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요즘 종단에선 제도 개혁을 위한 논의가 다시 진행되고 있는 모양이다. 효율적인 종단 운영과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불교가 제 역할을 하려면 지금까지 여러가지 문제점들에 미루어 제도들을 고쳐서 잘 할 수만 있다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불교의 제도 개혁은 넓은 의미로 종교 개혁이라고 xc할 수 있을 것 같다. 종교 개혁이란 밀에서는 기독교의 그 말에 익숙해져 있음인지 쉽게 “신앙 개혁’ 이라는 용어가 떠올려진다. 기독교는 신앙의 종교이니 개혁은 당연히 신앙개혁이었다. 반면에 불교는 수행의 종교이다. 지금도 우리 불교의 근간은 수행, 또는 수행하는 스님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 같다. 제도 개혁이란 주제로 어쩌다 토론이라도 하면 반드시 나오게 되는 ‘근본적인 개혁이 이루어져야 된다” 는 말을 이쯤에서 상기해 보자. 우리의 근본이란 말할 것도 없이 앞에서 언급한 수행이다. 불교의 개혁은 수행을 중심으로한 개혁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보
조국사께서 당시 숭려들이 명예나 이욕에 끄달리는 타락상을 개탄하고 진실하게 발심하여 수도하기를 제창하신 「정해결사」가 그것이었고, 조선조 보우스님께서 승과를 회복하고 도첩제를 실시하게 된 것도 수행 풍토의 혁신을 위한 것이었다.
미루어 보아서 제도 개혁 논의가 오고가는 이즈음 좀더 심각하고 구체적인 ‘근본적인 개혁’(개혁이란 말이 어울릴지 모르지만)을 생각해 보고 토론해 볼 때인 것 같다. 단순히 모양새나 바꾸는 개혁이 아니라 진정 우리의 교세를 회복할 수 있고 내실을 기할 수 있는 개혁이 어떤 것인지를.
여기서 필자는 수행 방법의 재검토를 통한 개혁이라는 말을 조심스럽게 해 본다. 앞의 글에서 지적한대로 사회 환경들의 변화는 우리들의 인식 구조를 변화시켜 놓았고 변화된 인식 구조는 새로운 수행법들을 요구하고 있다. 또 환경의 변화는 수행 방법에서도 다양화와 특정화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요구들을 우리의 수행 영역권 안에 수용 해야 한다. 이러한 다양한 수행법이 있을때 우리는 근기에 따라 선택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요즈음 승가일부나 재가 불자들이 해외 여행 자율화 덕택에 근본 불교 쪽 수행을 배워서 수행하는 예가 늘어 가고 있다. 위빠사나 선이 그것이다. 우리나라에 위빠사나가 소개된 지도 수년이 되었는데 아직 선가에서는 그 이해의 정도가 옛날 소승선을 이해하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않은 것 같다. 얼마 전 선원에서 해제하고 나온 도반에게 남방의 선원에서 위빠사나 수행을 하고 왔다니까 ”그곳에도 선원이 있어? 관법 수행 말이지” 하고 물을 정도였다.
염불선에 대한 이해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외도의 수행법, 하열한 근기의 수행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재 수행법에 대한 우리나라 간화선의 독선과 배타성은 스스로 그 한계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극단적인 편견은 굳이 간화선만이 아닌 것 같다. 위빠사나선이나 염불선도 이런 면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방법상의 이런 독선과 배타성은 우리가 가끔 입에 담는 유일신 종교의 그것과 별반 다름이 없다.
부처님께서는 법에 대해서 “와서 보라고 하셨다. 실제 경험해 보고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라는 말씀이다. 부처님 경전에 근거한 수행법이라고 해서 절대적으로 옳다고 해서도 안 될 것이고 소승불교권의 수행법이니 무조건 하열한 것이라고 단정해서도 안 된다. 경전에 근거한 수행법이니 최고의 수행법일 수도 있고 또 조사 스님들의 밀씀처럼 하열한 수행법일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스스로 얼마나 경험해 보고 판단하느냐이다. 위빠사나선이나 염불선을 얼마나 알고 수행해 보고 비판을 하는지 스스로들 냉정하게 자문해 봐야 한다. 지금까지 들어온 말들로 그냥 판단한다는 것은 무엇에든 냉철해야 하는 수행자로서의 태도라고 할 수 없다. 아무튼 어느쪽이나 극단적으로 편향된 상대 인식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차제에 선우도량에서 새 수행법에 대한 세미나를 갖는다고 하니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자리들을 같이하여 서로 다른 수행법들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가 자주 있어야겠다. 그래서 서로의 수행법을 인정하고 더불어 존재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언젠가는 이 선원에서는 간화선, 저기에선 묵조선, 또 저곳에선 위빠사나선, 염불선 등 이렇게 전문화되고 다양화되어서 근기에 맞추어 정말 재미나게 수행할 수 있는날이 빨리 왔으면 하는 바람이다.
질 좋은 일등품으로써 고슬고슬한 밥을 짓지 못하고 죽이나, 탄밥, 설익은 밥을 짓는 어리석음은 더 이상 범하지 않을 그런 근본적인 개혁을 꿈꾸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