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룡파 담당 선사와의 만남
송대의 임제종은 북송에서 활약한 황룡파와 남송에서 흥기한 양기파로 대별된다. 대혜는 양기파에 속하는 원오극근悟克勤(1063~1135)의 법을 이었다고 하지만, 먼저 황룡파에 속하는 담당문준堪(湛)堂文準(1061~1115)에게서 배웠다. 담당 선사는 임제종 황룡파의 시조로 알려진 황룡혜남黃龍慧南(1002~1069)의 제자인 진정극문眞淨克文(1025~1102)의 제자이며, 또한 고려후기에 전래된 《임간록林間錄》으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각범혜홍覺範慧洪(1071~1128)의 사형이기도 하다. 대혜는 처음에 담당 선사를 시봉하면서 그의 가르침을 배웠다. 그 때의 문답을 보면 문준의 아래에서 대혜가 어떻게 공부하였으며, 나아가서 당시 송대 선가의 중심 과제가 무엇이었는지 엿볼 수가 있다.
하루는 담당 선사가 말하였다.
종고 상좌는 선을 일시에 이해할 수 있는가? 너는 한 마디 이를 수 있는가? 너에게 염고, 송고, 소참, 보설을 짓게 하면 너는 지을 수 있는가? 다만 한 가지 일인데, 너는 도리어 알지 못하고 있다.
이에 대혜가 대답하였다.
제가 무엇을 알지 못합니까?
담당 선사가 말하였다.
너는 한 가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나와 말할 때는 선이 있지만, 방을 나가면 선이 없다. 깨어 있을 때는 선이 있지만, 잠이 들면 없다. 이와 같이 해서 어떻게 생사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대혜가 대답했다.
바로 그것이 제가 의심하고 있는 점입니다.
이 문답은 대혜가 26세 때(1114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대혜보각선사연보大慧普覺禪師年譜》(이하 줄여서 《大慧年譜》라고 함)나 《종문무고宗門武庫》에 나온다. 여기서 문준은 ‘선이란 다만 한 가지 일’이라고 규정한다. 그러자 대혜는 ‘그 한 가지는 무엇인가’ 라고 질문한다. 이 점에 대해서 담당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결국 이것은 대혜 간화선의 형성에 중요한 사상적 토대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첫째로 그대는 선을 ‘일시에’ 이해할 수 있는가 하는 질문이다. 이것은 혜능 이후에 확립된 중국선의 전통적인 조사선과 관련되어 있다. 사실 선은 결코 점차로 이해되는 일은 없다. 그것은 언제나 일시에 몰록(단박에) 이해된다. 이것이 선이다. 그 대상은 바로 ‘다만 한 가지로서’ 생사生死 대사大事이다. 생사에 관한 깨달음은 결코 점차로 이해되지 않는다. 어느 순간에 눈앞에 분명하게 드러날 뿐이다. 그대는 이 점을 알고 체득하고 있는가, 라는 질?甄? 뒤집어 말하면, 대혜 너는 생사를 알지 못하고, 그것을 일시에 통달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두 번째는 염고拈古, 송고頌古, 소참小參, 보설普說을 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염고는 고칙공안古則公案을 들어서 해석하고 평가하는 것이고, 송고는 조사가 남긴 고칙에 게송을 첨가하여 그 뜻을 선양하는 것이며, 소참은 법당에서 이루어지는 대참(上堂法門)에 대해서 선방에서 삼 일이나 팔일에 정기적으로 이루어지는 작은 법문을 말하고, 보설은 송대에 들어와서 유행된 설법으로 일정한 격식에 매이지 않고, 축원하는 보단普壇에서 설하는 법식을 말한다.
이런 선가의 양식은 송대에 들어와서 국가에 의해 총림이 확고하게 자리잡고, 그로 말미암아 집단적인 대중생활이 시작되면서, 형성된 설법의 양식이다. 대중 앞에서 이런 법문을 하거나 고칙공안에 논평을 할 수 있다는 것은 깨달음을 대중에게 공증하는 퓜見?가진다. 이렇게 송대에서 선수행은 개인적인 사건을 넘어서 집단적인 공인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이 점을 대혜에게 요구하는 담당의 처사를 볼 때, 그만큼 송대에는 스승의 정기적인 ‘문답’과 ‘점검’이 실질적으로 살아 있는 시대였다고 평가된다.
