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순분에는 약혼을 하게 됐어. 기본 계급 출신인 순분이와 나와의 결합은 한때 주위 사렴들의 큰 축복을 받았지. 그러나 상황은 곧 달라졌어. 북한에 새 정권이 들어서면서 내 신분은 대단히 위태롭게 됐단다. 약혼을 해 놓고 결혼식을 올릴 수도 없었지. 당에서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야.
사회주의니 기본계급이니 하는 말들이 무슨 뜻이냐고? 사람살이의 피할 수 없는 어떤 파랑의 한 단면이란다. 네가 살았다는 하늘 나라에는 아마 그런 게 없겠지. 물론 없어야하고 말고, 사상의 차이로 싸움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언젠가 이 지상에서 사라져야 한단다.
친일파에 대한 2차 숙청이 시작되었을 때 난 몸을 숨겨야 했어. 그리고 전쟁이 터졌지. 난 더 이상 북쪽에 머무를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단다. 내려올 때에 순분이의 집에도 들르지 못했지. 그 뒤론 아무 소식도 몰라. 그 애의 생일이 바로 오늘밤 그러니까 섣달 그믐날이지. 내가 오늘 꼭 고향에 가고 싶었던 이유가 바로 그거야.”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아사달은 침울하게 들었습니다. 같은 땅, 같은 시간속에 함께 머물러 살면서 왜 사람들은 이렇게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키며 서로 아옹다웅 다투는 것인지 아사달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약혼녀를 꼭 만나게 되길 바라겠어요.”
아사달의 말에 할아버지는 눈물이 그렁 그렁 맺힌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사달과 할아버지를 태운 포장마차는 계속 북쪽으로 날았습니다. 노란 알전구 불 하나를 밝힌 채 하늘을 나는 포장마차의 모습을 땅 위의 누군가가 봤다면 획실히 야단법석이 일어났겠지요.
“저게, 저게 뭐지?” “글쎄 별은 확실히 아니고, 그렇다고 달도 아니잖아!”
“꽤 빠른 속도로 움직이고 있어. 말로만 듣던 UFO가 아닌지 모르겠어?”
“빨리 국립과학연구소에 연락을 해야겠어. 아냐, 이것은 보통 큰 일이 아님에 틀림없어. 그래 영국 왕실천문학회에 보고해야돼”
“아니 자네가 그 단체의 회원이라도 돼? 보고를 하게. 그렇다고 쳐, 전화번호는 아냐? 아니, 한 가지만 묻겠어. 그런 단체가 정말 있기는 한거야?”
“지금 보고해야 별 쓸모가 없을 거야. 영국은 지금 밤이 아니라 낮일 테니까 말이야.”
“ 저 정도의 밝기라면 낮에도 보이지 않을까?”
그런데 바로 이 순간 지상에서는 정말 소동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사달과 알버지를 태운 포장마차가 막 비무장지대 상공을 통과할 무렵이었습니다.
레이다로 하늘을 감시하던 병사의 눈에 이상한 비행체가 잡힌 것이었습니다. 괴비행체는 노란불을 밝힌 채 서서히 북녘 하늘로 이동하고 있었습니다.
“이크! 이게 뭐야, 레이다에 굉장히 이상한 비행체가 나타났어. 비상! 비상!
월북하는 괴비행체 발생“
휴전선 일대의 국군부대들에 일제히 비상이 걸렸습니다.
바로 그 순간 이었습니다. 탕탕탕... 따르르르르르르쿵 쾅쾅! 조명탄이 하늘을 밝히며 기관총탄알들이 하늘로 비오듯 쏟아졌습니다.
‘이런, 총소리구나.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잘못하다간 고향에도 못 가겠구나?
그러나 할아버지의 염려와는 상관없이 총알들은 어느 하나도 포장마차의 근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신기한 것이 있다면 한 번 솟구친 조명탄 들이 땅 위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포장마차의 주위를 마치 꽃다밭 처럼 에워싸는 것이었습니다.
지상에서의 총격이 거세어질수록 포장마차를 둘러싼 꽃다밭의 크기는 점점 커졌습니다.
