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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연극의 공연 실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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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 김미미 1987년 10월 68호
그동안 발표한 몇 편의 글에서 불교연극의 공연실태나 그 성과에 대해 잠깐잠깐 다루긴 하였지만, 개화 이후 제반 공연활동의 일환으로 다양하게 변모 수정되어 온 실제 불교연극의 공연활동을 함께 묶어 버리기엔 몹시 미흡한 점이 많아 본고에서는 보다 체계적인 정리와 다각적인 접근을 꾀해 본다.
우선 불교연극의 공연 실태를 논하기 전에 전제하여야 할 것은 연극공연이 가지는 순간성 즉 일회성(一回性)이다. 같은 내용의 희곡이 같은 배우들에 의해 같은 장소에서 공연된다 할지라도 어제의 공연이 오늘의 공연과 꼭 같을 수는 없는 것이다. 더우기 이런 공연의 기록을 남기기란 고작해야 공연 장소와 시기 그리고 희곡 및 연출가, 출연배우, 관객의 수를 기록한 당시의 비평이 실린 신문이나 잡지정도이지 영화처럼 완벽한 필름의 재생을 보지 못한다. 더구나 연극은 공연을 전제하는 예술 행위이므로 단순히 남아 있는 기록이나 희곡만으로 작품의 성패나 상황을 단정지을 수 없는 성질을 갖고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양해를 구해야 할 것은 필자의 연륜으로 또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개화 이후 현재까지 공연된 모든 형태의 불교연극 공연을 일일이 접할 수 없었음이다. 보지않고 말하는 것처럼 위험한 일은 없다. 하지만 필자는 당시의 기록과 자료를 최대한 수집하여, 되도록 객관적이고 냉정한 분석을 시도하려 했음을 밝혀 둔다.

개화 이후 꾸준히 불교지를 통해 발표된 희곡과는 달리 실제의 공연은 70년대에 이르기까지도 그리 활발한 편은 못되었다. 초대 국립극단장을 지내기도 한 임 빈의 ‘나무아미타불’(1930)을 선두로, 동양극장 전속극단인 ‘청춘좌’가 창립공연으로 내놓은 최 독견 작 ‘승방비곡’(1935) 이래 십여년간 불교연극은 침체기를 맞게 된다. 이어 1948년 현 극단‘신협’의 전신인 ‘극협’에서 유 치진 작, 이 화삼 연출의 ‘마의태자’를 성황리에 공연하는데 이는 거의 최근까지 신협 및 ‘동랑 레퍼터리’ 극단의 주요공연 작품으로 자주 무대화되는 작품으로 꼽힌다. 1955년에는 극단 ‘대중극회’가 ‘지옥과 인생’을 공연했고 1967년에 들어 8월 한주 동안 국립극장에 무려 2만여명이란 엄청난 관객을 동원하며 성황리에 공연된 ‘이차돈의 사’ 등을 주목할 수 있다. 이중 ‘이차돈의 사’는 불교계에서 전에 없던 과감한 시도가 있었는데 이 광수 원작을 일엽스님이 각색을 맡았다는 점에도 일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보다 더욱 이 연극을 화제로 몰아넣은 것은 비구니의 신분으로 과감히 주위의 잡음을 견뎌내며 훌륭히 주역을 해낸 월송스님의 용기와 결단이었다. 더우기 전 배역진이 불자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도 이 연극을 보다 진지하고 고양된 불교적 분위기로 끌고 가기에 부족함이 없었음을 당시의 신문들은 적고 있다. 아무튼 불교극 ‘이차돈의 사’는 예술을 통한 보다 본격적인 포교방식을 택했다는 근대 불교연극사적 의미를 가진다.
이어 이듬해인 1968년 최초로 결성된 불교극단 ‘탑’ 이 창립 공연으로 박 진이 새로이 각색한 전년의 화제작 ‘이차돈의 사’를 다시 무대에 올렸으나 그 후 지속적인 지원과 활동이 이어지지 못해 지금은 그 이름조차 기억하는 이가 드물게 되었다. 이 밖에 국립극단이 1969년 공연한 오 태석 작 지귀와 선덕의 설화 ‘여왕과 기승’이 이 진순 의 연출로 무대화 된 것 등의 몇 편을 제외하면 개화기부터 60년대 말까지의 불교연극 활동이라는 것은 미진하기 짝이 없었다.
