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비와 부도는 불교의 생사관 · 자연관을 보여주는 야단법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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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리포트 - 편집실
2002년 02월 240호
지난 1월 6일 해인사에서 봉행된 혜암 종정의 다비식茶毘式은 온나라 국민이 지켜본 야단법석이었다. 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해 온 혜암스님의 고결한 삶을 다시 되새기는 큰 법회였다. 아울러, ‘묘지공화국’이란 오명을 씻는 방법으로써 불교의 다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고 있다.
혜암 스님의 다비식에 함께 한 불자만도 3만 명에 이르렀으며, 전국의 모든 사찰에서는 범종을 울려 혜암 스님의 다비식에 함께 했다. 추모의 정 때문이었다면, 사람들이 많이 모인 집회 이상이 되지 못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 자리를 법회라고 한다. 다비식에 그 의미가 담겨져 있다.
《석문가례초釋門家禮抄》 《승가예의문僧家禮儀文》 등에 다비식의 순서와 작법, 의식문이 실려 있으며, 오늘날의 다비식은 《승가예의문》을 대부분 따르고 있다. 준비 의식인 삭발, 세수洗手, 세족洗足, 새 의복으로 갈아 입는 착군着裙, 착의着衣, 착관着冠, 영가를 맞이하는 정좌正坐, 입관入棺 의식인 입감入龕, 발인 의식인 기감起龕, 화장 의식인 거화擧火·하화下火, 유골을 처리하는 습골拾骨·쇄골碎骨·산골散骨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각 과정마다에 의식이 뒤따르며, 의식문을 낭독한다. 이 의식문에 다비의 의미가 담겨 있다. 박경준 동국대 교수는 “준비 의식은 수도修道를 주제로 하며, 본 의식 가운데 거화·하화는 열반을, 습골·쇄골·산골은 회향廻向을 중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라며 “다비의 전 과정은 끊임없이 정진하여 번뇌를 끊고 해탈과 열반에 이르는 수행의 도정道程”이라고 풀이한다.
따라서 다비식에 참석한 대중들은 단순한 참석자가 아니다. 고인과 함께 열반의 법연에 이르는 수행자가 된다. 한 수행자의 삶을 마무리하는 의식을 지켜보는 자리가 아니다. 열반에 이르는 수행자의 자세를 다지는 법석의 동참자인 것이다. 《승가예의문》에 실려 있는 입감 의식문을 보면 확연하다.
“대중은 말해 보시오. 과거불(古佛)도 이렇게 갔고 현재불(今佛)도 이렇게 갔으며, 모 영가도 이렇게 갔으니 어떤 물건이 감히 부서지지 않으며 무엇이 길이 견고하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은 알겠는가? 영가와 삼세제불이 일시에 성도하고 영가와 십류十類 군생群生이 같은 날 열반에 듭니다. 아직도 혹시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까?눈 달린 석상이 조용히 눈물 흘리고 벙어리 동자가 가만히 탄식을 합니다.”(박경준, 《다비와 사리》, 대원사, 47쪽에서 재인용)혜암 스님의 다비식은 또한 불교의 전통 장례법인 다비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고 있다. 다비를 다른 말로 하자면 화장火葬인데 시신을 태워 처리하는 방법이다. 장례법은 여러 방법이 있는데, 땅에 묻는 매장埋葬, 옷을 입히거나 관에 넣어 풍화風化시키는 풍장風葬, 강이나 바다에 장사지내는 수장水葬, 새의 먹이로 시체를 제공하는 조장鳥葬의 방법도 있다. 최근에는 나무 밑에 묻어 거름으로 쓰이게 하는 수장樹葬의 예도 나타나고 있다.
우리 나라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방법은 시신을 땅에 묻고 봉분을 쓰는 방식이었다. 유교의 전통 때문이었는데, 최근 들어 매장 후 봉분을 쓰는 장례법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묘지로 인해 국토 사용이 제한받기 때문이다. 다음의 몇 가지 수치를 보면, 장례법을 바꾸어야 한다는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다.
