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남산의 남쪽, 남남산 길은 멀어서 외롭습니다.
올망졸망한 다락논들이 끝나는 백운골 초입에, 오른편으로 나 있는 새갓골은 남남산에서도 한갓진 곳입니다.
그 적막한 길을 나그네는 혼자 오릅니다.
성근 나무들로 볕이 따가운 길을 걷노라면
멀다는 생각, 외롭다는 생각이 길동무처럼 곁으로 다가와 섭니다.
한 삼십 분, 부지런히 걸으면 머리 위로 문득 신우대가 우거지면서 길이 어둑해집니다.
그늘을 반기면서 오른편 언덕길로 잠시 오르면 하늘이 트이면서 소나무, 떡갈나무 들에 둘러싸인 오붓한 터가 나타납니다.
거기 땅바닥에 머리 없는 부처님이 앉아 있습니다.
남산에, 아니 전국 곳곳에 머리 잃은 부처가 한둘이 아니지만 나그네는 이 부처님의 머리 잃어 버린 모습을 매우 안타까워합니다.
부처님의 자세가 단정하고 항마촉지降魔觸地의 수인이 단호하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부처님 앞으로 부서진 대좌며 광배 조각들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고 해묵은 소나무며 떡갈나무들과 풀들이 듬성듬성 초록빛으로 얼룩져 있습니다.
그 초록빛이 또 을씨년스럽습니다.
대좌와 광배가 이 부처님을 위하던 극진한 정성이었을진대, 초록빛은 조각난 그 정성들에 대한 무심함이기 때문입니다.
안타까움과 을씨년스러움이 얼룩진 마음으로 나그네는 부처님 주위를 서성입니다.
그러다가 부처님이 거두고 있는 어린 목숨을 하나 발견합니다.
부처님의 무릎 아래, 항마촉지하고 있는 그 언저리에 갓 솟아난 어린 떡갈나무.
그 어린 나무가 달고 있는 딱 두 잎의 맑고 싱그러운 연둣빛 잎새.
봄이었습니다.
부처님은 무릎 아래 당신이 거두고 있는 어린 떡갈나무 잎새의 맑음과 싱그러움으로 나그네를 깨우칩니다.
멀고 외로운 남남산의 폐허에서도 봄은 생명의 계절이라고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