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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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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 연재동화 - 권정생 1987년 10월 68호
판순이네 할머니는 일흔 살이 다 된 무척 마음씨 고운 할머니였다. 키가 조그만하고 머리칼은 반 너머 희게 되어 있었다. 할아버지는 십 년 전에 돌아가시고 없었다. 빨래를 하고 땔나무를 하고 귀리가루로 죽도 끓이고, 집안 일은 모두 할머니 손으로 했다. 다만 산에 나무하러 갈 때는 종대가 조그만 지게를 지고 할머니와 함께 나무를 해 왔다.
점득이네가 이사를 와서 할머니는 어머니와 함께 산에도 같이 가고 빨래하러도 같이 갔다.
“점례네가 와 주어서 내가 벗이 생겼구려.”
할머니는 무척 기쁜 모양이었다.
“다행이에요. 그렇게 말씀하시니까 저도 할머니네 집에오게 되어 기쁘군요.”
어머니는 힘 자라는 데까지 판순이네 할머니를 도왔다.
저녁이면 마당에 거적을 깔아 놓고 앉아서 지나온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서로 마음을 달래었다. 어머니와 판순이네 할머니가 앉아서 얘기를 할 동안 아이들 넷은 이만치 떨어져 앉아서 지껄이며 놀았다. 판순이는 점득이네 어머니가 할머니께 들려 주는 얘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엿들었다. 겉으로는 안 듣는 체하면서 판순이는 아주 조심스레 귀를 기울였다.
“점례 아버진 고생만 하다가 죽었어요. 세상엔 남을 믿어선 안 되어요. 해방이 되었다고 좋아했는데, 그게 아니잖아요.”
“그렇다니까, 삼팔선에서 총소리가 나면 죽는 건 모두 조선 사람이라는구먼. 미국군대가 설치며 멋대로 총을 쏟다는거야.”
“할머니, 언제 소련군대 미국군대 떠나가나요?”
“아마도 그건 어려울 거야. 안 그래도 난리가 난다고 그러니, 어찌 될까 모를 일이야.”
다음 날, 판순이는 냇물에서 다슬기를 주으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불렸다.

백두산 한 갑에는 오십 원이요
무궁화 한 갑에는 사십 원인데
대대로 담배값은 올라갑니다.
여러분들 미국 담배 사지 맙시다.

조선 사람 조선말로 노래부르고
조선 사람 조선말로 이야기하네.

파랑새는 파랑말로 노래부르고
파랑새는 파랑말로 이야기하네.

판순이를 따라 종대도 부르고 점례도 점득이도 불렀지만, 판순이 목소리만 유달리 크게 넓은 들판으로 퍼져나갔다.
“점례야, 너희네 아버지 찾으러 안 가니?”
큰소리로 노래를 하고 난 판순이가 물었다. 갑자스레 물었기 때문에 점례는 무어라 대답할지 어리둥절했다. 바가지에 몇 개 주워 담은 다슬기가 밖으로 기어나오려는 것을 손으로 밀어 넣으며 망설였다.
“찾으러 안 가는가 물었잖니?”
판순이가 남자 목소리처럼 크게 되풀이 물었다.
“아버진 강물에 떠내려가서 죽었는데 어디로 찾아가니?”
점례가 가까스로 그렇게 되물었다.
“강물에 떠내려갔으면 바다로 갔을 게 아니야. 그러니까 바다로 찾아가면 되잖니.”
“죽었다니까!”
점례는 짜증스러워져 화를 내었다.
“그러니까 찾아와서 살려내라 해야 하잖니?”
“누구한테?”
“총을 쏟 소련군인한테 살려내라고 조르는 거야.”
“바다로 흘러간 아버지를 어떻게 찾니?”
“못 찾으면 할 수 없지. 너희 아버진 참 불쌍하구나.”
판순이는 어른처럼 혀를 찼다.
“그럼, 너희 아버지는 살아있는데도 왜 안 찾아가니?”
점례가 얼굴이 빨개져서 따져 물었다. 판순이는 눈을 가느다랗게 뜨고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우리 엄마가 찾아갔잖니? 아버진 징용으로 끌려갔기 때문에 아주 용감한 사나이란다.”
“용감한데 왜 못 돌아오니?”
“그건 세월이 어수선해서 그렇단다.”
그러더니, 판순이는 큰소리로 또 노래를 불렀다.

일본아 동경이 얼마나 좋아서어어
꽃같은 나를 두고 왜 안오시나요.

