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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선문화연구소 성본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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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계삼소 - 박연진 1993년 03월 133호
입춘 뒤에 맞이하는 막바지 추위가 가는 눈발로 유난히 매섭던 날 종로에 있는 선문화 연구소를 찾아갔다. 세찬 바람으로 흩어져 날리듯 내리는 눈을 맞으며 두리번거리고 있을 때 ,
삼층쯤 되어 보이는 건물의 창문에서 손을 흔들고 계시는 성본스님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추위에 우리일행이 행여 헤맬까 걱정하신 것이다.
마치 한 번 뵌 적이 있는 듯한 친숙함으로 인사드리며 선문화연구소에 들어갔다.
연구소의 작은공간은 이미 사람들과 책으로 만원인 상태였다. 한 쪽 벽으로는 성본스님의 ‘선사장사’가 수북히 쌓여 있고, 사람들은 탁자에 둘러앉아 무언가를 열심히 논의하고
있었다. 열기라고 해야 할까. 선불교의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당위성과 이에 대한 열정이 뿜어내는 진지함이랄까. 그런 따스한 기운이 가득했다.

성본스님은 속리산 법주사로 출가하여 지금 공림사 주지로 계시는 탄성스님을 은사스님으」로 모셨다고 한다. 스님은 여러 해 선방을 두루 다니며 수행을 했는데 계속해서 일어나는 한 문제 의식을 떨칠 수가 없었다고 한다. 선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확신, 그리고 그 실천에 대한 의구심이 그것이다. “오랜 세월을 참선 수행에 전념해온 많은 스님네들이 이후에 수행 방법이나 목적에서 방황과 혼란을 겪는 것은 선에 대한 구체적인 확신이 결여된데서 기인한다고 봅니다.”
이러한 생각의 산물이 지금 한창 박차를 가하고 있는 선문화연구소가 아닐까 싶다.
스님은 출가 당시의 이야기가 무슨 필요가 있겠는가라는 말씀 이후로 절대 지난날의 기억을보이지 않으신다. 현재,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필요한 이야기는 선에 대한 올바른 재인식의 필요성에 관한 것이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는 말씀이다. 우리 한국 불교가 선종 중심으로
흘렀지만, 오늘날 생활 종교로서의 역할을 중시하면서 부쩍 현대화(?)되는 양상 등으로 보아 생활 속에서 선의 실천을 보편화시키기 어려울 듯 싶다는 질문에 스님은 바로 그것이 문제의 핵이라며 정색하신다.
“선에 대한 왜곡된 인식에서 비롯한 질문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식의 선을 생각하는데, 이는 신통묘용사상을 궁극으로 하는 습선적인 불교, 북종선에 맞닿아 있는 것이예요. 히지만 우리의 선은 중국의 조사선에 뿌리를 둔 것입니다. 평상심시도, 인간의 평범한
일상생활 그 자체를 존중하는 데에서 조사선의 사상적인 입장을 인식할 수 있지요. 이렇게 볼 때 우리는 생활속에서 참다운 나를 자각하려는 소박한 태도로 선을 실천해 나아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선에 대한 흔들리지 않는 확신을 가져야 하며 그리되기 위한 이론적인 뒷받침을 갖추는 것이 중요합니다.”
일상 기운데 나를 찾는다는 것은 행주좌와 어묵동정 을 말씀하는 것이리라. 그러나 감정에 끄달리기 바쁜 우리네 습성으로 보아 이 또한 얼마나 어려운 일일까 싶다. 그래서인지 스님은 자신을 깨닫기 위한 힘을 얻으려면 일단 반드시 좌선을 통해 입문해야 한다고 강조하신다. 선과 교에 대한 차별적인 견해가 팽배한 우리 불교의 현상 또한 선에 대한 다소 왜곡된 우월 의식과 교에 대한 경시에서 빚어지는 갈등 양상에 다름 아니라고 말씀한다. 스님은 불립문자, 교외별전에 대한 자기 편한식의 해석을 문제로 지적한다. 이를 선만 중시하는 의미의 말로만 볼것이 아니라 문자에 천착함 없이 어록의 문자에서 가르치는 참된 정신을 체득하기 위해 그 지침을 따라 실천 수행하라는 말이라 한다. 결코 교의 무의미함을 말한 것이 아님을 설명한다. 이는 우리 모두 안에 내재된 혼란 그리고 옳고 그름의 판단기준으로 까지
모호하게 작용하는 아집의 모순을 지적하는 말씀일 듯 싶다. 분별심이나 차별심 없는 공사상을 깨달아 자신이 주인이 되어 세계를 창조하는 불교사상의 넉넉함이 새롭게 다가온다.

