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석천과 하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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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승혜
2002년 05월 243호
내가 불교를 정식으로 공부하기 시작한 것은 1975년 가을이었다.
비교종교학을 공부하려고 미국으로 갔을 때 나가토미(Nagatomi)교수라는 일본계 미국인이 하바드 대학에서 불교를 강의하고 계셨다. 그 분에게서 불교사 전체에 대한 개론과 대승불교사상을 이 년 남짓 배웠는데 장로니게長老尼偈에 대한 논문을 썼던 기억이 있다.
미술사를 전공하신 교수님의 불교미술 강의에 매력을 느꼈지만 공空사상을 이해하기가 가장 어려웠다.
그러니까 불교의 핵심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이다.
불교는 문화적으로는 내게 가깝지만 마음으로부터 공감하기는 모든 종교 중 가장 오래 걸렸고 힘들었다.
아무래도 그 이유는 그리스도인인 내게 신앙의 중심이 되는 하느님이 불교 안에서는 부재한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 당시 내게 하느님과 공空은 너무나 다른 것이어서 도저히 이 두 개념이 만난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다.
비교종교학 중에서도 내 전공은 중국의 유교와 도교였기 때문에 6년 동안 박사과정을 끝낼 때까지 불교는 테두리만 파악하고 졸업을 한 셈이다.
1981년 귀국해서 모교인 서강대 종교학과에서 종교학이론, 세계종교사, 중국종교사 등을 가르치면서 ‘불자들에게 하느님이 과연 어떤 존재인가’하는 것이 다시 내 마음을 혼돈스럽게 했다.
어느 날 나는 종교학회에서 몇 번 만나 안면이 있는 동국대 고익진 교수님께 전화를 걸고 찾아뵙기로 약속을 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나신 이 교수님의 논문을 몇 편 읽고 이 분의 진지한 학문자세가 마음에 들어 함께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가 드린 여러 질문 중에서 지금 내 기억에 남는 것은 불교에서 하느님〔天〕은 어떤 위치를 가지는지 오래 된 내 궁금증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다른 점에서는 상당히 개방적이셨던 고익진 교수님의 답은 내 마음을 더욱 답답하게 했다.
불교에는 삼십삼천三十三天이 있고 각 천天마다 천주天主가 있는데 제석천이 그들 중 최상이라는 대답이었다. 그러나 내게 있어서 하느님은 아직도 윤회를 도는 그런 낮은 존재가 아니었다.
이 면에서는 우리 사이에 전혀 통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나는 한참 후에야 이 답답함을 푸는 열쇠를 찾았다.
고익진 교수님이 서슴없이 내게 말해 주신 천관天觀은 삼국시대 이래로 한국 불교가 견지해온 하느님의 불교적 해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다.
〈한국인의 하느님 개념의 해석적 역사〉라는 논문을 준비하면서 《삼국유사》를 자세히 분석하다보니 《삼국유사》는 그 당시 한국인들이 지녔던 하늘에 대한 두 가지 다른 해석을 그대로 기재해 놓고 있었다.
〈경덕왕과 표훈대덕조〉를 읽으면 상제上帝가 인간사에 절대권을 쥐고 있고 스님은 하늘과 인간 사이를 왕래하며 중재 역할을 하고 있다.
일반 신라인들이 지녔던 전통적 하느님 개념이다. 그런데 〈지엄존자와 의상법사조〉를 읽어 보면 수행하는 스님들이 하늘의 공양을 받고 있고 제석천帝釋天과 일치된 천제天帝가 부처님과 스님 아래로 하강하여 보조적 역할을 한다. 불교적 시각에서 한국인의 하느님 신앙을 새롭게 해석한 것이다.
인도의 번개신이었던 제석(Indra)은 수미산 꼭대기에 있는 도리천의 주主로서 천계에서는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므로 사바세계의 최고신인 천제와 유사했다. 문제는 제석천 등 천계의 신(deva)들은 아직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미계迷界에서 윤회를 계속 돌고 있는 존재라서 건국신화 등에 나오는 한국의 전통적 천天 개념과는 물론 그리스도교의 하느님 개념과도 상당한 차이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우주의 창조주로 시간의 시작과 끝을 품고 있고 구원자로 인류와 지속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요한Ⅰ서, 4장 8절)라고 고백한다. 그런데 창조에서 시작되는 발전적 시간관을 가진 그리스도교와 달리 불교에서는 존재의 기원을 불가사의한 것으로 보고 구제에 불필요한 철학적 허례로 간주한다.
