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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사를 통해 본 한국의 건축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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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란야 - 이상해 2002년 04월 242호
한국건축에 나타난 건축미建築美는 한국인의 자연관, 가치관 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러한 한국인의 자연관이나 가치관은 문학이나 예술 등을 통해 표현되지만 삼차원적인 건축공간을 통해서도 표현된다.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은 공간적 요소나 건물들 사이의 크기나 떨어진 정도, 비어 있는 마당의 모양이나 크기 등 실제적이고 가시적인 것을 통해서 직접적으로 나타나지만, 그 이면에는 건축과 우주, 자연, 인간 등과 관계되는 추상적이고 형이상학적인 개념들이 자리잡고 있다. 이러한 개념이 건축미로 잘 표현된 대표적인 한국건축을 들라고 하면 나는 종묘, 병산서원 등을 자주 언급한다. 그리고 해인사도 거기에 포함된다.
서울에 있는 종묘는 조선시대 역대 왕과 왕비의 신위神位를 모시고 제례를 올린 곳이기 때문에 모셔진 신위를 위한 공간이 제례 예법에 맞게 조성되어야 함은 물론이지만, 제례를 행하는 사람들이 머무는 머뭄의 공간과 사람들이 오가는 움직임의 공간이 아주 정밀靜謐(고요하고 편안함)하고, 장엄莊嚴하며, 신성神聖한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조성되어 있다.
종묘 묘정廟廷 월대는 단壇의 일종인데, 장식이 없이 제례에 필요한 재료와 공간으로만 설정되었으면서, 지면보다 높게 조성되어 있어 천상으로 이어지는 공간임을 암시한다. 묘정에 면하여 길게 반복되며 배열된 건물의 기둥 열은 지상의 묘정 월대와 하늘의 지붕을 자연스럽게 분리하면서, 처마 아래로 깊게 떨어지는 그림자로 반음영半陰影의 공간을 만들어 종묘 일곽이 유현한 분위기가 감돌게 한다.
종묘는 제례를 위한 공간이기 때문에 화려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종묘의 모든 건축 처리는 극히 단순하고 절제되어 있다. 신로神路를 표시하는 선, 몇 개의 판위版位, 그리고 장식이 배제된 건축물 등 과감하게 생략되고 단순하게 구성된 건축에는 종묘에 구현해야 할 건축 의도가 철저하게 반영되어 있고, 건물에 칠하는 단청丹靑도 극도로 절제되어 있다. 이와 같이 종묘에는 신로, 월대, 기단, 건물 등 꼭 있어야 할 것만 있다. 이러한 구성, 구조, 장식, 색채의 간결함과 단순함은 종묘건축을 상징적인 차원으로 승화시켜 신기神祇(천신과 땅의 신령)가 충만하게 머물도록 하였다. 그리하여 옆으로 땅 끝까지 길게 펼쳐지는 듯한 묘정 월대는 안정을, 무한하게 반복되는 듯한 기둥의 배열은 연년세세 끊이지 않을 왕위의 영속을, 중력을 거부하며 수평으로 끝없이 펼쳐지는 듯한 지붕은 무한을 연상케 한다.
경상북도 안동 하회마을 뒷산 넘어 낙동강변에 위치한 병산서원은 조선시대의 모든 서원들이 그러하였듯이, 유생儒生의 강학講學과 선현先賢의 제향祭享을 위하여 설립된 건축이다. 이러한 건축을 형성한 주체인 사림士林들은 은거하여 수양하며 독서하기에 좋은 곳, 즉 골짜기가 있어 물이 흐르고, 산이 있어 풍월風月을 가까이할 수 있는 곳에 서원을 세웠다. 이러한 곳은 산천 경개가 수려하고 한적한 곳에 머물며 환경의 유혹에서 벗어나 학문을 닦음으로써 그 교육적 성과가 컸기 때문이다.
병산서원은 이러한 조건을 갖춘 주변 자연을 건축미로 가장 잘 승화시킨 건축이다. 서애 류성룡(1542~1607)을 모신 병산서원은 조선시대 성리학자들이 어떻게 우리 나라의 산하를 이해하고, 그 속에 건축을 얽어내었는가를 보여 주는 길잡이가 된다. 서원 이름 ‘병산’은 낙동강 물줄기가 센 물살을 만들며 항아리 모양으로 돌아 나가는 강변에 병풍처럼 산이 펼쳐져 있다고 하여 붙인 산 이름에서 유래한다. 이 병산이 강물 깊게 그림자를 띄우는 맞은편으로 모래사장이 펼쳐지며 노송들이 꿈틀거리며 서 있고, 그에 잇대어 하회마을로 넘어가는 산자락이 시작된다.
