부르셨을까 선재란 이름을 불러달라고 아무리 졸라보아도 할머니는 막무가내였다.
“강아지보다 더 좋은 이름은 없다. 강아지야.”
“모르는 소리 마라. 강아지야. 난 꼭 법명을 받아야 한다.”
“강아지야 난 죽어서 썩기 싫다. 닳은 싸리빗자루가 타고 나면 재만 남지야? 고렇게 깨끗이 죽고싶다. 이 할미의 귀여운 내 강아지야.”
할머니는 화장이 마음에 들어 불교를 선택했는지도 몰랐다. 그렇다고 선재는 불경스럽게 그런 종교를 갖지 않아도 화장할 수 있다고 벽제의 화상터를 들먹이고 싶지는 않았다.
어느날, 선재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할머니가 몹시 어두운 얼굴이 되어 중얼거리고 있었다.
“틀렸어. 내가 늙으막에 욕심을 부렸지.”
할머니가 너무도 절망을 하는 것 같아 선재는 그 절을 찾아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낙담하고 있는 할머니가 안스러워 견딜 수 없어서였다. 그런데 그 절의 주지스님은 의외로 쉽게 승락했다.
“그까짓 법명이 무슨 대숩니까? 하하하.”
주지스님은 즉석에서 자재보살이란 법명을 주었다. 그리고는 반야심경을 대신해서 즉심시불(卽心是佛)이란 말을 외워보시게 하라고 권유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뜻입니다.”무슨 뜻인지 얼른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선재는 기분이 좋았다. 선재는 절을 내려오면서 ‘자재보살’이란 말을 몇번이나 중얼거려 보았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의 진짜 이름은 자재보살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퍼뜩 머리속을
스쳐 지나갔다.
선재 할머니는 감격해서 울먹였다. 선재 앞에서 그런 모습은 처음이었다.
“강아지야, 고맙구나. 다른 말씀은 없더냐? ”
“반야심경 대신에 즉심시불이란 말을 외워보라고 하더군요 할머니.”
“무얼 외우라고 ?”
“즉심시불이요! ”
선재는 목을 빼며 소리쳤다.
“오냐 오냐 알겠다 짚세기불, 짚세기불이라고 했지 ?”
“뭐라고요? ” 1
“짚세기불! ”
선재는 ‘짚세기불’이라는 엉뚱한 할머니의 밀에 할말을 잃고 말았다. 그러나 선재는 말을 잃은 대신 가슴속에 환희 같은 것이 뭉클뭉클 솟아오르는 기묘한 기분에 빠져들었다.
이제는 냉혈한이라는 선재도 별수없이 깨달음의 눈물풀 한방울을 뚝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짚세기 ―. 할머니의 삶은 평생 식구들의 신발이 되어 살아온 그것과 진배없었다. 큰 덕을 베풀면서도 가장 낮은 자리를 지키는 짚세기야말로 부처와 다름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