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후 처음인 동독 국가 원수의 방문을 따뜻이 환영해 주는 서독 국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고 키가 큰 서독 수상 콜과 함께 호네커가 뒷짐을 지고 무언가 귓속말을 나누며 걸어가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또한 호네커가 분단으로 말미암아 부득이 떠났던 고향을 거의 반 세기 만에 돌아와서 고향집에 그대로 남아 살고 있는 단 하나의 혈육인 누이동생과 상봉했다는 기사도 감동적이고, 그를 환영하기 위해서 공회당에 빽빽히 모인 사람들 가운데서 옛날 학교 시절의 짝과 반 나치 운동의 옛 동지들을 찾아 와락 껴안더라는 전언도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대목이다. 호네커가 서독과 그곳에 있는 고향을 방문했다는 것에 우리가 이토록 감상적이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이, 우리도 똑같은 분단 국가이기 때문이다. 생각할수록 억울한 것은 독일은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킨 당사국으로 가해자라는 죄라도 있어 분단되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모든 강대국들의 피해국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미국과 소련의 패권주의와 냉전 체제의 구축 때문에 분단되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우리에게는 지도자가 서로 오가고(서독의 콜 수상도 호네커 서기장의 초청을 수락했으니) 국민도 비교적 자유롭게 왕래하는 독일의 형편이 부럽기 그지없다. 더우기 이번 두 수뇌의 회담에서는 지금까지 60세 이상에게만 허용했던 거의 자유로운 상호 방문 및 여행을 젊은 이들에게까지 확대하고 양쪽 도시간에 자매결연을 맺는 등 교류를 증진하는 한편 스포츠교류도 확대하기로 합의했다고 하지 않는가. 비록 완전한 통일까지는 아직멀었다 하더라도 그것에 한발 다가선 것만은 분명하다. 과연 우리는 언제 이만큼이라도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 답답한 생각마저 든다.
말할 것도 없이 우리는 같은 분단국가라해도 독일과는 형편이 다르다. 6.25 같은 동족 상잔을 독일은 겪지 않았으니 그만큼 상호 불신과 증오도 덜할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경우 제국주의와 그 비호를 받고 있는 독재 정권이 이 불신과 증오를 집권 연장의 구실로 삼음으로써 이를 적대감으로까지 올려 놓았고, 마침내 강대국이 그어 놓은 이 국토안의 분계선은 지상에서도 가장 첨예한 동서 세력의 대립의 자리가 되게 하였다.
호네커의 서독 방문을 보면서 또하나 부러운 것은 게르만 공동체에 대한 응집력 같은 것이다. 우리도 단일 민족이라고 하나 이 점에서는 독일 민족을 따라가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떨쳐버리기가 어렵다. 가령 우리에게 공동체에 대한 그만한 응집력이 있었더라면 분단된 지 마흔두 해가 되고 6.25를 겪은 지 서른일곱 해가 지난 오늘까지 강대국의 패권주의에 놀아나지만은 않았을 것이 아닌가. 전쟁을 겪었다고는 하나, 또 그 전쟁이 제국주의 세력의 부추김에 따른 것이라고는 하나 아직까지도 남북이 이렇게 원수처럼 으르렁대고 있다니, 그 책임의 일단이 우리 자신에게 있다고 나무란다해도 할 말이 없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독일도 우리나 마찬가지로 강대국에 의해서 동서로 갈리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 대립하고 반목하는 대신 꾸준히 민족적 동질성을 추구하는 길을 걸어왔음을 그 동안의 독일의 역사가 알려 주고 있다. 그들은 체제가 다른데에서 올 문화의 이질화를 겁내어 국어사전 편찬도 함께 하고 도시 계획도 함께 세웠다 한다. 또 텔레비젼도 상대방 것을 자유롭게 볼 수 있기 때문에 서독신문에 동독텔레비션 프로그램이 나오고 동독신문에 서독텔레비견 하이라이트가 소개될 정도이다. 신문, 잡지며 출판물의 교환도 자유롭다하니, 북쪽에서 나온 책 한권만 가지고 있어도 이적출판물 소지니 뭐니해서 국가보안법에 걸리는 우리에게는 실로 꿈 같은 얘기이다.
