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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경(遊行經) 중(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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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전해설 - 무관 1987년 10월 68호
어떤 사람이 마치를 타고 북쪽을 향해 부지런히 가고 있었다. 이를 보고 어디를 그리 급히 가느냐고 사람들이 물었다. “초나라로 가는 길이요.” 나그네가 대답했다. “초나라로 가려면 남쪽을 향해 가야 하는데 왜 북쪽으로 가느냐?” 사람들이 물었다. 나그네는“이 말은 참으로 잘 달리는 명마요”라고 대답했다. “아무리 말이 잘 달린다고 하지만 길을 잘못가고 있다”고 사람들이 말했다 그러나 ‘여비가 많으니 걱정 없소”라고 나그네는 대답했다. “그럴지는 모르지만 길이 틀리오”라고 사람들이 충고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마부가 좋아서 걱정 없소”라고 대답했다
우리는 어디를 보고 가는지 나의 목적이 무엇인지 조용히 물어 보아 자기가 가야할 본래의 목적에서 항상 벗어나지 말아야한다. 어느 일이나 처음부터 길을 잘 들어서야 한다. 흔히 좋은 말을 믿거나, 노자가 많다거나 마차꾼이 좋다고 하여 마음을 마냥 놓고 틀린 길을 달려 나가면, 가고자하는 길은 더욱더 멀어질 뿐이다.

부처님은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능히 수(受)의 일어나고 머물고 멸하는 것과, 상(想)의 일어나고 멸하는 것과, 관(觀)의 일어나고 멸하는 것을 안다. 이것은 곧 여래의 매우 슬기로운 일찌기 없었던 법이다. 너는 마땅히 받아 가져야 한다.
너희들은 마땅히 알아라, 나는 이 법으로써 몸소 체험하여 최정각을 이루었다. 이른바 4념처(念處) 4의단(意斷) 4신족(神足) 4선(禪) 5근(根) 6력(力) 7각의(覺意) 성현팔도(聖賢八道)가 그것이다.”
부처님은 자주 4념처, 4선, 7각의, 8정도를 강조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 분명한 목적이 있다 하더라도 짙은 안개 속에서 길을 잃었을 때는 되도록 빨리 길을 찾아야 한다. 이와같이 길을 찾을 수 있는 방법이 수·상·관의 방법이다. 인생에서 설사 길을 잘못 들어섰다 하더라도 되도록 빨리 바른 길을 찾는 것이 급선무다 그러나 아무도 길을 잘못 들어섰는지를 모르고 있을 때가 큰일이다.
부처님은 얻지 못할 곳에서 기적을 찾는 것을 결코 인정하지 않는다. 그것은 인간의 참된 삶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릇된 종교는 이 거짓말을 진실처럼 이야기하고 영생불멸을 설한다. 부처님은 그와 같은 거짓에 홀리는 사람들에 대하여 엄격하고 냉정하다. 왜냐하면 그런 것은 얻을 것이 없으므로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신 것이다. 만약에 진실로 영생을 얻고 싶으면 정진 노력하여 자신의 애욕을 끊고 많은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자기 자신을 응시하는 수행에 들어가라고 가르치신다.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작용과 그것에 의하여 상상하고 집착하는 것과 살필 줄 아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런 상태가 일어나고 지속되며 없어지는 사실들에 변역(變易)하는 과정을 자세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 다른 사람의 삶이란 보기처럼 안락한 것이 아니며 부러워할 만큼 달콤하지도 않다 그러므로 “너희들은 마땅히 이 법 가운데 살면서 서로 화합하고 존경하고 순종하여 다투어 송사를 일으키지 말라 한 스승에게 배운 것은 젖에 물처럼 혼합된다. 내 법 가운데서 힘써 공부하면서 서로서로 등불이 되고 함께 나누라”고 말씀하였다.

