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道)는 마음에 있지 사법(事法)에 있지 아니하도다
도(遺)는 나에게서 유래하지 너에게서 유래하지 않는다
두번에 걸친 대장경의 조조에는 나라를 지키고 외적을 물리치게 해달라는 민족의 염원이 서려 있었다. 그들은 옛선사가 한앞의 두 귀절의 말을 기억하고 있었으리라 믿는다. 나라를 지키고 백성을 평안하게 하는 길은 내 마음에서 유래하지 남의 마음에서 유래하지 않는다. 우리는 경판을 보면서 그것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경, 율, 논, 소, 그밖의 수많은 문헌을 모으려고 애쓴 많은 사람들의 정성이 거기에 있다. 섬에서 나무를 지른 사람, 그것을 소금물에 잠그고 켜서 다시 소금물에 찌고 또 말려서 대패질하고, 이렇듯 온갖 정성을 다한 조상의 마음가짐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어느 경판도 뒤틀린 판을 볼수가 없다. 그리고 그 판 위에 새겨진 그
글씨에 담긴 얼, 우리가 감히 그 위엄을 침범할 수가 있을까? 그리고 그 깊이 새겨진 칼자국만큼이나 깊은 마음, 이것이 고려대장경을 위대하고 존귀하게 만들었던 것이며 오늘에도 그 안에 담긴 영혼으로 빛나고 있는 것이다.
고려 현종 2년(서기 1011년)에 만들어져 팔공산 부인사에 소장되었던 첫 번째 대장경판은 거란군의 야만적 침탈 속에 모두 불에 타버리고, 그 후 222년 후 고종23년부터 16년 동안에 걸쳐 강화도에서 조조되었다고 알려지고 있는 두 번째 완성된 대장경이 현재의 고려대장경판이다. 당시 몽고의 침입으로 도읍을 강화로 옮겼던 시절, 이 규보가 기고문을 짓고 군신이 한데 모여 부처님의 위신력으로 나라의 어려움을 극복하여 갈 수 있길 기원하였던 것이다.
이 두번째 대장경은 현재의 남해와 진주, 거제 등에 분사도감을 설치하여 경판을 조성하였다. 그러나 이들 장소에서 조조된 경판들이 어떠한 경로와 방법으로 강화도로 모아졌는지에 대한 기록은 찾을 수가 없다. 다만이 태조가 경판의 온전한 보존을 위하여 가야산 해인사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현재의 한강변 광나루에서 전송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그밖에 구체적인 이운(移運)의 과정은 밝혀지지 않고 있는 실정인데, 대체로 한강과 낙동강을 거치는 수로(水路)였으리라 추정하고 있을 뿐이다. 기록의 미비함도 있겠지만 이러한 길을 밝히려는 노력의 부족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니, 교통이 단순했던 시절 그 엄청난 분량의 대장경판을 지고, 싣고, 배에 띄워 천리길의 첩첩한 산중 가야산으로 모셔지는 모습은 곰곰 생각해 보면 하나의 대서사시로 떠오르는 것이다.
10월 11일(음력 8월 19일)은 현재의 고려대장경이 완간된 날이다. 이날을 기하여 한국 출판협회는 책의 날로 정하였다고 한다. 금년이 첫번째 기념일이라하며, 이날의 뜻을 더욱 기리는 뜻에서 해인사의 젊은 스님들이 고려대장경 연구 모임을 결성하여 고려대장경에 관한 세미나를 갖고 다음날 강화도에서 해인사까지 고려대장경의 이운의 길을 찾는 순례를 갖기로 하였다.
생멸의 흐름 속에서 영원한 것이 있다면 진리의 말씀일 것이다. 이 진리의 언어들을 영혼으로 기록한 고려 팔만대장경이, 이러한 인연으로 문화재적 가치로서만이 아니라 그속에 가득히 깃들여 있는 진리체로서 한치의 앞을 예측할 수 없는 혼돈의 이 땅에 영원한 빛으로 새롭게 비추어지길 염원하고 싶음은 이 규보의 기고문과 다를 바가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