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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유와 분배 - 4.통일이 아니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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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단 - 소허 1987년 10월 68호
친구여, 나를 아는 모든 나여,
나를 모르는 모든 나여,
부탁이 있네. 나를, 지금 이 순간의 나를 영원히 잊지 말아주게.
그리고 바라네. 그대들 소중한 추억의 서재에 간직하여주게.
뇌성번개가 이 작은 육신을 태우고 꺾어 버린다고 해도,
하늘이 나에게만 꺼져 내려온다 해도,
그대 소중한 추억에 간직된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않을 걸세……
그대들이 아는, 그대 영역의 일부인 나.
그대들이 아는, 그대들의 전체의 일부인 나.
힘에 겨워 힘에 겨워, 굴리다 다 못 굴린, 그리고 또 굴려야 할 덩이를 나의 나인 그대들에게 맡긴 채,
잠시 다니러 간다네, 잠시 쉬러 간다네.
……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내 생에 못 다 굴린 덩이를 목적지까지 굴리려 하네.
이 순간 이후의 세계에서 또 다시 추방당한다 하더라도,
굴리는 데, 굴리는 데, 도울 수만 있다면,
이룰 수만 있다면……
-청년노동자 전태일이 분신에 임박하여 남긴 글

한마디로 연기적 관계를 떠나서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 것도 없다. 바꿔 말해서 사회적 관계를 떠나서 이 세상에 홀로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사회란 연기의 다른 이름이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저것이 있으므로 이것이 있으며, 그러므로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 또한 있을 수 없다.
연기란 이처럼 상의상존의 구조를 말한다. 따라서 이 세상 일체의 것은,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연기적 삶이다. 바꿔 말해서 사회적 삶이다. 그러므로 존재란 연기적 산물이다. 사회적 산물이다. 사회적 산물이란, 말하자면 서로서로 얼키고설킨 상의상존의 사회적 생산의 사회적 공유물이란 뜻도 된다. 사회적 산물인 사회적 공유물의 사회적 삶이다.
예컨대 나의 삶은 그이의, 그녀의 삶인 동시에 그이와 그녀의 삶은 또한 나의 삶이기도 하다. 〈나〉를 이루고 있는 나의 일부인 그녀, 그녀 〈자신〉을 이루고 있는 그녀의 일부인 나. 삶이란 그런 것이다.
어느 물질, 어느 정신이 절대고립의 개체 속에서, 원소적 원인 속에서 생기기란 그러므로 도저히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존재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연기적 구성물이요, 사회적 구성물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존재(存在)는 연기(緣起)이다. 존재(存在)는 사회(社會)이다.
그러므로 만약 어느 한 존재가 자기를 절대고립의 순수개체로 파악 내지 날조하여 연기나 사회로부터 떨어져나가려는 수작을 떤다고 할 때, 우리는 거기에서 그의 존립 근거가 뒤흔들려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된다. 존재의 발판은 연기요, 사회이다. 따라서 참된 삶의 존재론적 실현은 바로 이 연기적 ·사회적 관계의 올바른 이해의 발판에 섰을 때 이루어진다 하겠다.
〈나〉는 연기요, 사회이다. 그러므로 연기 그 자체가〈나〉요, 사회 그 자체가 〈나〉이다. 그것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어쨌든 연기요, 사회일 수밖에 없다. 어쩔 도리가 없다. 이것이 존재(存在)의 운명이다.
물질은 연기요, 사회이다. 연기적 ·사회적 산물이다. 정신은 연기요, 사회이다. 연기적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연기그 자체가 물질이자 정신이요, 사회 그 자체가 물질이자 정신이다. 요컨대 연기라거나 사회라거나 하는 것은, 그 어떤 절대고립의 순수개체적 물질이나 정신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 모든 것은 연기요, 사회이다. 그것이 보이는 것이든 들리는 것이든,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것이든, 좌우지간 그것이 〈있으려면〉, 그것이 도깨비거나 하느님이거나 염라대왕일지라도 바로 이 연기적 ·사회적 구조물을 떠나서는 도저히, 절대적으로, 결단코, 맹세하거니와 〈있을수〉가 없다. 없다는 것이다.
나는 사회이다. 너도 사회이다. 나는 연기 그 자체요, 사회 그 자체다. 그러므로 내가〈나〉를 나라고 말할 때, 그것은 곧 사회가, 연기가 〈나〉를 나라고 하는 것이므로, 따라서 연기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요, 사회가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사회가 곧 나다. 내가 곧 연기이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서로서로 어울려서 된 산물임을 잊지말자. 나의 존립근거는, 그러므로 너다. 마찬가지로 나를 떠나서 너의 존재는 무(離)다. 우리는 다만 서로서로가 어울려서, 상의상존하여 나라거니 너라거니 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것이 더불어 살아 갈 수밖에 없는 존재의 운명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나인 사회요, 사회인 내가 사회 속에서 사회적 산물인 정신과 물질을 더불어(연기적 ·사회적으로) 나눠 먹고 나눠 쓰고 함께 즐기는 고통하는 사회적 공유물의 사회적 발판에 선 참삶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우리는, 존재는 연기적 ·사회적 산물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사회적 산물〉이다. 따라서 사회적 산물인 내가 사회적 산물인 사회적 자원(資源)을 사회적으로 공유·소유·분배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자원(資源)은, 그것이 물질적 자원이든 정신적 자원이든, 바로 이와 같은 연기적 ·사회적 상의상존관계의 삶 속에서 생산된 것이다. 어느 누구 한사람의 손이나 머리에서 생산된 물질이나 정신일지라도 이와 같이 연기된, 사회화된 삶의 구조를 떠나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혼자 생각한다지만, 인류사 이래 축적된 지식의 편집화(編輯化)현상이요, 혼자 만든다지만, 인류 문화·문명사 이래 축적된 문화의, 기술의 전수요 전통이자 편집화 작업이다.
