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7법난과 승가의 역사의식, 사회의식의 발전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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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진상
1987년 10월 68호
역사를 조명하는 데에서 필요한 관점은 주체적 역사인식 태도이다. 주체적 역사인식 자세는 한 역사적 사건을 고찰하고 평가함에 있어서 내적 원인과 외적 작용을 통시적 관점하에서 냉철히 규명하고 판단한다. 내적 원인에만 시각을 고정하는 협소한 인식태도나 외적 작용에만 원인을 돌리려는 비주체적 자세를 모두 거부하고 경계한다.
이 글에서는 위의 관점하에 한국 불교계의 최대의 비극적, 치욕적 사건으로 기록되는 10.27 법난의 원인을 정당히 규명하고 그 이후의 승가의 의식의 발전과정을 더듬고자 한다.
한국불교는 신식민지적 상황하에서 제국주의와 식민지민족간의 민족모순의 상대적 담지자로서 민족적 객관상황에 의하여 끊임없는 위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제국주의와 그에 예속된 반민족적, 반민중적 매국정권의 민족종교에 대한 탄압정책은 일관된 것으로서 탄압의 모습은 직접적, 간접적 방법을 동원, 자행하고 있다. 즉, 10.27 법난과 광주 원각사 사태와 같은 폭력적 방법과 불교재산 관리법을 비롯한 불교관계악법을 통한 불교의 자율적 운영방해라든가 끊임없는 언론, 방송매체의 왜곡, 편파보도 등의 불교계에 대한 일반으로부터의 격리의도 등으로 나타난다.
한국불교는 이러한 민족모순의 상황하에서 이승만 정권의 정략적 의도하에 이루어진 소위 ‘정화유시’에서 비롯된 비구, 대처승간의 불교 내부 싸움으로 반민중적인 모습으로 일그러진다. 물론 이러한 결과에도 불교계의 일정한 책임은 회피할 수 없다. 정화의 주체인 비구측의 이정권의 간교한 정략적 술책을 간파하지 못하고 정화의 방법에 있어서도 폭력적방법을 동원하는 전술적 오류를 범해 정권의 의도대로 불교 내부 혼란과 자체 역량 확보 실패를 초래한 것이다.
박정희 정권하에서는 일제 식민지정책의 일환이었던 사찰령을 토대로 한 불교재산 관리법 등의 불교 관계 악법을 제정하여 불교 종단을 어용화, 예속화사키고 사찰을 관광지화하여 이권을 둘러싼 종권투쟁을 가속화시키게 된다. 이러한 정권에의 어용화, 예속화에도 불교계의 책임 또한 면할 수 없겠다. 자신의 정치 기반을 안정시키고 장기 집권을 위해 불교를 이용한다는 정치적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고 호국불교라는 미명하에 정권에 기생, 불교의 발전을 꾀하려는 비자주적, 반민중적 길을 걸은 것이다. 또한 애불, 애종 승가세력이 올바른 승가의 모습을 회복, 확립시키려는 구체적, 실천적 활동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지 못함으로써 매불, 매종 세력이 판을 치게 하는 조건을 허용함으로써 종권 다툼의 빈발화, 극렬화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러나 불교계는 1970년대 말기부터 젊은 승가를 중심으로 잠자던 의식에서 깨어나 불교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된다. 지금까지의 불교 상황이 단순히 불교내적 모순에만 기인한 것이 아닌 외부적 침탈에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존재함을 자각하게 된다.
10.27 법난이 일어난 l980년 상황을 객관적 조건과 불교내적 동향을 파악함으로써 법난의 정당성과 부당성, 그리고 원인을 바르게 규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먼저 객관적 상황을 보면 1980년은 박정희 정권이 몰락하면서 민중의 열화와 같은 민주주의 열망이 표출되며 민주화와 민족자주화의 기틀이 마련되려던 절호의 상황이었다.
불교계 내부에서도 1980년 초부터 불교를 근본적으로 억압, 예속하는 불교 재산 관리법의 폐지 주장, 불교계 자체정화 작업 착수 등 그동안의 비불교적 모습을 청산하고 불교 본래의 서원인 중생 구제를 실현시킬 기초적 전제인 불교의 자주화를 착실히 다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80년 5월의 민중의 열화와 같은 민주화 의지를 무참히 짓밟고 들어선 현 정권은 기만적인 ‘사회 정화’ 기치를 내걸고 자신의 비정통성, 폭력성을 은폐하고자 꾀한다.
