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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 보내는 E-ma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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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담는 오솔길 - 진명 2002년 05월 243호
작년만 해도 이른 봄에 피는 꽃과 늦은 봄에 피는 꽃이 차례를 지켜서 피더니 올해는 그 차례마저 거의 없어졌다. 아침 저녁 오고가면서 바라보는 주변 산은 앞다투어 핀 봄꽃으로 아름다운 수채화 한 폭을 감상하는 듯하다. 이제 머지않아 나뭇잎도 무성해지고 꽃들은 낙화하면서 품고 있는 열매를 위해 자리를 내 줄 것이다.
이렇게 피고 지는 꽃들의 향연에도 불구하고 이웃 나라에서 불어온 황사바람 때문에 밖으로 나 있는 창문뿐 아니라 육근의 문까지 닫아야 하는 열병을 한바탕 치렀다. 촉촉하게 내리는 봄비 소리가 반갑기 그지없다. 굳게 닫혔던 창문도 열고 지나가는 바람이 실어다준 라일락꽃 향기에 코를 맡기는 여유도 부려본다. 삶의 경이로움은 언제나 이렇게 우리 삶 언저리에 있다. 시시때때로 일어나는 인간적인 크고 작은 욕망과 분별심을 벗어 버리고 마음의 눈을 조금만 지혜롭게 뜨면 삶이 그렇게 고단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며칠 전 지인으로부터 반가운 편지를 한 통 받았다. 물론 방송국으로 오는 청취자들의 편지야 하루에도 편지나 엽서, 그리고 e-mail까지 많이 받지만 프로그램에 관계되지 않은 개인적인 편지는 정말 오랜만에 받아보는 것이었다.
자신의 삶의 향기까지 담아서 마음을 지면에 옮기게 되는 편지는 지면을 마주하면서 생각하고 또 생각하며 조심스럽게 글을 쓰게 한다. 꼭 써야 할 말인가도 생각하게 하고 또 얼굴 마주하면서 못하는 말은 허물없이 털어 놓을 수도 있고 글자 한 자 한 자 사이에 글로 못다 옮긴 마음까지 담을 수 있는 것이 편지다.
그런데 우선 나 자신부터 편지를 쓰는 일이 어려운 일 중의 하나가 되어 버려서 누군가에게 편지를 받으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듯 요즘은 전화 한 통화로 많은 걸 대신한다. 전화비용부터 몇 가지를 고려해서 이용하게 되는 것이 이제는 인터넷을 통한 e-mail이다. 그래도 전화보다는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글을 쓰게 되서 나도 자주 e-mail을 이용해서 국외나 국내에 있는 도반들과 지인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있다. 아침에 삭발한 머리를 다시 만져보게 하는 지인의 편지 글 중의 일부를 옮겨 본다.

“스님, 삶이 이렇게 고단한 줄 이제야 알았습니다. 부처님 법을 처음 만났을 때는 이제 막 갓 결혼한 새댁이었고, 불법을 잘 모르면서 그저 시어머니 뒤를 이어 부처님 말씀을 따르며 살아야만 하는 줄 알았기에, 불법을 공부하기 위해서 절에 다녔다기보다는 연중 행사처럼 일년에 몇 번 가서 불공을 드리고 오는 것이 고작이었어요. 그리고 자신의 어리석음을 닦기 위한 마음공부가 아니라 그저 사업이 잘되서 돈 잘 벌게 해달라고 졸랐고, 자식들 학교 좋은데 가게 해달라고 빌었던 시간이었지요. 그런데 그 때는 가끔 어깨 너머로 듣던 말씀 중에 부처님께서 우리 살아가는 세상을 고해라고 하신 말씀이 잘 이해가 가질 않았었습니다. 결혼 초년에는 세상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는 행복감과 즐거움에 세상을 다 가진 듯도 했었지만 그 즐거움은 잠시 지나는 한 줄기 봄 햇살과도 같았습니다. 이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보니 어리석음도 많았고, 가족과 함께 한 30여 년 세월의 뒤안에는 크고 작은 어려움도 많았었습니다. 이제 육십을 바라보면서 삶의 고단함과 참 맛을 느끼게 됩니다. 스님께서는 어쩜 그렇게 젊은 나이에 현명한 생각을 하셔서 부처님 제자?