어디 그뿐인가. 중고생들은 서로 동서독으로 바꾸어 수학여행을 하는 것이 유행이며, 동서의 여러 도시들은 서로 자매 결연을 맺어 왕래도 하고 돕기도 한다는 것이다. 또 두 독일은 일찍부터 ‘베를린협정’, ‘무역협정’ 따위를 맺어 활발히 무역을 하고 있는데, 국력이 강한 서독이 그보다 약한 동독의 형편을 생각해서 다른 나라물건보다 일부러 더 많이 동독 것을 사주기도 한다. 이래서 프랑스, 벨기에와 같은 EEC 국가들을 같은 EEC 국가인 자기 나라 것보다 동독 것을 더 많이 사준다고 불평을 한다는 것이다. 또 동독사람들도 서독 물건을 자기 나라 물건만큼이나 다정하게 대하며 서독의 뛰어난 상품들을 은근히 자랑으로 여긴다. 이것은 다른 분야에서도 같아, 가령 서독의 운동 선수가 세계 기록이라도 세우면 동독 사람들도 똑같이 좋아하며, 동독 쪽에서 세계적 음악가라도 나오면 서독 신문은 서독에서의 일이나 똑같이 대서특필한다.
이렇게 더듬어볼 때 호네커의 서독 방문은 전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동서독 관계에서 아주 자연스럽고 당연한 발전이며, 이 역사적 사건을 맞이하여 서독 사람들이 생각보다 훨씬 덤덤하고, 심지어 호네커의 고향 사람들조차 전혀 흥분하지 않는 까닭이 이해된다.
호네커의 서독 방문을 보면서, 우리도 당장 통일이 어려울 바에는 독일 사람들이 하는 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사실 독일이 하는 일을 우리라고 못할 것은 없다. 독일 사람들이 게르만 공동체에 대한 응집력이 강하다고 하나, 우리도 핏줄이 같은 단일민족이다. 더우기 독일이 19세기 후반에야 통일 민족국가를 형성한 데에 비하여 우리는 통일민족국가로서의 역사가 천년이 넘는다.
우리는 독일이 겪지 않은 6.25를 겪었고 그로 말미암은 뿌리깊은 불신과 증오가 있다고 하지만, 따지교보면 이것도 극복 못할 것이 없다. 50여년간 우리를 수탈하고 착취한 일본도 그들이 물러간지 20년이 채 안 되어 용서하고 받아준 우리가아닌가. 그렇다, 뿌리깊은 서로의 불신과 증오만 극복한다면 우리도 독일이 한 일쯤은 할 수 있다. 또 이 불신과 증오가 집권세력에 의해 날조되고 과장된 대목도없지 않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여기서 먼저 해야 할 일은 상호 비방을 버리는 일이다. 아니, 우리로서는 이 비방에 넘어가지 않는 일이다. 더러 밤늦은 시간에 라디오를 틀다보면 어쩌다 대북 방송이 귀에 들어오는 일이 있다. 나는 이때처럼 이 땅에 사는 일이 부끄럽게 생각되는 일이 없다. 그 뻔한 거짓말, 입에 침도묻히지 않고 하는 거짓말이 어떻게 공영방송을 타고 흘러나올 수 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이 방송을 듣는 사람은 오직이 땅의 소식을 전혀 모르는 지역 사람뿐이며, 그밖의 사람들은 아무도 이 방송을 듣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더욱 추한 것은 돈이나 그밖의 미끼를 제시하며 그 지역 사람들을 유혹하는 대목이다. 가령 무엇을 어떻게 하고 내려오면 몇십년에 걸쳐 벌 돈을 한목에 벌 수있고 또 손하나 까딱 않고 살 수 있으며 무엇무엇을 거저 얻거나 할 수 있다는 따위인데, 우리말 아는 외국인이 이 방송을 듣기라도 하면 우리 민족을 어찌 알까 생각하면 실로 등골이 오싹하다. 법에 걸리는 일이라서 북쪽의 대남 방송은 들어 보지 못했지만 아마 비슷할 것이다. 도덕적 파탄이라 표현해도 지나치지 않을 이러한 상호 비방과 모략 중상이 증오와 불신을 더욱 깊이 만들고, 전쟁으로 생긴 상처를 더욱 아프게 후벼판다는 사실이 간과돼서는 안 될 것이다. 증오와 불신을 없애기 위해서는 먼저 이 피차의 낯간지럽고 뻔뻔스러운 비방 방송부터 중지되어야 한다. 너희가 하니까 우리도 한다는 논법을 우리가 중지할 테니 너희도 중지하라로 바꿀 수 있지 않겠는가.