인간은 장수를 원하여 과학적인 의학을 창조하였다. 사람이 살아 있는 한 항상하기를 바라고 무상함을 싫어한다. 불교에서는 아는 바와 같이 무상관으로써 모든 현실 존재의 근본을 삼는다. 자기 자식의 성장과 출세라는 변화를 원하면서도 부모는 언제나 헤어지기를 싫어한다. 이러한 모순을 깨닫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무상한 세상에 살면서 항상인 것, 증오의 마음을 품고 평화를 찾는 것 등 변동이 없는 것을 얻으려고 무익한 노력을 계속한다. 그리하여 얻어지지 않으면 쓸쓸하고 고독하다고 외친다. 영원한 행복이나 변하지 않는 인생이나 영원한 사랑의 맹세나 쇠퇴와 늙음과 죽음이 없기를 바라지만 그것은 오직 이상일 뿐이다.
“비구들이 마땅히 알아라. 나는 이 법에서 몸소 체험하여 중생들에게 그것을 널리 펴고 있다. 이른바 관경(貴經), 기야경(祇夜經), 수기경(受記經), 게경(偈經), 법구경(法句經), 상응경(相應經), 본연경(本緣經), 천본경(天本經), 광경(廣經), 미증유경(末曾有經), 증유경(證喩經), 대교경(大敎經)이 그것이다. 너희들은 마땅히 잘 받아 가지어 헤아리고 분별하여 이를 따라 수행해야 한다. 무슨 까닭인가, 여래는 오래지 않아 지금부터 3개월 뒤에는 마땅히 반열반에 들 것이다.”
모든 비구들은 이 말씀을 듣고 모두 깜짝 놀라 숨이 막히고 정신이 아득하여 땅에 쓰러져 큰소리로 외쳤다. 이때 부처님은 모든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그만 그쳐라 걱정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하늘이나 땅이나 사람이나 한번 나서 끝나지 않는 것은 없느니라 모든 있는 것으로 하여금 변역(戀易)하지 않게 하려 해도 그것은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전에도 말했지마는 은혜와 사랑은 떳떳함이 없는 것이요 한번 모인 것은 떠나는 것이니라. 이 몸은 내 소유가 아니요 이 목숨은 오래지 않는 것이다.”
부처님은 열반이 가까워 오는데도 쉬지 않으셨다. 그리하여 암바라촌올 거쳐 첨바촌, 건다촌, 바리바촌을 거쳐 다시 부미성의 북쪽 싱사파아 숲에서 4대교법을 말씀하시고 말라유를 거쳐 파바성의 사두원에 이르러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周那一純陀)가 바치는 전단(旃壇)나무의 진귀한 버섯을 부처님만 잡수셨다. 그 때 춘다는 부처님께 이 세상에 몇 가지의 사문이 있는지를 여쭈었다. 이에 부처님은 게송으로 대답하였다.

사문에는 무릇 네 가지가 있다.
첫째는 도를 행함이 특별히 뛰어나고
둘째는 도의 뜻을 잘 설명하며
세째는 도를 의지해 생활하고
네째는 도를 위하여 악을 짓는다.

어떤 이를 도가 특히 뛰어났다고 하는가.
능히 은혜와 사랑의 가시밭 건너
열반에 들어감 의심이 없고
하늘과 사람의 길을 뛰어난 이.

어떤 이를 도의 뜻을 잘 설명한다고 하는가
제일의 진리 뜻을 잘 알아
도의 더러움과 때 없음을 설명하고
어질고 자비스럽게 사람의 의심을 깨우쳐 주는 이.

어떤 이를 도를 의지해 생활한다고 하는가
법의 글귀를 자세히 늘어놓아
도를 의지해 스스로 살고
멀리 때 없는 장소를 바라는 이.

어떤 이를 도를 위해 악을 짓는다 하는가
속으로 간사와 사특을 품고
겉으로는 청백한 듯 모양 꾸미며
거짓과 속임으로 성실 없는 이.

구리쇠에 금칠하듯 겉치레한 이
한눈에 존경하고 친하지 말라.
그러나 모두다 그런것 아니니
맑고 깨끗한 믿음 버리지 말라.

