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가 톡 터졌다. 그것도 딱 한 송이. 좀 외롭겠다. 아직은 삼월 초순, 꽃이 피기는 이르다. 여기가 분명 산골인데다, 아무리 계절조차 불확실한 시대라지만 이렇게 망설임 없이 꽃이 피어도 될란가 싶어 갸우뚱거려진다. 설을 쇠고도 한참이나 날씨가 들쑥날쑥하며 눈발도 날리고, 설을 거꾸로 쇠었는가 보다고 투덜거리기도 해야 했는데 푸근한 날씨가 계속되기만 했다. 수일내로 나무 가득 꽃을 피워낼 것만 같다. 꽃을 일찍 본다는 기대도 있지만, 왠지 불안하다. 빨리 호박구덩이도 파야 하고 인분도 주어야 될텐데 하는 조급함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데 역시 아니다였다. 그럼 그렇지. 한없이 잘 나갈 것만 같던 봄날이 꽃샘추위라는 복병을 만난다. 시절도 무시하고, 순서도 막 어기며 앞으로만 치닫던 봄의 오만함에 삼월의 꽃샘추위는 제자리를 지키라는 경고 같기도 하다. 벙글어지려던 매화는 잠시 주춤거리고. 꽃은 못 보아도 그냥 마음이 편하다. 모르지 또. 근년엔 봄 같은 봄도 없고, 계절도 혼란스러우니 어찌 될지. 너무 일되는(빠른) 것은 괜히 불안하다.
우리가 사는 것도 그런다. 도道를 깨닫는 것 말고는 순리를 어기면 주변을 불안하게 하고, 얼마 못 가 여지없이 꺾인다. 그래서 된사람 같으면 자기가 달리는 속도에서 힘을 조절하며 달릴 줄 안다. 잘 나간다는 것, 특히 너무 일되게 잘 나가는 것은 늘 경계하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오만함으로 치닫게 된다.
정상적이라면, 삼월의 봄은 아직 봄이라기엔 이르다. 봄의 서곡이라고나 할까. 겨울옷을 벗어 버리기에도 빠르고, 겨울의 을씨년스러움도 남아 있는 때. 다만 기나긴 겨울을 벗어났다는 안도감과 웅크렸던 몸과 마음이 한껏 기지개를 켜 볼 수 있는 때이다. 진정한 봄은 사월의 봄이라야 봄이라고 이름할 수 있다. 만화방창, 세상이 이 때보다 더 아름다울 수는 없을 것이다. 오월에 비해 한결 덜 바빠 봄을 즐겨볼 수도 있다. 오월의 봄은 슬슬 여름의 기미가 풍겨오고, 너무 익어 버린 봄이다. 사람으로 쳐도, 소년의 향기를 내던 아이가 느닷없이 여드름 돋고 어른 흉내를 내려고 할 때와 비슷하다. 그래서 좀 징그럽고 시큼하다.
특히, 이 골짝은 사월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하다. 다른 때는 별로 볼품없는 곳인데, 사월의 봄은 빼어나서 자랑할 만하다. 자연을 어떤 수식어로 치장하고 꾸며 보아도 적확하지가 않을 터인데, 무딘 손솜씨 가지고 무슨 수로 언감생심 표현하겠다고 덤빌까. 그저 바라만 보는 것이 누를 덜 끼치는 일이다. 아름다움은 직접 보아야지 서툰 붓 끝으로 그림 그리듯 해 보아야 무슨 맛이 들겠는가.
