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매년 1만명 이상 교통사고로 사망 - 자동차와 도로는 대표적인 반문명 -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2년 04월 242호
비 오는 날, 도로변에 자동차가 줄지어 쭉 서 있고, 다른 한쪽은 높은 벽돌담이다. 자동차와 벽돌담 사이를 초등학교 2학년쯤 되어 보이는 어린이가 우산을 자동차 높이만큼 치켜들고 걷고 있다. 우산이 자동차에 걸리면 어떡하나, 걱정이 되는지 다른 한 손은 벽을 짚을 태세이다. 등교하는 길인지 표정이 급해 보인다. 이런 모양의 흑백사진을 표지로 삼은, 《자동차, 문명의 이기인가 파괴자인가》라는 자못 도발적인 제목의 책이 있다.
글의 서두에 책 표지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자동차,…》(도서출판 따님, 1996)의 일독을 권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글에서 자동차와 함께 도로 얘기를 하고 싶다. 지금, 도로 때문에 많은 스님들이 고통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3월 19일 현재, 북한산 국립공원 송추계곡에서는 119일째 천막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시작된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북한산 관통터널 반대 운동은 늦가을을 넘어 한겨울을 지났고, 어느덧 봄기운이 완연한 지금까지 멈추지 않고 있다. 불교환경연대 상임대표 소임을 맡고 있는 수경 스님은 인천 용화선원에서 동안거를 마치자마자 송추계곡의 천막법당에서 해제일을 기약할 수 없는 ‘북한산 살리기 정진’에 들어갔다. 수경 스님뿐만 아니다. 의정부시 호원동쪽 터널 입출구 주변에 위치한 사찰의 스님들과 신도들도 지난 3월 14일 망월사 인근에 천막법당을 짓고 기도에 들어갔다.
자동차와 도로는 분명 인간의 삶을 더욱 풍요롭게 하는 데 기여하는 이기利器이다. 우리는 그렇게 알아왔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동차는 부의 상징물이었다. 그런데 자동차는 정말 이기일까? 《자동차,…》는 현대사회의 최대의 악이 자동차라는 점을 강조한다. 우선, 저자(스키타 사토시, 일본 오비히로 축산대학 교수)가 이 책을 쓰게 된 동기를 들어보자. “8년 전 태어난 내 아이가 아장아장 밖을 걸을 수 있게 되었을 때 나에게는 지금까지 보아온 세계가 전혀 다른 것으로 다가왔다. 아이의 눈으로 보았을 때 우리 사회가 이렇게도 위험에 가득 차 있는가 하고 새삼스럽게 놀라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 아이의 안전을 매일같이 신경쓰면서 이 현실, 자동차가 제 마음대로 달리면서 아이들을 위험에 노출시키는 이 현실을 어떻게 할 수 없을까 고민을 하다가….”어린 자녀를 두었거나 노부모를 모시고 있는 사람, 특히 대도시에 살고 있다면 누구나 스키타의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집 밖을 나가면 골목이다. 자동차가 10분이면 10대도 넘게 다니며, 골목 양쪽은 주차된 자동차들이 차지하고 있다. 그러니 부모들은 아이를 집 밖으로 나가지 못?
構?한다. 아이도 골목에 나가봤자 친구들이 없으니 다시 집 안으로 들어올 수밖에 없다. 골목길을 자동차에 빼앗긴 꼴이다. 아파트도 예외가 아니다. 심지어 초등학교와 접해 있는 도로에도 차를 세워놓는 어른들도 있다. 자동차 높이보다 키가 작은 어린이들은 늘 자동차사고에 노출돼 있는데도.
