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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십지품華嚴十地品 삼가본사기三家本私記》번역본 출간을 앞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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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이야기 - 박원자 2002년 03월 241호
월간 ‘해인’이 어느덧 스무 번째의 돌을 맞는다고 한다. 사람으로 치자면 성인식을 치르고 어른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기자가 <해인>과 인연을 맺은 지 십년을 넘겼으니, <해인> 나이의 반 이상을 함께 한 셈이다. 개인적으로 ‘부처의 가르침’에 비로소 눈을 떴던 행복한 세월이었고, 많은 수행자들을 뵈며 귀한 가르침을 받았던 시간이기도 했다.
‘진리에 계합하는 말을 통하여 우리는 진리를 깨우치는 인간, 붓다가 될 수 있으리라’는 말처럼, 袖渼?그렇게 부처님의 말씀이 언어로 형상화 되어진 ‘경전’을 통하여 진리에 접근했고, 깨달은 만큼 기쁨에 젖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인해, <해인> 창간 20주년 기념 기획 취재를 《화엄십지품 삼가본사기》 한글 번역본 산실인 봉선사 능엄학림으로 가게 되었다.

전통강사를 키우는 능엄학림
봉선사 능엄학림에선 3월 15일 8명의 학인이 졸업하는데, 본래의 수업연한인 2년에서 1년을 더 넘기고도 전원 유급(?)한다. 공부에 한창 불이 붙은 학인 스님들이 ‘공부할 기회를 더 달라’는 게 전원 유급을 하게 된 이유다.
강주 스님인 월운 노강백를 모시고 《화엄경 청량소초》 80권본(한역)을 기본으로 그밖에 화엄학에 필요한 연관 논서를 공부한 그들은 졸업과 함께 3년간 공부한 결과물인 《화엄십지품華嚴十地品 삼가본사기三家本私記》를 내놓는다.
점차 없어져 가는 사기私記를 수집, 합편해서 원형복구를 해내고, 후인들이 보기 쉽게 정서하고 토를 달아놓은 이 작업은 교학능력이 저조한 한국불교계에 있어 쾌거라 할 만한 뜻깊은 일이 아닐 수 없다.
《화엄십지품 삼가본사기》는 연담유일蓮潭有一(1720~1799), 인악의소仁嶽義沼(1746~1796),설파상언雪坡尙彦(1707~1791) 세분의 사기私記를 말한다. 세 분 스님들의 학설을 집대성시킨 이 사기는 제방 강원의 강사 스님들의 필독서로 읽혀지고 있다. 하지만 읽기 어려운 초서로 되어 있는 데다가 내용이 어렵고 방대해 공부에 뜻을 둔 사람들에겐 접하기 어려운 자료로 알려져 있다.
능엄학림 학인 스님들이 《화엄청량소》를 공부하면서 세 분의 사기를 놓고 자신들의 공부도 하고 잘못된 곳을 고치고 미흡한 것을 보완하는 등 일련의 편집과정을 거쳐 ‘삼현三賢, 십지十地’ 부분을 끝냈는데, 전체의 삼분의 이 정도를 마친 셈이다. 경학을 공부하는 여느 곳에선 엄두를 내지 못할 이 작업의 주역은 역시 강주스님과 학인들이다.


과도科圖와 사기私記를 놓고 공부하는 방식은 우리 나라 특유의 경학연구 방식으로, 이를 이력履歷이라고 하는데, 뛰어넘는 것이 아니라 한걸음 한걸음 바닥을 뒤져간다는 뜻이다.
“혹자는 말하기를 사기의 출현은 학인들의 학구기능을 저하시킨 훈고학의 전형적인 병폐라 했지만 이는 능력이 있는 이에게 해당되는 말이요, 요즘같이 문장력이 약해서 때로는 한치 앞도 못 나가고 망망대해에 표류하는 심정일 때, 과도는 나침반과 같아서 방향을 가늠케 하고, 사기는 해로도海路圖와 같아서 주변정세를 알게 해주는 기능이 있다. 길 잃은 표류선에게 해로도와 나침반을 외면하라면 그 얼마나 우스꽝스러운 짓인가?” 《화엄십지품 삼가본사기》 개간서開刊序에서 월운 스님이 한 말씀인데. ‘이런 방식이 아니면 정확한 내용을 이해할 수 없다’며 서둘렀던 작업이다. 스님의 그러한 생각으로 인해 1기 졸업생이 ‘화엄 과도’를 완성했고, 2기 졸업생이 ‘사기’를 정리하기로 하고 ‘삼현’과 ‘십지’ 부분을 끝낸 것이다. 전체 분량이 끝날 경우 16절지 840쪽이 되는데, 이는 한국불교전서 2권 분량이다.