70년대에 들어서면서 불교연극은 종전에 비해 보다 다양하고 풍성한 성과를 얻는다. 70년대의 선두주자는 희곡편에서도 다룬 바 있는 최 인훈의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1970)였다. 연출가 김 정옥이 이끄는 극단 ‘자유극장’에 의해 막을 올린 위 극은 온달과 평강공주의 숙명적인 만남을 불교적 연기의 세계를 통해 보여 주는 동시에 종래의 사실적인 무대 장치를 최대한 배제, 절제되고 양식화된 무대에서 펼치는 새로운 형태의 불교연극을 시도한 점에서 그 의의가 크다.
70년대의 불교연극계는 양적으로 전대보다 풍성한 수확을 거둔 반면 그 내용에 있어서는 사실 별 진전이 없었다. 소위 앵콜공연이 유행하면서 극단주는 새로이 제작비를 들여 작가를 발굴하고 무대를 제작하느니 있는 의상에 있는 무대 장치를 다시 한번 사용해 재탕 공연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기 때문이다. 성과면에서도 이미 성공을 거둔 작품이 미지의 새 작품보다 훨씬 위험부담률도 적었다.
이런 악조건하에서도 더러 불교연극은 간간이 공연되었는데 국립극단에 공연한 하 유상 작 이 진순 연출의 ‘에밀레종’ (1978)과 극단 신협의 대한민국 연극제 출품작인 노경식 작 이 창구 연출의 ‘탑’(1979), 박 제천 시인의 연작시를 극화한 김 창화 연출의 ‘판각사(板刻師)의 노래’(1979)등을 꼽는다.
이중 ‘판각사의 노래’는 시인 박 제천의 두번째 시집 ‘심법’ (心法)에 실린 연작시 ‘팔만대장경 판각사의 노래’ 46편을 젊은 연출가 김 창화가 구성·연출한 것으로 종래의 아리스토텔레스적 구성이랄 수 있는 발단·전개·갈등·절정·대단원 등의 틀을 깨고 판각사와 동·서·남·북을 상징하는 네명의 장정을 등장시켜 문답형의 절제된 시적 언어와 동작으로 선(禪)의 세계를 표현하려 한 작품이다. 시도나 열의에 비해 성과면에서 비록 만족스런 결과를 얻지 못했지만 기존의 연극과 달리 시에서 소재를 얻어 극화한 점이나, 파격적인 구성, 범패를 비롯한 전통음악의 삽입 그리고 늙은 판각사가 판각을 통해 체득하게 되는 선(禪)의 과정 등은 다가오는 80년대의 새롭고 다양한 불교연극의 시도를 기다리는 의미있는 작업이 되었다.
80년대 불교연극의 두드러진 양상은 기존의 일반극단에서 제작된 몇편의 불교극 외에도 주로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시도한 전통과의 접합을 꾀한 창작 연행 및 재판놀이, 뮤지컬 그리고 행위예술에 이르기까지 그 폭을 넓혀갔다는 데있다. 기억할 만한 공연으로 극단 ‘신협’이 대한민국 연극제에 출품한 김 정률 작, 심 회만 연출의 ‘터’ (1982), 그리고 지난호에서 언급한 바 있는 박 진관스님이 쓰고 이 강열이 연출한 ‘선객’ (禪客)(1982), 김 상렬 작, 연출의 뮤지컬‘님의 침묵’(1984), 극단 대하의 김 영무 작, 김 완수 연출의 ‘구름가고 푸른하늘’(1985), 동국대 연극과 동문이 꾸민 이 광수 원작, 김 홍우 각색, 김 효경 연출의 ‘조신의 꿈’(1986) 등이 있다.
이밖에 금년 8월 신라국악 예술단의 여성국극 ‘성자 이차돈’이 심 은성 작, 김 성길 연출에 의해 무대화되어 오랜만에 관객들을 향수에 젖게 했다.
이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만해의 일대기를 뮤지컬로 엮은 ‘님의 침묵’일 것이다. 작곡가와 연출가는 종래의 불교극 혹은 불교 음악이 지니는 무겁고 침잠된 분위기를 깨고, 팝과 대중 가요풍 등 젊은이들에게 친근한 리듬을 주조로 화려하게 편집하여 관객의 눈길을 끌었다. 더우기 민족시인으로서, 독립운동가로서의 강한 만해의 성격묘사에 자칫 소홀해지기 쉬운 인간적인 고뇌와 서글픔마저도 모두 싸안아 표현하려 한 이 극은 창작 불교뮤지컬의 새장을 염과 동시에 불교연극의 무한한 가능성을 보여준 작업이었다 하겠다.
