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진 곳에 등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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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주경
2002년 05월 243호
아직 적지 않은 사람들이 불교를 기복종교라 비판하고, 불자들 중에도 기복불교니 구복불교니 하며 대다수 불자들의 신행형태를 하열한 것으로 생각하곤 한다.
이러한 시각은 불자들의 지나치게 개인적이고 가족중심적인 태도에 기인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켠 촛불을 그 사람이 법당을 나가기도 전에 꺼버리고 자신의 초를 꽂고, 연기가 자욱한 법당에 예불 기도가 어려울 정도가 되어도 향을 하나 더 사르려는 욕심이 불자들의 신행형태를 낮게 평가하게 하였던 것이다.
자신과 가족을 지키고 유지하기에도 고단하고 위태로운 삶을 살아온 세월은 부처님 앞에서도 급하고 간절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도 체계적인 신행과 교육의 틀을 가지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래 수년간 이루어진 스님들과 재가불자들의 노력으로 더 이상 남이 켠 촛불을 함부로 끄거나 지나치게 향을 사르는 일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또 자신이 올린 공양물에 다른 사람이 먼저 절을 했다고 시비가 생겨 새로 공양물을 올렸다는 이야기는 그저 지나간 옛 이야기일 뿐이다.
이러한 변화는 ‘나와 내 가족’만을 위해 신행하던 좁은 시각이 ‘이웃과 타인’에 대한 배려로 조금 넓어졌기 때문이다. 이웃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있을 때 진정 나와 내 가족을 위한 좋은 신행이 된다는 걸 이제는 실천할 수 있는 까닭인 것이다.
초파일이 되면 부처님 주변에는 큰 등을 달고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인과 사회 저명인사들의 이름을 써서 붙인다.
우리 사회를 이끌어 가는 지도자들이 잘되어 나라와 국민이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뜻이다.
하지만 정작 등불의 가치는 어둡고 구석진 곳에서 드러난다.
작은 등불이라도 어두운 곳에서 제 역할을 하는 까닭이다.
큰 등에 이름을 올린 사람들이 자신의 마음조차 밝히지 못할 때 ‘이웃과 타인’을 위해 세상의 구석구석을 밝히는 등불이 점점 늘어나서 세상이 더욱 복 받게 되는 것이다.
나의 복이 세상의 복이 되고 세상의 복이 곧 나의 복이 될 때 진정 복이 구해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