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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혜의 깨달음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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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看話禪 사상 - 인경 2002년 05월 243호
대혜의 선정체험을 활달하지 못하여 죽어 버린 자리라고 평가한 원오는, 대신에 대혜를 택목당에 머물게 하고 자유롭게 문답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였다. 《대혜연보》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기술하고 있다.

마침내 원오는 대혜를 택목당에 머물게 하면서, 시자 업무는 조금도 시키지 않았다. 매일 사대부들과 마찬가지로 입실하여 원오에게 여쭙게 하였다. 그러나 그 때마다 원오는 “유구有句와 무구無句가 마치 등나무가 나무에 기댄 것과 같다.”고 말하였다. 그러면서 대혜가 무엇인가를 말하고자 하면, 곧 “그것은 아니야”라고 했다. 이러기를 반년이나 계속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택목당은 주지실에 부속된 시자실로 보인다. 대혜를 택목당에 머물게 하고, 매일 입실하도록 배려한 원오의 이 조치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상징적 의미를 함축한다. 좌선이나 선정을 강조하는 인도선과는 다르게 문답과 점검을 중시하는 중국선의 특징적인 한 단면을 보여 준 것이다.
일반적으로 문답은 중국뿐만 아니라, 인도나 희랍에서도 매우 중요한 교육의 한 방식이었다. 그러나 선종에서 말하는 선문답은 선의 안목을 시험하고 개발하는 목적을 넘어서 보다 적극적인 의미로, 어떤 목적에 도달하기 위한 수단이나 방법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본래 내재된 지혜의 드러냄을 의미한다. 좌선이 인도에서 정착된 선정禪定의 형식이라면, 선문답은 중국에서 꽃피운 돈오頓悟의 표현 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아무튼 대혜는, 원오의 배려에 힘입어서, 매일 입실하여 문답할 수가 있어 좋았다. 그러나 대혜가 자신의 견해를 말하기만 하면, 그 때마다 원오는 “그것은 아니야”라고 대답하면서, “마치 유구有句와 무구無句가 등나무처럼, 나무에 기대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사량분별에 의한 탐색을 극단적으로 배제하는 이런 전통은 원오의 스승인 오조법연五祖法演에게서 찾아볼 수가 있다. 오조는 조주趙州의 무자無字를 수행의 한 형태로 인식한 최초의 수행승이다. 그는 있다거나 없다는 견해에 의해서 무자無字를 참구하는 일을 경계하였다. 다만 원오는 구체적으로 대혜에게 문답을 통해서 이 점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는 것이다. 대혜의 입장으로서는 자신의 의견이 계속 부정 당하여 답답한 노릇이지만, 조사의 언구로부터 더욱 깊은 의심의 절벽에 떨어지는, 중요한 시절이라고 보여진다.

그러던 어느 날 대혜는 “스님께서도 오조법연五祖法演 화상께 유구·무구의 문제를 물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그 대답을 기억하고 계십니까?” 라고 물었다. 원오는(한참을 웃기만 할 뿐, 대답을 하지 않다가) 대답하였다. “오조 선사는 그것을 말하려고 해도 말할 수 없고, 그림 그리려고 해도 그릴 수 없다.”고 대답했다. 이 때 대혜는 다시 물었다. “(그러면) 홀연히 등나무가 무너질 때는 어떠합니까?” 그러자 원오는 “알았다(相隨來也)”라고 했다. 이 순간에 대혜 역시 큰소리로 말했다. “저도 알았습니다.” 그러자 원오가 대답했다. “너가 공안을 꿰뚫지 못할까 걱정이다.” 대혜가 말했다. “그러면 화상께서 시험해 보십시오.” 원오가 마침 몇 가지 공안을 들자, 대혜는 막힘이 없었다. 마침내 원오가 말하였다. “내가 그대를 속이지 못하겠다는 것을 오늘에야 알았다.” 그리하여 원오는 대혜에게 《임제정종기臨濟正宗記》를 지어서 부촉하고 자리를 나누어 무리를 이끌도록 하였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지점은 유구와 무구의 분별된 희론이 떠난, 말할 수 없는 채로 남겨진 부분이다. 그것은 유무의 양극단이 함께 무너져 내린, 한참이나 미소짓는 침묵이다. 그러나 이 때의 침묵은 단순한 선정체험과는 다른 종류이다. 표면으로는 유구와 무구에 근거한 말이 존재하지만, 실제로는 등나무가 무너져 말이 없는 침묵이 지배한다. 마치 앞산은 흐르지만, 강물은 흐르지 않는 상황처럼, 말할 수 없는 것은 침묵으로 남겨야 하지만, 대혜는 말해야만 하는 역설적 긴장 상태에 놓여 있다. 여기에 침묵을 깨뜨리는 풍경소리의 공안이 누워 있다.
이상에서 대혜가 깨달음을 얻어 가는 문답과정을 정리하여 보면, 간화선看話禪과 결부시켜서 주목할 만한 몇 가지 점이 있다. 먼저 선문답(公案)에 의해서 깨달음이 실현된다는 점이고, 두 번째는 ‘조사祖師의 언구言句’에 의한 의심이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고 있으며, 마지막으로 단순하게 마음의 깨끗함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공안 상에서 일체의 사려분별을 모두 거절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제시된 ‘조사의 언구’ ‘의심’ ‘사량분별의 배제’라는 세 측면은 바로 간화선 참구에서 중요한 특징적 요소라고 규정해도 좋겠다.
이런 원오극근의 방식은 담당문준이 대혜에게 제기한 <다만 한가지>에 대한 집중적인 탐색을, 보다 구체화시킨 한 단계 진보된 방식으로 평가된다. 다시 말하면 간화선의 수행법은 남송에서 번창한 양기파에서 확립되었지만, 북송 황룡파의 기본적 입장을 계승하여 발전된 형태라고 보아도 크게 어긋난 평가는 아니라고 보여진다. 이후 조사의 언구에서 공부를 지어가는 이런 양식은 당시 송대 임제종의 중요한 특징이 되었다.
그런데 깨끗한 ‘선정’(淨)의 체험과 유구有句·무구無句의 ‘문답’과의 관계설정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서장書狀》에서 찾아볼 수가 있다. 《서장》의 43번째 향시랑에게 답하는 편지를 보면, 다음과 같다.

