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발의 홍류동 만 겹 봉우리인데(百丈紅流萬疊巒)
신선 시구가 인간 세상에 떨어졌네(神仙詩句墮人間)
흰구름 한 조각 외로이 날아가니(白雲一片孤飛去)
선생이 아직 이 산에 계시는가(疑是先生尙在山)
매천은 전남 광양 출신으로 특히 시에 재능이 있어 그 이름이 멀리 서울까지 알려졌다. 구한말 혼탁한 정국에 벼슬길을 단념하고 구례에 서재를 마련, 독서와 저작에 힘쓰다가 1910년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자 절명시絶命詩 4수를 남기고 자결한 우국지사로서 또한 유명하다. 매천 역시 1887년경에 이 곳 농산정에 이르러 다음 차운시를 남겼다.
돌 부딪치며 백 번을 굽이 흘러 겹겹의 산 잠그니(雷百折鎖重巒)옥동의 봄 물이 자줏빛 푸른빛 사이로 흐르네(玉洞春流紫翠間)이 산이 고운의 시로부터 더욱 드러나니(山自孤雲詩益著) 산을 에워쌌으나 반드시 산을 잘 감추질 못했구려(籠山未必善藏山)
영재의 시는 홍류동 하늘에 한 조각 흰구름이 외로이 날아가는 것에서 아련히 고운의 모습을 회상하고, 매천의 시는 고운이 ‘속진의 시비를 꺼려 흐르는 물로 산을 에워싸고자 한다’하여 스스로 은둔을 지향했으나 도리어 그 시로 인해 산과 자신이 세상에 더욱 드러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음을 재치있는 어조로 표현했다. 이런 명시들을 다시 새겨 농산정에 걸어둔다면 제격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