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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역경사(譯經史)를 회고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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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월운 1990년 02월 96호
우리나라의 역경사업을 이야기하자면 훈민정음이 반포된 뒤 석보상절(釋譜詳節)과 월인천강지곡(月印天降之曲)이 나온 것으로부터 이야기해야 될 것이나, 보다 구체적인 것으로는 1456년 세조가 즉위한 뒤 간경도감(刊經都監)을 설치하고 원각경, 법화경, 농엄경, 영가집 등을 번역해 낸 것을 들어야 할 것이다. 이는 종전의 한문 경전을 우리의 글로 번역해 냈다는 점에서 큰 의의를 갖는 것이나, 한글이 언문이라고 천시되던 시대인지라 큰 호응이 없었던 것 같아, 그 뒤로는 이렇다 할 역경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근자에 신문명의 도입과 함께 역경의 필요성을 느끼고 이 분야에 손을 댄 분들이 있었으니 백용성, 안진호, 김적음, 김탄허, 서경보 등의 스님들이 나름대로 문호를 열어놓고 번역본을 내 놓았다. 그러나 모두가 개인의 힘으로 밀고 나가다 보니 포괄적이지 못하고 또 지속적이지 못해서 많은 경전을 내지는 못한 것으로 안다. 어쨌든 이 분들의 역경사업은 별도의 연구가 있어야 될 것이기에 다음으로 미루고 최근 우리나라 역경사업의 주종이 되는 동국역경원의 설립 과정 및 그 주변에 있었던 일을 들은 대로 아는 대로 적어 본다.
다 아는 바와 같이 동국역경원은 나의 사부이신 운허(耘虛)스님의 남다른 집념으로 설립된 기구이어서 나도 상당한 애정을 가지고 있기에 그 서술에 있어 특정인 운허스님의 업적을 들추어 내려는 듯한 오해가 있을지 모르나 결코 그런 뜻이 아님을 밝혀 둔다.
먼저 운허스님의 역경사업에 대한 의욕부터 소개한다.
내가 스님께 경업을 시작한 것이 1952년, 그러니까 6.25사변으로 전국에서 피난 나온 100여명의 납자들이 동래 범어사에 모여 있었는데, 그때 능엄경을 번역해서 윗부분 ⅓은 원문, 아랫부분 ⅔는 번역문을 넣어 프린트판으로 복사해서 교수하는 법석에 나도 참여하니 이것이 그분의 최초의 역경이 될 것이다.
그후 스님께서는 진주 연화사, 합천 해인사, 양산 통도사 둥으로 옮겨 사시면서 학인들을 제접하는 여가 여가에 늘 역경에 관심을 가졌으니 1956년에 사미율의, 무량수경을, 57년에 범망경, 사분계분, 사미니율의를, 58년에 금강경, 정토삼부경, 조계종강요동을, 59년에 수능엄경, 사분비구니계본, 보현행원품 등을, 60년에는 유마경을, 61년에는 불교사전, 부모은중경, 증편법수 등을, 62년에는 승만경 금광명경 등을, 64년에는 불교의 자비, 자비수참 등을 번역하였고 그해 동국역경원이 설립되자 40 화엄경올 역경원을 통해 역출하였다.
역경원이 설립된 뒤에도 계속 역경에 힘쓰셨으니 65년에는 열반경을, 66년에는 80 화엄경과 무구정관대나라니를, 67년에는 문수보살영험록, 문수사리발원경 등을, 68년에는 60 화엄경을 번역해 내시니 실로 대·소승 경률이 망라되었다.
그 분의 이러한 노력에 터 잡아 역경원이 이루어졌는데 초창기에는 이렇다 할 뒷받침이 없어 종단과 동대의 후원으로 겨우 아함경 1집을 내고는 기진 상태였다.
이때 스님께서는 도선사로 가셔서 37일 기도를 모시고 역경원 일이 잘 풀어지기를 발원하셨는데 뜻밖에도 석남사 인홍스님과 연(緣)이 있는 모 독지가를 만나 국고 보조사업으로 책정되게 되었고 그로 인해 66년도부터는 연 4집(집당 원고 37매분 수록)씩 낼 정도로 활성화되었다.
역경원의 자금사정이 좀 풀리자 그 분께서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일에 역점을 두셨으니 번역의 완벽, 역경사 양성, 역장 확보, 용어 및 범어 표기의 통일이라 하셨다.
첫째, 번역의 완벽을 위하여 먼저 역경예규(譯經例規)를 만들어 여러 역경사들의 문장을 통일케 하였고 당시의 내외전 석학들을 초빙해서 역경용어심의회(譯經用語審議會)를 만들어 낱말풀이 원칙을 정하였고, 또 증의(證義), 윤문(潤文)제도를 도입하여 일단 번역된 원고의 검토에도 매우 큰 비중을 두었었다.
둘째, 역경사 양성에 관한 배려도 깊었으니, 처음에는 누구나 역경사가 되고자 하면 시역고(詩譯橋)를 내게 하였으나 나중에는 역경사 후보생을 선발하여 다른 강사들과 함께 스님께서는 고령에도 불구하시고 열강을 하셨다.
셋째, 역장의 확보에 관하여도 매우 신경을 쓰셨다. 1964년 역경원이 설립될 때엔 동대(東大) 구내 지금의 사범대학 자리에 일본식 절이 있었고 그 한 모퉁이에 요사가 있었는데 거기다 간판을 걸고 탄허스님을 대학선원장, 스님은 역경원장으로서 한솥의 밥을 근 이태 동안 잡수셨으니 그 끈기에 탄복하지 않을 수 없다. 그 후 수원 용주사, 양주 불암사로 역장(譯場) 간판을 옮기다가 뚝섬 봉은사로 옮겨 정착하였으나 봉은사 사태후 그나마 흐지부지한 상태이다.
이렇게 해서 틀이 잡히고 힘도 생겼을 무렵에는 고려대장경 중 ⅓정도 역출되었다고 하는데 운허스님, 영암스님 모두 가시고 국고보조도 끊기고 사람들도 흩어져서 역경사업이 침체에 빠진 것이 아쉽다. 뿐만 아니라 요즘도 제각기 나름대로 경을 번역해 내기는 하는데 각출이견(各出異見)으로 통일성이 없고, 심지어는 오역, 오자가 상당히 눈에 띄는 상태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그 중의 한 예로서 1966년 역경원이 중심이 되어 각 종단연석 심의회를 만들어 통일된 반야심경을 번역해 내고 그것을 그 해 우리 종회에서도 종단의 안으로 채택한 바 있는데, 이제 그런 사실조차 잊어버리고 시중에 나도는 반야심경 번역본만도 10여 종류가 넘는 것 같으니, 이러다가는 쉬우라고 번역한 것이 더 어렵게 되겠고 독송하는 일반인들에게 혼동까지 주게 되지 않을까 해서 근심스럽다.
한 사람의 원력이 얼마나 크냐에 따라 일이 이루어지기도 쇠퇴하기도 한다는 사실을 절감하면서 목하 종단 내외에서 이 분야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는 이가 적은 것이 아쉽다. 어디선가 제2의 원력보살이 나타나 주었으면 하면서 이 분야에 뜻을 둔 분을 위해 역경 예규 일부를 참고로 소개한다.