병산서원은 이러한 강물과 병산을 마주 보는 산자락에 자리잡고 있다. 병산이 있고 낙동강이 설정된 곳에 병산서원은 건축공간이 열리고, 트이는 방식으로 조영되어, 건물을 앉힐 땅과 그 주변 경관이 건축과 적절하게 어우러져 있다. 특히 병산서원 강당인 입교당 대청에서 그 앞의 만대루와, 그 넘어 병산과 강물로 이어지는 전경前景을 바라보면, 만대루 이층 다락 일곱 칸 공간 얼개 속으로 일곱 폭 병풍이 되어 들어오는 경관은 안도 아니고 바깥도 아닌 극적인 분위기를 만든다. 이것은 건축을 둘러싼 산천 경개가 어떻게 건축 공간미학으로 재구성되어 되살아날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서원건축의 특성을 이루는 한 부분이다. 이러한 공간 얼개는 성리학자들이 추구한 천인합일의 공간으로서, 주변 자연 속에 건물이 그대로 스며들게 하여 그 속에 자신을 투영해 세계를 관조케 하는 공간을 만들었다.

종묘나 병산서원에 구현된 건축미의 빼어남은 해인사에서도 접할 수 있다. 해인사는 불교사찰이 어떻게 산중에 자리잡아 수행과 예배의 공간으로 조성되어야 하는가를 보여 주는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사찰이다.
해인사는 무엇보다도 수도와 종교의식을 위한 종교 공동체로서 하나의 세계를 형성하고 있다. 그 속에 담겨 있는 건축공간에는 종교 공동체를 만드는 내용과 형식, 그리고 상징 요건이 나타나 있고, 한국인이 일구어낸 한국 불교건축의 보편적 정수와 특성도 배어 있다.
해인사의 진면목을 알려면 새벽 예불에 참석하고, 그 감동을 경험하며 이러한 터에 해인사를 구성하는 전각들이 어떻게 자리잡았는가를 읽어내 보아야 한다. 해인사는 802년 통일신라시기에 순응·이정 두 분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지만, 조선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사찰건축의 배치와 공간구성을 하고 있다. 대적광전 앞 마당이 해인사의 중심공간을 형성하며, 그 좌우로 요사와 강원이 자리잡고, 마당 앞으로 구광루가 조영된 배치형식은 조선시대의 전형적인 불교사찰 배치를 보인다.
이러한 사찰공간은 아늑하게 감싸는 형국을 형성하여 이 곳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무척 자족스럽고 안온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든다. 해인사의 이러한 공간적 특성은 외부에서 사찰 경내로 들어올 때 잘 읽혀진다. 일주문에서 시작하여 안으로 들어가면서 조금씩 경사지며 올라가는 좁고 긴 진입로는 사람들에게 긴장감을 주는가 하면, 봉황문 앞의 어느 정도 트인 공간과 약간 왼쪽으로 구부러진 길, 그리고 해탈문으로 오르는 가파른 계단은 사찰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탈속의 과정을 빠르게 느끼게 한다. 특히, 해탈문 맞은 편에 선 구광루를 지나 대적광전 앞 정중삼층석탑이 있는 마당에 이르면, 해인사의 건축공간이 주는 감동의 절정을 경험하게 된다. 그 까닭은 몇 개의 마당들과 그 주위로 배치된 건물들이 켜를 이루며 중첩되는 배치를 하고 있고, 그 사이로 난 공간들이 마당을 감싸는 배치를 하였기 때문이다.


해인사를 구성하는 많은 전각들은 건물 하나 하나의 모양새에 그 중요성이 있지 않고, 건물과 건물 사이를 형성하는 관계에 더 중요성이 있다. 건물들은 서로 경계를 지으며 불편한 관계를 형성하는 배치를 하고 있지 않으며, 건물과 건물 사이의 공간은 어느 누가 소유하기보다는 거기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공동의 삶을 추구하며 생활을 함께 하는 장소로 만들어졌다. 그래서 해인사를 구성하는 마당, 건물들을 잇는 통로 등은 모두 열려 있고 비어 있다.
이러한 배치와 공간구성은 오랜 시간을 두고 그렇게 다듬어져 왔기 때문이다. 해인사를 두고 흔히 행주형국行舟形局을 하였다고 하는 것도 해인사가 풍수지리를 바탕으로 개산開山하였다고 볼 것이 아니라, 해인사는 창건 당시 수행하기에 좋은 땅을 골라 그 터에 어울리게 가람을 일구어 나간 결과 풍수지리와 결합된 상징적인 의미체계를 갖게 되었다고 보아야 타당하다. 이는 해인사 가람의 특성을 이루는 경관구조, 진입체계, 배치 및 외부공간, 그리고 구성요소 등이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며, 결국 하나의 전체를 만들고 있는 데에서도 읽을 수 있다.
