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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와 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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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야 - 이상해 2002년 05월 243호
1995년 12월 유네스코 총회에서 우리 나라의 해인사 장경판전과 고려대장경, 불국사와 석굴암, 그리고 종묘가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되면서 우리 나라의 문화유산은 국내에 한정되지 않고 세계적인 차원에서 평가받고 보존할 수 있게 되었다. 나라마다 정치 이념은 다를지라도 문화유산은 모든 인류에게 공동의 가치를 갖는다는 것이 세계문화유산 등재의 목적이다.
세계문화유산제도는 1972년 제17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세계유산협약’으로 불리는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의 보호에 관한 협약>이 채택되면서 시작되었다. 이 세계유산 가치평가의 이론적 기초가 된 것은 1964년 베니스에서 개최된 국제회의에서 채택한 <기념건조물 및 유적의 보존과 수복을 위한 국제헌장>인데, 이는 흔히 ‘베니스 헌장’으로 불린다. 이 베니스 헌장은 그 후 1965년에 창설된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인 이코모스(ICOMOS)의 철학적·윤리적 지침이 되었는데, 근대 기계문명으로 사라져 가는 문화유산과 자연을 인류 공동의 유산으로 인식하고 보존하자는 것이 그 목적이다. 이 조약에 따라서 세계문화유산의 지정과 보존을 위한 지원사업이 진행되었다.
베니스 헌장은 서구 건축의 중심을 이루는 석조건축물의 보존과 보호에 대한 사항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1990년 이후 석조건축물 중심에 대한 문제점이 많이 논의되어 지금은 목조건축물 및 문화유산의 지역적·문화적 특수성을 고려해야 하는 쪽으로 인식이 전환되고 있다. 특히, 1994년 11월 일본 나라(奈良)에서 개최된 문화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에 관한 국제회의>는 문화유산의 보존이론 및 방법에 대한 국제적 인식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으며, 서구 석조문화유산 중심으로 정립된 유네스코의 가치기준에도 변화를 가져오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세계문화유산의 지정에 반드시 수반되는 것이 문화유산의 가치판단이며, 가치판단과 유산의 심의를 자문하는 기구로 이코모스, 이크롬(ICCROM, 문화재 보존수복연구 국제센타) 및 IUCN(자연 및 천연자원의 보존에 관한 국제연맹) 등이 있다. 이들 자문기구의 윤리적 가치기준을 제공하는 것이 보존이론과 철학이고, 그 핵심적인 개념은 문화유산의 ‘진정성’(authenticity)과 ‘가치’(integrity)이다. 문화유산 보존과 관리의 가장 큰 목적은 문화유산을 가장 온전한 모습으로 다음 세대에 전해 주어야 하는 것이다. 또 문화유산의 가치는 양식·재료·기술·환경의 측면에서 진정성과 가치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되는 개념이다.
그런데, 목재 문화유산의 경우, 건축물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노후한 목조 부재를 교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로 인해 본래 재료의 ‘진정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는 것이 서구 석조건축물을 보존하는 시각으로 볼 때 가장 크게 대두되는 문제였다. 이른바, 재료의 진실성에 관한 문제인데, 이는 지금까지 석조 문화유산을 중심으로 적용해왔던 진정성에 관한 가치 판단은 목조 문화유산에 대해서도 똑같이 적용하기 어렵다는 것을 뜻한다. 이에 따라 1994년 나라에서 문화유산의 <진정성에 관한 국제회의>를 개최하기에 이르렀다. 이 회의를 통하여 ‘나라 도큐먼트’가 발표되었고 국가마다 다른 문화와 건축 재료의 다양성을 포함한 ‘진정성’과 ‘가치’의 개념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이를 요약하면, 문화유산을 서구 중심의 고정된 시각으로 볼 것이 아니라 나라마다 다른 문화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문화유산의 가치란 문화유산이 속한 문화권의 문화적 맥락 속에서 이해해야 하며 당사자들이 주장하는 진정성과 가치의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나라의 문화유산에 대한 보호와 관리는 1961년 10월 2일 문화재관리국이 정부기구조직의 하나로 설치되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으며, 1999년 5월 24일 문화재관리국이 문화재청으로 승격되면서 문화재청에서 문화재보호법을 근간으로 하여 ‘문화재’를 총괄적으로 보호·관리하고 있다.
