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계 무엇을 개혁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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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효림
1993년 03월 133호
불교계의 모순이 심화될수록 교계 안팎에서 개혁의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불교가 시대에 적합한 자기 역활을 다하고 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민족의 중심에서 문화와 역사를 주도해왔던 불교가 지금 그 중심에서 밀려나 있는 상황이다.
오늘을 살아가는 한 사람의 수행자로서. 민족의 장래를 걱정하고 역사의 주체와 문화 전통 회복을 갈망하는 이 땅의 백성으로서, 불교의 현실을 돌아볼 때 가슴이 아파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민족의 문화를 창도하고 역사를 이끌어 오던 불교가 오늘날 왜 이 지경이 되었는가? 그리고 왜 우리 민족은 불교사상을 상실한 채 민족문화는 단절되고, 역사의 주인 노릇을 못하고 있는가?
우리 민족이 당당하게 주체성을 확립하고 강대국에 종속된 문화에서 벗어나려면 불교가 살아나야 한다. 아니 불교가 하루 빨리 민족문화와 역사를 이끌어 가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불교계는 일대 개혁을 해야한다.
불교가 개혁되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조계종단의 개혁을 의미하는 말이다.
한국 불교의 종가며 최고 종단인 조계종단의 개혁은 바로 한국 불교 전체의 개혁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정화운동 이후 우리 불교계는 한번도 체질 개선을 하지 못했다. 중첩된 모순 속에서 날로 혼탁해지고 있지만 감히 종단을 개혁해 보지고 하는 뜻을 내지 못했다. 이는 이미 종권을 장악하고 있는 기득권자들이 타락한 본인들이며 종단의 개혁이 바로 자신들의 기득권 상실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아니 종단을 개혁하자는 말은 지금까지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실패로 끝났고 구두선에 그치고 말았다. 종권을 장악한 일부 정치 승려들은 오히려 더욱 모순을 심화시키는 방향으로 종법을 고치고 만들어 왔을 뿐이다.
현실의 불교를 우려하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많다. 그리고 불교를 개혁하자고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불교계와 종단을 어떻게 개혁하고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에는 통일된 의견이 없다. 각인 각색으로 주장만 있고, 이를 구체화하는 작업은 없는 형편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나 이같은 중구난방의 의견을 자세히 살펴보면 대략 다음 몇 가지로 이야기가 모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첫째는 제도 개혁이다. 현행의 종단 구조는 일제 때 조선총독이 만든 사찰령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사찰령이란 일본이 식민지인 조선 불교를 강점하기 위해서 만든 악법이다. 이는 주지의 인사권을 총독이 쥐고 있음으로써 우선 조선 승려들의 숨통을 눌러 놓자는 것이며, 지주와 주체적인 역량을 발휘하지 못하게 한 것이다. 주지를 하기 위해서는 일본 총독에게 잘 보여야 하기 때문에 민족의 독립을 생각하는 스님이나 불교의 자주권을 주장하는 스님은 일단 주지를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찰령을 통하여 총독부는 주지에게 사찰의 모든 권한을 전횡하도록 했다. 이는 총독의 독재 권한과 같은 권한을 주지에게도 부여함으로써 사찰을 주지가 전횡하고 주지는 총독이 지배하는 독재권력의 고리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악법이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의 정치가 민주적이지 못한 것에도 원인이 있다. 역대의 독재 권력이 불교의 자주성을 막고 손쉽게 지배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현행의 주지 전횡제도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런 제도를 근본부터 고치고 전통적인 불교의 공의제도를 이루어 내야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너무나 오랫동안 불교계는 현행의 주지 전횡제도에 관성이 된 탓으로 그 폐해성과 모순성조차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 실정이다.
두 번째는 교육을 통하여 개혁을 이루자는 주장이다. 현재의 조계종단이 가지고 있는 승려의 교육은 시대에 적합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중앙승가대학과 동국대학 안에 불교학과가 있지만 이는 전체 승려를 교육할 수 있는 교육 시설은 아니다. 지방승가대학이라고 해서 전통 강원이 있지만, 교육시설이 열악하고 교수조차도 부족하다고 한다. 이러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여 인재를 양성함으로써 불교의 백년대계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오늘의 불교를 돌아볼 때 가장 심각하게 표출되고 있는 모순의 하나가 바로 승려의 자질 문제다. 출가하여 승려가 되었지만 승려로서 필요한 기본 교육조차 한번도 받아 보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 가운데에는 승려 이전에 인간의 자질이 의심스러운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현실적인 상황을극복하고 불교를 중흥시키는 길은 오직 교육을 개혁하여 승려의 자질을 높이고 현대 사회에서 불교인으로의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가장 먼저
실시해야 할 것이 승려 의무 교육 제도다. 어떤 사람은 불교계의 교육 개혁을 말할 때 과연 불교계에 개혁해야 할 제도가 있기나 하냐고 반문한다. 그만큼 불교는 기초 교육 제도조차 없는 형편이다. 따라서 우선 시급한 것은 의무 교육 제도다. 종단은 출가하여 승려가 되려고 하는 사람에게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더라도 기초교육은 의무적으로 시켜야한다.
세번째는 청정수행인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오늘날 불교계가 혼탁은 것은 청정한 수행자의 자세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문제의 발단이 청정하게 수행하지 않는 것에서 생겼다고 보고 그 해결책도 청정한 수행자로 돌아갈 때 해결된다고 보는 것이다. 불교의 본디 목적이 수행을 통해서 불과를 성취하는 것이라고 할 때, 이 말은 타당성을 갖는다. 제도 개혁이나 교육 개혁도 결국 참다운 수행을 위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개혁의 귀결점은 청정한 수행을 위한 것이라 해야겠다.
오늘의 종단 상황을 혼탁해 있다고 보는 것이나 불교계가 민족의 역사에 자기 역할을 못한 채 중심권에서 밀리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바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극복하는 길은 개혁밖에 없다고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무엇을 어떻게 개혁할 것인가 하는 것에는 문제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달라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있다. 앞에서 말한 제도, 교육, 수행에 대한 개혁은 결코 나누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 놓아도 교육이 없다면 소용없는 일이다. 제도를 운용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기 때문이다. 제도가 사람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제도를 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소 나쁜 제도가 있다고 하더라도 높은 수준의 교육을 통해서 자질을 갖추게 되면 좋은 방향으로 운용할 수도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도 개혁을 이루지 않고는 높은 수준의 교육을 보편적으로 이루어 낼 수 없다고 주장하면 이것은 의미를 상실한다. 수행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출가할 때의 본래 뜻은 청정한 수행을 통하여 불과를 성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교단에 몸을 담게 되면 일단교단이 갖추고 있는 제도의 영향을 받게 된다. 아무리 청정하게 수행하고자 해도 나쁜 제도가 청정수행을 방해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따라서 제도, 교육, 청정 수행 이 세 가지는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만, 순서를 정하자면 제도가 가장 우선이라고 해야 하겠다. 그러나 제도 개혁은 어디까지나 좋은 교육과 청정한 수행 조건을 위한 것임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아울러 제도 개혁 없이 교육을 잘하자고 한다든지 청정하게 수행만 하자고 말하는 것은 문제의 근원을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라는 것을 지적해 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