법주사 강원, 동국대학교 졸업, 그리고 팔년 동안의 일본 유학이 끝난 해가 89년이다. 스님은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학문에 인연이 닿았을 뿐이라며 담담하게 말씀하신다. 그러나 스님은 일본 유학 시절 일본불교 교학의 철저성과 우수성을 충격적으로 경험했다고 하며 우리 불교의 노력하지 않는 자세를 걱정하신다.
‘일본에서 첫 세미나에 참석하고 놀랐습니다. 그들은 한 세미나를 준비하기 위해 막대한 분량의 원전과 자료를 읽고 소화합니다. 비록 자신의 전공이 아니더라도 과외적으로 마련된 다양한 세미나를 통해서 학문의 폭을 넓히는 일에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모습은 타성에 빠진 우리 불교의 입장에서는 굉장한 경외감이었어요.
갑자기 조급해지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생기더군요.”
스님이 공부한 고마자와 대학은 선종 중심의 세계적인 불교대학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에이지이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는데 좀더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공부하고 싶다는 생각에서 다시 고마자와 대학 석사과정 그리고 박사과정을 마쳤다고 한다. 선에 관한 대부분의 자료가 학교에 비치되어 있고 극도로 세분화된 연구과정과 전공 교수들의 세미나 발표 등 선학문을 위한 모든 지원이 보장된 곳이라 한다.
‘지금 우리는 종단에서 발간되는 모든 것을 총괄할 만한 책자 한 권이 대로 없습니다. 계보를 정확히 알 도리가 없어요. 승려 교육의 가장 중요한 전당인 강원에서조차 선의 역사와 사상에 대한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입니다.”
스님은 쉬어 가는 말 한 마디 , 흘려 버릴 말 한 마디 하는 법이 없다.
쉬어가기에는 해야 할 일이 많으신 듯, 스님은 선문화연구소를 초석으로 하여 선불교의 토대를 이루고 선 센터를 건립해야 할 일들이 사명감으로 여겨진단다.
선학의 본질은 깨달음의 사실을 객관적으로 규명하고 누구나가 납득할 수 있도록 분명히
밝히어 그러한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도록 가르치는 것이라고 한다.
곧 깨달음 체득 이전의 선결 과제라는 사실에 선학의 중요성이 있는 것이다. 역사적 , 사상적인 확인으로 형성된 흔들림없는 확신과 신심이 형성되었을 때에 비로소 원만한 선 수행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한다.
“실천은 철저한 개인 체험의 세계로, 흔히 물을 마심으로써 그 맛을 스스로 알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실천을 통해 체득되는 경험은 정말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실천정신과 그 방법을 불교경전과 어록은 모두 담고 있습니다. 선불교란 말은 이러한 입장을 대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느 하나만을 고집해서는 아니 될 일이지요.”
선학문과 실천 사이에서 느껴지던 분별심 탓이었던 듯, 처음에 언뜻 이해되지 않던 것들이 이제 어렴풋이 알 듯하다.

스님은 선문화에도 관심이 많다.
문화라는 것은 가슴으로 직접 가 닿는 느낌을 전달한다는 점에서 그렇다고 한다.
“선을 사상과 실천의 총체라고 본다면 그것은 곧 문화를 말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는 생활 전반을 의미하기도 하구요. 그래서 선문화적 접근 방식이 선을 생활 가운데서 일반화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 가운데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선의 정신을 문화로 표출하는 선문화는 진정한 의미의 불교 현대화이기도 하다고 말씀하신다. 절을 현대식으로 고치고 의식을 간소화하고 다소 흥에 겨워지는 식의 요란함이 현대화가 절대 아니라는 말씀이다.
‘현대에 느끼는 위기 의식을 극복하도록 하고 편안할 수 있도록 유도하여 불교 정신으로 가치관을 정립하는 것이 바로 오늘날 이루어져야 할 불교의 현대화가 아니겠어요.”