“안되겠어. 미사일을 발사해야 돼. 왜 이렇게 전투기들은 늦게 나타나는 거야.“
레이다를 보고 있는 병사가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을 때였습니다. 레이다의 화면에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균열이었습니다. 점점 그 크기가 커져가던 괴비행체에서 작은 불꽃들이 하나 둘 떨어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괴 비행체가 분열을 시작했어. 내가 본 공상 과학 영화에 의하면 저것은 괴비행체의 공격 신호야 아이구, 우린 이제 죽었어.“
‘아닙니다. 중사님, 이것 좀 보세요. 괴비행체가 글을 쓰고 있어요. 잘 보세요. 이건 정말 글이에요 글!”
두 명의 병사가 레이더의 화면을 바라보자 거기에는 분명하고 또렷한 글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총을 쏘지 마세요.
우린 고향으로 가는 포장마차에요
고향으로 가는 포장마차라구? 총을 쏘지 말라구? 이것 참...
바로 그 순간 레이더의 화면에 새로운 글자로 바뀌었습니다.
우리에게 약간의 설 음식이 있어요.
병사들과 함께 먹고 싶어요. 아사달
“아사달이라고? 이게 누구지?“
“글쎄요. 국사 시간에 어디선가 들었던 것도 같은 이름인데요?“
괴비행체는 서서히 고도를 낮추었습니다. 병사들의 총질도 어언 멈춰 있었습니다.
각설, 이사달과 할아버지를 맞은 병사들의 기쁨은 크고 또 컸습니다. 고향이 한없이 그리운 섣달 그믐날 밤에 뜻하지 않은 위문단의 찾아온 셈이었으니까요. 게다가 이 위문단은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는, 알라딘의 마술 랩프 보다 더 신비한 포장마차를 끌고 왔습니다.
김밥, 꼼장어, 골뱅이, 홍합 국물, 어묵, 떡볶이, 꼬막, 꽁치 구어, 족발... 우리가 포장마차 에 서 볼 수 있는 모든 음식들이 끊임없이 나왔습니다. 거기에 빠뜨릴 수 없는 소주한잔까지...크.
병사들은 배불리 실컨 먹고, 삼삼오오 모여 고향 이야기에 꽃을 피웠습니다. 그들은 이제 아사달과 할아버지와 이상한 포장마차에 대해서도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어머니와 누이와 동생, 그리고 애인 이야기로 꽃을 피웠습니다.
이날 밤,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꽤 바빠졌습니다. 이상한 포장마차에 대한 보고를 받은 각 부대에서 아사달과 할아버지를 서로자기 부대에 보내달라고 아우성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사단부터 와주세요.”
\'우리 사단부터 와주세요.’
\'우리 여단은 정말 정성껏 두 분과 포장마차를 모시겠습니다.’
‘사랑해요, 아사달, 할아버지, 포장마차. 육군맹호 000부대“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원하는 모든 부대에 들렀습니다. 병사들은 오랜만에 맛있는 음식들을 배불리 먹고 고향 생각에 잠겼습니다.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다시 포장마차를 타고 할아버지의 고향 쪽으로 방향을 돌렸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의 풍경은 아까와는 전혀 달랐습니다. 철책선, 남쪽을 따라 소금밭처럼 작은 불꽃들이 죽 뿌려져 있었습니다. 그것은 고향을 그리는 병사들 마음의 불꽃들이었습니다.
“참 아름답구나. 난 이제야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 영혼이 인간 세상을 밝히는 등불이라는 것도..?”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꽤 어려웠지만 아사달은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말인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습니다.
“빨리 가요, 할아버지.”
아사달이 재촉을 하며 비무장지대의 북쪽으로 접어드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사달과 할아버지는 또 한 번의 소동을 겪어야했습니다. 레이다에 괴비행체가 나타나자 북한군에도 또한 비상이 걸렸습니다. 괴비행체는 당당하게 빛을 발하며 북쪽을 향해 전진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내 기관포와 로케트포가 쏟아졌습니다. 조명탄이 주위를 대낮처럼 밝혔지요. 그 순간 비무장지대 북쪽의 병사들은 제 눈을 의심했습니다.
자기들이 쏟 포탄과 총알들이 작은 꽃바구니와 풍선바구니로 변해 하늘을 둥둥 떠다닌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풍선과 꽃바구니는 점점 그 수효가 늘어나서 처음의 괴비행체가 어떤 것인지 조차 구별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레이더를 지키는 병사들은 더욱 놀랬습니다. 그곳에는 괴비행체가 발신했음이 분명한 글자들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쏘지 마세요.
우리는 고향으로 가는 포장마차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