이의 희생물이 바로 불교 최대의 비극적, 치욕적 사건인 10.27 법난인 것이다. 현 정권은 불교 관계 제악법의 철폐를 둘러싼 불교 자주화와 불교 개혁 의지를 전국 사찰에 계엄군을 투입, 폭력을 가함으로써 불교의 자주화 의지와 개혁 의지를 은폐하고 불교를 자신들의 정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수단으로 ‘불교 정화’ 라는 명목하에 10.27 법난을 자행한 것이다.
정권에 의해 자행된 10.27 법난이 조금의 정당성이라도 획득하려면 그들이 내세운 ‘불교 정화’를 위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후속작업이 이루어졌어야 하지만, 그 이후의 정권의 태도에서는 결코 불교를 정화하여 참된 불교계 모습을 구축시키려는 노력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이로 미루어 보았을 때 10.27 법난을 자행한 의도가 결코 불교 정화에 있었던 것이아니라, 정권 안정을 도모하기 위해 불교를 희생시켰음이 분명하다.
지금까지 살펴본 10.27 법난을 전후로 한 객관적 상황과 내부 동향을 보았을 때 10.27 법난은 분명 히 불교 내적인 타락에 기인한 것이 아닌 외부적 (독재 정권의 정략적 의도) 요인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10.27 법난으로 기성 승려들이 좌절감, 자기 비하감으로 젖어 있을 때 젊은 승려들은 10.27을 계기로 보다 명확히 불교현실의 원인을 파악하고 불교 종단의 개혁 의지를 다지면서 조직 (선림회 ·교림회)을 결성, 활동한다.
교림회는 공청회를 열어 불교 개혁 시안을 마련, 불교 개혁 의지를 구체적, 실천적으로 펼쳐나간다. 얼마 후엔 조계종종책 연구소가 설립되어 조계종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조직체로서의 기능을 하며 부설로 불교사회 문화 연구소를 두어 불교의 사회적 실천을 모색하게 된다.
1983년에는 한국 청년불교도 연합회의 결성 계기가 된 전국 청년불교도 연합대회에서 젊은 승가와 재가는 불교의 혁신화, 민족 불교의 구현의 기치를 내걸고 지속적이고 광범위한 활동을 전개할 것을 다짐한다.
정략적 의도하에 이루어진 10.27 법난으로 기성 승려들이 다시 권력과 유착하여 파쟁과 종권 투쟁에 소일하던 중,불교계의 총체적 모순의 표출인 신흥사 사건이 발생함에 따라 한국 청년불교도 연합회를 중심으로 한 젊은 혁신 세력에 의해서 비상종단이 출범하여 조계종의 새로운 활로가 열리는 듯하였으나 출범한지 1년도 못되어 좌초하게 된다.
비상종단의 개혁 작업의 실패로 말미암아 불교 혁신 세력은 불교 개혁을 이루기 위해서는 불교내의 이념적, 제도적 모순을 척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함과 동시에 불교 개혁 작업이 결코 사회 민주화와 민족 자주화 작업과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문제로서 인식하여 동시적 실천을 통해 가능함을 깨닫고 사회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86년 5월에는 현금의 교단이나 보수적 세력의 비역사적이고 반민중적인 성격의 자기 한계를 극복하려는 의식있는 진보적 승려들의 구체적 노력의 결과물인 불교 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가 창립된다.
승가회는 다듬어진 불법과 보살 정신, 그리고 투철한 역사 의식으로 무장하여 민족의 자주화, 민주화, 민중 해방 투쟁 전열에 나서는 것이야말로 이 땅에 불국 정토 사회를 구현해야 하는 불자들의 가장 일의적인 책무임을 선언하고, 이러한 역사적이고 엄숙한 과제의 실현에 투신할 것을 대내외적으로 천명한다.
9.7 해인사 승려대회는 불교 자주화와 사회 민주화 운동의 동참 선언을 함으로써 불교 대중은 물론 사회 민주화를 염원하는 제반 민주 세력들에게 놀라움과 기대를 안겨 주였다.
승려대회는 불교인의 성숙된 불교 현실과 민족 현실에 대한 원인 파악의 시각을 입증해 준 대회였다.
