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잡이 늑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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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김은경
2002년 04월 242호
바람을 따라서 밖으로 나가 보았다. 바람의 느낌은 포근하지만, 완전히 봄 속으로 점령당하기엔 억울한, 약간의 저항이 묻어 있다. 사계절 중 봄만 유일하게 정령精靈을 느낀다.
화사한 실크 스카프처럼, 살랑살랑 사람을 꼬드긴다. 그 유혹에 못 이겨 봄만 되면 순례자가 된다. 봄 햇빛이 나를 바깥으로 불러내는 유혹력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바다의 요정 사이렌(siren)의 노랫소리와 맞먹는다.
병아리 솜털같은 따뜻한 온도, 그 햇빛의 명도는 사람을 얼마나 행복하게 만드는지! 우리 동네 ‘우리분식’ 아줌마가 끓여 주는 국물 맛이 끝내주는 이천원짜리 국수 한 그릇 사먹고, 자판기 커피 한 잔과, 봄꽃이 즐비한 꽃집에서 요것조것 구경하면 현실의 잡다한 구차함이나 슬픔이 앞으로는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은 희망으로 바뀌곤 한다.
삼사년 전 남편의 사업 실패와 그에 따른 절차들, 문학을 너무나 사랑하나 짝사랑으로 끝날 수밖에 없는 자기연민 등으로 자기 안에 갇혀 무척 힘들고 외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현실은 현실대로 갑갑하고, 내 안은 슬픔으로 가득 차 있었다. 동면하는 개구리처럼 방 안에만 박혀 있다가, 계속 이 상태로라면 피와 땀과 몸 속의 수분이란 수분은 모두 빠져나가고, 미이라처럼 말라 죽을 것 같은 위기감이 찾아왔다.
난 폐허처럼 황폐해져 있었고, 천애고아 같은 서러운 울음이 목까지 차 목에 통증을 느끼곤 했다. 본능적으로 살아야겠다고 스스로에게 주문했다. 자신과의 불화를 스스로 조장했으니, 자신과 화해하고, 자폐의 방에서 빠져 나오려 애를 썼다. 그 때 밖을 보니 앵두꽃은 지고 그 자리에 앵두열매가 맺히고 있었다. 마당에 나와 봄 햇빛 아래 서니 현기증이 일었다.
봄볕은 따뜻하고 어찌나 화사하던지 나는 봄이라는 계절에 감격하였다. 내가 살아 있음에 깊은 감사의 안도감 마저 느껴졌다. 태양 아래 두 팔을 벌리고 서서, 몸에 덕지덕지 묻어 있을 것 같은 불행의 균들을 소독하고, 들뜬 아지랑이의 아련함으로 날 화장시켰다.
그 때부터 봄만 되면 바닷가를 찾는 순례자가 되었다. 내가 사는 동네에서 조금만 내려가면 광안리 해수욕장이 있다. 언제나 바다를 볼 수 있는 곳에 사니 그나마 복은 복이다. 하지만 광안리 바다는 상업화되어 바다라는 자연성, 자연이라는 순결성을 잃어 버린 곳이다.
내 숭배의 순례지는 송정 너머 기장 앞바다이다. 181번 버스가 있다. 버스 노선은 환상적이다. 노선 자체가 여행코스나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광안리부터 시작해서 해운대와 송정, 대변에서 기장으로 꼬불꼬불 둘러 바닷가쪽으로만 간다. 차창 밖의 풍경은 삶의 엄정함을 완곡하게 다스리는 힘이 있고, 순정한 엽록소 잎들이 만들어 내는 무음의 노랫소리는 자연의 절창이다.
그래서 버스는 사람을 실어 나르는 교통수단의 의미를 넘어선다. 버스가 쾌적한 새차는 아니지만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 노선의 중간 지점에 해동 용궁사와 해광사가 있는데, 해광사 앞마당에서 보이는 바다 전망이 예쁘다. 그리고 참! 진돗개로 보여지는 흰 개도 두 마리 산다. 이런저런 이유로 181번을 타고 그 곳에 가는 걸 참으로 좋아한다.
특히 요즘 같은 봄에, 그 때부터 그곳을 헤매고 다녔다. 찻길을 피해 바닷가 가까이 해초가 얽혀 있는 바위와 작은 어촌마을, 어떤 때는 군부대 주둔지도 지난다. 차는 안 되지만 사람은 그 곳을 통과할 수 있어서 길은 이어진다. 다리가 통증으로 아리도록 걸어 다녔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방황했을까.