때에 부처님은 구이성으로 가다가 길에서 복귀(福貴)를 만났다. 복귀는 부처님과 아란에게 황금색 옷을 한벌씩 바쳤다. 부처님께서는 복귀를 위하여 고성제, 고집제, 고멸제, 고출요제를 연설하여 마지막 우바세가 되었다.
복귀가 떠나고 아란은 부처님이 돌아가신 뒤 장례의 법을 물음에 전륜성왕과 같이 하라고 자세히 설명하시고, 천하에 탑을 세울 만한 이가 여래, 벽지불, 성문, 전륜성왕의 넷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부처님은 구이성으로 들어가 말라유족의 본생처인 쌍수 사이를 향해 가셨다. 아난은 이 보잘것없는 작은 성, 거칠고 허물어진 땅보다 첨파대국, 비사리국의 왕사성, 핫지국, 사위국, 가비라국, 바라나국과 같이 백성이 많고 불법을 즐거이 믿는 곳에서 열반하시기를 청하였다. 그러나 부처님은 구이성이 옛날에 대선견왕이 다스리던 구사바제 도성이었고 금륜보, 백상보, 감마보, 신주보, 옥녀보, 거사보, 주병보가 갖추었던 곳이라고 길게 설명하셨다.
잘못된 믿음은 자신을 망친다. 뚜렷한 확신을 가지고 신중하게 하면 무슨 일이나 실패하거나 후회는 없다. 부처님께서는 사람들의 어설픔과 경솔함이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한다고 보았다. 그릇된 구도(求道)는 사람을 파멸로 인도한다. 부처님께서는 결코 거짓말이나 임시 변통으로 둘러대는 일이 없었다. 언제나 고언(苦言)의 진실만을 말씀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사교(邪敎)와 거짓 종교에 사로잡혀 무익한 나날을 허송하고 있는 모습에서 마음 아파하셨음이 분명하다. 어찌하여 사람들은 진실을 추구하지 않는가.
인생의 산고개를 오르내리면서 깊은 생각도 없이 매달리는 가르침이나 권유를 받아들여 자칫 한발을 잘못 디디는 순간에 도리어 생활이 혼란해지고 인생의 길을 잘못 디딘 탓에 몸과 마음이 파멸에 이르는 슬픈 사실을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있다. 그릇된 구도와 종교의 선택은 무신앙보다 더 나쁜 것이다 종교에서 최대의 적은 경솔한 신앙과 광신(狂信)과 자만심이다. 그리고 자기의 고민이나 상처를 위로받기 위해서 신이나 부처와 친근해지려 하는 이들이 많은데, 그것은 잘못된 태도이다.
종교란 종(宗)이라는 글이 가리키듯이 사물의 근본을 가르치는 것이다. 일시적인 위안이나 이익을 얻는 것이 종교는 아니다. 참된 종교는 인간성을 풍부하게 만든다. 어찌하여 경솔하게 지푸라기 잡듯 종교를 이익의 도구로 생각하는가, 이것은 보통 잘못이 아니다. 우리는 구도와 신앙에 대해 더욱더 신중하고 진지해져야 한다. 신앙 문제에 대하여 누구에게 권유를 받거나 강요를 당하여 무책임하게 뛰어들어서는 안 된다. 아무 생각없이 행한 무의식적인 행위가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 것을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본다.
욕심에서부터 시작된 신앙은 가짜와 진실을 식별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사교거나 거짓 종교일수록 인간의 욕망을 부채질하는 언설이 난무함을 헤아리지 못하는 광신자와 자만자가 많다. 그들은 남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의 주장만이 옳은 듯이 늘어놓고 만다. 이러한 과격화의 가장 큰 원인은 현실이 제공하는 정상적인 생활에서는 어떠한 모순도 풀 수 없다는 맹신에 있다. 어떠한 일이 있어도 오늘 우리에게 현실은 그만한 가치가 있음을 믿지 못하는 데에 원인이 있다. 이상 사회가 아닌 바에야 모순은 가실 길이 없으며 모순이 존재하므로 신앙이 필요한 것임을 안다면, 그 모순이 과연 외부적인 것뿐인지를 살펴 헤아려야 한다.
가끔 목표를 중요시하기 때문에 수단을 소홀히 하거나 그 반대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그 어느 것도 유일한 것일 수는 없다. 그것은 변화 속에 움직이는 특수한 현실 상황을 바로보는 눈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직 이를 바로보는 자만이 부처님이다. 그러므로 수·상·관의 일어나고 머물고 멸하는 것을 안다고 하며, 이것이 곧 가장 기특한 일이며 일찌기 없었던 법이라고 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