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무렵, 공양주供養主를 계속하며 행자行者로서 당시 가야총림伽倻叢林의 조실祖室이신 효봉曉峰 스님을 찾아뵙고 “무無” 자字 화두話頭를 결택받아 생사生死를 뛰어넘는 용맹정진을 계속하였으니 그 정진력精進力은 타他의 추종追從을 불허不許하였다.
어느 날, 밥을 푸다가 대분심大憤心이 일어나 소임을 다른 스님에게 부탁하고 백련암 뒤편 환적대로 올라갔다.
환적 스님이 공부했다는 환적굴은 찾지 못했으나 다른 바위굴에서 “일주일 안에 도道를 깨치지 못하면 죽어도 좋다”는 결연한 각오로 물 한 모금 마시지 않고 장좌불와長坐不臥하며 일주일 동안 삼매三昧에 들어 단식斷食 용맹정진勇猛精進하였다.
이 때, 해인사 대중들은 스님을 찾으러 가야산을 헤매고 다녔다.
인곡麟谷 선사께서 행자를 보자 대뜸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행자는 “아 ~ 악” 하고 일할一喝을 하였다.
또, “네 고향이 어디냐?” 하시니
행자는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힘껏 내리쳤다.
그러자 또, “네 이름이 무엇이냐?” 하셨다.
행자는 즉시 손가락으로 허공에다 일원상一圓相을 그렸다.
선사께서 다시 말씀하시기를
“우리집 소가 여물을 먹었는데 이웃집 말이 배탈이 났다.
천하天下의 명의名醫를 불러서 말의 병을 고쳐달라고 했더니 아랫집 돼지의 넓적다리에 뜸을 떴다.
이 이치理致를 알겠느냐?” 라고 물으셨다.
그러자마자, 행자는 주먹을 앞으로 불쑥 내밀었다.
이에 인곡 선사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행자의 머리를 만져 주시고 상좌上佐로 받아들였다.
수계하자마자, 구참납자久參衲子들의 용맹정진 도량인 퇴설당堆雪堂 선원禪院에 방부를 들이려 하자 갓 계받은 사미라 하여 대중들이 반대하였다. 그러자, 효봉 조실 스님께서 “공부하는 데 구참久參, 신참新參이어디 있느냐, 성관性觀 수좌만큼 공부하는 사람이 있느냐?”고 하시자 대중들이 아무 말을 못했다.
1947년(28세) 봄, 첫 안거를 마치고 곧바로 오대산五臺山 상원사上院寺로 행각行脚하여 한암漢岩 스님을 모시고 사부대중四部大衆과 함께 봄 안거安居를 하였는 데 소임은 종두鐘頭였다.
어느 날 새벽, 화두일념話頭一念에 들어 종송鐘頌을 하였으나 종이 제대로 쳐지지 아니하였다.
이 때 종소리를 묵묵히 듣고 계시던
한암 스님께서는 “저 수좌가 참으로 공부하는 납자衲子다” 하시면서 크게 기뻐하였다.
이듬해 봄에 김룡사金龍寺 금선대金仙臺에서 마음이 밝아져 조사祖師의 말씀에 걸림이 없었다.
그리하여, 당시 해인사에 주석住錫하고 계시는 인곡麟谷 은사 스님을 찾아뵈니 “옛날 덕산德山 스님께서 남방으로 가는 도중 점심을 먹으러 떡집에 들어가서 노파에게 ‘떡 좀 주시오’ 하니 노파는 ‘등에 지고 있는 것이 무엇이오?’ 하고 물었다.
이에 덕산 스님은 ‘금강경 소초疏抄요’ 하였다.
그러자, 노파가 금강경에 ‘과거심過去心도 불가득不可得, 현재심現在心도 불가득不可得, 미래심未來心도 불가득不可得’이라 했는데 ‘스님은 어느 마음에 점點을 하겠오’ 하고 물으니 덕산 스님이 아무 대답을 못했다 한다. 그러면, 너는 어느 마음에 점點을 하겠느냐?” 라고 물으셨다.
혜암 스님은 “저는 무조건 떡을 먹겠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운허耘虛 스님께서 보제루에서 능엄경楞嚴經 법회法會를 열었다.
법회시간에는 학인學人뿐만 아니라 선원 대중도 모두 참석하였으나 혜암 스님은 일일일식一日一食, 장좌불와長坐不臥, 묵언默言하며 오직 면벽정진面壁精進만 할 뿐이었다.
해제시解制時에 동산東山 스님께서는 “이번 철에 참으로 공부한 수좌는 혜암뿐이다.” 하시며스님에게만 안거증安居證을 주셨다.
동화사에서 정진할 때의 일화이다.
어느 날, 길에서 우연히 금오金烏 스님을 만나뵙고 내원암 입구에서 쉬게 되었는데, 이 때 금오 스님께서 바위에 새겨진 “제악막작諸惡莫作 중선봉행衆善奉行 자정기의自其意 시제불교是諸佛敎”라는 글을 보시고 그 뜻을 일러 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자, 스님은 금오 스님의 턱 밑에 주먹을 대고 뒤로 사정없이 밀어 버렸다.
이에 금오 스님께서는 “동화사에도 사자새끼가 한 마리 있군.” 하시며 좋아하셨다.
이 해 겨울, 오대산에는 유난히도 눈이 많이 내렸다.
폭설이 쏟아진 어느 날 아침, 혜암 스님은 포행을 나갔다가 두 눈에 시퍼런 불을 켜고 쏘아 보고 있는 호랑이를 만났다. 스님도 생사를 돌아보지 않고 용맹정진해 온 납자衲子답게 두 눈을 부릅떴다.
잠시 후 호랑이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더니 조용히 사라져 버렸다.
이듬해 여름에는 인천 용화五戒ㅮ祈?올라가 전강田岡 조실 스님을 모시고 선덕禪德으로 정진하였는데 스님의 선기禪機가 빼어남을 보고 전강 스님께서는 대중들에게 “혜암 수좌는 배우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 조실을 가르치러 다니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그 자리에 있던 비구·비구니와 우바새·우바이는 이를 듣고서 모두 크게 기뻐하며 더욱 신심을 내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