창호지에 초서로 휘갈겨 쓴 사기를 정서해내고 정서해낸 것에서 틀린 것을 잡아내고, 그것을 바탕으로 공부하며 다시 교정을 했던 강주 스님과 학인 스님들의 노고가 합쳐진 결과물이 《화엄십지품 삼가본사기》이다.
“자료를 구하기도 어려웠고, 어느 것이 세 분 스님의 것인지 몰라 애를 많이 먹었습니다. 또 이본이 여럿이어서 일일이 참조해 정서하다 보니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지요. 가끔 글자가 딱 막힐 때 앞뒤로 꼼짝 못할 때는 참 힘들었어요.”3년을 꼬박 알아보기 힘든 초서를 정서하고 토를 다는 데 보낸 현암 원민 스님의 말이다. 능엄학림 1기 졸업생이며 2기 연구생으로 있는 원민 스님은 비구니 스님으로서 유일한 월운 스님의 전강제자. 개인적으로 초서에 관심이 많기도 하지만, 후학들에게 법을 아끼지 않는 강주 스님에 대한 인간적인 감동이 없었다면, 아마 예까지 올 수 없었을 거라고 한다.

전통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수업
그렇다면 전통적인 교육방법이 시행되었던 수업방식은 어땠을까.
논강論講과 문강問講형식을 택해, 낮시간에 각자 공부한 내용을 저녁에 학인들끼리 논강을 하고 논강 내용을 토대로 다음날 수업시간에 학인 대표가 강주 스님 앞에서 발표하고, 강주 스님과 학인간에 질문과 토론을 하는 방식이 능엄학림의 수업방식.
학인들끼리 모여 앉아 논강을 시작할 때 산통을 흔들어 발표할 사람을 뽑는데, 다음날 강주 스님 앞에서 발표할 때는 어제 논강시간에 발표했던 사람이 또 하는 게 아니고, 다시 강주 스님이 흔드는 산통의 결과에 따라 발표할 학인이 뽑힌다.
이런 사정이고 보니 공부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처지. 게다가 무차별 메스를 가하는 강주 스님의 날카로운 질문을 피할 수 있는 재주는 없다.
어디 그뿐인가. 소·却?나오는 수많은 전거들을 일일이 찾아서 대조하고, 토도 없는 상태에서 공부를 죽어라고 해가도 처음엔 강주 스님의 뼈있는 말씀을 피할 수 없었단다.
산통에 의해 발표할 운명에 처한 학인이 해석를 끝내면 강주 스님의 뼈아픈 말씀 한마디가 떨어진다.
“그래, 하기는 잘하는데 봉사가 파밭 매놓은 것 같구나.”말 그대로 눈먼 사람이 뭐가 뭔지 몰라 파밭을 파놓은 것처럼 내용을 들쑤셔놓은 학인에게 이른 말씀이다.
의욕이 넘쳐 이것저것 엮어내는 학인에게 이르시는 말씀은 ‘마치 도련님 장작 패놓은 것 같구나.’하시고 어쩌다 모양좋게 깔끔하게 해놓으면 강주스님이 살을 붙이며 ‘그건 꼭 머슴 장작 패놓은 것 같구나’라는 말을 듣는다.
학인들이 받는 상처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여러 번 설명을 해주었건만 기억을 해내지 못할 땐 드디어 화를 내시며 하시는 말씀은 오랫동안 치유되기 어려운 상처로 남는데, 이 말씀은 외부엔 비밀, 밝힐 수 없단다.
그러니 여간한 강심장이나 후안무치 아니면 공부를 안할래야 안할 수 없는 상황, 이를 삼킬 수 없는 학인은 보따리를 싸야 한다. 그래서 학인들은 여름, 겨울 방학 3주중 한 주 정도 쉬고 나머지 기간?다시 공부에 몰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처음엔 강주 스님 채찍 피하다가, 나중엔 도반들 채찍 때문에 공부하게 됐지요.”어떠한 사안에서도 불교적 사고를 전개할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하고 강원을 거친 다음 능엄학림에 왔다는 한 학인 스님의 말이다.
오죽하면 북한강이 봉선사와 지척이건만 3년간 한 번도 나가볼 엄두를 못 내었겠는가.