대회에서는 불교 관계 악법 철폐를 강력히 주장함으로써 그동안의 불교 자주화를 가로막고 있는 제도적 굴레에 대한 자각을 보여 주었다. 불교 관계 악법 철폐주장이 그동안 승가의 일부인 불교 혁신 세력에서만 주장, 요구되던 것이 절대 다수의 승가 대중의 절대적 결의로 불교 관계 악법 철폐를 부르짖음으로써 불교계의 전체적 요구로 표출된 것이다.
불교 관계 악법은 불교를 억압하고 예속시키는 제도적 장치로서 불교의 자주화를 위해 필연적으로 극복해야 할 과제이다. 그런데 많은 승가 대중이 과거에, 가시적인 재산 보호에만 걱정을 하고 자율적 발전을 저해하며 반민족적, 반민주적 악법임을 직시하지 못한 근시안적 태도를 가졌었으나 대회에서 불교 관계 악법의 본질을 깨닫는 불교 자주화 의지를 천명한 것이다.
또한 대회에서는 불교 자주화와 사회민주화 운동의 불가분의 관계를 승가의 대다수가 인식했다는 것이다.
민중 해방이라는 목적을 지난 불교가 매국 독재 정권에 의해 내부 분열과 혼란으로 본래의 모습을 잃고 반민주적, 반민중적 길을 걸었지만 이제는 굴레를 씌운 문제의 본질을 깨달아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적 이념을 구현할 수 있게 되었다.
불교와 사회가 둘이 아니며 사회 민주화 이룩없이 진정한 불교 자주화 역시 성취될 수 없음을 통감하고 전 불교 대중에게 동참을 호소함으로써 한국불교의 위상 재정립을 위한 이론적이며 조직적인 계기를 이루었다.
다음으로 고립 분산적으로 자신의 안위만을 걱정하던 사부 대중에게 불교적 현실과 민족적 현실을 전파함으로써 힘의 결집을 유도했다.
그동안 한국불교가 대승불교임을 표방하면서도 실재적 모습은 소승적이었음을 부인키 어렵다. 민족 존망의 위기 현실과 불교의 정권 예속화의 실정에 아랑곳없이 자신의 실존적 고뇌에 매달려 대승적 실천을 포기해 왔었다. 그런데 대회를 통해 소승적 자세를 버리고 대승의 기치 아래 전 불교도가 동참함으로써 불교의 새 지평을 연 것이다.
9월 8일 중앙승가대학 스님들의 경찰의 시비에서 발단이 된 농성은 9.7의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일반에게 알려는 계기적 사건이 되었는데 사회 일반 언론과 각 대화, 민중 민주 운동 단체들은 물론, 멀리 해외 불교도에까지 열띤 관심과 호응을 불러 일으켰다.
이는 9.7의 불교 자주화와 사회 민주화를 표방한 획기적 전환에 뜻있는 불교인과 민주화를 열망하는 세력들에게 깊은 감명과 신뢰를 주었음을 의미하며 불교의 그동안의 불교 내부 갈등과 반민주적 태도에 대한 불교 스스로의 반성을 더욱 뼈저리게 절감케 하는 반응이었다. 9.7해인사 승려대회에서 강력히 규탄하며 정부의 공식적인 사과와 해명을 요구했던 10.27 법난일을 맞이한 불교계는 불교 관계 악법 철폐 운동 공동대책위원회와 불교 탄압 공동대책위원회의 공동주최로 사부 대중이 참여한 가운데 봉은사에서 10.27 법난 규탄 및 불교 자주 쟁취 대회를 열었다.
봉은사 대회는 그간의 몇몇 단체에서만 공동으로 치루었던 행사를 정토 구현전국 승가회를 비롯한 승가와 대불련을 비롯한 재가가 연합하여 10.27 법난을 자행한 현 정권의 폭력성과 비정통성의 본질을 폭로하고 강력한 투쟁을 전개했다.
불교계는 불자인 박 종철 군 살해 사건을 맞이하여 성명서 발표, 추모 법회 개최, 2.7 추도회 참가 등 적극적 활동을 전개하며 고문 추방 운동으로 생명과 인권이 존중되는 정토사회를 구현할 것을 다짐했다.
총무원은 당초에는 박군 49재를 조계사에서 봉행한다고 성명을 발표했으나 폭력 정권의 압력과 총무원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의해 장소 변경을 함으로써 지난 l0.27 봉은사대회의 조계사 봉쇄 사태에 이어 또다시 자기 정체(불교개혁과 사회민주화에 대한 무의지)를 드러냈다.
