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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의 아지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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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비의 소리 - 도각 1993년 03월 133호
봄이 오고 있다. 달력이 한 장 더 넘어가는 곳에서 셈하게 되는 봄만이 아니고 살아가는 도처에 봄 기운이 미만해있다. 어제만 해도 겨울 상품을 헐한 값으로 팔던 가게들이 오늘은 일제히 봄 상품을 내놓음으로써 봄을 체감하게 하고, 한겨울을 녹이던 난방기도 창문 너머에서 밀려오는 햇살에 그 빛을 잃고 있다. 귓볼을 스치는 겨울바람도 기운이 죽은 듯하고 창밖 새소리도 더욱 소란스러워졌다.
봄은 개화의 계절이다. 입춘이 지난 늦추위 속에 마른 나뭇가지를 뚫고 매화꽃 터질 듯 피어나 쩡한 하늘을 보고, 땅 속 깊은 어둠을 밀어내고 올라온 가녀린 새싹들 고개를 내밀어 광명의 세상을 보고 있다. 또 사람도 봄을 빌어 많은 새로운 것을 기대하고 보려 한다. 이렇듯 봄은 새로움을 보는 계절이다. 그래서 본디 ‘봄’이라는 말은 ‘보다’ 라는 동사가 명사로 바뀌어 쓰이게 된 말인지도 모르겠다. 무릇 새로움을 보는 계절 봄이 왔다. 회색의 대지가 밟은 연두빛을 슬몃 더하고, 먼 산에선 아지랑이를 피워내기 시작했다.
아지랑이는 봄을 대표하는 상징물이다. 불교에서는 아지랑이를 ‘야마野馬’라고 부른다. 이 야마野馬는 인간의 번뇌심을 가리키는 말이며 또 제6의식, 곧, 헤아리고 분별하는 의식을 나타내는 말이다. 야생의 말이 제멋대로 뛰어다니며 살아가듯 우리 마음의 번뇌도 제대로 다스리지 않으면 그와 같이 산란해진다는 비유에서 빌어온 말이지 싶다.
선가에는 아지랑이를 비유한 이런 유명한 시가 있다.

아지랑이는 물이 아니건만
목마른 사슴이 치달리고
물에 비친 달은 실제가 아닌데도
어리석은 원숭이가 건지려 하네
陽炎非水渴鹿趨
影月非眞痴猴猿

사슴은 갈증을 심하게 느끼는 짐승이라고 한다. 봄날 목마른 사슴은 아롱거리는 아지랑이를 일렁이는 물결인 줄로 착각한다. 그래서 물을 먹으려고 사슴은 아지랑이를 좇아서 뛰어다니는 것이다. 온 천지에 가득한 물을 찾아서 달려도 달려도 물은 만날 수가 없다. 아지랑이를 물로 착각해서 산과 들을 치달리는 사슴은 어리석음보다 안쓰러움을 느끼게 한다.
해마다 어김없이 찾아오는 봄이지만 올 봄은 왠지 아지랑이가 무성한 봄이 될 듯싶다. 알 듯 모를 듯한 아지랑이처럼 우리를 혼란시키는 현상들로 벌써 봄의 현기증이 시작되고 있다. 이상 사회의 건설이라는 꿈이 무너져 가는 곳에 중얼거리듯 환상을 노래하는 랩 음
악이 자리하고, 봄을 상실한 젊은 가슴은 오렌지족이라는 괴상한 인간군을 낳고 있다. 소비와 향락 미덕으로 치장할 줄어나 알았지 사회의 목표나 민족의 향방엔 무관심한 사람들로 가득 찬 세상.
이러한 혼란 속에서 권력을 잡은 사람들은 역대의 정권이 그러했듯이 하기 좋고 듣기 좋은 말로 새로운 봄의 아지랑이를 피워올리고 있다. 신한국 창조도 좋고 개혁정치도 좋다. 그러나 그것은 진정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냉철하게 응시하지 않으면 이룰 수 없는 일이다. 정작 보아야 할 것은 보지 않은채, 하기 쉽고 듣기 좋은 구호만이 아지랑이처럼 무수히 떠돈다.
불교수행의 첫째 덕목은 정견正見이다. 사제 팔정도 四帝八正道 가운데 맨 처음의 자리에 정견이 위치한 까닭은 깨달음을 성취하기 위한 수행의 첫 관문을 바로 보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뜻일 것이다. 바로 보지 못하는데 정어正語, 정업正業 따위를 바로 수행할 까닭이 없다.
봄은 아지랑이처럼 환상이 많은 계절이다. 사슴이 아지랑이를 물로 착각하여 헤매듯 우리도 누군가 피워 놓은 환상에 쉽게 빠져들어 헤매지 않을까 저어된다.
이 봄, 척량골 바로 세우고, 자칫 우리의 자리를 잃게 만들지도 모르는 환상에서 벗어나 존재의 참모습을 바로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