정말 판순이는 제멋대로였다. 냇가 언덕 너머엔 넓은 감자밭이 있었다.
“나, 오줌누러 간다.”
판순이는 소리지르며 그 언덕 너머로 뛰어가더니 한참 뒤에 솔방울만한 감자를 캐어 바가지에 그득히 담아 왔다.
“웬 감자니?”
점례가 물었다.
“밭에서 캐왔다, 왜?”
“그건 남의 밭이잖니?”
“아무거면, 배고픈데 먹어야지.”
판순이는 감자를 냇물에 담그어 문질렀다. 아직 덜 영근 풋감자여서 껍질이 쉽게 벗겨졌다.


판화/이 철수

“자, 너희도 먹어라.”
판순이는 감자를 오빠한테 그리고 점례, 점득이한테도 나눠주었다. 아이들은 냇가에 앉아 날감자를 깨물어먹었다. 약간 텁텁했지만 그래도 살캉거리며 씹는 맛이며 달큰한 맛이 좋았다.
해질 무렵까지 다슬기를 주워 집으로 돌아가려고 모두 물밖으로 나왔다. 점례만 나막신을 신었고 모두가 맨발이었다. 종대도 점득이도 바가지 반이 넘게 다슬기를 주웠는데 판순이 혼자만 겨우 바가지 밑바닥에 깔릴 만큼 조금 주웠다.
아이들은 노랗게 익어가는 보리밭길로 바쁘게 걸었다. 해가 느물느물 서산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들길을 걸어서 좁다란 산모퉁이 길로 나왔을 때였다. 산모퉁이 저쪽에서 갑자기 총소리가 났다.
“탕! 탕탕! 탕!”
아이들은 엉겁결에 산밑 바위 밑으로 가서 쭈그리고 앉었다. 총소리가 멎고 사방이 조용해졌다. 아이들은 무서워서 그대로 웅크리고 앉아 있는데 판순이는 모가지를 길게 늘여 쓰윽 둘러보더니 벌떡 일어났다.
“야, 이제 괜찮다, 기자.”
아이들은 주저주저하면서 일어섰다. 판순이가 앞장서서 걸어가고 뒤따라 얘들이 조금씩 조금씩 걸어서 갔다.
산모퉁이를 돌아가면 조금 후미진 골짜기가 있고 소나무숲 속에 우묵한 웅덩이가 있었다. 아이들은 저절로 이리 저리 고개를 돌려 살펴졌다.
“저 봐!”
판순이가 크게 소리쳤다. 모두 찔끔 놀라 판순이가 가리키는 손가락 쪽으로 돌아봤다. 소나무 숲 웅덩이에 사람이 둘 엇갈려 포개어져 누워 있었다. 하얀 무명옷이 피에 젖어 흥건했다.
“우리, 우리 어서 가자.”
점례는 조그맣게 겨우 나오는 소리로 말하면서 숨을 가쁘게 쉬었다. 아이들은 어느새 서로 앞장서려고 다투면서 길을 재촉했다. 판순이도 사람의 시체를 보고는 어쩔 수 없었던지 얼굴빛이 파랗게 질렸다.
장터 마을이 또 어수선해졌다.
“빨갱이가 총맞아 죽었단다.”
“어디 사는 뒤 집 자식인지 가없구나.”
다음날, 늦게서야 마을 노인 몇이서 웅덩이의 시체를 산자락 양지쪽에 나란히 묻었다.
“죽은 넋이야 무슨 죄가 있나. 똑같은 사람인데 묻어 쥐야지.”
행길에서 바라보이는 그 산자락에 빨갱이라고 하는 사람의 무덤 두개가 빤히 바라보였다. 점득이는 승호 형이 자꾸 떠올랐다.
‘승호 형도 빨갱이랑 같이 갔다는데, 어떻게 되는걸까?’
어머니는 승호 형 얘기를 하면 쉬 쉬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엄마, 승호 형은 나라를 위해 외숙부님 말씀도 듣지 않고 집을 나간 거야.”
“지금은 다르단다.”
“왜 지금은 달라?”
점득이는 캐어물었다. 승호 형만은 절대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믿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만, 자꾸 그런 말하면 못쓴다.”
어머니는 아주 쌀쌀하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점득이는 괴로웠다. 왜 집나간 청년은 빨갱이라 부르는 것일까? 모두 보통 사람처럼 색깔이 같은데 왜 빨갛다고 하는 걸까? 이북 꽃분이가 말하던 해방군은 어떤 것일까? 어쩌면 그 해방군과 빨갱이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해방군은 땅을 나눠주고 인민을 해방시켜주는 착한 사람이라 하지 않았던가.