우리 나라 문화재보호법에서 문화재의 보호 원칙은 원형유지에 있다고 하였다. 여기서 원형유지는 다분히 현재 상태에 대한 유지보다는 건립 당초의 모습을 유지하거나 후세에 변형된 것은 당초의 모습으로 복원한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은 문화재의 정의에서 역사적 가치와 예술적 가치 이외에 학술적 가치와 경관적 가치까지 포함하고 있다. 베니스 헌장에서 말하는 문화재의 보존가치보다도 포괄적인 가치개념을 갖고 있는 셈이다. 넓은 의미에서 학술적 가치는 역사적 가치에 포함될 수 있으며, 경관적 가치는 환경을 포함한 개념으로서 미적 가치에 포함될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술적 가치와 역사적 가치에 대한 보존이념의 정립은 필요하다고 하겠다.
최근에 이르러 문화재청은 국내 일반 문화유산의 보호정책 안에서 ‘문화재’에 대한 일반점검과 특별점검 등 다양한 점검, 즉 ‘모니터링’ 개념을 정착하여 문화유산을 체계적이고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체제를 단계적으로 정비하고 있다. 이와 병행하여 문화재청은 문화유산 소유자, 관리자 및 종사자에게 문화유산을 제대로 보존하고 보호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모니터링 훈련과정을 수립하여 그 방법을 점차 개발해나가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의 모니터링은 유산 지정 당시의 탁월한 문화적, 미학적, 사회적 가치를 그대로 지속시키기 위한 효율적인 방안으로 제시된 과학적인 방법이다. 이는 세계유산으로서의 자격을 공식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세계유산위원회는 이의 국가적 이행을 권고하고 있으며, 아울러 주기적인 모니터링 평가를 통해 세계유산으로서의 자격 여부 및 위험 유무를 판단하기도 한다.
세계유산센터는 정기 모니터링과 특별 모니터링의 두 가지 방법으로 구분하여 모니터링을 실시하도록 권장하고 있다. 정기 모니터링은 세계유산센터가 마련한 조사항목을 기술하여 유산 보유국이 제출하게 되어 있고, 특별 모니터링은 자연 및 인위적인 요인으로 인해 심각한 파손이 예견되거나 현재 진행중인 세계유산을 선별하여 별도로 모니터링하는 것을 말한다.
세계유산위원회는 무엇보다도 세계유산으로서의 자격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라마다 일정한 기준을 설정하여 자체적인 모니터링을 실시하여 유산의 일차적인 보호상태를 점검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우리 나라의 문화유산은 선사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국문화와 역사에 매우 중요한 유산들이다. 이러한 문화유산의 보호와 현 상태의 유지는 우리 나라 문화유산 보호정책의 중심 방향이며, 세계문화유산협약 가입국으로서 우리 유산을 최상의 조건으로 보전하여 우리 나라 문화의 정체성을 대변하는 기능을 담당케 하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우리 나라 세계문화유산의 모니터링 방법은 세계유산협약의 기본 내용을 근거로 고려해 볼 때, 크게 두 가지 성격으로 대별될 수 있겠다. 먼저 해당 문화유산의 재질, 형상의 물리적 파손이나 변화 여부를 검토하는 미시적 접근방법이다. 주로 고건축, 미술사, 고고학, 문화재 보존과학 분야 등의 전문가가 참여하여 문화유산의 진정성을 검토하고 위험이 예견될 경우, 이의 복구 및 현상 유지작업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문화유산의 특성과 성격을 고려하여 해당 유산의 가치를 가장 잘 반영하고 있는 요소들을 중심으로 보존상태를 조사하거나, 가장 취약한 부분 혹은 파손이 잘 이뤄지는 요소를 선정하여 이에 대한 정기적인 조사를 하도록 할 수 있다. 그런데, 세계유산협약은 유산의 진정성과 가치와 관련하여 유산의 사회, 문화 및 환경적 가치를 동시에 중시하는 포괄적인 접근방법을 더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적 동향을 볼 때 미시적 접근 모니터링은 국가적으로 잘 제도화되어 있으나, 포괄적 모니터링은 아직도 그 개념과 정의, 방법론이 세분화되어 있지 않은 실정이다. 특히, 후진국일수록 문화유산 보존철학의 빈곤, 전문인력의 부족, 재원 및 법적 제도의 미비 등 전반에 걸쳐 아직도 미시적인 접근방법에 머물고 있는 실정이다.