그러니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우주관이 얼마나 다른지, 그 결과로 서로를 이해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 수 있다. 그러나 내 경험으로는 일단 어떤 점에서 서로의 우주관이 다른지를 분명히 인식하면 그런 인식이 오히려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1994년 〈선불교와 그리스도교〉라는 종교대화강좌를 시작하면서 나는 〈불교와 그리스도교의 우주관 이해〉라는 한 시간 동안의 강의를 삽입했다.
사실 내가 불교의 가르침을 진정으로 존중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9년 전 씨튼연구원을 개원하면서 학문적 종교대화를 시작하여 스님 두 분을 만나면서부터였다.
우리 종교인의 모임에 불교를 대표해서 초대된 분은 중앙승가대학교의 종범 스님과 동국대학교의 해주 스님이시다. 불교, 유교, 가톨릭, 개신교, 원불교 대학에서 가르치는 열 명의 교수들이 일 년에 네 번 만나서 미리 읽어온 논문을 돌아가며 발제하고 토론하는 형식을 취해왔다.
이제까지 30여 번을 만나면서 우리가 읽은 책들은 어언 10권째로 들어섰고, 일 년에 한 번씩 사찰이나 향교, 피정의 집이나 수련원을 방문하여 서로의 의례와 삶을 잠깐씩이나마 체험해왔다. 이런 여행을 통해서 나는 스님들의 삶을 가까이 느낄 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좋았다.
우리가 농담삼아 함께 육식을 하자고 말해도 우리 스님들은 언제나 된장찌개와 깨끗한 비빔밥으로 만족하신다. 강릉향교를 찾았을 때에 우리는 싱싱한 생선회를 대접받았지만 스님 두 분은 초당두부집에 따로 가서 식사를 한 후에 경포대 바닷가를 산책하는 우리팀에 합세하셨다.
계율에 철저하신 이 분들의 삶이 시간이 흐르면서 내게는 깊은 기쁨으로 다가오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여행을 하다보면 어느 지방에 가든 대표적 사찰을 들르게 되고 그럴 때마다 비록 조계종 사찰이 아닐 때라도 우리 스님들은 대웅전에 들어가 가장 먼저 부처님상 앞에서 깊게 절을 올리신 후에야 우리들의 질문에 답을 해 주신다. 지난 봄에는 용인에 있는 열반종 계통 사찰에 들렀다가 내가 너무나도 당연한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모든 불자들을 묶는 것은 결국 석가모니 부처님이시군요.” 해주 스님은 내 질문을 바보스럽다고 책하기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자들의 마음 안에 어떻게 살아 있는가를 알아듣기 쉽게 그리고 진지하게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나는 해주 스님의 해박한 지식과 명석한 논리를 좋아해서 대강 알고 있는 내용이라도 다시 물어보기를 좋아한다. 그리고 이 비구니 스님의 말 속에 불법에 대한 확신과 사랑이 배어 있는 것을 느낀다.
해주 스님에게서 불법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게 해 주는 지혜를 경험한다면, 종범 스님에게서는 논리를 뛰어넘는 통찰을 선뜩선뜩 보곤 한다.
우리가 열심히 토론을 하고 있을 때 이 스님이 던지는 말 한마디가 우리 시야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끌어 줄 때가 종종 있기 때문이다.
선사다운 초연함은 말뿐만 아니라 이 분의 삶 속에도 배어 있어서 사사로움을 조용히 끊는, 보이지 않는 금강석 칼을 지니고 계신다. 선사이니까 선사다운 것이 어떻게 보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선사다운 선사를 직접 만난다는 것, 자체가 큰 복이 아닌가 싶다.
우리 가톨릭 안에서도 참으로 수도자다운 수도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이 두 스님과 동료의식을 느끼는 또 한 가지 이유는 종단의 문제를 보는 이 분들의 자세 때문이다.
지난 몇 년 동안 신문지상에 종단의 분쟁상이 보도되면 모임을 가질 때 우리는 그 상황에 대해 묻곤 했다.
인간들의 모임으로서 종단의 약함을 직시하면서도 역사 속에 그럴 수밖에 없게 된 상황을 이해하며 아픈 마음을 가지고 집안의 고통을 감싸안는 마음을 보았기 때문이다.
모든 수도 공동체들은 조금씩 다르긴 해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문제를 지니고 있다.
가장 순수해야 할 집단이 부패되고 분열될 때 오는 수치와 더러움을 떨쳐 버리기보다 우리의 상처로 인정하면서 그것을 서서히 가라앉게 하는 기다림이 참된 자비가 아닐까?
지금 불교를 보는 나의 눈은 어떠한가?
오늘날 불교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좋은 대화의 상대자이다.
내 개인적으로도 그렇고 아마 세계적인 그리스도교 종교대화의 기상도도 그런 것 같다.