편지 속의 질문을 보니 그것은 바로 내(大慧宗)가 36세에 의심했던 바입니다. 나 역시 일찍이 그런 질문을 원오 노사에게 물었습니다. ‘가령 종고가 잠을 자지 않을 때는 부처님이 찬탄하는 바를 실행합니다. 그러나 침상에서 졸고 있을 때는 더 이상 주재할 수 없습니다. 꿈속에서 그야말로 허둥댑니다.’ 그러자 원오 선사는 ‘온갖 망상이 끊어져야 비로소 잠잘 때와 깨어 있을 때가 늘 하나인 경지(寤寐一如)에 이를 것이다’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처음에는 믿어지지가 않았습니다. 매일매일 자신을 살펴보면, 잘 때와 꿈 꿀 때가 분명히 두 조각으로 나뉘어져 있는데 어떻게 입을 열어 선을 말하겠습니까? 그러다가 훗날 ‘모든 부처가 몸을 드러내는 곳에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온다’는 원오선사의 법어를 듣고 홀연히 가슴에 걸리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이 때에 비로소 석가 세존의 말씀이 사람을 속이지 않는 진정한 대자대비한 말씀임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보면, 대혜가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온’ 상당법문을 먼저 들었던 것이 아니라, 원오에게 입실하여 먼저 나눈 대화는 오매일여寤寐一如에 관한 문답이었다. 오매일여의 문제는 이미 대혜가 27세에 담당문준에게 있을 때, 지적을 받은 문제로 의심하고 있던 바이다. 그런데 이 문제가, 《서장》에 의하면, ‘훈풍이 남쪽에서 온다’는 원오의 상당법문을 듣고서 마침내 해결된 것이다.
그러나 이 때 대혜가 경험한 텅 비고 청정한 ‘선정’의 체험은, ‘귀중하지만 활달하지 못하여 죽어 버린 자리’라고 원오에 의해서 판정을 받았다. 그래서 대혜의 마지막 깨달음은 오매일여의 ‘선정’에 의해서가 아니라, 《대혜연보》가 전하는 바와 같이, 조사의 언구인 유구·무구에 관한 ‘문답’을 통해서 실현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역시 오매일여가 성취됨으로써, 비로소 깨어 있을 때와 잠잘 때를 구별하지 않고, 활발발한 임제의 가풍을 실현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때문에 오매일여의 체험은 양기파든지 황룡파든지 당시의 임제종 선사들뿐만 아니라 당시의 수행하는 사대부들까지도 중요한 과제였다는 사실이다.
다른 측면에서 보면, 오매일여의 선정체험은 대혜에게 선대의 고칙공안에 대한 의심을 통해서, 지혜의 전체작용으로 완결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져다 준 것이다. 그럼으로써 고인의 언구를 의심하는 지혜의 길은 선정체험과 더불어 대혜의 가슴에 확고하게 자리잡았고, 결국 이것이 그의 간화선 사상을 형성하는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