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공철南公轍 김양순金陽淳 김학순金學淳 조석명趙錫命 조익명趙翼命 조준명趙駿命 조귀명趙龜命 윤주진尹周鎭 윤자복尹滋福 윤자덕尹滋悳 윤자록尹滋祿 홍봉주洪鳳周 홍석모洪錫謨 ……이 이름들은 농산정 주변에 즐비한 석각石刻 제명題名인데, 역사적으로 드러난 인물만 눈에 띄는대로 적어보았다. 물론 이들이 바위에 이름을 새긴 뜻은 홍류동 유람을 기념하는 한편 길이 이 아름다운 경관과 함께 그 이름이 오래 전하기를 바라서이리라.
이 중 남공철(1760∼1840)과 김양순(1776∼1840)은 각기 1802년(순조 2)과 1832년(순조 32)에 경상감사로 부임했고, 조준명(1677∼1732) 조귀명(1693∼1737) 형제는 모두 여러 고을 수령을 역임했는데 특히 조준명은 서화에 능했다. 목사 윤주진의 세 아들 가운데 윤자덕(1827∼1890)은 1882년(고종 19) 내아문內衙門이 설치되었을 때 김홍집 조영하 등과 함께 보수내각을 수립했다. 홍봉주( ? ∼1866)는 천주교인으로서 병인년(1866)박해 때 서소문 형장에서 참형되었고, 홍석모는 순조 때 인물로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를 지었다.
이 외에도 유명 무명 인사의 성명이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이건창은 이들 제명을 보고 “고금에 노닌 사람의 성명이, 팔만대장경보다 많구나”(今古遊人題姓字 多於八萬大藏經)라고 한 뒤
큰 글씨 깊이 새긴 이름 다투어 즐비한데(大書深刻競累累)
돌 부서지고 이끼 끼니 누가 다시 알까(石苔塡誰復知)
한 글자도 적지 않은 최치원은(一字不題崔致遠)
오늘까지 사람들이 칠언시를 외우네(至今人誦七言詩)
라고 읊었는가 하면, 김학순(1767∼1845)은 1835년(헌종 1)에 이조판서를 역임하고 시호는 문간文簡인데 그 5대손 김영한은 농산정 바로 뒤 바위의 그 선조 제명을 보고
우리 집 문간 선조 옛 제명을(我家文簡舊題名)
이끼 쓸고 어루만짐에 한결같이 처창한 심정(剔蘚摩一愴情)
당세에 환로의 인연 세 차례 영남을 지나니(當世宦緣三過嶺)
그 어느날 이 산에 노니셨는지(不知何日此山行)
라고 하여 선조에 대한 추모의 정회를 술회했다. 하여간 이 석각 제명을 보는 사람은 나름대로 감회가 다르리라 생각하고, 이제 발걸음을 해인사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