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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류지(法隆寺) 절 금당 석가삼존상과 도리파(止利派) 불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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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보여화 - 김진숙 2002년 03월 241호
교토(京都) 역에서 긴데츠(近鐵) 전철을 타고 1시간 정도 가면 나라(奈良)에 도착한다. 나라 역에서 버스로 갈아 타고 외곽으로 50분쯤 가면 옛날부터 이가루가(斑鳩)라고 불리는 지역이 나오는데 이 곳에 호류지(法隆寺) 절이 있다. 호류지 절은 쇼토쿠(聖德) 태자가 요메이(用明) 천황의 병의 치유를 위해 발원하여 607년에 완성한 가람이나, 670년에 전부 불타버려 현재의 가람은 그 후 재건한 것이다. 나라 시대의 목조 건물인 사인(西院) 가람(중문, 금당, 5층탑, 회랑 등)을 비롯하여 많은 불상과 회화, 공예품 등이 전래하며, 일본 최초로 세계문화 유산에 등록되기도 했다.
오늘은 정말 오랜만에 호류지 절을 찾는다. 호류지 절은 나지막한 산을 뒤로 두고 평지에 세워져 있어 사원 안으로 들어가면 매우 편안한 느낌을 받는다고들 한다. 그러나 나는 갈 때마다 호류지 절에서는 이런 여유를 만끽할 수 없다. 마음이 급해지고 두근거린다. 사진 속에서만 보던 실물을 대한다는 설레임이 앞서기 때문이다. 우선 경내로 들어서면 건축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나, 금당만 넣어 찍기도 하고, 5층탑만 찍기도 하고, 동시에 넣어서 찍어 보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주 좋은 장소를 발견했다. 금당과 5층탑 뒤에 위치하고 있는 강당講堂 위의 계단에서 보니 오후에는 역광으로, 5층탑을 중심으로 가람 전체가 한 눈에 들어와 사진 찍기에 좋은 곳이다. 무엇보다도 5층탑 뒤의 구름 낀 하늘을 가득 넣어 찍을 수 있어 너무나 좋았다.
한바탕 건물들을 돌고 나서 금당 안으로 발길을 돌린다. 금당 안에는 석가삼존상, 약사여래상, 아미타여래상, 사천왕상, 천개天蓋, 비천상, 모사된 금당벽화 등이 있다. 금당 안은 어두워 불상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차에, 안내하는 사람이 큰 손전등으로 내부를 비추며 설명하기에, 제일 앞에서 본존의 상호, 광배의 비천 얼굴 등을 비추어 달라고 했다.
석가삼존상(본존상 높이 87.5cm)의 광배光背 뒷면에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622(推古天皇30)년 정월 쇼토쿠 태자가 병으로 누워 있을 때 병의 치유와 만약 병이 낮지 않았을 때 정토 왕생을 바라며, 왕후와 왕자, 군신들이 함께, 태자 등신等身의 석가여래와 협시 보살상을 도리(止利) 불사佛師에게 조성하게 하니, 그 해 2월에 태자가 돌아가시고, 다음 해 623년 3월에 완성했다”고 하는 내용이다. 이와 같이 석가삼존상은 명문에 의해 제작연대, 제작동기, 작자 등을 알 수 있어 아스카 시대(538년경~645년경)의 조각을 살피는 데 중요한 기준작품이 된다. 한편 이 상과 양식이 유사한 몇 점의 소금동불小金銅佛을 도리 양식 또는 도리파의 불상 그룹이라고 부른다.

도리 불사는, 선조의 출신지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으나 도래인의 후손으로 알려져 있으며, 아스카 시대의 최고의 불상 장인으로 당시 중요한 사원의 불상 제작에 참여했다고 전한다. 도리파가 제작한 불상으로는 호류지 절에 전하는 금당 석가삼존상, 무자명戊子銘 석가여래와 협시보살상, 헌납 보물(東京國立博物館 상설전시) 중의 4점 그리고 쥬구지(中宮寺) 절 반가사유상 등을 들 수 있다.
