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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닥에 깔려 있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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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의 방 - 황현산 2002년 05월 243호
나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도
내가 자란 섬이 낙도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낙도라고 불러야 할 섬들이 어디에 따로 있는 줄 알았다.
멀리 떨어진 섬이라고 하는데 어디서 멀리 떨어졌다는 말인가.
그 섬은 성년이 될 때까지 내 마음 속에서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내 고향은 전라남도의 서남쪽 바다에 떠 있는 한 섬이다. 사람들이 낙도라고 부르는 그런 섬 가운데 하나인데, 나는 대학을 마칠 때까지도 내가 자란 섬이 낙도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고, 그렇게 불러야 할 섬들이 어디에 따로 있는 줄로만 알았다. 멀리 떨어진 섬이라니, 어디서 멀리 떨어졌다는 말인가. 육이오 전쟁 때 가족들의 등에 업혀 들어갔다가 국민학교를 졸업할 때 떠난 섬이지만, 성년이 될 때까지 그 섬은 적어도 내 마음 속에서는 세상의 중심이었다. 아니 성년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변한 것은 없다. 아직도 지리산의 높이를 마음 속에 가늠하고 싶으면 그 섬에서 가장 높지만 3백미터가 채 못 되는 산인 기린산의 일곱 배라는 식으로 손가락을 꼽아야 하고, 서울에서 춘천까지의 거리를 구체적으로 느끼고 싶으면 그 섬의 어느 동네에서 어느 동네까지 열 번 왕복하는 거리라는 식으로 머리를 굴려야 한다. 내 삶의 모든 척도가 그 섬에 있는 것이다. 게다가 나는 내 생애의 가장 기이한 경험을 그 섬에서 얻었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이 되던 해의 여름이던가, 그 섬의 서쪽 마을에 사는 아이들이 나를 자기네 동네로 초대했다. 황새기를 가득 실은 어선들이 몰려드는 오뉴월이면 바닷가의 긴 백사장에 파시가 서는 동네였다. 아이들을 따라 내가 그 마을에 갔을 때는 파시의 장사꾼들이 대부분 뒷설거지를 하고 떠난 다음이어서, 뱃사람들에게 술을 팔던 가건물 몇 채가 남아 있을 뿐이었다. 아이들은 집에서 퍼온 보리쌀을 들고 그 가게들을 차례차례 뒤졌지만 내게 사 줄 만한 것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 집에 가서야 겨우 먼지를 둘러쓰고 있는 사이다 한 상자를 발견했다. 사이다 상자를 보리쌀과 바꿀 때 주인은 필경 아이들에게 바가지를 씌웠을 것이다. 그러나 벌써 마음이 부풀어 있던 우리는 바닷물이 멀리 밀려난 모래밭에 둘러앉아 그 사이다를 나누어 마셨다. 한 사람에게 두 병 꼴로 사이다가 돌아갔고, 손님이었던 내가 아마도 한 병쯤 더 마셨던 것 같다. 사이다도 사람을 취하게 한다는 것을 나는 그 때 알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가슴이 울렁거려 나는 모래 위에 누웠다. 해는 지고 하늘에는 별이 돋아 있었다. 달이 밝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내 옆에서 ?
罐4?아이들의 합창이 마치 먼 나라에서 들려오는 노랫소리처럼 아득하였다. 그리고 더 먼 곳에서 바다의 파도소리가 들려왔다. 하늘의 모든 별들이 긴 꼬리를 끌고 서서히 돌고 있었다. 모래에는 낮의 온기가 남아 있어 그것이 내 몸을 따뜻하게 덥혀 주었다. 내가 어떤 커다란 손바닥 위에 누워 있고 그 손이 나를 끝없이 흔들어 주는 것 같았다. 또는 내 육체가 모두 삭아내려 모래알처럼 작아진 내가 다른 모래알들 속에 묻혀 바람 따라 살랑이는 것 같기도 했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내가 눈을 떴을 때는 벌써 자정이 지났는데, 아이들이 나를 둘러싸고 앉아 걱정스러운 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훗날 나는 이 체험에 대해 ‘시간이 바닥에 깔려 있었다’는 표현이 어떨까 생각해 보곤 했다.
