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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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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화이야기 - 편집실 1993년 03월 133호
목화의 본디 고향은 인도인데, 우리나라의 고려 공민황 15년(서기376년)에 문익점이 중국에 갔다가 돌아올 대 그 씨앗을 가지고 와서 퍼뜨린 것이다.
꽅은 가을에 무궁화와 비슷한 모양의로 피며, 씨에 솜털이 붙는다. 솜은 의복을 만드는데 쓰이며, 씨로는 기름을 짠다.
목하는 따로 ‘메’ ‘명’ ‘겁패’ ‘고종’ ‘길패’ ‘면화’ ‘면’ ‘양화’ ‘초면’ 따위의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문익점이 나라의 일을 끝마치고 돌아올 때, 머리에 떠오른 것이 중국땅 넙ㄹ은 들에 피어 있는 목화였다. 우리나라에서도 직접 목화를 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득 차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중국 사람들은 목화씨를 자기 나라 밖으로는 가져가지 못하도록 엄격히 규제 하였다. 만일 다른 나라에서도 목화를 심게 된다면 그들이 독점하고 있던 목화를 팔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익점은 여러가지로 생각한 끝에 붓대 속에다 목화씨 세 알을 몰래 집어 넣어 가지고 돌아왔다.
돌아온 뒤에 그는 싹튀윘는데, 실패할까 두려워 목화씨를 한 알씩 심어 보았다. 두번째까지는 실패였는데, 마지막 하나가 겨우 싹을 틔워 문익점의 생각대로 20년 만에 넓은 밭에 가득히 있는 목화를 딸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솜에서 직접 실을 뽑아 내는 방법은 모르고 있었다. 먼저 그런 틀을 만들 줄 몰랐다. 그런데, 어느 날 문익점이 목화밭 두렁을 거닐고 있노라니까, 한 노승이 밭 두렁에 앉아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이상히 여긴 문익점이 가까이 가서 그에게 말을 걸었다.
그분은 멀리 중국에서 고려땅까지 온 중국의 스님인데 마침 이곳을 지나다가 자기 나라에서만 보던 목화꽃을 보게 되니, 그만 고향이 그리워 울고 있었던 것이다.
문익점은 그 스님을 자기 집에 하룻밤을 친절히 모시고 솜에 대하여 여러 가지 가르침을 받았다. 그 뒤부터 목화 재배는 점점 더 번창하였고, 문익점의 손자대에 이르러서는 실 만드는 기계도 발명하여, 이제까지 중국에서 들여오던 목화를 우리나라의 것으로 충족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