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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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오성
2002년 04월 242호
아침 예불을 마치고 사람들과 차 한 잔의 대화를 나눕니다. 참 평화로운 시골 사람들의 시간입니다.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누가 더 많이 알고 있나 시합이라도 하듯 어제 있었던 마을 뉴스를 서로 앞다투며 들려 주는 동안 이들의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집니다. 그렇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남편과 아내로서, 또는 이웃과 서로 상처 입히거나 다독이며 화해하는 관계로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희 엄마는 일 잘하기로 소문난 옆집 말자에게 서운함을 갖고 있습니다. 지난 농번기 때 같은 이웃인 순희네 밭일을 해야 한다며 자신을 도와 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들이 새벽길의 고요함을 깨며 집으로 돌아갑니다. 이들을 등 뒤로 하고 포행을 나서면 아직 눈으론 확인할 수 없지만 귀 볼에 스치는 바람을 타고 파도 소리가 들립니다. 뒤늦게 나의 발길을 따라 나선 아침 햇살은 밭 돌담들을 옹기종기 몰고 옵니다.
이 시간이 되면 나의 의식은 모든 만상과 대화를 나누고 싶어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 놈을 달래보기도 하고 억압해 보기도 하지만 어린아이 궁금증 마냥 쉼이 없습니다. 눈 안 가득 새로이 피어나는 여린 봄 들녘의 바람과 나무와 새, 풀꽃들을 두고 어찌 그렇지 않겠습니까.
지난 겨울 어느 날, 밥을 달라며 절에 들른 여행객이 생각납니다. 어떤 사람에게 상처받고 여행을 시작한 지 3년이 되었다고 합니다. 외국으로 국내로 이곳저곳 다니다가 제주에 들어온 지 3개월째인데 제주가 참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래서 오름이며 바닷가로 다니면서 자연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고 합니다. 그래 자연이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물었습니다. 사람과 달리 자연은 결코 거짓 없고 순수한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고 합니다. 다시 똑같은 질문을 하였습니다. 그는 눈 속에 피어난 생명의 신비가 어떻고 하며 주절주절 늘어놓았습니다. 또 다시 자연이 무슨 말을 하더냐고 물었습니다. 이상히 여긴 나그네는 아무런 대꾸 없이 투덜대며 가버렸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나 향을 사들고 다시 찾아왔습니다. 고맙다는 말을 남기고 자신의 삶으로 돌아간다며 제주를 떠나갔습니다.
봄이 되면 꽃구경 나온 서정시인들이 많습니다. 눈으로 코로 모든 육근의 기관을 동원하여 즐기려합니다. 이 때 우리는 자연이라는 대상이 아름다움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의식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바람이 분다고 합시다. 이 때 바람은 부는 것이 아니라, 부는 그것을 바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냥 바람이라고 하면 되는 것입니다. 나아가 우리가 바람을 지각하지 못하면 바람이라 할 것이 없습니다. 지각은 그 사람과 대상으로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우리가 느끼는 바람은 의식의 일부인 것입니다.
또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꽃은 아름답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꽃은 아름답다고 할까요? 냉정하게 말해 본다면 꽃은 암술과 수술로 이루어진 자연의 생식기일 뿐입니다. 누가 생식기를 아름답다고 하겠습니까. 생식기를 존경하는 선생님께 가져다드린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얼마나 황당한 일을 우리가 하며 살아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앞에 펼쳐지는 모든 대상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찬탄하는 대상들이 피조물이거나 영혼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돌이요, 나무요, 물이요, 생명 그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에 어떤 삶은 아름답고 어떤 삶은 그렇지 못한 것이 아니라 삶 자체는 모두 아름답고 풍요로운 것입니다. 고통은 외부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어리석은 의식의 조작임을 알아야 합니다.
봄이 이렇게 아름다운 것도 생명의 실상대로 거짓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녘을 걸으며 대지를 깊이 접하고 이해하며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