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나라(奈良) 야쿠시지(藥師寺) 절의 약사삼존상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05월 243호
일본 생활에서 자전거는 가장 중요한 생활 필수품 중의 하나이다. 교토는 버스나 지하철이 잘 되어 있는 편이기는 하지만 얼마 멀지 않은 나들이는 자전거가 으뜸이다. 특히 요즘 같은 날씨에는 햇살과 꽃들을 만끽할 수 있기에 더 좋다. 분위기 좋은 장소나 싸게 파는 가게라도 발견하면 바로 대 놓고 들어가 볼 수 있다. 웬만한 길은 자전거 전용 도로가 있고 도로도 바둑판처럼 되어 있어 초행길이라도 지도와 자전거만 있으면 더욱 많은 교토를 체험할 수 있다.
나의 일본 생활은 자전거 타기부터 시작했다. 누구나 다 타는 자전거를 못 타서 어지간히도 많이 넘어졌다. 그것도 산악용 자전거로 배우기 시작해 얼마나 어려웠던지.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첫 돌도 지나지 않은 아이를 태우고 가다가 넘어져 아이와 함께 엉엉 울면서 자전거를 버리고 돌아왔던 일은 지금 생각해도 가슴이 찡하다. 그런 아이가 지금은 혼자 자전거로 심부름을 다니기도 하고 같이 박물관까지 가기도 한다.
오늘은 나라(奈良)에 있는 야쿠시지(藥師寺) 절을 목적지로 교토를 출발했는데 어쩌다보니 서너 시간을 걸은 것 같다. 처음에는 시간이 좀 있다 싶어 집에서 지하철역까지 걸었는데, 나라에 도착해서는 길을 몰라 걷고 야쿠시지 절에 도착해서는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을 찾으려다 보니 나도 모르게 걷고 또 걸었다.
야쿠시지 절 금당의 약사삼존상과 동원東院의 성聖관음보살입상은 일본 조각사에서 걸작 중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상이다. 조성 시기에 관해서는 하쿠호(白鳳) 시대라는 설과 덴표(天平) 시대라는 설이 현재 양립하고 있다. 일본 미술사에서는 나라 시대의 전기를 하쿠호 시대(645~710년)로, 후기를 덴표 시대(710~794년)로 세분하는데, 하쿠호 시대는 아스카 지방(藤原京 주변)을 중심으로 많은 사원이 건립되고 이에 따라 불상 제작도 활발했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는 얇은 옷을 통하여 신체의 굴곡과 윤곽을 드러내는 사실적인 표현과 소년이나 청년과 같은 젊고 활기찬 얼굴의 불상들이 많이 제작되었다. 특히 이러한 얼굴은, 우리 나라 삼국의 불상들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나라와 시대를 초월한 부처님의 이상적 이미지를 표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하쿠호 시대의 대표적인 불상들로는 호류지(法隆寺) 절의 관음보살입상(夢違觀音), 도쿄(東京) 진다이지(深大寺) 절의 석가여래상, 나라 고후쿠지(興福寺) 절의 약사여래상 두부頭部 등이 있다.
야쿠시지 절은 680년에 황후 병의 쾌차를 위해 발원, 처음에는 아스카 지방에 세워졌으나, 719년 수도가 지금의 나라 지방(平城京)으로 천도하여 현재의 위치에 다시 세워졌다. 이 때 아스카 지방의 야쿠시지 절의 본존인 약사삼존상을 모셔와 지금의 야쿠시지 절의 본존으로 봉안했다고 한다. 지금은 긴데쯔(近鐵) 전철 니시노쿄(西京) 역에 내리면 바로 절이 보인다. 본래 사원이란 남문으로 들어가 중문을 지나 탑, 금당, 강당을 둘러보는 것이 순서이나 전철역이 절의 북쪽에 위치한 까닭에 모두 북문에서 들어왔다가 북문으로 나가 버린다. 남문 밖에는 넓은 들판에 들꽃이 가득 피어 있고 들판 건너편에 서면 동탑도 함께 한 눈에 들어와 증축하기 이전의 야쿠시지 절의 모습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야쿠시지 절은 여러 차례의 화재로 인해 동탑만 나라 시대의 것이고(사진), 동원東院은 가마쿠라(鎌倉) 시대의 건축으로 모두 국보로 지정되어 있다. 그렇지만 금당의 약사삼존상과 동원의 성관음보살입상은 잘 보전되어 비교적 조성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먼저 금당으로 들어가서 중존中尊 약사여래와 우협시 월광月光 보살상과 좌협시 일광日光 보살상을 배관한다. 약사여래상(상 높이 254.7㎝)은 원래 금동상이었으나 도금이 거의 다 벗겨져 전신이 검은 갈색의 금속 광택으로 고귀한 자태를 더 해 주고 있다. 두부頭部 전체는 공기를 가뜩 넣은 공과 같이 팽창해 있어 정면에서 보면 먼저 얼굴의 윤곽이 뚜렷한 입체감으로 눈에 들어온다. 넓은 어깨와 몸체에서 떨어진 양팔은 여유와 편안함을 보여 주고 허리를 쭉 펴고 엉덩이를 뒤로 빼 앉은 가부좌, 당겨진 턱, 양 볼의 볼륨, 힘이 들어간 입술 주위는 안정감 속에서도 고요한 긴장감을 연출하고 있다. 양 눈썹, 콧잔등, 귀, 이마의 선 등은 뚜렷하고도 시원하게 뻗어 측면에서 보았을 때는 이지적理智的인 인상마저 준다. 볼륨 있는 가슴, 왼쪽 어깨 밑에서 아랫배 쪽으로 흘러내리는 옷주름 선 그리고 양다리와 대좌 아래 부분까지 흘러내리는 옷주름 선은 신체의 굴곡을 잘 드러내고 있어 자연스럽기 그지없다. 특히 어깨, 가슴의 밑 부분, 무릎 위에는 옷주름을 표현하지 않아 옷이 몸에 밀착되어 있음을 사실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손가락 하나 하나에서 움직임을 느낄 수 있고, 손가락 사이의 얇은 막의 망강상網綱相을 표현하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한편 협시 보살상들도 중존 약사여래상 못지 않은 뛰어난 작품들이다. 좌협시 보살상(상 높이 317.3㎝)은 오른쪽으로 허리를 틀고 머리도 약간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고 왼쪽 다리에 힘을 빼고 있다. 우협시 보살상(315.3㎝)은 이와 반대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러한 자세는 삼굴법三屈法이라는 서 있는 자세로 인도에서 그 기원을 찾을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삼존상의 협시 보살상에서 많이 보인다. 이 두 협시의 삼굴 자세는 지금도 움직이고 있는 듯하다. 손목 밑으로 흘러내리는 천의와 옷자락 끝은 발목 언저리에서 나풀거리고 있다. 이와 같은 뛰어난 조각 기법과 이전까지는 볼 수 없는 새로운 표현들로 미루어 보아 당시 일본인에 의해 제작된 것으로 보기는 어렵고 도래인渡來人의 작품이라고 추정하기도 한다. 또한 조성시기 문제를 둘러싸고는 일본 불교미술의 전성기인 덴표 시대의 작품들에서 볼 수 있는 다소 정형화된 듯한 작풍과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점에서 하쿠호 시대를 이끈 걸작으로 다음으로 이어지는 덴표 시대의 조각의 장을 여는 작품으로 보고 싶다. 야쿠시지 절을 나오면서 오늘은 약사삼존상으로 부터 큰 숙제를 하나 더 얻은 것 같은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