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과 선지식
우리는 지식의 의미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보통 ‘지식’이라 하면 일반적으로 생각하여 아는 작용 또는 지혜와 식견, 지력 따위를 뜻한다. ‘지식인’의 의미도 그저 많이 배운 사람, 많이 아는 사람, 명문대학 출신, 박사학위 소지자들에 고정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지식 사회란 뛰어난 두뇌와 학력의 소유자만이 우위를 점하는 사회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지식사회로의 진전은 지식의 의미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필요로 한다.
지식이란 본디 칼야나미트라(KaIyanamitra)라는 범어에서 유래하였으며, ‘벗’, ‘친구’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이를 한역으로 선지식先知識라 하였으며, 지식이란 선지식을 줄인 말이다. 곧 벗으로 사귈만한 훌륭한 사람 또는 스승이라는. 뜻이다. 속세를 떠나 출가하는 사람도 사실은 자신에게 평생의 가르침을 줄 선지식을 찾아가는 것이다. 인간의 행 또는 불행은 모름지기 자신에게 달려있으나, 자신 이외에 외적요인으로써 좋은 친구(善友)가 매우 중요하다는 뜻을 담고 있다.
이렇듯 지식이란 무엇을 안다는 그 자체보다는, 아는 사이(知人)를 중요시 하여 인간 상호관계에 의해 이루어지는 총체적인 규모의 지식체계를 뜻하는 것이다. 이는 어느 한 개인의 ‘앎’이란 극히 보잘 것 없는 것으로써, 수많은 사림들의 다양한 인식과 이해를 망라하여 연결한 체계를 중요시한 개념이다.
따라서 아무리 뛰어난 지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독립된 개체로서의 가치보다는, 다양한 인간과 조직, 그리고 데이터베이스 둥 무한한 정보원(源) 과의 상호의존관계에서 파생되어 새롭게 창출될 수 있는 가능성에 비중을 두어야 한다. 이제는 지식도 특정 개체의 범위에 한정되어 있던 폐쇄적인 개념에서 벗어나, 열려 있는 가치에 뜻을 두어야 한다. 따라서 미래 지식사회에 있어서 성공여부는 얼마나 많은 선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달려있다.
네트워크사회와 인다라망(Indra net)
지식사회는 네트워크 사회이다. 인터넷과 같은 전세계를 연결하는 방대한 네트워크에 의해 상호작용이 이루어지는 사회이다. 마치 인다라의 그물처럼 끝없이 되 먹이는 중중무진의 세계이다. 지식의 참다운 의미는 이러한 네트워크사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분명해진다.
이러한 지식사회는 규모의 경제가 아닌 연결의 경제성(economics of linkage)에 의해 지배된다. 이는 네트워크환경을 전제로 개개인의 정보와 노하우를 체계적으로 이끌어내어 보편적 지식으로 공유하면서, 새로운 가치로 확대 재생산함으로써 개인과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할 수 있다. 지식이란 한 개인에 의존하기보다는 수많은 연결관계에 의해 축적된다. 곧 지식은 개인의 두뇌 속에 저장되어 있거나 개인이 소유하고 있는 서가의 크기에 따른 정보량에 한정될 수 없으며, 전 세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상에 존재하는 방대한 규모의 데이터베이스에의 접근 가능성 또는 활용-능력에 따라 무한히 확대될 수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지식이란 어느 특정주체가 ‘소유한 것’이라는 명사적 개념이 아니라, 어떠한 관계에 의해 상호 ‘접근하고 있다’는 동사적 개념이다. 이는 마치 ‘kiss’가 명사 또는 동사가 아니라 접속사라고 하는 농담과도 같다. 미래 지식사회로의 진전은 바로 이러한 상호작용정의 개념을 전제로 이루어질 것이다. 미래에는 지식과 지식, 학문과 학문간의 상호작용에 의해 지식의 확대재생산이 엄청난 속도로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지식사회로의 진전을 위해서는 지식의 상호작용성에 대한인식의 전환을 통해, 축적된 지식을 공유한다는 인식이 선행되어야 한다. 다시말해서 ‘네가 있으니 내가있다’는 인연법이 전제되지 않고 지식의 공유는 불가능하며, 공유된 지식 없이 미래 지식사회를 논할 필요가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지식이란 인드라 그물처럼 무한한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인연법의 결과인 것이다.
축적지蓄積知에서 활용지活用知로
종이의 시원인 파피루스는 나일강에 자생하는 다년생 풀로서, 이 파피루스의 최대 생산국은 이집트였고 최대 수입국은 로마였다. 파피루스의 수입이 국정의 주요 현안이 될 만큼 로마의 문화는 높은 수준이었다. 결국 로마는 이 파피루스의 수입에 의해 최고의 지식사회를 만들었고, 로마문명은 세상을 지배하면서 현대 서구문명의 근원이 되었다. 그러나 이집트는 그 도구만을 수출하였을 뿐 자신의 지식으로 축적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문명은 고대의 유물만 남고 말았다.
우리는 해인사 고려대장경을 법보로 신성시하며, 국가적 문화재 나아가 세계인의 문화재라며 자랑하고 있다. 실제 이처럼 방대하고 의미 있는 문화재도 흔치는 않다. 물론 처음에는 로마의 파피루스처럼 수입된 사상이었지만, 긴 세월 동안 갈고 닦아 축적된 지식의 보고이다. 그러나 이 성보에 담겨져 있는 붓다의 사상을 올바로 이해하고 행하지 못한다면, 한낱 박제刺製화한 나무조각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그 안에 축적되어 있는 지식은 실제로 우리의 삶에 유익하게 활용될 때만이 가치를 갖는다. 창조적 지식으로 무장하지 않고 양적으로 팽창한 인간의 삶에 남는 것은 공룡의 역사가 증명하듯 쇠락할 뿐이다
불교와 세계적 보편성
그 밖에도 우리는 엄청난 양의 불교적 문화유산을 지니고 있다. 심지어 우리의 언어와 관습, 행동양식 하나에도 붓다의 사상이 진하게 배어있음은 누구도 거부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우리의 인식이다. 이제부터는 무감각적으로, 그리고 알음알음으로 스쳐 가는 불교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체계에 분명하게 각인된 불교여야 한다. 현재 축적된 가치수준에 머무를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미망의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더욱 적극적으로 활용해야만 한다.
산업사회에서 인간의 욕망을 끊임없이 자극해 오던 여타의 사장과는 달리, 자칫 소외된 듯하던 불교가 미래 지식사회에 있어서는 가장 뚜렷한 보편성을 갖는 가르침으로 자리 매김을 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불교는 온 인류에게 닥친 재앙과 갈등을 치유할 수승한 가치로 인식되면서, 세계적 보편성은 불교적 가치관을 바탕으로 재정립될 것이다.
21세기 지식사회에는 하루하루 선지식을 찾아 길을 떠나는 사람만이 진정한 의미의 지식인이다. 그리고 새롭게 축적해 놓은 지식을 더불어 소유할 수 있는 사회야말로 가장 이상적인 지식사회인 것이다. 불교인 모두는 미래 지식사회의 주역이 되어야만 한다.