내 생애에 이와 비슷한 체험이 한 번 더 있었는데, 이 때도 그 섬과 전혀 무관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은 어떤지 알 수 없지만, 내가 군대에 복무할 때는 모든 군인들이 일년에 사흘씩 인근의 공수부대에 들어가 특수훈련을 받아야 하는 제도가 있었다. 완전군장으로 30킬로 구보를 하는 것이 그 훈련의 마지막 날 프로그램이다. 이 중요한 날, 나는 아침부터 미열이 있고 다리가 휘청거렸다. 그런데 그 구보를 지도 감독하는 조교 가운데 한 사람이 내 고향 섬 사람이었다. 한 5킬로 정도의 길을 달려 어느 고개를 넘을 때, 그 조교는 내 몸의 상태가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나를 대오 밖으로 불러냈다. 잠시 기합을 주는 척하더니, 오솔길로 나를 이끌고 갔다. “이 오솔길을 곧장 따라가면 부대로 돌아가는 또 다른 고갯길이 있다. 그 길목이 구보의 마지막 코스이니, 두세 시간 후 본대가 그 곳을 지나갈 때 재주껏 합류하도록 해라.” 나는 그가 가르쳐 준 대로 그 고갯길를 찾아가 바위 뒤에 몸을 숨기고 군장을 풀었다. 때는 초여름으로 나무에는 푸른 잎들이 돋아나 있었다. 낙엽 속에 몸을 묻고 누우니 얼굴은 열기로 후끈거렸지만, 그러나 편안했?
? 바람이 살랑거려 나뭇잎들을 끝없이 반짝거리게 할 뿐 만상이 조용했다. 잠시 그렇게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디서 사각거리는 소리가 들려 왔다.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해도 그 방향을 가늠하기가 어려웠다. 땅 밑에서 스며나오는 소리 같기도 하고, 때로는 내 가슴 속에서 나는 소리 같기도 했다. 시계의 초침이 울리는 것처럼 거의 규칙적인 그 소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커져 마침내 숲 전체를 고르게 덮었다. 눈을 크게 뜨고 가만히 하늘을 바라보고 있으니, 내 머리 위 오리나무 가지의 나뭇잎들이 그 사각거리는 소리에 맞추어 흔들리는 것이 보였다. 그것은 푸른 벌레들이 오리나무 잎을 갉는 소리였다. 사각거리는 소리는 끊어지지 않고 나뭇잎들은 금방 잎맥만 남기고 차례차례 사라졌다. 그리고 이따금씩 검은 새 한 마리가 날아와 그 벌레들을 쪼아가곤 했다. 그러나 그 숲이 평화롭게만 느껴졌다. 나뭇잎을 빼앗기는 나무도, 나뭇잎을 갉는 벌레들도, 그 벌레를 잡아가는 새도, 모두가 평화로웠다. 사각거리는 소리가 비단 그물처럼 숲을 덮고 나는 그 그물에 저항 없이 갇혀 있었다. 내 몸이 아주 작아지는 것 같았다. 나는 앙상하게 남?
?잎맥이기도 했고, 새의 입에 물려 하늘로 날아가는 벌레이기도 했다. 나는 구보대가 돌아오는 시간을 초초하게 기다리지도 않았고, 거기에 어떻게 합류해야 할지 염려하지도 않았다.
나는 요즘 강의가 없는 날이면 집 근처의 도봉산을 오른다. 무수골에서 원통사로 가는 길이다. 휴일이 아니라서 길은 호젓하고, 항상 정해진 길이라 발길이 익숙하다. 그런데 어떤 길목을 돌아서면 뒤에서 나를 부르는 나직한 목소리가 있다. 뒤돌아보면 아무도 없다. 다만 이끼 낀 바위가 있거나 비범한 기운을 떨치며 솟아오른 나무가 있다. 그 바위와 그 나무가 나를 부른 것이 틀림없다. 아니 그 바위와 나무를 나도 모르는 사이에 기억하고 있던 내가 그것들을 지나치며 나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는 것이리라. 그 바위와 나무에 내가 걸어 두었던 내 마음이 나를 부른 것이리라. 그러나 나는 내 고향 섬과 저 구보의 고갯길에서 만났던 그 이상한 마법의 시간 가운데 하나가 나를 부른 것이라고 그렇게 믿곤 한다. 내 존재의 바닥에 아주 낮게 깔려 있던 그 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