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서 있는 자리에 전념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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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상일
2002년 05월 243호
예년 같으면 초파일 무렵에나 피어나던 영산홍과 자산홍이 석양빛에 우아합니다.
소담한 꽃그늘에 연등을 밝히면 화사하기만 하던 겹벚꽃도 어느새 열심히 피어 온 도량이 화안합니다. 때마침 내린 봄비로 멀고 가까운 산들이 초록색으로 오이 빛으로 수채화 같은 오월입니다.
오월에는 부를 노래가 많습니다.‘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 세상’하는 어린이날 노래로부터 ‘하늘 아래 그 무엇이 높다 하리요. 어머님의 은혜는 가이없어라’하는 어버이날 노래, ‘스승의 은혜는 하늘 같아서 우러러볼수록 높아만 지네’로 시작하는 스승의 날 노래, 그리고 ‘꽃보라 휘날리는 룸비니동산 거룩한 실달태자 탄생하신 날’하고 부르는 기쁜 날 좋은 날 부처님오신날 노래가 있습니다.
따로 어린이날을 정하지 않아도 보배로운 어린이들이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희망을 품고 활발하게 커갈 수 있는 세상이길 바랍니다. 바쁜 삶 고단한 삶을 살면서도 정신적으로도 건강하고 육체적으로도 강인했던 우리의 어머니들과 순리대로 자연을 배우며 가르치면서 살았던 아버지들이 감사합니다. 더 나아가‘스승의 자리’를 생각해 봅니다. 일본에서 공부할 때 오월 십오일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들고간 나에게 일본에는 없는 아름다운 전통이라며 부러워하시던 지도교수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이래저래 오월은 참 환한 달입니다. 은혜로운 달입니다. 부처님오신날 세상을 밝히는 연등이 있어 더욱 환합니다. 큰방에서 글 읽기에 여념이 없던 스님들도 요 며칠은 손가락 끝이 꽃 분홍으로 물들어 있습니다. 연등 만든다고 손길은 분주하면서도 정성을 다해 만들어진 등들로 마음이 뿌듯합니다.
올 초파일에는 부산 중앙성당의 ‘후밀리따스’ 수녀님을 위한 자그마한 연등을 하나 밝히려고 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한동안 소식이 끊어졌다가 수소문 끝에 소식을 알아낸 친구입니다. 자신의 의지를 접고, 신의 뜻에 순명하며, 웃어른의 의지대로 자신에게 순명하며, 다른 사람의 뜻을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순결과 정결로 온 마음으로 하나님만을 사랑한다고 종신서원을 한 지도 어느덧 십 년이 넘었습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들을 최소한으로 하는 무소유를 실천하며 청빈한 삶을 당연하고도 편안히 받아들이며 사는 친구입니다.
우리는 만나면 말을 하지 않아도 늘 마음이 맞았습니다. 일 년에 보름 정도 휴가를 찾아 쓴다는 수녀원의 규칙이, 가고 옴에 그다지 구속이 없는 내 생활에 비해 어렵게 느껴졌습니다만, 여름 휴가에는 내가 좋아하는 복숭아를 무겁게 사들고 절을 찾아왔고, ‘후스’ 수녀님이 오면 나도 특별한 휴가를 내어 천 송이 만 송이 연꽃이 피어나 연화장 세계가 되어 버리는 덕진연못(전주에 있는)으로‘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이 됩니다. 연못가 나무그늘에서 한담을 나누고 계시던 어른들이 ‘허참 오래 살다보니…’하시며 웃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지리산 선방에서 공부하던 도반 스님을 찾아가 계곡에 발을 담그기도 하고 솔 숲길을 걸으며 산사의 정취에 흠뻑 젖어들기도 했습니다. 스님들이 수녀생활 그만하고 같이 중노릇 해보자고, 중노릇하면 잘할 것 같다고 애정 어린 놀림으로 권하면 수녀님은 그저 웃기만 하고 되레 민망한 내가 짓궂은 스님들을 애써 말렸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스’ 수녀님은 산 전체를 정원으로 안고 있는 산사에 대해 늘 선망하며 와서 쉬고 싶어 합니다.