l. 문장 문체
1) 문장은 순 한글로 한다. 단 고유명사나 범어 및 한자의역 또는 난해한 술어인 경우에 한하여 처음 나올 때만 필요한 한자를 괄호 안에 표기함을 원칙으로 하되 이해의 편의를 위하여 중간에도 넣을 수 있다.
2) 문장은 구어체 현대문을 쓴다. 단 게송은 운문체로 부처님 말씀과 부처님께 하는 말에는 「…노라 …여라 …도다」또는 「…나이다 …나이까 …옵소서」등의 문어체의 고문을 병용한다.
부처님 말씀에 「…나니라」는 「…느니라」로 통일하며 부처님의 말씀이라 할지라도 지문 서술이 전부 부처님의 말씀일 때에는 「…느니라」를 제불 보살 자신의 설법·설교에 한하고 타의 3자의 행동언설은 「…였다」를 쓰기로 한다.
3) 문체는 간결체를 바탕으로 하고 장중미를 갖게 한다.
4) 문장서술의 종지형은 「…였다」등의 과거사를 쓴다.
5) 한역음·와음·속음으로 오랫동안 관용되어 이미 굳어진 어휘들은 관용하는 음대로 적는다. 예를 들면, 시방(十方), 보사(布施), 도량(道場) 등.
6) 와음, 속음은 주를 달아 원어(범어·한문)를 밝힌다.
7) 호칭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이 정한다.
가) 부처님의 특칭 명호 외의 자칭은 「나」로 통일한다.
나) 제자 또는 모든 사람이 부처님께 대한 자칭은 「저·저희들」로 한다.
다) 부처님이 대상을 부르는 호칭은, ㉠ 제자나 아랫사람, 외도에게는「너, 너희들」 로, ㉡ 보살 왕공 귀족이나 바라문의 우두머리 또는 집단군중에 대해서는 「그대, 그대 를」로 쓴다.
라)부처님이 제3자를 부르는 호칭은 「그, 그들, 저들」을 사용한다.
8) 부처님에 대한 호칭은 「부처님이시여」또는 「세존이시여」등과 같이 칭호 밑에 「…이시여」를 붙인다.
9) 부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는 제자 개인에 대해서는 이름 아래「…아, 야」를 붙이고 집단인 경우에는 호칭 아래 「…들이여」를 붙인다.
10) 모든 존비관계의 경양어(敬讓語)는 현행 관용어를 표준으로 한다.