우주관은 판이하게 다르면서도 아마도 바로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게 가장 의미있는 도전자이고 동반자이다. 그리스도인이 보통 유有의 세계를 통해 진리로 접근한다면, 불자는 무無의 길로 진리를 꿰뚫고자 한다.
그리스도인이 불교의 ‘연기緣起’를 서서히 이해하게 되면, 그리스도교 전통 한구석에서 발전되어온 부정신비주의(인격성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본질을 무無로 보고 모든 인식작용을 멈추고 하느님을 있는 그대로 체득하는 명상전통)의 가치를 새롭게 평가하게 된다.
아마 불자가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사랑’의 의미를 서서히 이해하게 된다면, 하느님을 인격적으로 상정하고 그와 깊은 관계를 평생 엮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영성이 지닌 의미를 그 나름대로 인정하게 될지도 모른다.
보살신앙이나 정토신앙에도 그런 단면이 있기 때문이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는 둘 다 오랜 수행전통을 지니고 있다.
가톨릭 수도자로서 내 수행과정에 불교로부터 도움을 받은 적이 두 번 있다. 한 번은 박사논문을 쓰며 4개월 간 일본 교토에 머물 때 용안사龍安寺 수요일 저녁 참선에 참여했던 체험이고, 또 한 번은 지눌 선사의 글 안에서
얻은 통찰을 통해서다.
십 년 전인가 대학에서 ‘비교신비주의’라는 과목을 가르치면서 지눌 선사의 《진심직설眞心直說》을 학생들과
함께 읽고 있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닦아가려는 유념수有念修는 길을 잘못 든 것이고 모든 것이 비어 있다는 깨달음을 먼저 얻고 수행에 대한 욕심마저 비운 무념수無念修를 해야 바른 수행을 하게 된다는 지눌 선사의 말을 읽으면서 그대로 공감이 갔다.
그 때 나는 기뻤다.
내가 느끼고 있던 것이 오래 전 수행의 길을 먼저 걸어가셨던 한국인 수행자의 말씀에 부합되었기 때문이었고, 또 가톨릭 전통과 다른 불교 전통 안에 같은 진리의 체험이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후 나는 가톨릭 수행자들에게 강의를 할 기회가 있을 때마다 무념수無念修의 수행을 해야 한다고 역설한다.
지눌 선사의 말씀을 소개하고 나 자신의 경험으로도 그랬다는 말을 솔직하게 하는데, 다른 수도자들도 공감하는 것을 느끼곤 한다.
불자들과 그리스도인들은 지구촌에, 그리고 한국이라는 이 땅에 공존하고 있고, 또 공존해야 한다.
남한 인구의 반을 약간 넘는 종교인구가 다시 불교와 그리스도교로 양분되어 있기 때문만이 아니라 우리는 가치의 혼란을 경험하는,병든 사회를 함께 짊어지고 가는 동반자이기 때문이다.
한쪽이 정화되고 생기를 얻어 창조적으로 되면, 다른 쪽도 그 힘을 받는다.
최근 여성 수행지원자 수가 줄어가고 있고 연령층이 높아가는 것도 양쪽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다.
우리는 사방이 열린 두 개의 정자에 앉아 다른 경전을 읽고 있는 수행자들이다. 한쪽이 졸고 있으면 다른 쪽도 졸게 되고 한쪽이 갈라져 싸우고 있으면, 다른 쪽도 그 피해를 입게 된다.
불교에서 정법正法시대를 정의할 때 삼보三寶가 다 건재할 때라고 한다. 곧 불법을 가르치는 이들이 있고, 불법을 따라 사는 승가공동체가 있으며, 불법을 몸소 체득하여 보여 주는 부처가 살아 있는 시대를 정법시대라고 한다고 들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 불교와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참된 가르침이 있고, 사부대중과 교회 공동체에 가르침을 따르는 열성이 넘쳐흐르고, 부처님이나 예수님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성인들이 많이 나온다면 얼마나 좋을까? 병들어가는 인류 공동체와 피폐해가는 지구라는 우리 삶의 터전을 살려낼 사람들이 과연 누구일까?
나는 육십을 바라보며 가톨릭 수도자로서 행복하게 살고 있지만, 불교와의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먼 옛날의 지눌 선사를 통해서 귀한 가르침을 얻었고, 함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스님들과의 인격적 만남을 통해 한국 불교의 정수가 살아 숨쉬고 있는 모습을 본다.
때때로 들리는 승가의 분쟁이 가톨릭 교회 내의 빈자에 대한 조용한 무관심만큼이나 내 마음을 아프게 하지만 이것도 내 기도 안에 감싸안아야 할 일부분이라는 걸 알고 있다.
이럴 때면 《노자》 15장의 말씀이 떠오른다.
“누가 능히 탁하면서도 그것을 고요하게 하여 서서히 맑게 할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