사월이 오면 산등성이들은 마치 어떤 화가가 풍경화를 그리려고 연둣빛 수채화 물감을 배경 그림으로 살짝살짝 뿌려 놓은 것 같다. 처음에는 연둣빛도 보일 듯 말 듯 연한 빛이다가 날로 조금씩 색깔을 더해 아침마다 환호성을 지르게 한다. 이만해도 그냥 보기에 아까운 그림인데, 등성이마다 서 있는 산벚나무에서 꽃망울을 터뜨린다. 진달래도 여기저기 붉게 타오르고. 사월도 중순을 넘어서면 산벚나무들은 저 위쪽까지 완전히 꽃을 피워 봄의 그림은 완성된다. 눈부시게 찬란한 봄의 그림이. 절로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
꽃도 필 때 피어야 아름다운가 보다. 어느 때보다도 봄에 핀 꽃들이 더 찬란하다. 봄이 함께 찬란한 것은, 겨울이라는 혹독한 계절을 지나와 새롭게 꽃을 피우고 새잎을 드러내는 신비함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들수록 봄의 자연에 대한 경외심은, 시인묵객이 아니어도 한 번쯤은 예찬을 하게 한다. 그래도 이 아름다움들을 혼자 예찬하고 있기엔 부족하다. 봄이, 어느 산골 봄이 신비롭고 아름답지 않을까만, 한 골짜기를 홀로 다 차지하고 즐기기엔 너무 벅찬 노릇이라 하는 말이다. 그리 많은 봄을 여기에서 맞은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이 모이니 참 좋았다. 어떤 봄날 갑자기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해가 어스름해지면 찬기가 들어 마당가에 모닥불도 피우고, 평상에 앉아 차도 마시며 피어나는 봄을 바라보았다. 한켠에선 노래하고 떠들기도 하고. 말이 그렇지, 이 산골에서 봄을 즐기는 것은 아주 잠깐이다. 꽃이 막 피는 이 때는 덜 바빠 꽃도 보며 웃기도 한다. 어느 한날 노보살네 아들이 밭 갈러 올라오면 그 때부터 농사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실제는 밭을 갈고도 좀 있어야 본격적으로 바빠지긴 하는데, 옹근 농사꾼도 못 되면서 설을 쇠고 정초기도!
만 끝나면 걱정이 앞선다. 봄에 대한 온갖 예찬을 한편으론 아끼지 않으면서도, 일찍부터 농사와 씨름할 걸 생각하면 눈앞이 캄캄해지고 아득해지기도 한다.
농사는 아무리 한 뼘 정도의 땅에 짓는다 해도 내내 거기 매달려야 한다. 그래야 우습게라도 수확할 것이 있다. 지금도 그렇지만 처음에는 더 가관이었다. 자꾸 실패하면서도 포기할 수 없는 것이 오기도 나고, 해마다 마음으로 다짐하는 바가 있어서이다. 한번쯤 본때 있게 지어보고 그만두어야지 하는 마음. 올해는 농협에서 일찍부터 퇴비도 한 차 실어왔다.
겨울 동안 묵었던 밭을 트랙터가 와서 갈아놓으면 얼마나 가슴이 설레는지 모른다. 거기다 이랑을 지어 여러 가지 작물을 이식하고, 씨앗을 뿌릴 때는 또 얼마나 가슴이 부풀어 오르는지, 한 해 농사를 시작하는 희망 때문이겠지. 그 안에 모종과 씨앗을 사나르느라 장에도 몇 번씩 부지런떨며 다녀야 한다. 이것도 다 재미있다.
밭이랑마다 비닐을 덮고 장에서 사온 모종들은 정성 들여 이식해야 한다. 농사가 잘 되어야 여럿이 나눠 먹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재미는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호박은 구덩이를 파고 인분을 부어 놓았다가 씨를 넣는다. 인분 덕인지 작년엔 호박이 제일 풍년이었다. 가장 큰 일은 고추모종 이식하는 것이다. 약간의 기술도 필요하고 양도 많아서이다. 아랫마을 노보살이 놉을 한사람 데려와도 하루가 꼬박 걸린다. 그러고도 노보살은 며칠씩 오르내리며 별별 씨앗을 다 심는다. 어느 농가 못지 않게 흉내는 다 내본다. 욕심이 많다. 수확은 놔두고라도 심는 재미가 쏠쏠해서이다. 여기까지도 재미는 괜찮다. 서서히 싹이 나고, 그 예쁜 싹들이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거릴 때까지만 해도. 병충해가 일기 시작하면 작물도 정서적으로 망가지고 재미는 어디로 갔는지 모른다. 터도 너른 데다 만만찮은 농사에 부대끼다 보면 더 이상 봄을 즐길 여유는 없다.
그래도 산골에 살며 봄에 빼놓지 않아야 될 일이 또 있다. 나물 뜯는 일. 이식하고 씨 뿌리는 일들이 끝나면 좀 숨을 고를 수가 있다. 지주대도 세워야 하고 할 일은 많지만, 서둘지 않아도 된다. 나물도 이 때가 한창이라서. 근방의 산들을 다 뒤져야 한다. 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은 아니어서 온 산을 다 헤맨다. 보통 힘든게 아니다. 아무도 오지 않아 혼자 우두커니 앞산만 바라보던 겨울의 적막에 비하면, 산으로 산으로 헤매며 봄나물 뜯는 일은 산골에서 얼마나 다행한 일인데. 말려서 나누는 일은 또 얼마나 즐거운고.□
추신:이 글을 쓰는 며칠 날이 엄청 뜨겁더니 기어이 매화는 다 피고 말았다. 임오년 올 봄도 수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