2. 문장 분단
1) 경문 초두의 서술 분단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분단은 줄을 바꾸는 것으로 표시한다.
가) 여시아문(如是我聞)=이렇게 내가 들었다.
나) 일시불재사위국(一時佛在舍衛國…與大比丘衆千=百五十人俱=어느 때 부처님께서 큰 비구들 천 2백5십인과 함께 계시었다.)
다) 時諸比丘於乞食後集花林堂名共議言=때에 여러 비구들은 걸식한 뒤에 화림존 강당에 모여 서로 의논하고 있었다.
라) 示時世尊在閑靜處天耳淸淨=그 때에 부처님께서는 한적한 곳에 계시면서 천이통이 청정하여…
2) 첫머리의 네 가지 분단이 끝난 다음에는 설명 서술이 끝날 때와 대화 인용이 끝날 때마다 줄을 바꾼다.

부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여래가 숙명을 아는 지혜로써…아시는 사실을…말해 주리라」
때에 모든 비구들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지금이야말로 바로 그 때입니다. 저희들은 즐거이 행하겠나이다」

3) 설법과 대화가 길 때는 중간에 문단이 끝날 때 줄을 바꿀 수 있다.

3. 문단부호
1) 한자를 넣는 괄호는 ( )를쓴다.
2) 설법문답등 대화인용 『 』를 쓴다.
3) 설법문답등 대화 속에 나오는 재인용은 「 」속에 넣는다.
4) 본문속에 나오는 모든 성어구(成語句) 또는 특별한 고사숙어(故事熟語)는 〈 〉안에 넣는다.
5) 본문중 콤마(,)는 빼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필요한 경우에만 쓴다.
6) 열기(列記)할 때의 중간원점(·)은 그냥 쓴다.
7) 의문부호(?)는 모두 빼고 피어리드로 바꾼다.
8) 음이 다른말이나 의역(意譯)할 때는 만국 발음기호를 쓴다.

4. 범어의 기사(記寫)원칙은
1) 범음을 원음대로 우리 글로 표기하는 것,
2) 범음을 한음역(漢音譯)한 것을 관용음(慣用音)대로 우리 글로 적는 것,
3) 원음을 따르려 범파어(寶巴語)중 관용음에 가까운 원음을 취해 적는 것,
이상 세 가지를 병용하되 그 대강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단 어느 경우에도 해당 한자는 괄호 안에 넣는다. (초출(初出)에 한함)
1) 지(地)·인(人)·화(花)·조(鳥)의 이름은 한음역을 취하지 않고 원어를 우리글로 표기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단 괄호안에 해당 한음역을 넣는다).
예 : 사라나트(鹿野院) 스후부티(須菩提) 칼라빈카(伽羅頻伽) 우담바라(優曇波羅)
2) 술어는 관용음대로 적는다.
예 : 보리(菩提) 열반(涅槃), 바라문(婆羅門) 등.
3) 원음을올 따르되 범어나 팔리어 중 관용음에 가까운 원음을 취해 표기한다(단 경명(經名)은 한역음대로 적는다.)
예 : 반야(般若 pa a ), 능가경(楞伽經 Lankabatrasutr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