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나시는 보수적이고 인도에서 가장 인도다운 전통적인 도시다. 따라서 학교 철판에서만
배웠던 카스트제도가 자유, 평등이 지배하는 지금에도 이곳에서는 살아 있으며 또 이 곳만큼이나 잘 지켜지고 있는 곳도 드물다. 크사트리아와 브라만들의 위세는 당당하리 만큼 높아서 천민들이 해 주는 음식은 입에 대지도 않는다. 어떤 기준이 인간을 구별짓게 하는지는 잘 판단되지 않았으나 눈에 보이지 않는 단단하고 높은 벽으로 인하여 빈부의 격차도 심하고 생활하는 모습도 너무나 달랐다. 여기에서도 현대와 고대는 아직 구별되지 않은 채 존재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거리에는 짐승들도 자유분방하게 사람과 차와 자전거와 함께 마구 뒤섞여 복잡무진이다. 성스러운 짐승으로 여기는 소는 말할 것도 없고 돼지, 양, 개들이 제 세상인 양 다니고 오히려 사람과 차와 자전거 등이 비켜 다녀야 될 정도로 당당하다. 따라서 거리는 온갖 짐승의 오물 쓰레기 더미로 지저분하고 더럽지만 전혀 아랑곳하지 않으니, 한국 사람으로선 도저히 상상할 수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루종일 힌두사원에서 귀청이 멍할 정도로 떠들어대는 소리에 대하여 어느 누구 하나 시비하는 사람이 없는 소음 천국이라 해둘까. 한동안 얼이 빠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염려를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 다양하고 많은 축제라니…
음력으로 10월 보름날은 인도의 최고의 명절이라 특별하다. 이른 새벽부터 남녀노소 할 것 없이 갠지스강으로 몰려와 성수에 목욕을 하느라 강물은 온통 사람의 물결로 뒤덮이고 꽃과 과일을 뿌리고 기도하는 모습들은 정말 가관이다. 사원에서는 하루 종일 종소리가 멈추지 않으며 거리에는 차도 완전히 차단되어 사람만 걸어다닐 수 있도록 경찰이 통제를 하는데 온 거리는 쉬바신을 향한 “옴 나모 쉬바야’를 외치는 소리로 가득 한다. 인도의 11월은 퍽 찬 기온인데 그 추위에도 아랑곳 없는 그들의 모습에서 힌두교의 영향과 또한 삶의 태도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와 똑같이 녹야원에서도 10월 보름날에는 행사가 있다. 이 곳의 축제는 불교인의 축제이다. 이 날에는 부처님의 사리를 친견하기도 하는데 마하보디 절에서 친견을 한다. 아침 일찍부터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모습들이 진지해서 퍽 흐뭇했다. 소수이기는 하지만 인도에도 불교신도들이 있다는 사실이 퍽 인상깊게 여겨졌으며 아직 인도에 불교가 살아 있다는
점에 대하여 감사히 여겼다.
녹야원 주변으로 태국, 버마, 중국, 스리랑카, 티벹 사찰들이 있어 스리랑카의 마하보디 절에서는 가끔 공양청도 있다. 보시하는 기쁨과 보시 받는 기쁨에 더불어 주지스님들께서 공양청을 받으면서 신도들이 모여 앉아 축원문을 낭송하기도 하고 좋은 법문도 들을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는 소승불교의 모습을 느끼게 되는 좋은 기회이다.
오후에는 야단법석이 있어 많은 불자들이 모여 큰 법회를 열기도 하고 스님들과 신도들이 녹야원 주변으로 코끼리와 악대들을 앞세우고 긴 행진도 한다. 그 가운데 제일 가슴 아픈 일은 오랜 불교국가인 한국의 사찰이 빠져 있다는 사실이었다. 하루빨리 녹야원 근처에 한국 고유의 장엄한 사원이 우뚝 세워지기를 기원해 본다. 요즈음은 전과 달라서 한국에서도 많은 관광객이나 스님들이 다녀가기 때문에 나처럼 이런 생각을 가지신 분이 없잖아 있을 것이리라.
해가 질 무렵이면 녹야원의 평화스러운 모습은 전원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이다.
한쪽 옆으로 둘러쳐져 있는 철조망에는 사슴들이 모여 살고 있다. 그 이름처럼.
사슴들이 여기저기 거닐면서 열심히 먹이를 찾는 모습과 긴 뿔을 가지고 있는 숫사슴은, 간혹 어린 사슴들에게 사납기도 하지만, 선량하게만 보인다.
잔디가 깔려 있는 넓은 대지 위에 파괴되어 있는 옛 사원들이 부처님 당시에 이곳에서 많은 스님네들이 수행을 했음을 짐작하게 한다.
둥글게 큰 원을 그리며 남아 있는 탑은 보수 작업을 하여도 옛날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것 같지만, 우뚝 솟은 탑 위에 빨간 석양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은 한마디로 평화스러움의 극치다.
초록 잔디 위에서 노란색 가사를 걸치고 참배하는 스님들의 모습과 함께 그 어울림은 부처님 당시에도 또한 그러했으리라 하는 생각에 깊은 인상을 갖게 한다.
이러한 면들을 볼 때 인도에는 지금도 엄연하게 불교가 있다는 점을 새삼 강조하는 바이다.
일년을 살면서 그 혹독하고 무서운 더위도 겪어보고, 쌀쌀한 추위도 두번째 맞는다.
여름엔 가히 숨이 막힐 정도로 덥다. 건조기인 데다가 타는 듯한 한낮의 더위는 선풍기를 하루종일 가동하고 있어야 하며 밖에 나갈 엄두도 낼 수 없다.
4월에서 6월까지가 가장 덥고 보통 40도씩이나 올라간다. 이러한 더위에 각 학교마다 시험이 있으니 인도 사람들을 이해하기도 어렵고 더위 속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의 모습을 보면서 한국인인 나만 유독 더위를 타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리고 7월에서 9월까지의 이 기간은 장마기간인데 온통 물속에서 사는 느낌이 들었다. 거리는 온통 물바다가 되어 아이들이 물장난을 치곤 한다. 아이들의 세계는 어딜 가도 똑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비가 많이 오면 갠지스강을 비롯하여 강물이 불어나 홍수가 나기도 하는데 부처님께서 안거(安居)를 제정하신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일년에 석달만 집중해서 비가 내리고 그 외는 비가 거의 오지 않는다.
10월에 들어서면 날씨가 제법 좋다. 10월에서 3월까지는 그런 대로 지낼 만하다.
이렇게 기후 조건이 어려운 까닭에 많은 성자들이 출현하는 것은 혹시 아닐까.
철저한 현실 부정에서부터 경원한 이상까지의 거리가 종교를 나오게 하는 원천이라는 생각으로 바라나시 거리를 걷는다.
온갖 흑백논리 속에서 이미 굳어져 버린 우리들의 사고를 깨고 다시 바라본 인도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자유로와지려는 성자의 모습이었다면 지나친 나의 상상력 때문일까?
극단적인 부와 극단적인 빈곤, 고대와 현대, 아름다움과 추함이 함께 공존하면서도 전혀 마찰이 없는 나라,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종교적인 전통이 살아 있는 바라나시.
오직 위대한 영혼만이 중요한 삶의 목표인 인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