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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구름 한 조각 외로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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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류동천 - 김홍영 2002년 04월 242호
역대로 많은 문사들이 경향 각처에서 홍류동의 아름다운 산수 사이에 노닐며 제시석에 새겨진 최치원의 시를 감상하고 각기 그 운韻에 따라 자신의 감회를 읊어 차운시次韻詩(만巒·간間·산山이 최치원 시詩의 운韻이 된다)를 남겼다. 이 가운데 비교적 행적이 드러난 분들로서는 점필재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 응와凝窩 이원조李源祚(1792∼1871), 영재寧齋 이건창李建昌(1852∼1898), 매천梅泉 황현黃玹(1855∼1910), 동강東江 김영한金寗漢(1878∼1950) 같은 이들이 있다. 이 가운데 특히 영재와 매천의 차운시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시를 아는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고 있다.
영재는 왕실의 후예로서 선대부터 강화도에서 살았고 당시에 시문에 능한 것으로 이름이 높았다. 영재는 그 부친 이상학李象學이 현재의 경남 안의 현감 재직 기간 중인 1882년경에 농산정에 올라 다음과 같이 읊었다.

백 발의 홍류동 만 겹 봉우리인데(百丈紅流萬疊巒)
신선 시구가 인간 세상에 떨어졌네(神仙詩句墮人間)
흰구름 한 조각 외로이 날아가니(白雲一片孤飛去)
선생이 아직 이 산에 계시는가(疑是先生尙在山)

매천은 전남 광양 출신으로 특히 시에 재능이 있어 그 이름이 멀리 서울까지 알려졌다. 구한말 혼탁한 정국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구례에 서재를 마련, 독서와 저작에 힘쓰다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한 우국지사로서 또한 유명하다. 매천 역시 1887년경에 이 곳 농산정에 이르러 다음 차운시를 남겼다.

돌 부딪치며 백 번을 굽이 흘러 겹겹의 산 잠그니(雷百折鎖重巒)옥동의 봄 물이 자줏빛 푸른빛 사이로 흐르네(玉洞春流紫翠間)이 산이 고운의 시로부터 더욱 드러나니(山自孤雲詩益著) 산을 에워쌌으나 반드시 산을 잘 감추질 못했구려(籠山未必善藏山)
영재의 시는 홍류동 하늘에 한 조각 흰구름이 외로이 날아가는 것에서 아련히 고운의 모습을 회상하고, 매천의 시는 고운이 ‘속진의 시비를 꺼려 흐르는 물로 산을 에워싸고자 한다’하여 스스로 은둔을 지향했으나 도리어 그 시로 인해 산과 자신이 세상에 더욱 드러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음을 재치있는 어조로 표현했다. 이런 명시들을 다시 새겨 농산정에 걸어둔다면 제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