점득이는 머리가 온통 수세미처럼 엉크러져 어지러웠다. 빨갱이란 지서 같은 곳을 습격을 하고 지서장을 죽이는 깡패인가? 그리고 경찰은? 토벌대는? 그들은 가난한 사림들 집을 떼지어 다니며 불을 지르고 사람을 패는 사람인가?
누가 착한 것일까? 누가 나쁜 것일까?
솔밭 언덕에 묻힌 빨갱이 두 사람은 대체 어디 사는 누구일가? 빨갱이는 모두가 집을 나가 떠돌아 다니는 사람일까? 짐승처럼 아무나 총을 쏘아 죽여도 좋은 강아지 같은 사람이 빨갱이일까? 그럼, 승호 형은?
점득이는 그러다가 고개를 흔들었다.
‘승호 형은 아버지 말씀보다 나라를 사랑한다고 했고, 그래서 외숙부님 몰래 집을 나간거야, 승호 형은 더 큰 일을 하기 위해, 나라를 사랑하기 때문에 집을 나간거야.’
아무리 생각을 해도 궁금하고 답답했다. 누구에게 물어도 어른들은 가르쳐 주지 않고 입을 다물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난 승호 형 편이야. 승호 형은 우리 아버지를 좋아했고 나도 승호 형이 좋으니까.’
그러나, 승호 형은 영영 소식이 없었다. 다래덩굴과 칡덩굴이 빽빽하게 우거진 산 너머 골짜기에 굴을 파고 공비들이 숨어산다는 이야기가 떠돌았다. 어떻게 해서 그런지, 무섭고 이상한 이륨이 불은 공비들도 바로 빨갱이와 한 패거리라 했다.
판순이는 어디서 어떻게 들었는지 아슬아슬하면서도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 주었다. 열 가지 스무 가지 헤일 수도 없었다.
“군수님의 딸이 빨갱이 청년한테 반해 가지고 밤중에 도망쳤단다. 아버지 돈가방하고 어머니 금반지하고, 뭐 집에 있는 비싼 물건 다 가지고 갔단다.”
“빨갱이도 애인이 있니?”
점례가 귀가 솔깃해져서 물었다.
“아니야, 빨갱이는…뭐라더라? 아주 의리가 있고 용감하고 사나이 중의 사나이이기 때문에 구질구질하게 애인 같은건 없대.”
“그럼, 군수님의 딸은 왜 반했니?”
“아이구! 참 어렵구나. 애인은 아니지만…저어 …뭐라더라? 뜻이 맞는 것…그래 그래! 동지라더라.”
점득이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승호 형이 그랬어. 동지들 편이라고…”
“어마나! 그럼 너희 외갓집 승호도 빨갱이한테 반했구나.”
“……”
결국 이야기는 뒤죽박죽이 되어 버렸다. 먼 먼 길을 한 바퀴 걸어서 다시 제자리로 온 것 같은 마음이었다. 생각하고 듣고 꼽아 봐도 도무지 알 수 없는 소문들이었다.
이상한 소문은 또 있었다. 조선 나라를 해방시키고 삼팔선을 없애는 장사가 났다는 것이다. 그 장사는 눈깜짝할 사이에 조선 팔도를 누비며 다니는데, 집집마다 이불 귀퉁이에다 몸에 난 털을 뽑아 숨져뒀다고 했다. 그러니까 그 털을 찾아내어 백설기떡에 넣어 사람 모양을 만들어 식구들이 나눠먹으면 난리를 면한다고 했다.
집집마다 이불 귀를 뜯어봤다. 신통하게도 이불 네 귀퉁이에서 털이 나왔다. 까만 털도 있고 노량 털도 있고 짧기도 하고 길기도 한 털이 어느 집에서나 다 있었다. 사람들은 정말 떡을 해서 먹었다.
점득이네도 이불 네 귀퉁이에서 머리칼이 나왔다. 점례가 꼼꼼히 네 개를 찾아낸 것이다.
“엄마, 우리도 떡해 먹나?”
점득이는 조선 해방보다 떡이 먹고 싶어서 그렇게 물었다.
“쌀이 있어야만 떡을 하지.”
“그렇지만 집집마다 모두 떡을 해 먹는데도?”
“나중에 해서 먹지.”
어머니는 끝내 떡을 만들지 않았다. 판순이네 할머니도 역시 심드렁하게 여겼다.
“할머니, 괜찮어. 난리나면 내가 숨을 곳을 찾아낼게.”
판순이는 남자애처럼 씩씩하게 말하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