?되셨을까 부럽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오늘 스님께 서툰 문장으로 편지를 쓰면서 부처님께도 편지를 한 통 썼습니다. 다음 생에는 꼭 사람의 몸을 받아 부처님 제자가 되길 서원한다고 말이지요. 이것도 어리석은 서원인 줄 알지만 들어 주시겠지요? 스님께서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부처님 제자 되시길 기원드리겠습니다.”
읽고 또 읽어본 편지였다.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나 교육의 기회를 다 누리고 해외에서 살면서 육십을 바라보기까지 평범한 가정 주부로 살아온 불자의 글이지만 수행자의 옷깃을 여미게 하는 충분한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무엇보다 ‘스님께서도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부처님 제자 되시길 기원한다’는 구절이 눈길을 머물게 했다. 내가 정녕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부처님 제자인가 하는 질문을 나 자신에게 하게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선지식은 처처에 함께 한다. 몇 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처음 ‘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할거라는 예고 기사가 교계 신문에 나가고 난 다음날 경찰대학 법대 교수로 있는 불자로부터 전화를 한 통 받았었다. “스님, 우선 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하시게 되서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그런데 스님 이거 아세요? 세인들에게 받는 인기라는 것은 물거품과 같다는 것 말입니다. 가슴에 ‘나는 수행자다’라는 묵직한 추를 하나 달고 방송하시길 바랍니다. 수행자는 연예인이 아닙니다.” 라고 하면서 조심스럽게 전화를 걸어왔던 말이 아직도 뇌리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5년째 차 한 잔의 선율을 진행하고 있는 지금도 늘 그 불자의 말을 선지식 삼고 있다.
바로 이런 불자들이 우리 곁에 살아 있는 부처님이 아닐까. 올해 부처님오신날은 늘 우리 곁에 함께 하는 부처님들을 위해서 불을 밝히고 싶다. 그리고 내가 즐겨 이용하는 e-mail로 삼세 부처님께 미리 편지를 띄우고 부처님오신날 답신을 기다려 보련다. 그 편지에 쓰는 내용을 몇 가지만 공개해 본다.
“부처님! 이 시대가 필요로 하는 수행자의 길은 어떤 길이어야 하는지요. 아직도 다 벗어 버리지 못한 삼독의 허물을 어떤 말씀으로 제거해야 합니까? 풍요로운 세상에서 출가한 수행자들의 교육은 무엇이 근간이 되어야 하는지요? 과연 이 시대의 수행자들이 지켜야 하는 계율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바람직한 계율인지 여쭈고 싶습니다. 그리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는 도반들의 구도열과 멀리 이국에서 공부하는 도반들의 부단한 열의도 부처님께서 기억해 주십시오. 매월 초하루마다 결석하지 않고 법당에 나와서 행여 한자라도 놓칠세라 마음의 귀를 열고 법문을 들으시는 은발의 노보살님의 안부도 전하고 싶습니다. 어떤 형태나 빛깔로 이름지워져 있지 않은 제 삶에 언제나 지혜롭고 향기로운 삶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고 싶습니다.” 모처럼 부처님께 메일을 띄우자니 왜 이렇게 드리고 싶은 말이 많을까. 합장한 불자들의 손끝에 포도알처럼 송알송알 달려 있는 그 발원을 이제야 이해하겠다.
올해 부처님오신날을 맞이해서 인연 있는 모든 불자들이 마음의 눈 밝게 뜨길 바라고 더불어 사는 사람들을 통해 부처님을 바로 볼 줄 아는 지혜의 눈 갖추길 진심으로 기원드린다. 부디 모든 사람들이 부처님 되시기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