어느 해였던가, 아홉 명의 동료 수녀님들과 함께 와서 며칠을 묵으며 좋은 부처님 도량을 참배했습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회색빛 잔치가 보기에 좋다고(수녀님들도 복색이 같습니다) 흐뭇해 하였습니다. 특별한 휴가를 보냈던 수녀님들이 굳이 수녀원에도 와 봐야 한다고 청해서 수녀원을 찾아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갖은 나물반찬에 소찬으로 준비한 공양과 직접 구워 만든 과자를 대접받았습니다. 수녀원의 느낌은 정갈하고 반듯하며 함께 하는 수녀님들 모두 명랑하였습니다. 그리고 광안리의 본원에 갔을 때 평생을 순명과 정결 그리고 청빈으로 살아오신 노수녀님에게서 아름다운 노년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정성껏 노수녀님을 모시던 수녀님들 모습이 가슴에 닿았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서 있는 자리에서 전념하며 서로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이런저런 삶의 어려움도 토로하며 서로를 위해 기도하며 지낸 지가 어언 이십 년이 다 되어갑니다. 저로서는 수녀님들은 다 같은 줄 알았는데 수녀회가 세계적으로 하나님도 모르실 만큼 숫자가 많고 머리에 쓰는 벨로가 수녀회마다 조금씩 다 다르고 ‘후밀리따스’라는 이름이 가톨릭 성자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그 의미가 ‘겸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후밀리따스’가 부르기에 너무 길어서 늘 ‘후스’라고 부릅니다. 동그란 얼굴 전체에 늘 웃음이 떠나지 않는 ‘후스’ 수녀님이 순명과 정결, 청빈을 실천하며 스스로 선택한 길에 최선을 다하며 사는 모습은 그대로 하나의 선지식입니다. 그 많은 수녀회마다 약간씩 다르지만 첫 서원에서 종신서원까지는 십 년이나 걸리고 종신서원은 하나님과의 약속으로 퍽 중요하고 성스러운 의식이라는데 그 때, 의식에 가보지 못한 것이 십 년이나 지난 지금까지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후스’ 수녀님도 부처님의 가르침과 스님들의 생활에 깊은 이해를 하고 있을 줄 압니다.‘후스’ 수녀님과의 아름다운 인연이 있기에, 공양시간이 되어 마침 절에 들른 수녀님이 있으면 넌지시 공양을 하고 가기를 권해보기도 하고 등산길에서 만나는 수녀님들에게도 쉽게 말문을 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길거리에서 만나는 모르는 수녀님들과도 가벼운 목례로 빙긋이 웃으며 스쳐 지나갑니다.
최근에는 크리스마스에 스님들이 성당에서 설법을 하고, 부처님오신날 신부님이 법당에서 강설을 하는 일도 왕왕 있다고 합니다. 누구라도 열린 가슴으로 서로간의 종교에 대해 좀더 깊은 이해와 존중하는 마음으로 살면 좋겠습니다. 곧고 단순한 신행의 길에서 우리만이 옳다는 편협한 마음으로 스스로를 얽어매지 말고 더불어 사는 기쁨을 나누며 살면 좋겠습니다. 내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얻고자 하는 것이 삶에 대한 올바른 눈과 올바른 삶의 태도이듯 수녀님도 그 안에서 바른 안목과 바른 태도를 지향하며 사는 줄 압니다.
아마도 훗날 제가 거처하는 절에 ‘후스’ 수녀님이 오면 그 앞에서 기도하고 묵상할 수 있는 작은 십자가가 하나 마련되고, 역시 ‘후스’ 수녀님 방에도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머금은 관세음보살님이 방 한켠에 서 계실 것도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