세 번째로 지적한 사항은 깨어 있을 때나 잠들어 있을 때나 한결같이 거기에 선이 있는가, 라는 지적이다. 이것은 간화선 수행의 과정인 소위 좌복에 앉아 있거나 일상의 생활 속이거나 한결같음의 동정일여動靜一如, 깨어 있는 때나 꿈을 꿀 때나 한결같음의 몽교일여夢覺一如, 꿈이 없는 깊은 잠에서도 현전하는 오매일여寤寐一如라는 삼단공부를 묻는 질문이다. 이것 역시 송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논의되었으며, 수행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과정, 통과의례로써 인식하고 있었음을 보여 준다.
간화선 성립 환경의 세 조건
담당의 지적 사항들은 대혜의 간화선이 어떤 사상적인 환경에서 성립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 주고 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오늘날 한국 간화선 수행의 풍토와 비교하여 볼 때, 중요한 시사점과 교훈을 던지고 있다는 점에서 다시금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첫째, ‘다만 한 가지’라는 인식인데, 그것은 다름 아닌 삶과 죽음의 문제이다. 이것은 간화선 성립의 가장 원초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왜냐하면 간화선이란 삶과 죽음에 대한 실존적인 자기 물음에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자기를 향한 질문, 이는 예부터 지금까지, 또한 앞으로도 변함없는 인간의 고유하고 보편적 특성이기도 하다.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은 스스로 자신의 정체성을 묻는다. 그럼으로써 인간은 성숙한다. 바로 이것이 간화선의 출발점이며, 간화선이 존재해야 하는 현실적인 근거이다. 이는 쉽고 어렵고 하는 방법적인 문제가 아니라, 절박한 생존의 자기 문제이기도 하다.
둘째, 송대에서 ‘총림제도’는 ‘점검시스템’이라는 간화선 실천을 위한 환경설정을 보여 준다는 것이다. 교학에서 말하는 점검은 경전에 대한 이해나 해석방식을 시험한다. 그러나 경전을 중시하지 않는 간화선에서는 스승과의 실제적인 ‘문답과 점검’이 절대적으로 중요한 생명줄이 된다. 오늘의 시대에 간화선이 새롭게 다시 점화되어야 한다면, 필수적으로 간화선 성립의 실질적인 토양인 ‘문답과 점검의 시스템’이 복원되어야 한다고 본다. 만약 이것이 부실하거나, 형식적인 정기행사로만 그친다면, 간화선은 박물관에 보관된 당·송시대唐宋時代의 동어반복(死句)밖에 되지 못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간화선 경영의 척도는 바로 ‘지금 여기’의 현실적이고 효과적인 수행점검에 대한 성공 여부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만약 문답에 의한 체계적인 점검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그 곳엔 실질적으로 간화선은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셋째, ‘일시에’ 폭발하며 깨닫는 순간을 중시하는 간화선 수행에서도, 과정으로서 오매일여와 같은 공부법이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바로 ‘그 순간’을 귀중하게 여기지만, 여전히 그 과정과 방법을 소홀히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간화선 행자는 구체적인 실천과정에 대한 보다 세부적인 현상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만약 분명한 경험과 그에 따른 객관적 기준이 없다면, 마치 여행자가 여행을 하면서도 자기가 어느 곳에 와 있는지를 모르는 것과 같아, 안개 속을 걷는 듯 자신의 길을 포기할지도 모른다.
이 세 측면은 송대 간화선 형성의 사상적인 토양이지만, 이는 오늘날 간화선뿐만 아니라 모든 수행자와 수행법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기본적인 환경설정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것들은 마치 여행자에게, 왜 여행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동기, 이미 경험 있는 사람과의 문답, 그리고 여행하게 될 코스에 비견된다. 이 가운데 하나가 없으면, 행자는 효과적으로 여행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혜가 완전하게 깨달음을 성취하기도 전에, 27세가 되던 1115년에 불행하게도 여행의 안내자 격인 담당문준 선사는 입적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