우리 나라의 세계문화유산 보호 정책은 문화재청과 유산을 직접 관리하고 있는 소유자 혹은 지방 행정기관이 세계유산 관리의 책임 기관으로 되어 있지만, 세계유산의 관리를 위한 종합적인 지침이 미흡한 편이다. 무엇보다도 개별 유산에 적용될 수 있는 보존지침과 원칙이 수립되어야 하고, 이를 위한 제도적 이행수단이 법제화되어야 하며, 또, 세계유산 관리의 일반적인 경향에 발맞춰 미시적인 접근과 거시적이고 포괄적인 방법을 병행하여 보다 효율적인 보호정책을 이행할 시점에 와 있다.
세계유산협약 제5조에서는 “체약국은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공동체 삶 속에 기능을 부여하고, 유산보호 활동을 광범위한 계획에 통합시키는 정책을 채택함으로써, 회원국은 영토 내에 위치한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의 보호, 보존, 제시를 위한 효율적이고 능동적인 수단을 취해야 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특히, 이 내용은 회원국이 문화유산과 자연유산을 위협하고 있는 위험에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도록 과학적이고 기술적인 연구와 조사를 하고 운영 방법을 실행하며, 이러한 유산의 정체성을 확보하고 보호·보존·제시 그리고 복구 등에 필요한 적절한 법적·과학적·기술적·행정적 그리고 재정적 수단을 취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1962년 12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1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조경과 유적의 미와 특성 보호에 관한 권고안”은 자연적인 것이든 인간이 만든 것이든, 문화적 또는 심미적 가치가 있거나 전형적인 자연환경을 형성하고 있는 자연적 시골과 도시의 풍경과 장소를 보존하고 회복하고자 하는 목표가 규정되어 있다. 무엇보다도 건축과 부동산 투기로 가장 위협받고 있는 특정 도시에서 조경과 유적을 보호할 것을 담보하는 특별 조항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1968년 11월 파리에서 개최된 제15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공적公的 또는 사적私的 공사로 인해 위험에 처해 있는 문화유산의 보존에 관한 권고안>은 현대 문명과 향후의 진보는 반드시 보편적인 문화적 전통, 그들의 창조력 그리고 그들의 사회·경제적 발전에 바탕을 두어야 하는 것이며, 문화유산과 과거의 정신적 성취 및 다양한 전통의 산물과 증거가 산업발전과 도시화로 초래된 공적·사적 공사로 인해 점점 더 위협받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유네스코 회원국이 문화유산의 보존과 사회·경제적 발전으로 인한 변화를 조화롭게 해야 하며, 폭넓은 이해의 정신으로 이 두 가지 요구 사항에 부합하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또한 예비 기념물에 대한 보호와 구제뿐만 아니라, 역사적 관계를 보여 주는 덜 중요한 구조물의 보호와 구제를 목표로 하는 예방적인 조치까지 요구하고 있다.
1976년 11월 나이로비에서 개최된 제19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채택된 “역사 지역의 보호와 현대적 역할에 관한 권고안”은 역사 지역들은 어디에서나 인류의 일상적인 환경의 일부이며, 그들을 형성했던 과거의 살아 있는 존재를 나타내고, 사회의 다양성에 부합하기 위해 필요한 삶의 배경에 다양성을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역사 지역들은 세기를 거슬러 문화적·종교적 그리고 사회적 활동의 다양성과 풍부함의 가장 가시적인 증거를 제공하며, 이를 현대사회의 삶에서 보호하고 통합하는 것이 도시계획과 부동산 개발의 기본적 요소라는 점을 고려하고 있다. 따라서 각 회원국이 각국의 국가적·지역적 또는 지방 계획의 일환으로서, 역사적 도시와 환경의 보호와 회복을 위한 광범위하고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러한 국제 규약문은 문화유산과 이를 둘러싼 환경은 일관성 있게 전체적이고 총체적인 차원에서 고려되어 보존되고 보호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해인사는 우리 나라 세계문화유산 중에서도 지금도 그 기능을 발휘하고 있는 중요한 현장이며, 또 주변 환경과 경관이 가장 잘 유지되고 있는 곳이다. 이 시대가 추구하는 참다운 의미의 종교 공동체는 세계문화유산을 알뜰히 가꾸는 것에서도 그 모습이 읽혀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1세기 초입에 들어서서 우리 사회가 지향하는 지속 가능한 환경친화적 문화경관이 해인사의 역사와 함께 조화롭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는 것도 해인사가 우리가 자랑하는 세계문화유산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