몇 가지 통계를 보자. 2000년 우리 나라의 교통사고 발생 건수는 290,481건, 매일 796건의 교통사고가 발생했다. 교통사고로 사망한 사람의 수는 10,236명이다. 매년 1만명 이상의 사람들이 자동차사고로 졸지에 목숨을 잃는다. OECD의 98년 자료에 따르면, 인구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우리 나라가 19.7명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24.7명), 포르투갈(24.3명), 그리스(20.9명) 다음으로 많다.(녹색교통운동 홈페이지 ‘교통 관련 통계자료’)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자는 426,984명. 우리 나라 장애인의 90%가 교통사고와 산업재해에 의해서 생기는 것을 감안하면, 자동차로 인한 손실은 국력 낭비의 제일 원인이다.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자동차,…》의 저자는 자동차의 제조 및 판매를 불허하지 않는 정부의 정책에 대해 의구심을 나타낸다. “(자동차는) 매년 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내는 상품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자동차 제조 및 판매에 대한 인허가권을 아예 방기하고 있는 오늘의 사태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어떤 기계가 연간 1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만들어내고, 80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낸다고 치자. 보통의 경우라면 이 기계는 사용 및 판매 금지조치가 내려졌을 것이다. 이 기계가 커다란 경제효과를 발생시킨다 해도 마찬가지다.”(인용문 속의 숫자는 90년대 중반 일본의 예이다.)자동차 사고는 사망 또는 부상당한 당사자만의 문제에서 끝나지 않는다. 교통사고 사망자 유자녀의 문제는 큰 사회적 문제가 되고 있다. 장애로 인한 경제능력의 상실, 사망으로 인한 고아의 양산은 전쟁이 아닌 시기에도 대규모로 발생하고 있다. 그런데도 자가용승용차의 소유 대수는 계속 늘고 있다. 2000년 현재 우리 나라 자동차 운행 대수는 1200만대, 이 가운데 승용차는 800만대로 우리 국민 6명당 1대꼴로 소유하고 있으며, 지금도 매일 676대씩 늘고 있다.
자동차에 대한 스키타의 평가는 혹독하다. “오늘날 자동차는 문명을 갉아먹는 흉기가 되어 버렸으며, 인간의 비인간적인 경향을 확장시키는 도구로 바뀌어버렸다.” 자동차가 다른 사람의 생존권을 위협하고, 시민적 권리를 침해하는 탈것이라는 것, 다른 사람이 평온하게 살아갈 권리를 빼앗고, 아이들의 놀 권리는 물론 생존권조차 빼앗아가기 때문이다. 또, 타인에 대한 우월감과 무관심을 증폭시키는 도구가 곧 자동차라고 갈파한다. “운전자는 훨씬 빠른 속도로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무거운 짐을 들고 다니며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 그러다보니 운전자는 더욱더 자신을 뭔가 선택된, 특별한, 뛰어난 인간이라고 느끼게 된다. … 그리고 그와 비례해서 외부의 보행자는 하찮고, 불쌍하고, 초라한 존재로 비치게 된다. 특히 자동차가 내는 엄청난 속도 때문에 보행자는 풍경 속에 붙여진 듯 대수롭지 않아 보이고, 풍경의 일부로 화해 버릴 정도로 더 한층 그렇게 비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운전자는 자연히 타인에 대해 무관심해지게 된다.”정상적인 정부라면, 매년 1만명 이상의 생명을 숨지게 하고, 40만명 이상의 부상자를 내는 물건이 있다면 !
당장 억제하는 조치를 취해야 옳다. 시민들도 마찬가지다. 정부에 제조하지 못하도록 하는 조치를 취하도록 압력을 넣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정부는 물론 시민들조차도 자동차는 문명의 이기이며, 부의 상징이라는 신화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권위주의 시절을 살아온 우리 국민들이 제 목소리를 내는 것을 어색하게 생각하고 있으므로, 시민들은 그렇다 치자. 문민정부를 거쳐 국민의 정부라고 선전하는 정부는 어떤가.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과정이라고 보는 것일까.
지금의 정부는 과거의 정부가 그랬듯이 자동차 확장 정책을 전혀 수정하지 않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도로의 신설, 확장이다. 정부는 도로의 신설 이유를 교통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자동차가 늘어나니 교통 체증이 생기고, 이에 따라 체증으로 인한 사회적 손실이 수조원에 이른다는 통계를 발표한다. 그리고 물류 비용을 절감해서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도로의 신설은 불가피하다는 논리를 편다.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를 신설하는 목적도 그렇다.
우리는 정부에 묻지 않을 수 없다. 매년 1만명 이상의 생명을 담보로 해서 선진국으로 가는 것이 윤리적인가. 교통안전 시설이 갖춰지고, 운전자들의 안전운행 준수율이 높아진다고 해서 교통사고가 사라지지는 않는다. 자동차도로를 내는 것은 자연환경과 수행환경만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다. 매년 1만명 이상의 목숨을 위험스런 도로로 내모는 행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