“저희들이 공부 안한 것은 물론, 무얼 모르는지도 귀신처럼 아세요. 솔직히 학문하는 즐거움으로 힘낸 것보단 망신당하지 않으려고 공부했지요.” 그러함에도 그런 고단함을 즐거이 받아들여 졸업을 하고도 더 남아 있겠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강주 스님의 가르치시려는 욕심은 정말 대단하세요. 승속을 구분하시지 않고 무제한적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드는 훌륭한 조련사라고 할까요.”원민 스님의 말이다. 실력이 다소 부족해도 분별하지 않고 가르침에 아낌이 없는 그러한 스승을 만난 것을 최대의 복으로 여기고 있음은 학인 스님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주지로 학장 소임에 있는 일면 스님의 얘기를 들어보면 봉선사 능엄학림에 왜 학인들이 들어오고 싶어하는지 알 수 있게 한다.
“강주 스님은 연만하신데도 언제나 가보면 책상 앞에 앉아 계십니다. 다음날 수업을 위해서 너댓 시간은 할애하고 계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후학들에 대한 정성을 보면 정말 존경을 안할 수 없습니다. 방사가 충분하지 못해서 미안한 마음이나, 공양이나 그밖의 다른 것은 최대한 성의를 다하려고 합니다.” 학인 스님들이 머무는 서암에 가보면 때로 풀을 제때에 뽑지 않아 수북해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물에 떠내려가도 책 읽고 앉아 있을 정도로 그렇게 집념을 보여야 하지 않겠느냐는 게, 교육여건 마련과 지원의 소임을 책임지고 있는 주지 스님의 생각이다.
그러나 학인들이 강주 스님에게 일격을 가하는 게 꼭 한 가지 있으니, 다름 아닌 컴퓨터로 뽑아온 자료를 들이미는 것. 컴맹인 노강백이 꼼짝없이 당하는 일이다.
그리고 요즘엔 밤을 밝혀 공부하는 학인들에게 부드러운 음성으로 그러신단다.
“아 거, 웬만하면 11시 되걸랑 불들 꺼.”

교학적 이론이 탄탄해야 제대로 중노릇
능엄학림은 한국불교의 종지와 종풍을 이어 전래의 교학을 연찬하며, 이를 수행과 실천을 통해 계승,발전시킬 역량을 갖춘 수행자로 전통교육의 강사를 배출하는 교육을 목적으로 설립되었다.
1966년 2월 학림이 개원되어 1998년 11월 제1기 졸업식에 8명이 졸업했다. 1998년 12월 동안거 결제일에 제2기 능엄학림 개강되어 3월 15일 졸업을 앞두고 8명의 학인과 세 명의 연구원 및 2명의 청강생이 있다.
기본교육기관(중앙승가대학,각지방승가대학, 동국대학교)를 이수한 자로 특히 한역경전을 토 없이 해독하고 논강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자에 한해 뽑고 있다. 경학이 중시되고 있지 않는 한국불교 풍토에서 능엄학림이 제방에 공부할 만한 곳으로 소문이 나있고, 2기 졸업생 전원이 그대로 머물러 다시 3기로 진학해 공부할 뜻을 두고 있을 만큼 전통강사를 키워내는 장으로서의 역할이 탄탄하다.
이는 우리 나라에만 있는 전통적인 교학방식으로 공부시켜 ‘쫄쫄한 강사’를 배출시키려는 강주 스님의 생각이 실천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교학이 제대로 이뤄져 실력을 갖춘 강사가 나와야 불교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고 교학이 발전할 수 있으며, 우리 나라 스님의 수 1만 5천명 중 십분의 일은 강사급이 되어야 한다는 게 스님의 지론이다.
“경전을 바탕으로 한 방대한 이론이 없으면 중생을 이끌어나가지 못합니다. 그리고 서양철학 등 다른 학문과 비교해 프로그램을 짤 수 있어야 해요. 그냥 주먹구구식으로 공부하다간 학문시장에 나가 불교식 발언을 할 수 없습니다.”경전을 넓고 심도있게 공부하고, 주변학문까지 공부해 시야가 좁은 강사가 되지 말며, 대중청규에서 처지지 않는 강사가 되기를 바라는 강주 스님이 버티고 있는 한, 그리고 강주 스님의 뜻에 부합해 불철주야 학문에 매진하고 있는 학인 스님들이 건재하고 있는 한 한국불교의 미래는 밝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