4.13 호헌 조치에 대한 불교계의 양상은 사회 문제에 대한 자세에서 항상 그랬듯이 극히 대조적인 모습을 띄었다.
총무원장 스님 등은 반민중적이고 반민주적인 4.13 호헌 조치에 대하여 자자를 표명하는 발언을 하여 몰역사적 의식을 드러내며 재야 불교 혁신 세력은 4.13조치를 반대하는 성명을 발표하여 명확한 민주화 의지를 나타낸다.
5월에는 스님 751명이 서명한 ‘민주화를 위한 우리의 견해’라는 제하의 시국 성명을 통해 413 조치 철회와 민주 개헌을 촉구하였다.
스님들의 시국 성명은 86년의 152명의 시국 선언에 비해 무려 5배나 늘어난 것으로 승가의 민주화 실천의 역량 축적을 의미한 것이었다.
5월 18일에 발생했던 광주 원각사 경찰 난입사건은 명백히 제2의 10.27 법난으로 전 불교대중의 강력한 투쟁을 촉발사켰다.
불교계 제단체들은 성명을 발표하고 전국 주요 사찰의 스님들은 단식 기도에 돌입하였는데 이것은 80년에 자행됐던 10.27법난에 대한 불교계의 무력하고 무감각한 반응과는 현격하게 차이나는 대응양식과 반발을 보인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10.27 이후의 비구니 영화사건, 교과서 왜곡사건, 불탄일 교황방문, 남북예술단교류의 불교 배제, 끊임없는 언론, 방송매체의 왜곡보도를 통한 불교인들의 위기 의식을 반영한 것이며, 저간의 민중 불교 운동 세력의 계속적인 10.27 법난의 부당성 폭로에서 비롯된 현불교인의 의식 변화를 반증한 것이다.
국민들의 끈질긴 민주화 투쟁의 결과물인 6.29선언을 쟁취한 6월 투쟁에서도 불교계는 헌신적 투쟁을 전개하였다.
범야권은 5월에 「민주 헌법 쟁취 국민운동 본부」라는 8.15 이후 최대의 반독재연합전선을 구축하는데, 불교계에서는 총 발기인 2,196명 중에서 스님 102명 재가불자 58명 등 160명이 참가한다.
불교계의 160명의 참가는 매우 괄목할만한 성장으로 1975년 「민주 회복 국민회의」에 불교계에서는 유일하게 법정(法頂)스님 한 분만이 참가한 것과 비교하면 불교 운동 세력의 비약적 성장을 충분히 엿볼 수 있다.
불교계는 6.10 국민대회부터 명동성당 투쟁, 6.l8 최루탄 추방대회, 6.26 국민평화대행진에 이르는 2주일에 걸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그 기간 중에 독자적 행사로 6월 20일 조계사 노상에서 「민주화를 위한 구국 대법회」를 가졌다.
그런데 ‘구국대법회’는 6.10 대회 이후 가히 폭발적 양상을 띄었던 반독재 투쟁의 열기를 더 한층 가속화시키려는 목적이었으나 불교 대중 동원과 투쟁 역량의 열악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나 효과적으로 투쟁을 이끌지 못했다.
이것은 우리 불교가 아직까지 불교내적 이해 관계가 얽힌 문제에 대해서는 광범위하게 공유하고, 때로는 사활적 투쟁으로 대처하면서도 대사회적 투쟁에는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또한 이것은 불교 운동이 불교 자주화, 사회 민주화를 불가분의 관계로 설정하고 있으면서도 아직까지 적극적 행동화에는 못미치고 있음을 반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모습을 무엇보다 불교 자주화와 사회 민주화의 관계를 실천적 인식에까지 끌어올리지 못함으로 해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6월 중순경에 「민주 헌법 쟁취 국민 운동본부」 산하로 불교 부분을 일원화하여 「불교 공동위원회」가 발족되고 7월에는 조직이 확대 개편된다. 이는 기존의 중앙의 몇개 단체 중심에서 재야 불교계 9개 단체와 전국4개 지역을 포함하는 불교운동의 최대 기구로 확대된 것이다.