선지식을 찾아 헤매는 선재동자의 심정은 아니었어도 나름대로 절실함이 있었다. 바위에 오래 앉아 오래 바다를 바라다보며, 워커맨으로 음악을 들었다. 그 곳에서 음악이란 감히 침범할 수 없는 존재의 무게였다. 음악이 주는 영혼의 울림은 대단하였다. 난 음악 속 흡인력의 자장 안으로 감격하면서 끌려 들었고, 감정의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걷다 지쳐서 풀섶에 쉬다가 배가 고파왔다. 입맛을 잃어 하루에 한끼만 겨우 먹곤 했으니, 몸에 근기라곤 없었다. 위장의 기근을 달래기 위해 식당을 찾았으나 그 곳이 작은 어촌마을이라 그런지 식당은 찾기 어렵고, 작은 슈퍼가 눈에 띄었다. 그 곳은 가게라고 하기에는 딱한, 최소한의 물품들만 진열되어 구매자의 의욕을 상실시켰다. 다행히 뜨거운 물을 제공하는 컵라면이 있어 주었기에 망정이지! 가게 앞에 코카콜라 로고가 새겨진 때묻은 파라솔과, 칠이 군데군데 벗겨진 철테이블, 하늘색 플라스틱 의자가 놓여져 있었다.
거기서 손님들이 음료수도 마시고 컵라면도 먹고 하는 모양이었다. 동네는 조용하고 사람들도 눈에 띄지 않아 적막했다. 시간도 오후로 제법 기울어 햇빛도 시들고 있었다. 컵라면을 먹기 위해 테이블로 갔을 때 자리를 먼저 차지한 이가 있었다. 앉을 곳이라곤 한 곳밖에 없었으므로 합석을 했다. 그 곳의 선점자는 여자였다. 그녀도 나처럼 낯선 방문자임이 느껴졌다. 챙이 넓은 검은 모자를 쓴, 나름대로 세련된 차림이었다. 라면을 먹고 있는데 시선이 느껴졌다. 무의식 중에 고개를 들었는데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눈빛이 날카로워 보였다. 순간 상대방을 탐색하는 기운이 부담스러워, 먹는 걸 중단하고 일어서려는데 말을 걸어 왔다. ‘지쳐 보이는데 헤매지 말라’는 것이었다. 나는 속으로 흠칫 놀라 의자에 다시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말하는 폼새하며 심상치 않은 기운이 전해졌다. 곱상한 얼굴과는 반대로 목소리는 쉰듯한 저음이었고, 그 선명한 대비가 그로테스크함(엽기적)을 주었다. 그녀는 신분을 밝히며 말을 이어나갔다. 자기는 중국으로 이민을 간지가 삼년 정도고, 그 곳에 미용실을 개업하려고 미용기술을 배우기 위해 부산에 머무른다고 했다. 종교는 기독교이고, 교회에 나가기 시작한 동기는 신병을 앓아 그게 싫어서 교회에 나가기 시작했고, 열심히 기도해서 몸이 아픈 것은 나았는데 사람의 운명이 눈에 보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본인의 사주적 운명은 돈이 지천으로 많은데, 그 대신 남자는 땡전 한푼 없는 무일푼의 남자를 만나야 한다고 했다. 나에 대한 이야기도 의중을 깊숙이 찌르는 데가 있어서, 호기심과 정말일까 하는 안달로 마른 침이 꼴깍 넘어 갔다. 제일 하고 싶은 게 뭐냐고 해서‘글을 쓰고 싶다. 그러나 재능이 없어 불행하다’고 간절함으로 고백하니, ‘당신은 할 수 있다. 세상에 나가 빛날 수 있다. 당신의 영혼은 상대를 굴복시키는 힘이 있다. 존경하는 분이 있는데 그 분이 너의 눈물을 닦아 줄 것이다.’저 사람은 내 가슴에 흐르는 눈물이 보인단 말인가! 말의 내용과 그이가 선택하는 예사롭지 않은 단어들 때문에 그녀가 절대자나 되는 양 매달렸다. 갑자기 믿기지 않게 나타나서 나를 흔드는 이 사람이 혹시 인디언들이 말하는 내 인생의 길잡이 늑대인가. 그렇다면 놓쳐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 곳에 자주 오며, 또 만나게 될 것이다’라며 가버렸다. 돌아오는 버스 속에서도, 집에 와서도, 심지어 잠 속에서도 그녀가 했던 말들이 떠나지 않았다. 정말일까 혹시 내가 어리석어서 놀림을 당했나. 놀림을 당했다고 생각하기엔 의중을 찌르는 날카로움이 있었다.
다시 만나기 위해 몇 번을 그 곳에 갔었으나 아직까지도 만나지 못했다. 주위에 얘길 했더니 ‘좀 이상하다’며 어이없어 하는 쪽과, ‘그럴 수 있다. 그건 모르는 일이다’라는, 양분된 반응이었다. 하지만 그 내용이 진실이든 그냥 장난으로 꾸민 말이든 그건 중요하지 않다고 결론 내렸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과 위로를 주었으니, 어쨌든 고마운 존재고, 분명 바다는 아니 바다와 그 봄빛의 하모니는 쓸쓸한 내 영혼의 아름다운 조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