호류지 절 석가삼존상은 전체적으로 우선 어딘가 어색하고 딱딱한 분위기를 느낀다. 커다란 눈에 우뚝 선 코, 양 입술 끝만 웃고 있어 자연스럽지 못하다. 앉아 있는 자세도 무릎 양 끝이 조금 올라가 불편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힘과 기氣의 표현 등은 당시 일본에서 만들어진 작품들에서는 볼 수 없는 범상함이 상호와 대의大衣, 협시 보살의 천의天衣, 보관 등에서 잘 나타나고 있다. 한편 광배의 화불化佛은 대조적으로 어린 아이와 같은 귀여운 얼굴을 하고 있어 무자명 석가여래의 상호, 헌납 보물 중의 여래 좌상, 마야 부인의 얼굴 그리고 쥬구지 절 반가사유상(상 높이87.0㎝)와 함께 도리파의 또 하나의 작풍으로 분류된다. 특히 쥬구지 절의 반가사유상은 당시 삼국에서 전래된 반가사유상을 모델로 한 도리 불사의 작풍이 적극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보기도 한다(井上 正 《7-9世紀의 美術》 岩波文庫). 이와 같은 관점에서 아스카 시대의 불상 중 도리파 양식을 미리 파악해 두면 아스카 불상을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다.
다음은 5층탑 안에 있는 나라 시대의 소조상군塑造像群이다. 그물망으로 가려놓아 잘 보이지는 않으나, 북쪽의 열반상 앞에서 통곡하는 두 제자의 모습은 언제 보아도 실감난다. 의외로 모두 아주 작은 소조상들이다. 강당 건물과 본존인 약사 삼존상은 헤이안(平安) 시대의 것인지라 이번에는 대충 보고 대보장원大寶藏院으로 향한다. 대보장원 안에 전시되어 있는 아스카와 나라 시대의 불상들과 공예품들을 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기 때문이다. 특히 유메지가이(夢違) 관음상과 백제관음상 앞에서는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대보장원 바로 앞에는 나라 시대의 건물인 시키도(食堂)가 있다. 작고 아담한 건물에, 붉은색(朱色)의 기둥이 너무 예뻐서 몇 장 더 사진을 찍었다. 동대문을 지나 쇼토쿠 태자의 궁전을 절로 만들었다는 도인(東院) 가람으로 간다. 중앙의 유메도노(夢殿)라는 아담한 팔각 원당圓堂이 있다. 그 안에는 구세관음상救世觀音像이 안치되어 있으나, 비불秘佛로 봉안되어 봄(4월 11일~5월 18일)과 가을(10월 22일~11월 22일) 두 차례만 공개한다. 이와 같이 호류지 절은 아스카, 나라, 헤이안 시대 등의 조각들이 함께 전래되고 있다.!

아스카 시대는 대륙, 특히 우리 나라의 삼국 문화가 많은 영향을 미쳤던 시기이다. 당시 일본의 지배자들은 삼국의 불상을 동경하였으며, 또한 많은 장인들이 아스카 지방(지금의 나라 지역)으로 건너가 절을 세우고 불상 제작에도 참여했다고 하는 사실이 기록에 보인다. 점차 도래인 출신의 후손이나 그 지역 출신의 장인이 등장하면서 일본에서도 불상을 제작하기에 이르렀으며 전래된 불상과 그것을 모방한 작품 등 여러 양식이 공존한다.
이왕에 왔으니 유메도노 바로 옆에 있는 쥬구지 절에도 가고 싶은데 어느덧 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다. 이 절은 원래 쇼토쿠 태자의 어머니 하시히토(間人) 황후의 궁전으로, 도리파의 반가사유상과 천수국天壽國에 왕생한 쇼토쿠 태자의 모습을 보고 싶어하는 왕비의 발원으로 조성된 천수국자수장天壽國刺繡帳(세로88.5×가로82.7㎝) 등이 전한다.
이제 겨우 다 돌았다는 뿌듯함과 쥬구지 절에 대한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동대문을 지나 흙담길을 따라 남대문으로 나온다. 석양과 절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취해 사진 한 장을 찍고 싶은데 필름이 더 남아있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