따라서 내가 생각하고 내가 만든다기보다는, 인류가 생각하고 인류가 만듬이요, 사회가 생각하고 사회가 만듬이니, 그 생각, 그 물질은 인류 공동의, 사회 공동의 것이지 어느 특정 개인이 독점 ·독식해야 할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소유해야 할 것은 아니다. 전적으로 분배해야 할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모든 물질과 정신은 인류 공동의, 사회 공동의 자산이요, 문화요, 문명이요, 혜택이요, 나눔이요, 기쁨이요, 고통이요, 지킴이요, 받듬이요, 착취·수탈·죽임이다.
따라서 이 세상 모든 물질과 정신은 인류 공동의, 사회 공동의 사랑과 증오요, 자비와 성불이요, 극락과 지옥이요, 산과물이요, 도둑과 보살이요, 전쟁과 평화요, 남과 북이요, 자유와 떡이요, 이데올로기와 무위(無爲)요, 석가와 예수와 강도와 거지와 노동자와 농민과 삯바느질꾼과 옆집 순이네 개똥이할멈이다. 욕지거리와 아우성침과 거지발싸개다. 분단과 통일이다.
가사 내가 허전한 가슴이라면, 가을날, 더없이 높고 푸른 하늘이라면, 나는 들판의 들국화요, 작은 돌멩이요, 빨간 고추잠자리요, 지나간 유년기의 추억이다.
따라서 나는 이것이자, 저것이자, 그것이자, 그리고…〈거시기〉다.
따라서 나는 최루탄이다.
따라서 나는 자비무적이다.
따라서 나는 봉건왕조이다.
따라서 나는 조선총독부다.
따라서 나는 미국이다.
따라서 나는 달팽이다.
따라서 나는 부처이다.
따라서 나는 이데올로기다.
따라서 나는 칼이다.
따라서 나는 분노다.
따라서 나는 데모다.
따라서 나는 서울이다.
따라서 나는 통일이다.
따라서 나는 신문이다.
따라서 나는 해인사다.
따라서 나는 하느님이다.
따라서 나는 개떡이다.
따라서 나는 그리고, 전 태일이다. 국밥이다. 그리고 나는 권양이요, 한열이다. 장서방이다. 창수네 헛간의 도끼다. 순이 책상 위의 코스모스다. 반공이요, 민주화다. 이 완용이요, 위정척사이다. 만해요, 한용운이요, 동학난이요, 4.19, 5.16, 5.18, 5.19, 10.27이다. 밤이요, 낮이다. 무(無)요, 유(有)다. 시작이요, 끝이다.
그리고 정말 끝이다. 끝냄이다. 그리고 아직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은 분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러나 분단으로 고정될 수 없다. 분단으로 못박을 수도 없다. 분단으로 자리지킴할 수도 없다. 분단으로 어부지리할 수도 없다. 분단으로 나눠먹기할 수도 없다. 분단으로 속수무책할 수도 없다. 분단으로 노래 부를 수도 없다.
그리고 더 끔찍하게 분단으로 어찌 연애인들 할 수 있으랴.
무엇보다도 솔바람 물결소리에 유유자적 내지는 유유작작할 수 있을소냐.
바람이 분다. 낙엽이 우수수 가을이 떨어진다.
그러니까, 좌우지간 분단으로는 아무것도 제대로 할 수 없고 할 수 없다.
그런데 왜 그토록 오랜동안 분단이 유지되는가. 무엇으로 유지되며,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인가.
어느 시러베 아들놈이 통일을 원하지 않는단 말인가. 분단으로 득을 보는자 그 누구며, 또한 손해를 보는 자는 누구인가.
나는 통일이어야 한다. 우리는 통일이다. 한반도는 통일이다.
조국은 통일이다.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통일이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통일이다.
삼천리 강산에 통일이다.
이 나라 살리는 길 통일이다.
꿈에도 소원은 통일이다.
통일이 아니고선-생각해 보라. 통일이 아니고서는 일체가 거짓이다. 허위의식이다. 가짜다. 껍데기다. 오직 통일이다. 통일만이 진실(眞實)이다. 통일만이 부처요, 자비요, 자유다. 그 외에는 모두 가짜다. 박사도 가짜박사요, 깨달음도 가짜요, 부처도 가짜다. 참기름도 된장도 통반장도 깡그리 가짜다. 연애도 가짜연애요, 사람도 가짜사람이다. 요컨대 가짜의 삶, 가짜인생이다. 어쨌든지 가짜다. 좌우지간에 가짜다. 미안하지만 가짜다. 허무맹랑하고 황당무계하고 낯가죽 두껍고 비참하게 가짜다. 도리없이 가짜다.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꼭 그렇게 될 수밖에 없다.
이렇게까지 인정사정없이 몰아부치는 데는 딱 그럴 만한 사정이 있는 것이니, 뭐냐하면 오늘날, 중층적 모순구조 위에 쌓아올린 우리의 위태위태한 거짓된 삶을 지적하여 민중의식(민중으로 깨임)으로 깨어 일어나고저 함이다. 민중 민족적 통일을 이룩하고저 함이다.
그러므로 통일이 아니라면-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