이상으로 필자는 10.27 법난 이후의 불교계의 동향을 개략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승가의 불교 혁신 의지와 역사, 사회 의식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승가의 비약적인 의식의 발전과 운동 세력의 양적 확산과 조직화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도 많은 난제를 안고 있다.
분명 불교 운동사에 있어서 획기적 분수령을 이룬 9.7 해안사 승려대회가 1년여 지난 현재 과연 그 대회에서 표명했던 불교 자주화와 사회 민주화의 실천 의지가 얼마만큼 실천되며 관철되었는가를 살펴볼 때 선언에 이은 실천적 모습은 극히 미약한 것이었다라고 생각한다.
이는 9.7 대회가 모든 불교도(총무원, 재야 불교 세력 등)가 한 목소리로 불교 자주화와 사회 민주화 투쟁을 선언함으로써 불교인의 자긍심을 회복하고 한껏 드날린 대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교 혁신 세력은 대중의 열기를 올바로 수렴해내고 조직화할 수 있는 조직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 점에서 기인한 것이라 본다.
또 하나는 총무원의 기만적인 일회적 태도로 그쳐 종단 대표 기구로서 자기 역할을 해내지 못한 점도 9.7의 의지를 지속적으로 계승, 발전시킬 수 없었던 요인이다.
총무원의 기회주의적 속성은 10.27 봉은사대회 조계사 개최 봉쇄, 「불교 관계악법 철폐 운동 공동대책위원회 및 백만인 서명 운동 본부」의 활동 방해 공작, 박종철 군49재 조계사 봉행성명 철회, 4.13조치 지지 발언, 6.10 대회 반대의사 표명 등의 일련의 모습 속에서 충분히 살펴볼수 있다.
총무원과 재야 불교 운동 세력이 9.7의 단합된 모습으로 그 이후로의 불교 혁신과 사회 민주화 운동에 대한 구체적 방안을 모색하고 실천했어야 함에도 총무원의 기회주의적 속성에 따른 반불교적 모습과 불교 혁신 세력의 단절된 활동으로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후속 작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이제 결론적으로 승가의 각 부문의 의식 수준과 활동 상황을 간략히 살펴보겠다.
현재의 각 강원(승가대학)은 지난날의 보수적 모습에서 탈피하려는 과도적 진통을 겪고 있는데 진보적, 민중적 경향을 조금씩 엿보이고 있다.
이러한 모습은 광주 원각사 사태 발생시 단식 기도, 성명 발표 등에서 볼 수 있는데 이같은 고무적 현상은 위기적 불교현실과 민족적 현실에 대한 젊은 승려들의 인식 태도를 반영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불교 현실을 올바로 타개해 나가기 위해서는 한국의 식민지적 상황을 파악함으로써 사회 현실, 민족 현실에 대한 입장 표명에도 적극적 행동화함으로써 가능함을 인식, 실천화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선승들의 비조직적 성격과 불교와 사회현실에 대한 관념적, 소극적 태도는 불교 운동선상에서 끊임없이 지적되는 점이다.
그런데 얼마 전 선승들의 선화자 대회가 열려 불교운동세력에게 큰 기대와 관심을 갖게 했다. 이 대회는 과거의 불교와 사회 현실에 실천적으로 대응하지 못한 점을 비판, 반성하고 자기 위상을 재정립하기 위한 모임이었다고 한다.
민족과 불교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자기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선의 관념적 이해 태도와 수행 자세에서 탈피, 선의 역동성, 혁명성을 실천하여야겠다.
학생 승려는 학생과의 접촉 공간을 가짐으로써 진보적 역사 의식과 사회 의식을 고양시킬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최대 활용, 전 불교대중에게 올바른 사회 현실, 민족 현실을 끊임없이 선전, 공유하는 노력을 기울여야 하겠다. 또한 졸업 후에는 개척 포교당을 건설, 민중의 고통스런 삶과 함께 하여 민중 불교를 구체적, 실천적으로 수행해야 하리라 생각한다.
정토 구현 전국 승가회를 위시한 혁신운동 세력은 현금의 교단이나 보수적 불교 세력의 비역사적이고 반민중적인 성격의 승풍(이념, 제도적 운영)을 척결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벌여나가야 하겠다. 또한 혁신 세력은 기존의 불교 승단 내에 팽배해 있는 염세적, 보수적 풍토를 극복하고 불교의 민중 지향화를 위해 민중 불교 이념의 승가에의 확산을 꾀하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해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