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호 보기


고류지(廣隆寺) 절의 반가사유상과 대륙 양식의 불상들

이전 게시물 다음 게시물
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04월 242호
교토는 봄이다. 매화는 벌써 지고 양지에는 벚꽃이 피기 시작한다. 벚꽃이 피면 사람들 사이에서는 벚꽃 놀이가 단연 으뜸 화제가 된다. 언제 어디서 할 것이며, 장소는 아침부터 심지어 전날 밤부터 누가 잡아 놓을 것인가, 먹을 것은 누가 살 것인가 등 철두철미하게 작전을 세우는 것을 보고 있으면 우리와는 다른 일본 사람들의 놀이 문화를 엿보는 것 같아 웃음이 절로 난다.
봄나들이를 겸해서 교토시에 있는 고류지(廣隆寺) 절을 다녀왔다. 이 곳은 일본 국보 1호인 반가사유상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절이다. 집 근처 게이후쿠(京福) 전철의 사조(四條) 오미야(大宮) 역에서 다섯 정거장만 가면 우즈마사(太秦) 역이 있고 바로 역 앞에 고류지 절이 있다. 그런데 이 게이후쿠 전철은 말이 전철이지 한 칸으로 도로에서 버스와 같이 신호를 받기도 하며 달린다. 전철에는 일본어로‘완만’이라고 적혀 있는데 이 뜻을 알기까지는 꽤 시간이 걸렸다. 한 사람이 운전도 하며 돈도 받는다 하여‘원맨(One man)’이라는 영어를 이렇게 일본식 발음으로 적어 놓은 것이다. 계절에 따라 새 단장을 하는 완만카는 교토 멋을 한껏 싣고 달린다.
고류지 절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벚꽃이 반긴다.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지만 번잡하게 느껴지지 않아 참 좋다. 잘 정돈된 뜰을 할아버지 두 분이 쉼 없이 비질을 하고 계신다. 고류지 절은 아스카(飛鳥) 시대의 창건으로 전해지며, 몇 차례의 화재를 거치면서도 많은 불상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현재 대부분의 중요한 불상들은 영보전靈寶殿이란 전각에 전시되어 있다. 넓은 실내에는 헤이안(平安) 시대의 많은 불상들이 본존인 반가사유상을 중심으로 전시되어 있어 불상 하나 하나를 가까이서 배관하며 시대에 따라 미묘하게 다른 작풍을 비교해 볼 수 있다. 헤이안 초기의 작품들은 대체적으로 상의 표정이 엄격하고 후기의 작품들은 부드럽고 온화한 분위기를 띈다.
영보전 정면에는 2구의 반가사유상이 전시되어 있는데, 1구는 높은 보관을 쓰고 있는 상으로 603년 백제에서 전래된 것을 고류지 절에 안치했다고 전해진다. 또 1구는 조금 작은 상으로 얼굴 표정이 울고 있는 것처럼 보여‘우는 미륵’이라고도 하며, 《일본서기》에 의하면 623년 신라에서 전래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고류지 절에서는 단연 보관을 쓰고 있는 반가사유상이 주목을 받는다. 반가사유상 앞에는 평상이 준비되어 있어 상을 마음껏 볼 수 있는 배려를 하고 있다. 마침 중년의 일본인 두 사람이 앉아서 작은 소리로 본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에 갔을 때 이 반가사유상과 똑같은 금동상을 본 적이 있어.” “아무래도 이 상은 한국에서 전래된 것 같아.” “왜 천황의 선조도 한국의 백제에서 왔다고 하잖아.” “전에 왔을 때도 이 상 앞에서 30분이나 앉아서 보았는데 아무리 보아도 싫증나지 않고 참 좋아, 특히 얼굴은.” 이런 대화에 귀가 솔깃해져 나도 모르게 듣고 있었다.

원래 반가사유상은 싯다르타 태자가 명상에 잠긴 안식의 자세에서 연유한 까닭에 상체가 앞과 오른쪽으로 기울어지는 것이 자연스럽다. 아스카 시대 작품으로 몇 구의 반가사유상이 전래되고 있으나 대체로 상체가 직선적이며 얼굴의 표정도 딱딱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에 비해 고류지 절의 반가사유상은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하고 있고 얼굴의 표정도 부드럽고 온화하다. 특히 얼굴의 표정은 방향에 따라 다르게 느껴지므로 자리를 바꾸어 가며 배관하는 것도 좋다. 머리 부분에 비해 몸체 부분은 가늘게 느껴지나, 이것이 오히려 허리를 펴서 자세를 흩트리지 않으려는 긴장감으로 다가온다. 조용하고 움직임이 없는 명상의 이미지가 상 전체를 감싸고 있으나, 온화한 미소, 오른쪽 발목 위의 살짝 들린 왼손 엄지손가락, 뺨에 닿을 듯 말 듯한 오른손 손가락은 정적인 분위기 속에서 동적인 생명감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반가사유상은 아스카 시대에 조성된 불상들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의 자연미와 세련미가 충만해 있어 백제에서 전래되었다고 하는 설이 유력하다.
한편 아스카 시대 조각의 주류를 형성했던 도리파(止利派) 불상들(3월호 참조)과는 계보를 달리하는 아스카 조각의 대표적 유품들은 호류지(法隆寺) 절의 유메도노(夢殿) 구세관음상과 백제관음상을 들 수 있다. 구세관음상은 전체적으로 엄숙하고 신비한 느낌을 풍긴다. 높은 보관과 광배에 표현된 문양 등에서는 부처님의 위력과 기운이 넘쳐 흐른다. 양 손 밑으로 흘러내리는 옷의 표현에서는 리듬감마저 느끼게 한다. 아스카 시대 불상의 대부분이 양쪽 입술 끝만 형식적으로 웃고 있는‘아케일 스마일’을 하고 있으나, 이 상은 눈과 입이 웃음으로 인하여 양 볼이 자연스럽게 당겨져 있어 한편으로는 친근감을 느끼게 한다. 백제관음상은 어디에서 전래된 상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호류지 절 금당에 오랫동안 안치되어 있었으나, 1997년에 백제관음당을 별도로 지어 안치해 지금은 언제든지 배관할 수 있게 해 놓았다. 이 상은 큰 키, 마른 체구, 뭐라 표현할 수 없는 얼굴 표정 때문에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신비감을 느낀다. 그러나 광배의 곡선, 양쪽으로 흘러내리는 천의와 끝단의 곡선, 물병을 잡고 있는 손의 곡선 등은 얼마나 자연스럽고 멋있?
쩝?모른다. 이런 선들에서 백제의 미를 떠올리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와 같이 호류지 절 구세관음상과 백제관음상은 고류지 절 반가사유상과 함께 아스카 시대 불상들 중에서는 자연미와 세련미가 뛰어난 작풍들로 대륙 양식으로 분류되고 있다. 사람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부처님 상이 있을 것이다. 고류지 절 반가사유상의 정과 동의 조화가 좋은 사람, 호류지 절 백제관음상의 뭐라 말할 수 없는 신비함이 좋은 사람…. 나는 개인적으로 호류지 절 구세관음상을 좋아한다. 전신에서 뿜어 나오는 그 힘찬 느낌과 벙실벙실 웃으시는 의미 모를 그 웃음 때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