사찰 전각과 자연이 하나로 어우러지게 하는 가장 중요한 건축 요소로 누樓를 들 수 있다. 해인사의 구광루도 마찬가지다. 건물 이름 ‘구광루’는 부처님께서 《화엄경》을 일곱 곳에서 아홉 번(七處九會) 설법하실 때마다 백호白毫에서 아홉 번 빛을 낸 사실에 연유하지만, 구광루는 건축공간적으로도 해인사 가람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초기의 우리 나라 사찰 누각은 법당을 향해 예배를 드리는 기능을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 본래의 기능을 떠나 다른 용도로 바뀐다. 멀리 있는 자연 경관을 산사로 끌어들이는 소임을 하는 건물이 되기도 하고, 사람들이 자연을 배경으로 휴식을 취하는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러한 과정에서 사찰의 누는 공간 전개와 변환의 절점節點 역할을 하게 되며, 나아가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해인사 구광루 역시 마찬가지다. 구광루를 지나 그 뒤 정중삼층석탑이 있는 대적광전 앞 마당에 들어서면, 갑자기 새로운 세계가 눈앞에 펼쳐지는 공간을 체험하게 되는 것도 구광루가 공간 변환의 절점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누건물은 사찰에서 시작하여 시간이 흐르면서 향교, 서원건축 등에 반영되어 한국건축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는 한 부분이 되었으며, 나아가 한국 전통건축의 배치와 공간 집합 형식을 결정하는데 크게 작용하였다.
이상 언급한 내용은 해인사를 통하여 한국건축의 특성과 건축미를 이야기할 수 있는 중요한 부분으로서, 다음과 같이 종합하여 정리할 수 있겠다.


한국 전통건축의 특성은 단위 건물과 전체, 그리고 자연과의 유기적인 관계 속에서 이루어져 있다. 이 부분과 전체를 얽어매는 방식은 건물의 입지 해결, 건물로 생기는 외부공간의 구성 등 물리적인 해결 이상의 보이지 않는 관계적 질서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져 있다. 단위 건물은 그 하나 자체로서 의미를 갖기보다는 전체와의 관계 속에서 그 본래의 의미를 지니도록 배치되었다.
이를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하면, 한국의 전통건축은 주변 자연과 터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건축이다. 현대 건축언어로 말한다면, 한국건축은 장소성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건축이다. 한 건축물이 들어서기 위해서는 그 건축과 상관되는 터와 주변의 모든 상황이 고려된다. 단위 건물은 그 자체로서보다는 그 건물을 둘러싼 주변과의 관계를 더 중요시하면서 들어선다. 한국건축의 외부공간은 그러한 이유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해인사의 경우, 가야산과 해인사가 들어선 터가 바로 그 대상이 된다.
다음으로, 한국 전통건축은 전체성全體性에 바탕을 두고 이루어진 건축이다. 이 전체성은 부분과 전체, 인간과 자연 등 모든 차원의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해인사의 많은 전각들은 크기와 기능이 다르지만, 부분과 전체의 설정이 보이지 않게 작용하여 가람 일곽을 이룬다.
다음으로, 한국 전통건축은 전체성 속에 다양성과 변화를 추구하며 이루어진 건축이다. 건물의 배치는 엄격하게 대칭적인 배치를 하지 않으며, 각 건물은 전체적인 통일성을 이루며 변화 있게 배치되었다. 해인사의 진입축 역시 엄격한 기하학적 배치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전체를 얽어매는 중요한 축을 형성하며, 전체를 일관하는 통일성 속에서 변화를 읽게 한다.
마지막으로, 한국 전통건축은 자연과 함께 하는 건축을 형성하기 위해 마당이 중심이 되는 건축 공간 형식을 형성하였다. 해인사는 비어 있는 많은 마당과 그 둘레를 감싸는 많은 건축물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진 가람이고, 건축물들로 형성된 외부공간은 자연으로 연결되며 가야산 자락에 안겨 있다.
이러한 배치방식과 공간형식은 거기에 건축적 질서와 조직이 없음을 뜻하지 않는다. 한국 전통건축에서 공간의 질서와 조직은 마당을 중심으로 해서 건축을 하나의 단위로 묶어 전개되는 방식으로 발전하였다. 그것은 규칙적이고 정적靜的인 공간이 아니라 정제되고 생동적인 공간으로, 닫힌 공간에서 자연과 주변 환경으로 열린 공간으로 발전하였다. 특히, 경사진 지형에 세워진 건축들은 의도적으로 자연을 건축 속으로 끌어들여 자연과 건축이 하나가 되도록 하는 차경借景 기법을 사용하였는데, 이는 한국 전통건축의 중요한 특성을 이루며 해인사에서 그 실례를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