문제는 상대쪽의 것은 모든 것이 무조건 이쪽에 해롭다는 경직된 시각이다. 그래서 상대쪽 땅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으며 어떠한 사람들이 살면서 어떠한 일(그것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을 하고 있는가도 알아서는 안 된다는 희극 같은 율법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 결과 이 땅에는 자신의 반쪽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얼간이만이 살게 되었다. 다른 쪽에서 어떠한 생각을 하고 어떠한 일을 하는지를 모르니까 이쪽에서 하는 생각이나 일이 비슷한 경우도 생긴다. 그러면 법에걸린다. 우연의 일치 같은 것은 전혀 참작될 여지가 없다. 지레 겁을 먹은 검열관은 아예 그쪽을 가리키거나 상징하는 소리만 나와도 금지곡 또는 금서로 묶는 희극이 연출된다. ‘북’이라는 지명 때문에 또는 ‘붉은’이라는 형용사 때문에 얼마나 많은 노래가 묶이고 시나 소설에 밑줄이 그어졌는지를 알면 우리 자신도 놀란다. 이렇게 얼어붙은 사회에서 우리가 그래도 용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다고.
더욱 터무니없는 예를 손쉽게 우리쪽의 문학지 경우에서 찾아보자. 6.25의 격동을 겪고 나자 우리 문학의 3/4이 출판은 말할 것도 없고 읽어서도 안 되고 인용해
서도 안되고 심지어 그런 문학이 있었다고 얘기해서도 안 되는 금서가 되었다. 이중에 일부는 사회주의자여서 6.25를 전후해서 월북했지만 나머지는 목숨을 구해피하다 보니 북쪽으로 가게 되었고 또 얼마는 전쟁통에 죽었다. 그 모두가 이 고장에 보이지 않는다 해서 금서로 도매금으로 넘어간 것이다. 그 금서 중 대부분이 이념적으로 사회주의와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들이다. 딱한 것은 북으로 올라간 사람들 중 많은 사람이 숙청을 당했거나 문학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함으로써 우리문학사에서 아예 빠져버린 정이다. 이러한 사정은 북쪽도 비슷하리라 짐작되는데, 이런 경직된 시각을 버리지 않고는 상대에 대환 이해는 결코 만들어지지 않을터이다. 이 경직된 시각도 불신과 증오를 부채질함은 말할 것도 없다.
어느 청소년 잡지를 보니 우리나라 청소년의 거의 전부가 남한과 북한이 운동경기를 할 때는 남한이 이기기를, 또 반 이상이 북한과 다른 나라가 경기를 하면 다른 나라가 이기기를 바란다고 한다. 반공교육이 심어놓은 상대에 대한 증오심에 기인하는 것으로서,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가령 일본 땅에서 일본과 북한
이 경기를 할 때 우리나라 교포가 일본쪽 응원을 하는 장면을 생각해 보면 참으로 창피하기 이를 데 없는 일이다. 최근 신문이며 방송에서 북한이 차관을 제대로 못갚아 세계은행인가 어딘가에서 차관 중단을 선언했다는 따위의 소식을 거보란 듯이 떠들어대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는데, 세계은행에서 돈을 못 주겠다면 우리라도 주겠다고 나서지는 못할망정, 북한이 고통당하는 것이 뭐 그리시원해서 떠들어댄단 말인가. 그곳을 언젠가는 우리가 가서 살아야 할 우리 땅이며 그곳 사람들은 언젠가는 우리와 어울려 살아야 할 우리 형제들인 것이다.
물론 뿌리깊은 불신과 증오를 조장하고 강조하는 곳을 그렇게 해서 지배체제를 확고하게 끌고 나갈 수 있는 지배계층이다. 따라서 이 시점에서는 그들이 앞장서서 그것을 극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민중 차원의 작업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