보건복지부의 98년 통계인데, 묘지 면적이 서울시민들의 주거 면적보다 넓다는 데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전국의 묘지 수는 1998만 기, 묘지 면적은 전 국토의 1% 정도인 약 996㎢이다. 대부분의 묘지가 산에 있는데, 묘지가 산림 훼손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전 국토의 산지가 66%나 되면서도 30년생 이상의 나무가 11%밖에 안 되는 것을 보면, 묘지가 얼마나 산림 훼손에 영향을 미치는가를 알 수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매년 20만 기의 묘지가 새로 조성되어, 여의도 면적의 1.2배인 약 9㎢의 산지가 묘지로 변하고 있다. 묘지 1기의 평균 면적은 50㎡, 이 크기는 98년 기준 서울시민의 1인당 주거지역면적 29.1㎡의 1.72배에 해당한다. 죽은 사람이 산 사람보다 더 넓은 땅을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김창석 서울시립대 교수, 동아일보 2001. 3. 22, 장묘문화 개선을 위한 시민토론회) 이 정도라면, 묘지공화국이란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다.
다행히 최근의 몇몇 여론조사를 보면, 화장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어 매장 위주의 장례법이 화장 후 납골당 안치 또는 산골散骨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음을 보여 주고 있다. 언론에서도 화장 선호도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를 자세히 보도해 장례문화의 변화를 이끌고 있다.
박경준 교수는, 다비에 의한 장례법이 인도 불교 이래 불교의 전통이 된 원인을 세 가지로 요약하고 있다. 첫째, 아열대성 기후라는 인도의 기후적 특성 때문에 시신의 부패를 막는 데는 다비가 적격이었을 것이다. 둘째, 부처님의 장례를 다비한 데서 연유했다고 볼 수 있다. 셋째, 불교사상적 의미를 부여하는 데 다비가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다비에는 땅·물·불·바람의 네 가지 요소로 구성된 육신을 다시 원류로 되돌려 보낸다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다.(《다비와 사리》 13쪽)한국토지행정학회의 지난해 4월 여론조사에 따르면, ‘본인 사망시 화장을 원한다’는 응답이 63.4%로 나타났다. 83년 조사 때의 25%보다 2.5배나 늘어났다. 한국갤럽의 조사(2001. 4)에서도 화장 선호도는 62.2%로, 매장을 선호한다(37.8%)는 응답보다 훨씬 높았다. 서울시가 지난해 10~12월 납골 시설을 견학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화장을 유언으로 남기겠다’는 응답이 85.5%를 차지해 앞의 두 조사보다 20%포인트 이상 높게 나타났다. 화장 시설의 고급화가 화장에 대한 혐오감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조사이다.
유림의 본고장으로 불리는 안동시민들의 화장에 대한 인식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동아일보 2001. 10. 25자는 “주민들의 화장 이용도 크게 늘어 올들어 10월 현재 화장 건수는 858건으로 지난해 이맘때의 536건에 비해 60%가량 늘었다. 내년에 가족납골묘를 만들겠다고 신청한 경우도 34건에 이른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여전히 전국 단위의 화장률은 99년 현재 30.7%로 낮은 수준이다. 화장보다 매장하는 것이 효도라는 관념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것인데, 전국의 묘지 가운데 40% 가량이 무연고 분묘라는 것과 대비해보면, 매장하는 것이 효도라는 말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프랑스 사람들은 한 달에 2회 성묘하고 있는데, 공동묘지가 주거지역에 가까이 있기 때문이며, 공동묘지 옆의 주택은 타지역보다 비싼 점이 특징(유럽지역 장묘제도 연수보고서, 보건복지부 사회복지정책실, 1999. 11)이라는 얘기를 들으면 더욱 그렇다. 오히려 접근성이 좋은 도시 주변의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하고 자주 찾는 것이 효도이며, 가족의 의미를 되새기는 일이 될 것임은 자명하다.
현재, 우리 나라의 장묘문화는 매장이 주류를 이루는 가운데, 화장 후 납골당 안치 쪽으로 흐르고 있다. 납골당이 새로운 사업으로 떠오르면서 홍보에 열을 올리는 현상의 반영이다. 납골당에 유골을 안치함으로써 묘지에 의한 국토 잠식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납골당 안치가 최선이라는 답변은 유보해야 한다. 화장 후 유골을 산이나 강, 바다에 뿌리는 산골의 방법도 있다. 불교에서 화장 곧 다비가 장례법으로 이어져온 연유를 알면, 어떤 방법이 가장 좋은 것인지는 분명해진다.
불교식 장례법의 가장 압축적인 상징은 다비와 부도이다. 산사의 초입 또는 뒤편에 서 있는 부도는 불교의 생사관, 자연관을 그대로 보여 주고 있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고인들은 결코 부도조차 허락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