이들과 더불어 간과할 수 없는 것은 80년대 이후 두드러진 불교학생극활동이다 청소년 극단 ‘대일’이 1981년 1월과 5월 두차례에 걸쳐 ‘목련존자여 지옥문을 열어라’와 ‘생자 이차돈’을 각기 공연했고, 경남 합천의 야로고등학교 학생들로 구성된 ‘해인사 불교학생회’ 회원들의 ‘백치 아다다’(1981) ‘삼귀의’ (1982)등은 ‘제31회 개천예술제’와 ‘동랑청소년연극제’ 등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을 하기도 했다. 특히 당시 국어 교사이던 황 희연이 직접 쓰고 연출까지 하여 무대에 올린 ‘백치 아다다’와 ‘삼귀의’는 사찰과 공회당에서 공연하는 등 연극을 통한 지역사회 포교운동의 가능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밖에 주목할 만한 것은 대학생 불자들로 구성된 ‘대불련’ 문화부의 활동이다. 1981년 창단된 이래 매년 적게는 두세 차례, 많이는 대여섯 차례의 창작연행 및 풍물강습을 열고 있는 문화부는 주로 판굿, 마당굿 등의 형태를 통해 우리의 전통문화가 서구 종교와 문화에 침식, 파괴당하는 것을 경계, 보존하고 있다. 특히 지난 5월 개운사서 벌인 마당굿에서 보여준 광주 원각사 난입 풍자극 및 고문 치사 사건 등의 주제는, 이들의 공연이 불교 및 사회 전반의 문제를 매우 신축성있게 다루고 있음을 시사해 준다.
학생극의 독특한 형식으로 이미 그 전통성을 인정받고 있는 것 중에는 ‘모의재판’이라는 재판놀이 형식을 가진 연극이 있다. 주로 각 대학의 축제나 행사일에 빌어 사회적문제 혹은 학원내의 문제점을 피고와 원고로 나누고 변호인 및 재판장을 두어 실제 재판 형식으로 진행하는 이 놀이는 학생 특유의 날카로운 재치와 풍자가 번뜩이는 독특한 연극형식을 취한다. 1985년 10월, 불자라면 잊을 수 없는 치욕의 10.27법난 5주기를 맞아 승가대학 학생들로 이루어진 승가극회에서 ‘10.27법난 모의재판’을 공연했다. 실제의 사건을 무대화하는 과정에서 오는 여러 어려움과 기술상의 문제를 출연진 전원이 무대 경험이 없는 스님들임에도 불구하고 각본, 연출 연기, 무대 장치, 분장에 이르까지 훌륭히 치루어내어 많은 찬사를 받았다.
또한 80년대의 여러 다양한 시도 중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시인 김 지하의 저서 ‘밥’을 토대로 ‘참선 마당굿’(밥)을 벌인 임 진택의 작업과, 역시 불교의 공양의식을 새로운 극적구성으로 꾸민 이 애주가 이끄는 춤패 ‘신’의 나눔굿 ‘식당작법’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인간 생명(중생)의 해방을 가능케 하는 노동의 원천인 밥 혹은 음식을 나누어 먹는 행위를 불교의식 및 전통굿의 형식을 빌어 표현한 점이 눈길을 끈다.
이밖에도 연우무대가 꾸면 홍 성기 작·연출의 행위예술, ‘저편에서’(1987·9) 중 제 3부 ‘원효와 요석’의 장은 불교적 소재가 현대의 행위예술에서, 고정적 관념의 벽을 깨고보다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다가올 수 있음을 확인케 해 주었다.
이상 개화 이후 현재까지 공연을 중심으로 살펴본 불교연극의 실태에서 몇 가지 나타난 문제점은 첫째 무한으로 널린 불교소재를 발굴, 희곡으로 재구성하는 작업들이다. 둘째로는 보다 다양한 쟝르의 확산이다. 리얼리즘 연극 외에, 뮤지컬, 전통극의 도입, 그리고 행위예술 동 제반 분야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장르의 개발 및 시도를 주저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불교연극 공연의 활성화를 위한 상설무대 즉 전용극장의 설립이다. 각종 불교문화센터나, 회관에 공연을 전담할 수 있는 극장시설의 확충이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이와 같은 활동을 지속적으로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유관 단체의 관심과 지원이 뒤따라야 함을 다시 한번 밝혀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