선화, 선묵, 선원의 건축 등 다양한 선문화의 양성화는 이를 통해 참된 자기의 창조적 삶을 영위할 길을 열어 주게 된다는 데 그 의의가 있다고 한다.
이는 곧 선불교의 대중화와 생활화로 이어지게 하는 계기로 역할하지 싶다.
성본스님이 관여하는 모든 일은 바로 선이나 선불교에서 출발하여 그 의의와 필요성이 부여되는 것들이다.
스님을 처음 뵈었을 때 스님은 “선문화 연구소 설립과 사업 계획” 이라는 조그만 책자를 건네 주셨다. 그 첫장에 설립 취지문이 대략 다음과 같이 명시되어 있다. “오늘과 같이 주체를 잃어버리고 인간성이 상실되고 있는 현대의 모든 사람들을 위해 선불교의 실천과 생활을 통해 자아를 자각하고 올바른 가치관을 확립할 길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는데 일익을 담당하고자 한다.”
선이라는 고정 이미지는 문턱이 높은 세계에 자리한 듯 싶다. 선문화, 선학문이라는 것들이 비록 대중화를 의도하고 있지만 반대로 선을 더욱 격상시키지는 않겠는가 하는 걱정에 스님은 단호하고 자신있게 대답하신다. 선문화연구소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은 전문적 연구와 일반성을 띤 대중 포교를 병행하는 데 있다고 하며 먼저 첫 과제는 전문 연구원 양성이라고 한다.
“조금 늦어지더라도 철저하게 엄선하여 옳고 구체적인 근거가 구비된 논문만을 선문화연구소 학술지에 게재할 예정입니다.
구체적이지 못하고 자기 사상에 경전을 적당히 편한대로 해석하여 인용 발표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일반 불자들에게 지침서가 될 수 있는 정확한 연구 발표지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학문 세계를 형성하지 못하고 남의 것들을 짜맞추는, 모자이크식으로 논문을 쓰는 풍토를 하루 바삐 벗어나 우리 고유의 학문 영역을 창조 형성해야만 한다고 밀씀하는 스님은 안타까움 이상의 것을 느끼고 계시는 듯 보인다. 선불교의 종합적인 연구기관과 함께 이루어질 대중화 계획도 치밀하다. 수련회처럼 선을 접할 수 있는 계기와
선 교양지 발간처럼 지속적으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기회를 제공하려고 계획하고 있다. 이러한 계획을 함께 이끌어 발현시킬 수 있는 열정을 가진 인재가 가장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입격출격入格出格 격식이나 틀 안에 완전하게 몰입하여 들어갈 때 다시 그 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말이다. 스님은 이 말씀을 선의 경지에 들어서기 위한 방법으로 예시하면서 오늘날의 한국 불교의 흐트러진 계율관도 함께 지적하신다.
“일본은 아직도 초발심에 나오는 엄격한 청규淸規를 그대로 지키며 수행하는 데 반해 그렇지 못한 우리네 상황은 깊이 반성되어야 합니다.”

스님은 말씀하시면서 거의 웃음을 띤 적이 없다. 말씀을 듣다보면 저절로 듣는 이의 경청 자세를 염두에 두지 않을수가 없게 된다. 스님은 진지한 모습으로 스님의 일들을 조목조목설명하시는데, 이러한 모습은 선불교의 토대 마련이라는 사명감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하는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직도 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바람의 매서운 입김에 도망치듯 날아가는 흰눈이 그래도 왠지 엉성해 보이는 것은 봄기운 탓이리라.
눈에 대해 한 마디 언급도 없이 비로소 환하게 웃으며 합장으로 인사해 주던 성본스님. “빗소리에 자신을 잃어버릴 뻔했다”는 ‘벽암록’ 내용을 어느글에서 인용하시며 주체로서 살아가야지 경계에 휘둘리지 말 것에 대한 당부가 떠오른다.
지금 이 발걸음 내딛는 순간부터 자아를 자각하려는 소박한 몸짓을 해야할 듯 싶다. 머지 않아 성본스님의 염원이 이루어질 날, 너와 내가 차별없는 법인으로 하나일 수 있음을 상상하며 바람 찬 거리로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